CIA 최고 요원 토빈 프로스트(덴젤 워싱턴)는 조직을 배신하고 불법적인 정보거래상으로 변신해서 살고 있다. 각국에서 수배중인 토빈프로스트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나타나고, 정보거래 도중 습격을 받아 미 대사관으로 제발로 걸어들어가는데...

 

한편 CIA요원으로 남아프리가 공화국에서 미국의 안전가옥을 지키는 매트 스웨턴(라이언 레이놀즈)는 매일매일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 토빈 프로스트가 안전가옥으로 끌려와 조사를 받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는데...누구도 알수없는 이 안전가옥이 습격 당하고... 토빈 프로스트와 매트 스웨덴은 가까스로 습격자로 부터 탈출하게 되는데...

 

그냥 액션 영화다.

줄거리도 흔한 편이다. 전직 CIA출신의 정보 상인... 어떤 정보인지 몰라도 공개되면 파장이 커다란 정보 때문에 추격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서 신참 요원의 도움으로 위기를 탈출하고... 위기를 같이 겪으면서 두 주인공은 마음이 통하고...블라블라...

 

이 뻔한 영화를 왜 너절하게 늘어 놓는가 하면.. 요즘 국정원 국정조사 때문에 그렇다.

이 영화 마지막에 문제가 된 정보가 공개되어 CIA국장이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가고 정보를 입수한 언론은 공개된 정보에 대해 비중있게 다룬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피튀기며 지켜낸 정보가 마지막에 사회를 위해 위정자들을 곤경에 몰아넣는다는... 그래서 비록 CIA라는 첩보단체가 불법적인 행위를 했어도 진정한 애국자들이 그것을 바로 잡는다는 환타지를 넣어주기 위해 액션으로 도배한 영화다.

 

대한민국에서는 정보요원이 저렇게 사명감을 위해 헌신하지도 과도한 액션을 하지도 않고 그냥 인터넷에 댓글을 단다. 불법적인 댓글질에 청문회에 나와도 국가의 안위만을 생각하지 국민의 권리는 생각하지도 않는 국회의원님 덕분에 편안한 심문을 받는다. 언론은 중요하게 다루지도 않고 국민들이 촛불이라도 들어야 겨우 몇글자 써주는 정도고...

 

그래서 미국은 대한민국보다 민주적일까? 천만의 말씀일테다. 미국도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이라크전쟁을 미화하는 언론이 있다. 이미 자본에 잠식된 미국의 언론도 대한민국과 다를게 없다. 다만, 영화에서만 민주적인 척할 뿐이다.

 

민주주의는 영웅적인 전사가 가져다 주지 않는다. 체제가 잘못되어다는 양심과 제대로 국가기관을 통제하겠다는 시민의 의지로 만들어지는게 민주주의다. 그래서 더디고 힘들다. 결과물도 시원치 않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현실인 것을...

 

이 영화의  장점은 단 하나... 부패한 권력으로 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는 것을 교훈처럼 알려준다고 해야하나? 안전해 보이는 곳도 부패한 권력이 다가오는 순간 가장 불안한 곳이 된다. 이건 은유가 아닌 현실 그 자체다...

 

더위에 청문회보다 열받아 죽을지도 모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하루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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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8-2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서를 거부하는증인이라. 이건 참 참신(?)하더군요. (얼마나 웃겨줄려고 그러나 했는데 생각보단 진부했어요..)

머큐리 2013-08-22 21:50   좋아요 0 | URL
그 재미없는 개그를 정권 내내 봐야 할 것 같아 더 짜증나요...ㅎㅎ

마녀고양이 2013-08-2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저도 생명의 위협을 하루하루 느낍니다, 진짜 열받아 죽을지도 모를....
가림막에 김직원, 큭큭, 거기다 광주 경찰? 우아.............. 대체 어느 나라인지 쪽팔려 죽습니다.

