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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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담담함과 그 속에서 격렬함이 교차하는 영화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 격렬함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볼 사람도 있겠다. 영화 속에서의 영상은 일상의 평범함을 느리게 아주 느리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격렬함이라곤 찾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그 펑범함 속에 요동치는 격렬함을 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 또는 사랑하지 않는다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아니 사랑하다가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경계는 어디일까?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낯선 타인으로 변해버리고 그 사람과 일상의 나눔이 힘겨워져 버리는 순간은 어디일까? 

영화 속에서 떠나겠다고 하는 여자와 떠나는 여자를 담담하게 보내주는 남자의 마음 속에는 어떤 소용돌이가 일고 있을까? 착찹함? 뒤 끝 남기지 않는 좋은 이미지? 이미 떠나간 사람에 대한 체념?무엇으로도 상대방의 마음을 바꿀 수 없음에 대한 한탄? 

시간의 이빨이 그들의 사랑을 갉아 먹어치웠어도 그들이 일정하게 공유하는 추억이 있는 경우에 그 추억의 색과 형태가 바래지지 않는 이상 감정의 소용돌이는 일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번도 충돌하고 다투지 않았을 것 같던 두 사람이 결혼 5년 만에 헤어지기로 했던 구체적 이유는 나오지 않느다. 여자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고, 그 남자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는 챘지만 결코 말하지 않고 변해버린 여자에 대해 체념하는 남자.... 

사랑이 일상에서 벗어남이고 어느정도 미친 상태라도 볼 때, 남자는 이미 일상으로 안착하고 여자를 편하게 보내 줄 만큼 사랑이 퇴색한 것일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도 그저 개인의 결단이고 그 결단에 대한 존중이야 말로 남자가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인 것일까?
냉소적이거나 이죽거림 하나 없음이 일종의 무관심과 사랑의 퇴색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궁극적인 사랑의 완성은 담담한 이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작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의 선이 잘 드러난 영화.  

하지만... 아직도 그 감정의 선이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만들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는.... 그런데 뜬금없이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랑 예찬'이 떠오르는 것은 왜인지... 사랑은 선언이라는 책속의 문구가 뇌리를 떠다닌다. 사랑은 두 사람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가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라면... 헤어짐은 두 사람이 만나서 발생하는 모든 현실을 외면하겠다는 선언인 것일까?  

사랑과 헤어짐의 경계... 그 영원한 물음에 대해 편안하게 생각하게 해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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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 러브스토리
마이클 무어 감독 / 파라마운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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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가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들고 왔다.  

