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라는 기업 광고의 슬로건이 큰 호응을 받은 적이 있었다. 광고 내용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옛날에는 과학자가 꿈인 어린이들이 많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과학자보다는 아이돌 가수가 더 많은 장래 희망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요즘 아이들이 선택한 장래 희망이라는 것이 어른들이 한 번에 들어도 기분 좋을 만한, 소위 돈을 잘 벌고 안정되어 보이는 직업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곧 좋은 진로’라 배우며 자란 2030 세대는 성인이 돼 지독한 꿈의 부재를 겪고 있다. 단군 이래 최악의 세대 방황은 다음 세대들에게도 이어질 듯하다. 초등학생 10명 중 3명은 공무원이 되길 희망한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의 대답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새내기 대학생이나 전공 불문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취업 준비생의 대답과 꼭 같다.

 

부모가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꿈이 없다고 미리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직업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 내가 미혼이라서 아이의 장래희망에 관심을 가지는 부모의 심정을 느끼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결국 직업은 연봉을 많이 받거나 사회적으로 인기가 높은 것도 좋지만, 적성에 맞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의 적성을 제대로 찾지 못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낭비에 가깝다. 과거와 같이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직장’,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일자리가 아닌 자아실현을 위한 직장을 선택해야 한다. 부모의 기대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직업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프리모 레비의 소설 『멍키스패너』에 나오는 주인공 파우소네는 직업의 참된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파우소네는 떠돌이 조립공이다. 철탑, 다리, 석유시추설비 등등 한 번도 손대지 않은 구조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노동 경험이 많다. 그는 안정적인 집과 아내도 없다. 항상 작업할 때 사용하는 ‘멍키스패너’와 함께 전 세계를 떠돌면서 지낸다. 건장한 사내도 하기 꺼리는 조립공 작업을 파우소네는 즐거운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니다. 파우소네는 기계 구조물을 다루는 노동에서도 예술가처럼 창조해내는 순수한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는 진정한 ‘호모 파베르(Homo Faber)다.

 

파우소네는 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기계를 조립하고, 3D에 가까운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을 선호하게 될 걸까? ‘꿈’에 대해서 자신의 정의를 내리는 파우소네의 답변은 안정적인 직업의 꿈을 좇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한다. 전 세계를 여행하듯이 온 세상의 조선소, 공장, 항구를 돌아다니는 것이 자신의 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업에 관한 꿈은 자신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일수록 좋다고 한다.

 

“나로서는 꿈이 진짜로 실현되는 것이 좋아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꿈이란 사람이 평생 동안 옆에 가지고 다니는 질병이나, 아니면 습기가 찰 때마다 고통을 주는 수술의 상처로 남아 있게 되지요.” (프리모 레비  『멍키스패너』  중에서, 10쪽)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 어린 시절의 꿈을 그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후회하기도 한다. ‘아, 내가 공부만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과학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 때 부모님의 설득에 귀담아 듣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꾸준히 준비했더라면 일하는 것이 즐거웠을 텐데...’ 안정적인 생활과 연봉에만 초점을 맞춘 직업을 선택해서 생활할수록 어린 시절 순수했고 꿈은 어느새 아쉬움이 가득한 그리움으로만 남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처음부터 꿈꾸던 장래희망이 평생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예상하기 힘들다.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사랑해서 직업으로 삼아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인물은 많지 않다.

 

“운명이 우리에게 선물할 수 있는 개별적이고 경이로운 순간들을 제외하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은(불행히도 그건 소수의 특권이다) 지상의 행복에 구체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다가가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만이 알고 있는 진리다. 그 무한한 영역, 직업의 영역, 간단히 말해 일상적인 일의 영역은 남극 대륙보다 덜 알려져 있다.” (121쪽)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이 사람 운명인데 우리는 너무 무심코 직업을 단정적으로 결정하려고 한다. 그것도 돈 벌기 쉽고, 해고 위험의 부담이 없는 안정적인 직업 말이다. 그러나 파우소네의 표현처럼 직업의 영역은 광활한 남극 대륙보다 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직업이 많을 것이고, 앞으로도 몇 십 년 후에 새로운 직업이 등장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선호하고 원하는 직업 중에는 언젠가는 미래에 사라질 수 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면 힘든 노동이라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한, 고용주의 노예일 뿐이다. 파우소네는 일과 노동의 즐거움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진정한 노동(직업)은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노동이 아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강요받지 않는 즐거운 것이다.

