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블랙홀 - [할인행사]
해롤드 래미스 감독, 빌 머레이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매일 일상이 반복된다면....과연 버텨 낼 수 있을까?
로맨틱 코메디 이기도 하지만, 니체가 말한 영겁회귀를 영화로 만든 듯한 이 영화를
난 사랑한다. 내가 남들에게 마구 추천하는 영화 중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지만
보고 나서 별로 고맙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하는 영화임에도 난 이영화를 사랑한다.  

주말에 머리 좀 식히려고 소장하고 있는 DVD를 뒤적이다, 이 영화를 발견하고 다시
보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짓는 나를 발견하곤 다시 나에게 이 영화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하루 하루를 똑 같은 날을 보내는 주인공... 같은 사람, 같은 대사, 같은 장소....
주인공은 하루하루를 지겹게 보내면서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한다.
외도, 강도, 음주운전....심지어 자살까지
그러나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모든 건 원점으로 되돌아 오고 주인공은 똑 같은 하루를
또 다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내일은 오늘인 것이다.  

영겁회귀는 현실의 선택을 강조한다고 한다. 미래를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닌 지금 이순간을
위해 행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선택이 주어진다해도 똑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니체는 강조 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현재의 삶을 어떻게 긍정하고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오늘 하루 지겹게 보내고 수십번의 선택을 하면서 과연 나는 똑같은 상황에
똑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는가?  

그렇다고 이 영화가 도덕적인 영화는 아니다. 어차피 삶의 굴레란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니
그것을 긍정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닫게 할 뿐이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을 이용하여 사랑 
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으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도록 작업(?)을 하지만
결국 실패하면서 똑 같은 하루를 맞이하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가식적인 작업이 아닌
그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때 상대도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고 시간의 마법은 깨어지고 내일을 맞이한다. 
 
내일은 오늘이 아니고, 오늘은 내일이 되는 시간....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난 거대한 불공정함을 모두 외부 탓으로 돌리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결국 외부를 변화시키는 진정한 힘은 내부에서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내부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힘에 대하여 이 영화는 일정한 힌트를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이 영화처럼 그렇게 낭만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 변화는 오히려 죽음까지도 불사한 후에야 얻어지는 것일지 모른다는 사실이
영화 속에서 주장하는 바가 아닐까? 

심각한 영화는 아니다. 아기자기 하고 웃기고 찡한 면도 있는 영화다.
그리고  얻어갈 것도 무척 많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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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 Paju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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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시작되는 짙은 안개처럼 영화 속의 사랑 역시 모호하기만 하다.
운동권 인물이 나온다고 모두 운동권 영화는 아닐 것이다. 여기서 철거민의 싸움은 그저
하나의 배경일 뿐이다. 도시의 확장으로 인한 욕망의 뻗어 나감은 배경일 뿐 영화는 처음
부터 끝까지 사회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죄책감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어쩌면 배경 때문에 모호하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이것 저것
생각을 해보다 풀리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아 그냥 단순하게 정리해보려 한다. 
운동권이던 '중식'은 선배와의 불륜으로 인한 사고로 서울을 떠나 개발 전의 파주로 잠적
한다. 거기서 '은모'의 언니 '은서'를 만나 결혼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사고로
아내를 잃고 '은서'와 지낸다. 초기의 죄책감이 해소되고 다시 새롭게 운동을 시작하려는
'중식'과 언니의 사망 후 평범하게 지내던 '은모'의 갈등은 은모의 인도 여행으로 잠재되고
인도에서 돌아온 '은모'는 언니 '은서'의 죽음에 무언가 의혹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규명
하려 한다. 거기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으니 그 숨겨진 진실은 이 두 사람이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하나의 복선을 이룬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한 것일까?
처제이자 공부방 제자인 '은모'에게 '중식'은 처음부터 사랑했노라고 했다. '은모'의 사랑은
영화에서 보이나 '중식'의 사랑고백은 뜬금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사랑고백으로 인하여
'은모'의 의혹은 풀리지 않는 평행선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내려온
파주에서 처제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중식'을 이야기 구조상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철거민의 상황들은 무언가 사회적 메시지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 같지만 그저 배경으로
겉돌고만 있다. 주인공들은 철거나 생계에 대해 전혀 상관없이 겉돌고만 있다. 언니의 죽음의
미스테리도 이미 드러나 있다. 파주가 모호한 것은 주인공들의 심리가 겉돌고 있는 사실 때문
이 아닌가 한다.
영상이나 느낌은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는데, 가만가만 생각하려고 정리할 수록
알수없는 영화다. 그리고 개인적인 사랑에 관한 기록도 사회적 문제에 대한 격렬한 항의도
아닌 어디 쯤 안개 속으로 빠져버린 영화가 되어 버렸다.  
그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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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D] 검은집 (2disc)
신태라 감독, 황정민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이 영화 충분히 무섭다.
소설로 읽은 '검은 집'보다 더 무시무시 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에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유행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검은 집'을 접함으로서 사이코패스에 대한 개략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사이코패스란 성격이상을 가지고 한 편의 공포영화를 만들었다면 그저 그랬을 영화가 마지막
순간에 질문하나를 던져 놓는다.  