영화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 전이니 이미 흘러간 이야기이고 무엇보다 야만적인 미국식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에 대한 고발이다. 그러니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은 아니라는 이야기이고 지극히 체제 내적인 고발인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며 눈물을 보이는 미국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 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한계가 뚜렸하게 보인다.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면 미국은 철처하게 성공한 사람들을 우대하는 자본주의이다. 거기에는 한가지 전제가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근면하고 성실하게 노력하고 창의적으로 살아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부자들에게 갖는 선호와 혐오의 교차에 비교하면 꽤나 의아스러운 일이다. 물론 미국의 역사적 배경에 따른 감정이지만, 성실과 노력에 따른 보상에 대한 광범한 합의와 그 결과에 대한 승복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자본주의가 버티고 온 동력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현실적 결과가 터져버렸다. 이른바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한 금융위기.... 거기에는 단순한 부도덕을 넘어선 체제의 함정이 있었다. 마이클 무어는 이것에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또는 정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이른바 가진 사람들이 정권을 장악하여 좌지우지 하고 있을 때 생존에 쫒기는 사람들이 기댈수 있는 언덕은 어디에 있을까? 금융위기를 통해 기업들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위기를 넘기고 무리한 금융투기를 통해 빈털털이가 되어 집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민중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했을 때 그 나라는 정상적인 나라인 것일까? 그리고 그 나라에서 오랫동안 신봉하는 자유, 경쟁, 선택의 가치가 사실상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가치이고 그 가치를 신봉하도록 교육하여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역시 마이클 무어가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웃기는 건 가장 자본주의적인 나라인 미국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방법으로 금융위기를 돌파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가치를 왜곡하는 대목일 것이다. 어쩌면 사회주의란 단어는 부자에게는 허용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아무런 의사결정 없이 노동하는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잘못된 결정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어도 자본가는 보호 받지만 노동자는 실직으로 이어진다. 자본가에게 도움이 되면 정당한 지원이고 민중에게 돌아가는 지원은 사회주의적 정책이라는 이중 잣대는 결국 이데올로기란 힘있는 자들이 자신을 변호하는 수단이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변하하고자 하는 열망은 무엇으로 담아내야 하는가? 변화를 추동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 답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교서에 있다고 마이클 무어는 본다. 미국 역사에서 뉴딜정책을 사용하고 노동조합을 보호했던 거의 유일한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의 정책이 미국에 정착되었다면 미국은 지금과 다른 사회로 변화할 수 있었을까? 그건 장담하지 못하겠다. 세계를 경영하느라 군산복합이 가장 발달한 사회가 스스로를 교정하기란 쉽기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사회의 토대를 이해하지 않고서 그 사회의 변화를 추정하기란 쉽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라는 미국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이 심화되는 과정과 이에 따른 부의 재분배에 대한 마이클 무어의 신랄한 비판과 비아냥은 최고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일 뿐 자본주의 일반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죄악하고 최악의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그 다음은... 사회민주적 복지만 장착하면 그 죄악이 사라질까? 유럽처럼 자본주의를 운영한다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사라질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마이클 무어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할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만 해결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나가라고 요청하는 건 욕심일테니까....그리고 그 한 걸음에 대해서는 아직 어느 누구도 전망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으니까.... 

행동한다는 것.... 그것이 유일한 수단임에 틀림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영화다.
민주주의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죽는다.....슬프지만 맞는건 맞다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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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0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1-02-22 08:36   좋아요 0 | URL
암튼 건강하게 잘 지내셔야 합니다..ㅋㅋ

양철나무꾼 2011-02-2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히 앉아 있으면 죽는다면...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생물인가요?
전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이란 책을 읽었는데, 연관시켜 함 생각해볼만 하네요.

봄이 오려나 봐요, 잘 지내시죠?^^


머큐리 2011-02-22 08:36   좋아요 0 | URL
그리 잘 지내고 있지는 못하지만...나름 봄을 즐기려고 노력 중입니다..^^
 
[블루레이] 아이언맨2 (2disc) : 스틸북 케이스
존 파브로 감독, 기네스 팰트로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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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남아 돈다고 해도 굳이 봐야 할 이유가 없는 영화도 있다. 아마 이 영화가 그런 영화가 아닌가 한다. 최첨단 강철 슈트와 무기를 겸비한 아이언 맨의 활약은 전 지구를 커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활약으로 지구에 평화가 왔단다.... 오 이런~  고마운 일이.... 

미국이 탄생시킨 영웅이 한 둘이 아니지만 아이언 맨처럼 단순하고 철저하게 미국의 한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영웅은 없다. 아니 태생부터 군산복합기업의 CEO이자 손에 피를 묻히고 타인의 죽음을 담보로 돈을 버는 죽음의 상인이 이 시대의 영웅으로 추앙 받는 그 태생적 한계는 그대로 영화의 스토리의 한계로 규정되어 버린다. 더구나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군산복합의 밀애는 보기조차 역겹다. 열광하는 대중은 그냥 그대로 바보들의 함성일 뿐이다.  

이 영화를 그냥 스트레스 해소용 오락으로 봐도 좋다. 하지만 영화속에 드러나는 이미지들은 그저 그냥 오락영화로 치부하기에 많이 불편하다. 어떤 점에선 역겹기까지 하다.  

장면하나
국회 청문회에서 아이언 맨을 국가로 귀속할 것을 정부에서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통제하에 두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최근에 아주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기업의 재산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무력화시키는 시도는 이제 영화에서도 당연시 되고 있다. 정부의 통제를 요구하는 정치인들을 바보로 만들면서 말이다.  