 

레비는 파우소네를 ‘또 다른 자아’라고 불렀다. 여기서 말하는 ‘자아’는 예술가적 자아를 뜻한다. 두 손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파우소네에게 예술가의 면모를 발견한다. 레비는 파우소네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대화를 유도하는데 바로 글쓰기 작업으로 파우소네의 삶을 소설로 새롭게 창조시킨다.

 

 

 

 

 

 

 

 

 

 

 

 

 

 

 

 

 

레비의 삶에 있어서 글쓰기와 화학 연구는 인간적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노동이다. 처녀작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서 수용소 안에 갇힌 인간과 그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인간 군상을 묘사함으로써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의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고통스럽고도 극적인 수용소에서의 삶을 기억하고 글로 기록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눈물겨운 기억 투쟁이다.

 

1986년 레비와 대담한 필립 로스는 그를 ‘화학자-작가’라기 보다는 ‘예술가-화학자’에 가깝다고 했다. 『주기율표』에서 레비는 화학이 ‘파시즘의 해독제’라고 말했다. 화학 실험이 인간적인 노동인 것이다. 그래서 『주기율표』를 읽어보면 화학 실험을 한 편의 그림처럼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증류는 아름답다. 무엇보다 느리고 철학적이며 조용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사람을 분주하게 하지만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자전거 타기와 비슷한 일이다. 또 증류가 아름다운 건 변신이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액체에서 (보이지 않는) 증기로, 증기에서 다시 액체로 말이다. 위로 아래로 두 겹의 여행을 하는 사이 마침내 순수한 것이 도달한다. 이것은 모호하면서도 매혹적인 조건이다.”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중에서, 89쪽)

 

레비처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직업이 우리 삶의 치유제가 되고, 파우소네처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찌 보면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에 불과할 수 있겠다. 오히려 자식이 파우소네처럼 떠돌이 기계 조립공처럼 산다면, 부모는 당장 자식의 호적을 팠을 것이다.

 

레비는 자신의 삶에 어울리는 직업을 찾는 것의 어려움과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직업의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결국 어린 시절 꿈을 직업으로 전환시키는 멋진 삶이란 쉽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레비는 운명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은 직업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슬프게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입관과 증오를 갖고 현장으로 내려가는 것은 해롭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평생 동안 직업을 증오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상을 증오하게 된다. 직업의 결실이 일하는 사람의 손에 남아 있도록, 직업 자체가 형벌이 아닌 것이 되도록 싸울 수 있고 또 싸워야 한다.” (프리모 레비  『멍키스패너』  중에서, 121~122쪽)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프리모 레비의 『멍키스패너』 을 읽어봤으면 한다. <타임> 지 칼럼니스트 버나드 레빈은 이 책의 서평에서 ‘독자들 가운데 공무원이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라고 썼다. 자식이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멍키스패너』를 읽고나서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자식의 꿈과 장래희망을 부모의 마음대로 정하고 간섭한다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 또한 증오하게 된다. 부모의 그늘이 이제 막 성장하려는 자식의 미래를 가리지 말고, 아이들의 순수한 꿈을 뺏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꿈을 돌려줘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것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직업을 선택할 때 앞으로의 삶에 대해 그리고 그 삶을 가꾸어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을 더하여 ‘진정한 자아실현’에 다가가도록 해야 한다. 제 삶과 직업을 통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만족스럽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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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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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봄은 훨씬 전에 지나갔다. 그러나 봄은 다시 왔다. 마음의 봄. 이해인 수녀는 마음의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이해인, ‘봄 일기’ 중에서)

 

 

봄은 우리에게 누군가에게 다가가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라고 재촉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라고 일러준다. 하루의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찡그리지 않고 미소를 띠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희망을 건네주는 일이 될 수 있다.

 

 

3월님이시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요!
일전에 한참 찾았거든요.
모자는 내려놓으시지요-
아마 걸어오셨나 보군요-
그렇게 숨이 차신 걸 보니
그래서 3월님. 잘 지내셨나요?
다른 분들은요?
‘자연’은 잘 두고 오셨어요?
아, 3월님. 바로 저랑 이층으로 가요.
말씀드릴 게 얼마나 많은지요.

 

(에밀리 디킨슨, ‘3월’ 중에서, 장영희  『다시, 봄』 인용, 41쪽)

 

 

때로는 이 시인처럼 혼자만의 방에 봄을 데리고 들어가 고요히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며 명상에 잠기는 것도 좋다. 오래 머물지 못하는 귀한 손님이라서 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봄과 같은 사람’ 어디 없나? ‘봄과 같은 사람’, 이해인 수녀는 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야말로 봄과 같다고 했다. 생명의 기운 가득한 봄에 먼 길을 떠난 장영희 교수, 김점선 화백은 ‘봄과 같은 사람’이었다.