'사이코패스를 사람으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인면수심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마음... 하지만 동물의 세계가 조금씩 알려
지면서 인면수심이란 말에는 지독한 인간 중심주의가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짐승이라도 인간처럼 잔인해지기 쉽지 않다. 아니 잔인한 것은 유전적으로 코드화되어 있기
때문이지 인간 같이 목적의식적으로 잔인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선택권이란게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존재한다.  

사이코패스가 만일 유전적 병이라면, 인간의 윤리를 가지고 이들을 엄단할 수 있을까?
참 잔인한 질문이다. 유영철이 같은 연쇄 살인마가 개인의 판단력이 아닌 유전적 코드로
인하여 살인을 저지르고 다녔다면 그의 엽기적 범행과 상관없이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사회에 사이코패스적인 사람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윤리적 처벌이 모호하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법률적 처벌은 가능하다. 살인죄는 분명 그에 상응하는 벌칙이 있으니 말이다. 다만,
살인이 범죄이고 나쁜 짓이라는 것을 윤리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병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그게 고민인게다.  

가끔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 편견이 희생자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어쩌면
사이코패스도 그런 유형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해도 정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들의 생명
까지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은 두렵기만 하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살인마임에도 인간임을 끝까지 주장한다. 여기에 나의 혼란은 시작
된다. 살인마를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영화에서 정말 진지하게 대면해야 할 질문인지...아님 스토리텔링의 모호함으로 뭔가 있어
보이려하는 수작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무언가 불편한 이유가 불명확한 구분으로 범주를 설정하고 그 범주에 악한 것은
모두 쓸어담아 버려 우리의 편안함을 구하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인간의 모든 악함은 바로 유전적 사이코패스 때문이라면 얼마나 편한 해석인가 말이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몇몇 책들을 읽어 보았지만, 이러저러한 현상을 보이는 사람이 사이코패스
다라고만 하지 실질적으로 아직도 사이코패스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보이지 않는다.
남들과 다르게 감정적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정도?

연쇄살인과 추리물을 통하여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단어의 사용만큼 그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개선책도 방어책도 미비하다. 그러면서 살인마의
살인행각을 영화로 보고 그런 유형의 사람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한다.

감독은 조금 찔렸던 것일까? 사이코패스도 마직막에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었으니, 결국 사람
에게 사람이야 말로 가장 미스테리하고 무서운 존재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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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에이지 3:공룡시대 - Ice Age 3: Dawn of the Dinosaur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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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들 영화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그렇게 보았다.
웃음이 터지는 장면에서는 낄낄 웃으면서.... 현란한 그래픽에서는 눈길을 못떼면서...
이런 학생방학용 시간때우기 영화의 기본 컨셉은 '가족'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부담없어야 하기 때문이고, 실제 가족이 어떻던간에 가족이라는 
말에서 느끼는 정서는 아직까지 상품성이로는 무궁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군산까지 가서 가족도 아닌 사람들과 어린이용 가족영화를 본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라고 할까? 딱히 보고 싶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그런 영화였다.
다만, 리뷰라고 끄적이려고 보니, 이 영화와 관련한 가족과 사랑, 우정의 문제는 다시 한 번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맘모스 부부로 상징되는 가족주의, 나무늘보와 사자같이 생긴(?) 녀석이 보여주는 우정,  
도토리를 쫗아다니는 녀석이 보여주는 사랑....
이 모든 것이 정신없이 뒤섞여져서, 공룡세계로 넘어간 친구를 찿아 모험을 떠나 다시 자신의
세계로 무사히 돌아온다는 단순한 설정의 영화다.
가정을 꾸리면서, 친구들과의 멀어지는 갈등이 한 축으로, 그럼에도 가정을 꾸리는 친구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길을 찿으려는 모습들.
모든 갈등이 해소되면서 결국 가정을 가지고도 주변 친구들과 의리도 지킬 수 있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 그런데 정말 그런가? 
결혼하면 자기 가정 가지면 친구들 많이 떨어져 나간다...ㅎㅎ

