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이 해산 당.했.다.

 

통합진보당 당원도 아니며, 진보당을 그리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나는 반성한다.

그대들에게 '종북'이라 불렀던 일을 반성한다.

그냥 북쪽과 친하다는 느낌에 민족적 감수성이 너무 강하게 표출되는 몇몇 사람들의 언행과 행동을 이유 삼아 모든 진보당원들을 마치 '종북'인 듯 비웃었던 일을 반성한다.

나의 철없음과 배려없는 언행이 나와 함께 이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완벽하게 격리시키는 단서을 제공했음을 반성한다.  

 

수구주의자들, 통일을 대박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자들,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정적을 모두 빨갱이로 몰아 처단해야 하는 자들에게 분단사회의 가장 커다란 낙인인 '종북'이란 말을 함부로 사용해서 이 사회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물거품으로 만들게 일조했던 나를 반성한다.

 

이제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넘어 종합적인 공안몰이가 시작되는 듯 하다.

인간이 가진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무엇 하나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정서적 거부감으로 무시했던 일이... 이제 쓰나미가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물론 정서적으로만 거부했던 것은 아니다. 정말 일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들과 토론하고 경합하기보다 정말 어느 한 쪽으로 내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 사소함이 오늘의 결과를 부른건 아닌지...

 

진보당 해산에 반대하는 집회도 헌법정신을 위배한 집회이기 때문에 집회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집시법의 이 특정 조항이 이렇게 현실에 현현할 줄이야...

 

길은 멀고, 수십번 넘어지고 가고 있다. 한번 더 넘어졌다고 자위하기엔 너무 큰 상처지만 여기서 다시 온 길 되돌아보고 다시 가야지 별 수 없다.

 

아직도 굴뚝위에서 길에서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삶을 이어가기 위해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긴 호흡으로 ...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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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노동자들이 고공으로 올라갔다.

지상에서 싸우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기에 마지막으로 농성을 행해야 하는 곳으로 ...

지상에서 추방된 자들은 땅 속으로 죽어 들어가거나 살기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했다.

 

한겨레 기사 :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668927.html?_fr=mt1

 

스타케이컬이 그렇고 한진이 그랬으며 씨앤앰 노동자들이 그랬다.

그리고 쌍용이 또 추가되었다.

 

대한항공 김현아 부사장의 슈퍼갑질에 세상이 시끄럽다. 하기야 그들의 부를 창출하고 유지하고 지탱시켜 주는 노동자들에게 인격이 없는 물건취급을 했으니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하자. 하지만 그렇게 슈퍼 갑질을 하도록 허용한 것은 누구일까?

 

IMF시절 한보의 정태수는 직원을 머슴으로 칭했다. 이른바 노예로 여긴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사용자와 노동자는 형식적이나마 계약관계 임을 전면 부정하고 아직도 봉건제에 살고 있음을 깨우치는 일갈이었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한 말이었다.

그 시절 이후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을까?

 

87년 체제 후 민주화가 많이 진행되었다고들 한다. 사실 변화된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이 관계는 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더 심화되고 있다. 시대가 변해서 대놓고 노예라고 머슴이라고 칭하지 않지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모욕하고 상처주고 굴욕을 주고 있고 이러한 행위는 하늘이 준 천부인권적 권리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노력없이 세습받은 부와 지위로 타인을 모욕하는 그 천박한 행태는 이 사회에서 용인받아 왔기에 행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도 이런 천박한 행위를 용인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비정규직을 용인하는 것, 정리해고를 용인하는 것....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조건을 계속해서 허용하고 있는 것, 노동이 상품임을 용인하는 것...

 

이제 다시 고공으로 올라간 노동자들에게 전해줄 이야기는 무엇이어야 할까?

지상에서 추방되어 하늘 가까이에 올라가 이 엄혹한 바람을 맨몸으로 버텨야 하는 이들에게 이 사회가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노동의 문제가 삶의 문제라서 그런걸까?

아직 쉬운 해답이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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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하여 지지한다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말을 들었다면 어떤 기분일까?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니가 뭔데 나를 함부로 재단하냐는 반발이다. 그런데 그런 반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압력이 세다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 당할 수도 있다. 어쩌면 소수자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침탈에 들어오는 외부에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몰려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현재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소수자이다.

 

성소수자들이 서울시청을 점거하고 있다.

서울인권헌장에 들어갈 성소수자 차별금지에 대한 문구때문에 논란( =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의 깽판)이 있었지만 서울인권헌장을 기초한 대표자들의 압도적(?)표걸로 통과시켰다. 문제는 서울 시였다. 서울시와 박원순은 합의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서울인권헌장을 사장시키려 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인권이란 합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혐오와 배제를 부르짖는 그야말고 인권을 부정하는 사람들과 합의해야 되는 것이다.

 

현재 인권단체들과 성소수자들은 시청 로비 일부를 점거하고 박원순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시장이 기독교근본주의 목사들 앞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이나 하고 있으니... 인권활동을 정치적 자산을 위한 활동으로 생가가고 있는건 아닌지....