 

 

 

 

‘봄과 같은 사람’은 얼어붙음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휴식 같은 친구이기도 하다. 몸은 천근만근, 머릿속은 뒤죽박죽. 달콤한 휴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엉뚱한 공상이라도 좋다.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도 좋다. 일상을 벗어나 나만의 감정과 상념에 빠져 그렇게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 딸기 쇼트케이크처럼 작지만 달콤한 휴식에는 복잡한 글이나 설명은 필요치 않다. 그저 한 줄의 시만이, 한 줄의 휴식에 유일한 친구가 된다. 그럴 때 김점선 화백의 그림이 곁들인 장영희 교수의 글을 다시 본다.

 

장영희 교수의 글을 읽으면 가슴이 짠하게 느껴진다. 순간이나마 착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가끔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솔직하게 내면을 드러내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글이 갖는 힘이다. 불편한 몸이지만 스스로 그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유쾌하게 살아 온 그의 태도가 주는 힘이기도 하다.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들보다 행복합니다.
이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내게 사랑이 찾아왔으니까요.

 

(크리스티나 로제티, ‘생일’ 중에서, 장영희  『다시, 봄』 인용, 99쪽)

 

 

장영희 교수는 로제티의 시에 대해 진정한 생일은 사랑을 통해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했다. 이런 사랑을 만난 환희와 기쁨이 잘 표현된 시로 누구라도 이런 사랑에의 동경과 소망을 품어 보게 된다. 그녀는 7월에 다시 한 번 태어나고 싶은 소망을 가졌다. 비록 한여름의 태양과 바다를 사랑할 수 있는 달은 아니지만, 치열한 계절의 순환이 시작되는 4월에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4월처럼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에 왔다. 한 권의 시화집으로.   

 

그녀가 눈을 감은 5월 9일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점선 화백의 49재 날이었다. 자유로운 생각과 유쾌한 성품을 녹여낸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였던 김점선 화백은 장영희 교수와 꼭 닮은 친구였다. 섬세하고 눈물 많은 교수와 호탕하고 거침없는 화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모습이 여린 장 교수는 수많은 고통으로 담금질된 단단함이 있었고, 겉모습이 단단한 김 화백은 누구보다 여린 속내를 가진 사람이었다.

 

 

“김점선은 이제껏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겉모습은 터프하지만, 속은 말랑말랑하고 여리다. 겉은 씩씩하고 대범하지만, 속은 섬세하고 여리다. 겉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순하고 착하다.”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에서)

 

 

타인에 대한 연민이 없다면 세상은 싸움터로만 기억될지도 모른다. 장 교수에게 그 연민은 문학적 힘을 통해 표현된다. 특히 시는 삶의 용기와 희망을 전달해주는 가장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다. 고달픈 삶의 연민에서만 그치지 않고 힘겨운 삶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시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장 교수의 글을 통해 말하고 있다. 삶에 대해 무작정 동경이라든가 허상을 꿈꾸기보다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려고 한다. 시와 삶이 동떨어진 게 아닌 현실감 있게 주변 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시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머리로 읽는 시도 있지만 그것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의 뇌로 읽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 시험성적을 위해서 한 편의 시를 동물을 해부하듯이 시구 하나하나 해석해서 읽는다면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이 책 속에 담긴 영시의 위로는 삶의 고통으로 지친 우리의 심신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준다. 누구나 삶의 아픔을 한 번 이상은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위안과 휴식은 보편적이면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읽는 이에게 생의 활력과 심적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영시와 장 교수의 글 그리고 김 화백의 그림이 ‘휴식’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봄이 빗속에 노란 데이지꽃 들어 올리듯
나도 내 마음 들어 건배합니다.
고통만을 담고 있어도
내 마음은 예쁜 잔이 될 겁니다.

 

빗물을 방울방울 물들이는
꽃과 잎에서 나는 배울 테니까요.
생기 없는 슬픔의 술을 찬란한 금빛으로
바꾸는 법을.