장면 둘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밝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란 과학기술 만능주의가 영화의 바닥에 흐르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 아닌가? 과학과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과학과 기술은 지구 환경의 파괴와 오염의 주역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이 있다. 그들에겐 아직 지구는 무한하게 약탈할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하다. 그런 메시지를 영화 내내 흘려주고 있다.  

장면 셋
악당이 나온다 (사실 언놈이 악당인지는 잘 구별이 되지 않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악당을 처단하는 주역은 아이언 맨 수트를 착용한 주인공과 그 친구다. 주인공은 군산복합기업의 오너이고 그 친구는 미군 장교다. 그림이 확실하지 않은가? 미국의 무기생산 기업과 미국의 군인이 악당을 물리치고 평화를 가져온다는 이야기... 그러니 군산복합체에 대한 비판을 멈추라는 메시지... 

영화에서 볼거리는 풍부하다. 화려한 비쥬얼에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영화는 끝나고 만다. 마지막까지 영화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선전을 멈추지 않는다. 처음 청문회에서 아이언 맨을 국가로 귀속하기를 주장하던 정치인이 악당을 물리친 공로로 주인공에게 공로 훈장을 수여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국가의 전면적 항복....브라보~~~  

어찌하여 내 눈에는 악당을 물리치고 시민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는 영웅이 사라지고 그저 미국의 거대한 군산복합체를 응원하고 그 존재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이야기들로만 보이는지...역설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잘 보여주는 영화가 또 어디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양 날의 칼이 아닌가 한다. 생각없이 즐기면 베이고, 잘 살펴보면 경계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기 위해 비쥬얼이 그리도 거창했나 보다. 영화가 선전하는 그 내용에 비해 포장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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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9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0-10-19 15:4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좋은 생각이에요..ㅎㅎ

마녀고양이 2010-10-19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별 하나 주기도 쉽지 않은데, 제가 그만 폭소를 터뜨리지 않았겠습니까!

과감하게 별 하나도 주실 수 있는 머큐리님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머큐리 2010-10-19 22:37   좋아요 0 | URL
저도 별 한개는 처음인 듯...--;

카스피 2010-10-20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이언맨 자체가 머큐리님 말하신 그런 배경에서 태어난 만화인데요^^

머큐리 2010-10-20 14:0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영화였어요..ㅎㅎ
 
퀴즈왕 - Quiz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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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내내 유쾌하고 즐거웠지만 뭔지 모르게 허전하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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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7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0-09-27 22:59   좋아요 0 | URL
제가 추천 드리고 싶은 영화는 '계몽영화'에요..저도 볼 예정인데..개봉관이 얼마없어서 그게 참...^^;
 
대추리에 살다 - Memories of Daech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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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에 살다'는 이른바 대추리 3부작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다큐이자, 대추리 마을의 마지막을
필름으로 담은 작품이다. 그리고 대추리를 지키기위해 지원나온 대추리 '지킴이'들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이제는 사람들 기억에서 많이 지워졌지만... '대추리 주민 이주 정책'은 흔히 민주정부 10년 동안
이루어진 일이고, 참여정부의 민주성과 자주성에 대한 많은 의혹과 문제를 제기한 사태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추리'는 이 땅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 이주민 인권의 문제, 미국과 한국
의 안보와 동복아 정세를 포괄하는 숱한 모순들이 중첩되어 있는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냥 보면 익숙한 시골 풍경들... 그 한가로움과 느긋함의 일상이 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일상의 평화가 깨지고 공권력과 주민들이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국가는 그 본연의
폭력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특히 대추리를 국방부의 자산으로 통합하면서 대추리를 둘러
싼 통행까지 금지했을 때 그 속에 갇혀서 외롭게 싸워야 했던 주민들의 고립감은 당해보지 않고
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통제와 감시를 뚫고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싸우기 위해 인권
운동가들이 대추리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몇몇되지 않는 그 사람들은 주민의 생존과 미군기지확장
을 반대하여 함께 생활하고 싸우고자 결심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조중동은 반미주의자, 빨갱이
라는 색깔을 덧쒸웠고, 이 싸움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지킴이'라 불러 주었다.  