머큐리 2013-08-22 21:50   좋아요 0 | URL
그래도 지치지 말고 이 여름 건강하게 지내야지요... ^^;;

카스피 2013-08-2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우리는 댓글 수준이지만 CIA는 그보다 더 무시뭇힌 공작을 많이 펼치지요ㅡ.ㅡ

머큐리 2013-08-22 21:51   좋아요 0 | URL
댓글 보다 더 많은 공작이 많을 거에요...우리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ㅎㅎ

yamoo 2013-08-2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저번주에 봤었는데! 우와~~리뷰가 올라오다뉘..@_@
이 영화 그냥 그럭저럭 봤습니다. 덴젤 워싱턴...나름대로 괜찮은 캐릭터였는데...플롯의 긴장감이 별로 없었다는 게 좀 영화의 약점이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 이름을 까묵었는데, 주로 멜로 영화에만 나오다가 처음 첩보 액션 주연을 맡은 거 같은데...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거 같기도 하고....다음 액션 작을 봐야 판단이 설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머큐리님이 이 영화를 국정원 사건과 연결 짓은 거에 와우! 했습니다. 그런 생각 하지 못했거든요~ 암 생각 없이 봤다는..ㅎㅎ

머큐리 2013-08-22 21:51   좋아요 0 | URL
이 영화뿐만 아니라... 첩보 영화만 보면 모조리 연결했을거에요...^^;;
 

본의 아닌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름이다. 날씨도 덥고 시원하게 스릴러 영화 한 편 보겟다고 한다면 이 영화가 나쁘지는 않을 듯 하다. 도시의 빈집... 그 빈집 속에서 숨어사는 사람들... 숨어사는 만큼 비밀도 많고 공포스러운 일도 많다. 더구나 요즘처럼 안전에 대한 강박적인 관념을 지닌 사회에서는 더 섬찟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집? 소외? 혐오? 안전 강박증?

 

난 혐오라고 생각한다. 혐오... 무엇인지 모르지만 꺼림칙하면서 배척하게 만드는 감정.

영화의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지만 영화속의 부차적인 캐릭터 중에는 떠돌이들, 부랑자들이 보여진다. 그들은 낯설고 위험한 무엇으로 그려지고 일상에서 일탈된 존재인 그들의 모습은 자연스런 거부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한 꺼려함이 느껴지도록 배치된다.

 

상대적으로 주인공은 고층의 깨끗한 아파트, 고급승용차, 좋은 옷... 그리고 강박적인 신경증을 가지고 있다. 그릇 하나 하나 깨끗하게 닦여 있어야 하고, 진열해 놓은 물건들은 위치와 각도가 정확하게 맞아야 한다. 그의 삶은 질서정연하며 청결하다. 그러나 실종된 형은 허름하고 곧 재개발 될 아파트에 살고 있다... 물론 실종된 상태이지만....

 

실종된 형이 살고 있는 주거지를 살피다가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된다. 아파트인 집들이 연결되어 있고 아파트 출입문 현관마다 이상한 표식이 낙서처럼 표시되어 잇다. 사라진 형은 이 건물 어딘가에 살고 있어 보인다.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형이 자신에게 악감을 갖고 있음을 안 주인공... 위협은 사실상 가족을 향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실질적인 위협이 시작된다.

 

영화는 곧 철거될 듯한 아파트와 새로 지은 고급아파트를 대비하고 각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익숙한 공포를 조장하는 듯하다. 그들의 무질서함과 지저분함 무언가 냄새가 날 듯한 더러움이 주인공의 강박관념과 충돌하며 전반적인 혐오감을 가중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혐오감은 어느덧 공포로 전환된다. 저... 사람들이 나를 공격한다면... 그리고 내가 가진 자리를 빼앗는 다면....