 

주변 참모들이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박시장의 행보를 충고(?)하고 있다는 설도 있고... 그렇다면 참모들 부터 물갈이 해야 할 듯하다. 기독교근본주의자들에게 아무리 아부를 해도 그들이 박시장에게 표을 줄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인권적 가치를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임을 잃을 뿐이다. 일부 박시장의 지지자들은 아군을 향해 총질하는 성소수자들과 인권활동가들을 비난하던데, 이거 참 웃기는 얘기다. 소수자들에게 새누리당이나 지금의 박시장이나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정치적 폭력은 동일하다. 어디서 차이를 느낄 수 있겠는가? 다른 진보적 가치들? 소수자를 배제하고 펼치는 진보적 가치들이란 무엇인가? 그건 진보적 가치라고 부르기 보다는 우수한 행정능력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니 진보의 이름으로 아군에게 총질한다느니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느니 하는 개드립은 좀 삼가했으면 좋겠다.

 

12월 10일은 유엔에서 정한 세계 인권의 날이다. 이날 서울시청에서 농성하는 사람들은 시민의 이름으로 '서울인권헌장'을 선포했다. 행정권력인 서울시는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보적 가치들은 이를 시행할 권력에 대한 감시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한 사람이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다면 이미 진보 정권 10년이 가져다 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지금의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꼴이다. 더 얘기해봐야 입만 아프다.

 

서울시와 박원순은 서울인권선언을 정식으로 공표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어떤 조건에서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선언하나 외치지 못한다고 해서야 어디 사람사는 세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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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11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 권리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차별하지 말라는건데 그거 법에 다 있는건데 왜 제정을 못할까요. 좀 우스워요 =.=

머큐리 2014-12-11 17:27   좋아요 0 | URL
농성장 분위기는 마치 축제 현장 같았다는... 정치인 박원순과 인권변호사 박원순의 분열이 너무 심해서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는...

무해한모리군 2014-12-11 18:30   좋아요 0 | URL
제 인생에서 제일 즐거웠던 캠프중에 하나가 25살때 레즈비언 친구들과 놀러갔을때였는데 우와 서로 속옷만 입고 악기 연주하며 놀아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요 ㅋㄷㅋㄷㅋㄷ
 

노동에서 소외된 노동자... 이제는 아예 노동할 자유도 잃어버린 노동자...

영화 카트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영화를 못 만들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영화 속 현장과 현실이 겹치면서 우리는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가 답답해서 였다. 


얼마전 대법원에서 쌍용자동차 대량해고가 합법적이라 판결했다. 회사의 거짓말을 모두 인정하여 당시 정리해고가 법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의 옳고 그름은 한편으로 밀어 놓고 대량으로 정리해고가 아무런 윤리적인 판단없이 이루어지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이 영화는 꼭 봐야한다. 

영화 처음에도 나왔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한 그 '실화'에 주목해야 한다. 그 '실화'의 시대적 배경 역시 빠지면 안된다. 그 이유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참여정부 시절이기 때문이다. 


보수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 지칭했던 그 시절,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닥친 해고의 칼날은 자칭 좌파정권 하에서도 자행되었던 것이다.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소모품처럼 사람을 해고해도 괜찮다고 신호를 준 것이 그나마 이 땅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선 시기에 일어났다고 하는 점에서 이 영화는 하나의 상징를 보이고 있다. 

이러니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이 정부의 대법원의 판단을 그저 보수적이라 비판할 수 있을까? 최소한 노동에 관한 한 이 사회는 보수적 시각을 버린 적이 없었다. 


영화의 극적 구성이나 리얼리티는 잘 살려져 있다. 다큐멘터리처럼 투박하지 않고 연기자들의 연기도 좋았다. 몇번씩이나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들도 감동적이었고 ...


그럼에도 무언가 석연치 않다. 이만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평범한 마트 노동자가 대기업과 정면으로 맞붙어 싸우는 투사가 되는 것조차 자연스럽게 연출된 이 영화에서 무언가 빠진 것이 있어 불편해 진다. 아마도 나의 편협함도 한 몫햇으리라. 


그래서 이쉬움을 토로한다. 당시의 싸움은 홈에버 노동자들의 단독 싸움이 아니었다.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민주노총을 비롯해 수많은 사회단체들이 함께 했다. 그들의 파업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것은 여러 사람들이 결집해서 이루어진 '연대'에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는 이후에도 이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더불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은 바로 연대의 정신이었다. 


영화에서 '연대의 정신'이 빠지자 관객의 시선은 연민과 동정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단치 처참하게 싸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싸움의 종말은 항상 패배였다. '연대'를 했었지만 패배 했었다. 그러나 그 패배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지금의 영화 속에서 희망을 찾기란 요원하다. 아니 어쩌면 감독은 아직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노동에서 해방된 세상이 아니라 노동에 종속되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노동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노동에 종속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노동운동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이전에는 노동을 착취하는 세상을 뒤엎는 것이 노동운동이라면 이제는 최소한 노동이라도 보장해 달라고 싸우는 것이 노동운동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을 뒤엎지 못해도 인간 답게 대접해 달라고 노동을 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빨갱이가 되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지니 이제 정규직을 유연화하여 비정규직과 비슷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새누리당에서 이야기한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분열이 자본의 의도였지만 노동을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노동자는 모두 노동자였지만 분열되고 갈라진 노동계급은 스스로 몰락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이란 딱지를 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결국 노동자들의 단결 밖에 없다. 그리고 단결과 더불어 연대가 필요하다. 이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연대가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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