다큐멘터리의 특성 상 영화를 보는 내내 심기는 불편했다. 잠시의 평화로운 마을의 정경까지도
그 불편함을 달래주진 못했다. 그들의 삶이 평범할수록 강제적 힘에 떠밀려 내려가는 대추리
주민들의 모습은 영화내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다큐멘터리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장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다큐멘터리를 불편하게 여기고 피하게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냉혹한 법이고 여기서 눈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다른 환상의 메트릭스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영화를 본 9월 15일은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전황을 뒤집은 날이고, 이날 인천시는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벌인 날이다. 80억의 예산을 들여 전쟁을 기념하는 시대에 '대추리'는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대추리에 집약되어
있는 모순들을 생각하면 이 땅은 정말 모순투성이의 아비규환으로 변해 버린다.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대추리 주민들의 이주의 역사는 꽤나 반복되던 일이기도 하다. 일제
하에서는 비행장과 활주로 건설로 1차 이전해야 했었고, 해방 후 미군기지 문제로 2차 이주가
진행되고, 이번 미군기지 확장으로 3번째 이주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토지 보상으로 떼돈을 받고 이주한 것으로 알고 있고, 거세게 저항하는 주민들의 싸
움을 마치 보상금을 더 받기위해 떼를 쓰는 것으로 표현하던 수많은 보수언론들.
일상을 영위하던 장소에서 뿌리채 뽑혀 자기 땅에서 쫒겨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인식은 저버리고 국가적 안보와 안위의 당위성을 외치면 그 광기는 언제든지 인간의 가치를
짓뭉개고 사람들을 이윤을 위한 도구로만 인식하는 이 시대의 차가운 합리성을 그대로 담아
내고 있다.  

이 땅에서 미국과 미군은 무엇인가?
어느정도 해답은 나와 있지만,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는 이 영원한 숙제는 최근의 일련의 사태를
보면 더욱 시급한 문제가 아닌가 한다. 천안함과 이란제재라는 현상 속에는 이 땅에서 미국의
실체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아직도 유효함을 말하고 있다. 물론 그 접근 속에서의 자본의 이
해를 간과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말이다.  

싸움에 점차 지쳐가면서 미군기지 이전에 대한 문제제기를 삭제하고 주민들 이전으로 문제의
해법을 도모하기 시작하고, 지킴이들은 주민들의 의사를 받아들여 철수하게 된다. 철수하는
지킴이들에게 미안해 하는 주민들과 그들을 이해하고 주민들의 이주를 마지막까지 지켜봐야
하던 지킴이들의 눈물을 보면서...이 다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주한 주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농촌지역답게 평균연령이 높은 이들은 한 곳에 모여서 정착하고 있다. 하지만, 보상받은 금액
으로 토지를 구할 수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고, 취로사업으로 생계를 연명하고 있다. 그들을
삶의 터전에서 쫒아낸 결과는 결국 멀쩡한 농민을 무기력한 잉여인구로 만들어 놓은 것 뿐이다. 
그리고 생명을 일구는 그 땅은 전쟁을 위한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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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9-1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우리는 혼란 속에 있고,
털어내지 못 한 많은 것들이 있으며,
잃는 자가 계속 잃는 세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비 피해 현장을 뉴스에서 보도하면 항상 미안합니다.
저 역시 잘살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재난은 항상
제일 힘든 사람에게 몰아치는 듯이 보여서요. 저렇게 당하고 나면
안 그래도 돈이 없는데 또 돈이 들겠지,, 어쩌나... 불운의 악순환이구나.. 이런 생각들.

이주한 주민들, 가득한 좋은 일들이 생겨서 잘 살고 계시면 좋겠다고 바람합니다.

머큐리 2010-09-17 08:4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힘든 세월을 버틴만큼 좋은일이 생겨야 할텐데 현실은 넘 고단하고 팍팍해 보입니다.

2010-09-16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7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