 

'설국열차'는 꼬리칸에서 사람을 잡아먹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봉기한다. 그 봉기에는 설명할 수 있는 정당함과 정의를 가지기에 폭력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탄압하는 자에 맞서는 더 커다란 폭력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숨바꼭질'에서는 꼬리칸의 인간들이 얼마나 더럽고 무식하며 위협적인 사람들인지 앞칸의 사람들 시각에서 그려지고 있다. 스스로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노골적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살고 있는 경계안으로 들이지 않고 그들을 피해 다니는 것이 당연함을 보여준다.

 

두 세계과 충돌하면서 공포가 형성된다. 충돌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원시적이고 투박하다. 그 만큼 잔인하다.

 

혐오스런 감정은 어디서 부터 발흥하는가?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건 주인공이 버젓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그가 가진 환경과 강박은 어린시절 형을 배신한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 배신의 결과가 강박증이라면..... 혐오는 자신의 배신을 지우려는 감정은 아닐런지...

타인에 대한 혐오를 공포의 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보수적이다.... 그러나 그 혐오감의 진정한 탐색이 어디 있는지를 묻고 있다면 이 영화는 다른 메시지를 던져준다. 너는 타인의 입장에 대하여 얼마나 진실할 수 있는가? 물론 이 질문은 나의 상상일 뿐이다.

 

뭐...영화보는데....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할 거 무엇있겠나.. 극장은 시원하고 영화는 스릴이 넘쳐 소름끼친다... 여름이면 이것으로 만족해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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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라.... 9.11 이후 테라라는 단어는 거의 공포스러운 단어가 되었다.

일상의 안전을 침해하고 무고한 생명을 가차없이 빼앗아 버리는 테러는 그 자체로 범죄시 하고 죄악시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 세계의 구조적 결함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테러 더 라이브'라는 영화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잘되어 있어 한밤중까지 술에 취해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대한민국에서 채택하기는 참 껄끄러운 소재를 긴박감 넘치는 하정우의 일인연기로 영화 끝까지 긴장감있게 펼쳐 보인 착한 영화다.

 

워낙 허리우드의 테러영화를 많이 보았기에 테러가 상징하는 압도적 폭력은 잘 보이지 않고 테러가 끼치는 심리적 갈등 요소를 주된 네러티브로 삼은 것은 틈새시장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영리한 방법이었다. 거창한 그림없이도 테러의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했다는 점에서도 착한 영화임이 틀림없다.

 

더구나 시청율에 매여 테러에 대한 경고보다 방송국의 이익을 위해 고분분투하시는 미디어 제국의 속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착한 영화다.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자본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자본의 전사가 가장 많은 이윤을 획득하고 상층으로 진입하는 이 승자독식의 사회의 우화로 읽는 다면 무리한 설정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해드셋 폭탄 등... 무리한 설정이 없는 건 아니다. 그리고 비판적으로 보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시비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긴박한 스토리보다 이 영화가 나에게 던져준 것은 '정당한 항의'와 '억울한 자의 목소리' 였다.

 

