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라.... 9.11 이후 테라라는 단어는 거의 공포스러운 단어가 되었다.

일상의 안전을 침해하고 무고한 생명을 가차없이 빼앗아 버리는 테러는 그 자체로 범죄시 하고 죄악시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 세계의 구조적 결함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테러 더 라이브'라는 영화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잘되어 있어 한밤중까지 술에 취해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대한민국에서 채택하기는 참 껄끄러운 소재를 긴박감 넘치는 하정우의 일인연기로 영화 끝까지 긴장감있게 펼쳐 보인 착한 영화다.

 

워낙 허리우드의 테러영화를 많이 보았기에 테러가 상징하는 압도적 폭력은 잘 보이지 않고 테러가 끼치는 심리적 갈등 요소를 주된 네러티브로 삼은 것은 틈새시장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영리한 방법이었다. 거창한 그림없이도 테러의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했다는 점에서도 착한 영화임이 틀림없다.

 

더구나 시청율에 매여 테러에 대한 경고보다 방송국의 이익을 위해 고분분투하시는 미디어 제국의 속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착한 영화다.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자본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자본의 전사가 가장 많은 이윤을 획득하고 상층으로 진입하는 이 승자독식의 사회의 우화로 읽는 다면 무리한 설정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해드셋 폭탄 등... 무리한 설정이 없는 건 아니다. 그리고 비판적으로 보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시비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긴박한 스토리보다 이 영화가 나에게 던져준 것은 '정당한 항의'와 '억울한 자의 목소리' 였다.

 

금융, 정치, 언론의 중심지인 여의로로 통하는 마포대교가 폭탄테러를 당한다. 테러범의 요구는 금전적인 것도 있었지만, 과거 마포대교 보수공사를 하던 인부들의 사고... 산재사고에 대한 억울함을 국가가 사과하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사과하면 테러는 중지할 것이라 한다. 여기서 문제는 국가가 과연 사과할 것인가에 있다. 이 영화의 긴박함은 바로 국가가 결코 사과하지 않으리라는 뻔한 결말에서 발생하게 된다. 숨어있는 국가를 대신해 테러범과 마주하는 윤영하(하정우)의 고분분투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테러는 이중적인 속성을 지녔다. 테러라고 규탄하는 행위는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선전하는 기회이거나 해방투쟁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장점이자 한국적인 면은 바로 소외되고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금까지 묻혀왔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만일 어떤 거창한 이념이나 정치투쟁을 그렸다면 난 실망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소박하고 열심히 살지만 그 삶에 대한 정당한 보답을 받기 힘든 사람들... 누구도 이들에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저 인생의 패배자로 여기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보살펴야 할 국가마저 이들을 내팽겨쳤을때 이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테러는 국가에게 이중적인 과제를 던져준다. 자신이 보호해야 할 국민들의 생명이나 재산을 파괴함으로 국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오로지 국가만 행사할 수 있는 폭력을 국가가 아닌 개인이나 단체가 행사함으로 국가의 질서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테러를 용납할 수 없다. 용납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기반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테러의 원천은 사실상 국가의 신화로 부터 발생한다. 국가는 자신이 보호하는 국민들에게 공평하고 정의롭게 대해야 한다. 이러한 신화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 국가는 테러의 위협으로 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오히려 국민이 양도한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국가의 존립을 지켜야 한다. 국가로 부터 안전해야 할 국민이 국가로부터 위협을 받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건 국가가 전체 국민의 의사보다 계급적 도구로 사용되기에 그렇다. 그러나 국가를 지배하는 계급은 국가를 중립적인 도구로 포장하고 자신의 이득과 이해를 관철시킨다. 여기서 소외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묻혀 버린다. 여기에 묻힌 목소리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테러도 그 중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비용대비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테러일테다. 시청광장에서 아무리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해도 아마 테러 한 방이 가지는 위력을 가지긴 힘들거다. 물론 민주주의 속에서 폭력을 배제하고 합리적인고 지루한 절차가 보다 올바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토대가 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당장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소수로 몰린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테러의 기원은 국가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금 비정규직이 1000만이 가까워 오고 있다. 영화평을 잘 읽어보지 않았지만, 억울하게 사고로 죽은 노동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테러를 요구하는 범인의 행태에 대해 너무 무리한 설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국가가 가지는 폭력성을 이 영화는 잘 잡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용산참사에서 드러났듯이 과연 테러는 누가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국가가 가진 공권력의 그림자만 벗기면 국가 역시 국민들에게 심대한 테러를 저지르는 주체가 되지 않을까?

 

오늘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철탑위에서 296일 동안 농성하던 노동자가 건강악화로 내려왔다. 이들이 농성하던 중에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박정식 사무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또 어떤가? 이 땅에 무수한 노동자들이 자본의 탈법과 불법을 용인하고 있는 국가로 인해 죽음으로 몰려가고 있다.

 

영화의 구성이나 내러티브도 좋았지만... 테러의 기반이 된 소재가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에 더 공감이 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무거운 마음으로 극장문을 나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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