아이스에이지의 독특한 캐릭터인 도토리 쫓아다니는 녀석은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열정에
휩싸여 좋아하던 도토리까지 포기하면서 신혼의 단꿈에 취해있다가...다시 도토리로 복귀한다.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가족주의를 인정하면서도 가족에서 일탈하여 무언가 자신
이 꿈꾸는 것을 추구하는 유형도 있다는 것을 은근슬쩍 암시하기 때문이다.

여름날 어린이들에게 꿈꾸게 하는 저 안정적 가족주의의 공세
실제로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고 상처도 많이 주는 그런 관계들은 나타지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그런걸 알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 조카나 자식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어른들도 영화관에서 까지 그런 사실이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다. 애들하고 즐겁게 볼 영화에서 까지 그런걸 보고 싶진 않기 때문에... 

아마 애들하고 봤으면 이런저런 생각은 안했을지 모르겠다.
다 큰 어른들끼리 이 영화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다만, 어린아이 눈 높이에 맞춰진 재미는
그래도 웃음짓게 하는 면이 있다. 다만, 어린아이들 처럼 천진하게 웃지 못하는 건 아무래도
나이먹은 어른이라 그런건지 모르겠다.  

다른건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군산까지 가서 본 영화라는 사실만큼은 아마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같이 본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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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갓 - City Of Go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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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이름이 '신의 도시'라면, 우선 생각나는게 파라다이스 정도 되겠다. 에덴이나...신이 관장하는 도시는 성스럽거나 아니면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신의 전지전능함이 드러나고 찬양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이러니한 것은 지독하게 가난한 빈민가의 이름이 '신의 도시'이니 결국 현실의 배반은 계속되는 모양이다.  

이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 했다고 한다. (이건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알게 된거다. 맞나?) 전형적인 갱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은 발랄하고 생기차 보인다.  영화는 발랄한 영상이 영화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어느 순간 현실을 보는 듯한 사실감이 느껴져 순간 순간 치를 떨게 만든다. 빈민과 도시 우범지역인 슬럼의 현실이 날 것으로 그대로 드러난다고 봐야하나? 브라질이라는 낯선 나라의 슬럼가에서 벌어지는 범죄 집단의 암투와 세대반복의 비참함. 영상이 경쾌하지만 비참함의 리얼리티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갱 영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대부', '스카페이스' 그리고 '원스어펀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이다. 개인 적으론 제일 긴 제목의 영화를 좋아한다. 이들 영화의 배경은 모두 미국, 그리고 소외받는 이주민들이 암흑의 세계에서 불법적인 사업으로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상승의 댓가는 항상 피와 돈이 엮여 있었다. 미국의 갱 영화는 주인공이 올라갈 수 있는 상층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없고 빽없지만 힘있고 독한 놈들은 갱이라도 하면 살 수 있다. 그러나 꼭 갱이 아니라도 살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신의 도시에서의 갱은 미국의 갱과는 틀리다. 우선 이주민도 아닌 토착민이고 절대적인 빈곤환경에 교육은 커녕 어린시절 부터 마리화나와 마약, 살인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자라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차가운 총을 들고 설쳐대는 것. 아무렇지 않게 살인하는 걸 배우는 것이다. 그럼으로 그들은 도시를 장악하고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리고 끝이다. 거기서 끊임없는 악순환을 돌고 돈다. 다시 어린아이들은 총을 잡고 그 위를 처치하고 올라선다. 그리나 그들은 다시 다음세대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 악순환을 풀어줄 아무런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 악순환에 대해 지독할 정도록 자세하게 보여 줄 뿐이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정교한 스토리텔링를 보여준다. 영상의 현란함과 함께 이야기의 복선은 형식자체로도 영화의 완성미를 보여준다. 마노아님이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추천했듯이 어느 영화에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다. 바닥 조직의 생태계에도 권력이 있고 욕망이 있고 그 권력과 욕망을 추구하는 날 것의 인간이 있다. 오히려 화자인 주인공이 그토록 험한 환경에서 범죄로 빠져들지 않고 사진기자가 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결국 범죄도 개인적인 것이 아닌 사회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범죄를 용인하는 사회는 범죄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회인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조만간 이 책들은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읽어야 책들은 많은데 게으름때문에 읽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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