금융, 정치, 언론의 중심지인 여의로로 통하는 마포대교가 폭탄테러를 당한다. 테러범의 요구는 금전적인 것도 있었지만, 과거 마포대교 보수공사를 하던 인부들의 사고... 산재사고에 대한 억울함을 국가가 사과하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사과하면 테러는 중지할 것이라 한다. 여기서 문제는 국가가 과연 사과할 것인가에 있다. 이 영화의 긴박함은 바로 국가가 결코 사과하지 않으리라는 뻔한 결말에서 발생하게 된다. 숨어있는 국가를 대신해 테러범과 마주하는 윤영하(하정우)의 고분분투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테러는 이중적인 속성을 지녔다. 테러라고 규탄하는 행위는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선전하는 기회이거나 해방투쟁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장점이자 한국적인 면은 바로 소외되고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금까지 묻혀왔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만일 어떤 거창한 이념이나 정치투쟁을 그렸다면 난 실망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소박하고 열심히 살지만 그 삶에 대한 정당한 보답을 받기 힘든 사람들... 누구도 이들에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저 인생의 패배자로 여기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보살펴야 할 국가마저 이들을 내팽겨쳤을때 이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테러는 국가에게 이중적인 과제를 던져준다. 자신이 보호해야 할 국민들의 생명이나 재산을 파괴함으로 국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오로지 국가만 행사할 수 있는 폭력을 국가가 아닌 개인이나 단체가 행사함으로 국가의 질서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테러를 용납할 수 없다. 용납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기반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테러의 원천은 사실상 국가의 신화로 부터 발생한다. 국가는 자신이 보호하는 국민들에게 공평하고 정의롭게 대해야 한다. 이러한 신화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 국가는 테러의 위협으로 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오히려 국민이 양도한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국가의 존립을 지켜야 한다. 국가로 부터 안전해야 할 국민이 국가로부터 위협을 받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건 국가가 전체 국민의 의사보다 계급적 도구로 사용되기에 그렇다. 그러나 국가를 지배하는 계급은 국가를 중립적인 도구로 포장하고 자신의 이득과 이해를 관철시킨다. 여기서 소외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묻혀 버린다. 여기에 묻힌 목소리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테러도 그 중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비용대비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테러일테다. 시청광장에서 아무리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해도 아마 테러 한 방이 가지는 위력을 가지긴 힘들거다. 물론 민주주의 속에서 폭력을 배제하고 합리적인고 지루한 절차가 보다 올바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토대가 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당장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소수로 몰린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테러의 기원은 국가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금 비정규직이 1000만이 가까워 오고 있다. 영화평을 잘 읽어보지 않았지만, 억울하게 사고로 죽은 노동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테러를 요구하는 범인의 행태에 대해 너무 무리한 설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국가가 가지는 폭력성을 이 영화는 잘 잡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용산참사에서 드러났듯이 과연 테러는 누가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국가가 가진 공권력의 그림자만 벗기면 국가 역시 국민들에게 심대한 테러를 저지르는 주체가 되지 않을까?

 

오늘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철탑위에서 296일 동안 농성하던 노동자가 건강악화로 내려왔다. 이들이 농성하던 중에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박정식 사무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또 어떤가? 이 땅에 무수한 노동자들이 자본의 탈법과 불법을 용인하고 있는 국가로 인해 죽음으로 몰려가고 있다.

 

영화의 구성이나 내러티브도 좋았지만... 테러의 기반이 된 소재가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에 더 공감이 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무거운 마음으로 극장문을 나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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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피서라곤 겨우 극장을 기웃거렸던 여름이지만... '설국열차'를 보면서 행복했다.

여기 저기서 영화에 대한 논란도 많고 호불호도 많이 갈리지만, 순전히 나의 관점에서 보면 봉준호의 '설국열차'는 논란이 되는 만큼 좋은 영화다.

혹자는 '더 테러'와 비교하면서 제작비 대비 영화의 완성도 및 수익성을 따지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두 영화 모두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고 주제가 틀리며, '더 테러'가 제목에 비해 한국적인 정서가 강하다면 '설국열차'는 좀더 거시적인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단선적인 비교는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은 같다고 할까?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글들에 묻혀버릴 하나의 글이나, '설국열차'를 봤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각자의 관점에서 '설국열차'를 해석했듯이 나도 그 해석의 한자락을 남기고 싶었다.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이 빙하기를 불렀다는 전제 자체로 이미 이 영화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가정한다. 그건 현재의 어떠한 노력도 자연과 인간의 불화를 해소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을 전제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고립화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모든 사람이 추위로 얼어죽고, 마지막 희망은 거대한 열차 속에 생존하는 것 뿐이다. '설국열차'는 인간의 생존의 터전이 되었고 바로 인간이 영위했던 사회를 그대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기차의 엔진이 존재하는 첫째칸과 비참하게 연명해야 하는 마지막 칸의 대비는 그대로 지금의 사회를 반영하는 듯 하다. 인간 사회에서 계급의 구분은 지속되었고 지구가 빙하기에 들어서 멸망한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 구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계급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에서 투쟁은 당연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억압이 있는 곳에는 그 억압을 끊어낼 싸움이 존재할 수 밖에 없으니까? 문제는 그 계급투쟁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있다. '설국열차'가 나에게 던지는 첫번째 질문이다.

 

당연히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되어야 하는 것...이란 당위를 이야기 하기 전에 부딪쳐야 하는 것이 바로 '질서', '규율', '위치'의 문제다. 어느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지녀야할 규율과 질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규율과 질서는 사회의 안정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수단이 될 것이다. 문제는 누구를 위한 규율과 질서인 것인가? 여기서 계급투쟁은 일어 날 수 밖에 없다. 한계급의 안정을 위한 규율과 질서는 다른 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가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꼬리칸에 있는 사람들은 앞칸에 있는 사람들이 주입하는 규율과 질서를 따를 수 없었다. 그것을 따르는건 인간이 되는 걸 포기하는 일이었으므로.... 인간이 되기 위해 그 따위 규율과 질서를 만든 지배자를 제거해야 했다. 그 지배자는 이 열차를 만든 윌포드이고 이 열차에서 신처럼 존재한다.

 

꼬리칸의 사람들을 지휘하여 열차를 장악하려는 커티스와 커티스의 반란을 알면서도 용인하는 윌포드의 싸움은 어차피 설국열차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음을 전제한다. 이것이 이 영화가 나에게 던지는 두번째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영화 마지막까지 생각하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하나의 혁명이 권력을 차지하고 새로운 권력으로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순환의 모습은 보수주의자들이 혁명의 무용함을 주장하는 주된 모습이었다. 진보라고 하지만 결국 피의 순환 속에 실질적인 진보가 아닌 퇴보로 규정하는 혁명에 대한 체질적 거부와 무용성에 대한 이야기는 커티스가 윌포드를 만나는 순간 그 위력을 발휘한다.

 

폐쇄된 사회에서 적절한 인구를 조절하면서 열차를 이끌고 가야 한다면, 적당한 반란(전쟁)을 통한 인구의 조절과 그에 상응하는 질서의 유지는 필연적이다. 이러한 질서를 거부하면 전체가 죽을 수 있다는 윌포드의 주장에 커티스는 잠시 흔들린다. 다만 낡은 부품을 대체할 아동노동의 참상을 보고 윌포드의 제안을 거부하는데... 보수적 이론의 맹점은 휴머니티가 없기 때문이란걸 이야기 하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사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여기서 영화내내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송강호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그건 폐쇄된 사회의 바깥을 상상하는 유일한 존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바깥에 나가면 모두 죽는다는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물론 바깥에 나가서 죽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나가야 하며 그 도전을 멈추지 않는 다면 폐쇄된 사회에서 모두 죽을 뿐이다. 이 체제를 유일한 체제로 만드는 것은 그 폐쇄성에 갇혀버린 상상력의 제한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한계를 유일하게 돌파해 내는 역할을 송강호에게 맡겼다는 점에서 봉감독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주연보다 더 화려한 조연의 등장이다.

 

마지막으로 과연 미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의 문제... 결국 현재의 사람들은 아니다라는 이야기...열차에서 태어나 땅과 흙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 갈것이란 마지막 설정은 뭔가 찡하다. 이 디스토피아적인 영화의 마지막 희망의 장면에서도 지금 영화를 보는 너희들은 아니라고 냉정하게 잘라 이야기 하는 듯하다. 어쩌면 지금의 세대는 정말 새로운 세대에게 길을 열어주고 사라져야 하는 세대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문제는 지금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를 양보할 생각이 없는 세대라는 점이 가슴 아프다.

 

여기 까지다 그리고 난 '설국열차'를 '자본주의'의 비유로 읽었고, 자본주의의 바깥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 할 수 박에 없다는 이야기로 읽었다. 물론 도식적이고 상상력이 빈곤한 독해일지 모르겠다. 어쩌겠나.... 일상에 치여 이리저리 헤매면서도 이러한 일상이 새롭게 조직되는 미래는 지금의 체제가 아니었음을 간절히 바라는 내 눈에는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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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3-08-0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오늘 보고 왔습니다. 전 매우 재밌게 봤어요. 머큐리님처럼 저도 열차내 체계를 자본주의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봉준호와 고아성은 영화에 녹아들지 못한 캐릭터같아 많이 아쉬웠다는..
머류리님의 설국열차 감상 잘 봤습니당~~^^

머큐리 2013-08-08 19:39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워낙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영화라서요..^^
 

금요일... 지친 하루를 마감하고 퇴근하기 직전 대학동기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만나지도 못하고 술 한 잔 기울이지 못했던...동기의 장례식장엔 그동안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했던 동기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모두들 이제 죽음이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 것일까?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느사이 죽음과 친숙하게 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 먼저 세상을 버리고 간 선배와 동기의 죽음은 당시에는 죽음이라기 보다 저항이라고 느꼈고, 거기에서 죽음의 의미는 생물학적인 소멸이라기 보다 사회적 타살로 인식했다. 그렇기에 소멸의 쓸쓸함보다 저항의 격렬함과 오히려 새로운 생에 대한 갈망을 느꼈었다.

 

어느 덧 친구들의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전해들은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제 윗세대가 가고 우리의 차례가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자라나는 아이들에 치여 당장은 내 차례가 아니라고 이제 다가 오고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애들이 자라고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 나갈 정도 될 때까지는 윗세대의 죽음은 그저 당연한 자연의 순리처럼 느껴졌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당연히 통과해야 하는 의례인양...

 

그리고 좀 더 세월이 흘러 일상에 치이고 있을 때... 일찍 요절하는 후배의 죽음, 선배의 죽음... 그리고 동기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 왔다. 생물학적인 소멸.... 생을 얻었으면 반드시 반납해야 하는... 그 죽음의 사례들이 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찍 죽음의 길로 들어선 선후배의 사인은 암이었고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그 죽음의 원인 앞에서 나이 들어 가는 자들은 건강을 이야기 하고 운동을 이야기 했으며 해롭다는 술, 담배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일찍 가버린 사람들을 추도하며 상호간 안부를 묻고 술잔을 기울이고... 삼삼오오 담배를 피웠다.

 

갑자기 죽은 동기처럼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은 모인 숫자 만큼 다양하게 삶을 살고 있었고 각자의 꿈들을 이루고 있었으며 청년때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반가운 놈도 있었고 별로 보고싶지 않은 놈도 있었으며 형식적으론 다음에 술잔을 기울이자고 말하면서도 그저 말로 그치는 놈도 있었고 꼭 한 번 다시 만나 살아온 세월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은 놈도 있었다. 얼굴은 보지 못했어도 궁금했던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수도 있었고.... 설마 이 자리 이후에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또 다른 동기의 부고로 이렇게라도 다시 모일것이라 추측도 했다.

 

죽음 앞에서 삶의 다양함을 느낀다는 것.... 살아 있는 사람들의 애도란 그런 것이다. 특히 한때의 인연이 있어도 그와 함께 한 시간이 없을 때는 그 한 때의 인연이 전부일터...자신과 공유하는 부분에 따라 죽은자에 대한... 죽음에 대한 느낌은 틀릴 것이다.

 

2013년은 연초부터 죽음과 연결되어 지나가고 있고... 정말 순순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뭐 별거 있을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정말 충실하게 사는 것... 문제는 그 충실한 삶에 대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함일 뿐...

 

그러고 보니 삶 속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었다... 단지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제 그걸 의식하고 인정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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