 

(새러 티즈데일, ‘연금술’, 장영희  『다시, 봄』 인용, 71쪽)

 

 

영시의 편편이 가슴에 스며드는 내용인 데다가 장 교수의 깊고 따사롭고 예리한 글과 김 화백의 살아 있는 색채가 펼쳐진 이 책은 감동 그 자체다. 너무 머리를 쓰고, 마음을 쓰는 시간이 부족한 우리에게 잠깐 숨을 돌리게 한다. 365일 하루도 같지 않은 날들. 사실 매일매일이 선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장 교수는 어느 계절도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고, 매일매일이 소중한 하루라고 말한다. 봄부터 겨울까지의 자연 변화,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 자신의 깊은 내면 등 세상의 모든 것이 영시와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한 편의 ‘희망과 위로의 러브레터’가 된다. 그래서 6월의 봄은 사랑이 필요하고, 슬픔의 술을 찬란한 금빛으로 바꾸는 연금술이 요청되는 마음의 봄이다. 

 

장영희와 김점선의 존재는 희망이자 자유 그리고 사랑이었다. 짧았지만 사랑 가득한 삶을 살고 간 그들은 최고로 멋진 삶을 살았다. 늘 웃을 줄 아는 두 사람. 우리 모두가 장영희, 김점선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새 봄과 같은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떠나면서 남기고 간 글과 그림으로 사랑할 힘을 얻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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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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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가라앉힌
밀물 위로 떠올라 오게 될 너희들은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너희가 겪지 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기억해다오.

 

(베르톨트 브레히트 ‘후손들에게’)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 낸 최악의 개념이요 가장 잔혹한 행태이다. 전쟁은 막대한 물자가 소모되고 수없이 많은 인명의 살상과 살아남은 자의 생활고통이 뒤따른다. 이러한 전쟁을 인간은 어쩌자고 자꾸 되풀이 하는 것일까. 전쟁은 언제나 강자의 교만과 악의에 의하여 도발되고 패자는 굴종을 강요당한다. 그리고 승자의 교만은 자멸을 재촉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전쟁이 우리 심리에 끼친 상처의 자각을 검증하지 않고 단지 내면의 그림자로 가만히 두는 것을 일상화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종종 전파를 타고 '내전'이라는 국제뉴스를 접하게 된다. 우리 사회와는 무관한 그래서 단지 미디어나 영화를 통해서, 그리고 이제는 뉴스나 게임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문명의 잔혹성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어떠한 체험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반성도, 성찰도 없는 사회의식 속에서 성장해 왔다. 전쟁을 정확히 바라보아야 할 것은 '심리적 상처'와 '정신의 황폐함'이다. 전쟁의 공포와 고통을 그냥 놔두면 저절로 치유될 수 있을까?

 

“자유의 순간은 우리의 마음을 괴로움으로 가득 채웠다. 그 누구도 전염병처럼 퍼지는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없애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처는 마르지 않는 악의 샘이다. 그것은 가라앉은 자들의 몸과 마음을 갈가리 찢겨놓고 그들을 비굴하게 만들고 영혼의 빛을 꺼뜨린다. 상처는 압제자들에게는 익명으로 되돌아가고 생존자들 속에서는 증오로 연속한다.” (20쪽)

 

홀로코스트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정서장애에 걸리는 자가 많았고 여전히 불안, 불면증과  같은 '홀로코스트 증후군'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이 겪은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 깊은 감정교류가 없이 그대로 자신들의 감정을 고갈시키면서 지내왔기 때문이다.

 

아유슈비츠의 생존자 중 한 사람인 프레모 레비도 ‘홀로코스트 증후군’과 유사한 증상에 시달렸을 것이다. 자신은 『휴전』에서 쓴다는 체험을 강렬하고 행복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레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실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작가의 말이 씁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는 자신의 증언을 ‘공포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세상의 혼돈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끝난 뒤에 자유의 기쁨을 만끽해보지만, 새로운 전쟁의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그런 미세한 조짐을 레비는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진실에 차마 눈 맞추기 어려워 부러 모르는 척할 때가 있다. 인간성을 파괴시키는 폭력적 상황과 공포, 죽음, 억압의 구조에 눈을 돌리고자 할 때에 이 나약함을 직시하도록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게 문학의 역할이기도 하다.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이후 귀향의 과정에서 독일 뮌헨에 들른 레비는 자신들을 절멸의 수용소로 보낸 독일인들이 자신에게 무언가 질문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거리의 독일인들은 레비와 눈을 마주치려고도 입을 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단단히 답변할 준비를, 마구 쏟아내야 할 증언을 준비하고 있던 레비는 철저한 무관심에 경악한다. 레비는 그런 상황에 혼란과 고통을 느끼며, 문학의 힘을 빌려『휴전』을 집필했다.

 

레비는 영혼마저 표백하는 파시즘의 실험적 광기와 수용소 공간의 낯선 윤리를 처녀작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서 증언했다. 우리는 아우슈비츠의 풍경을, 다는 아니어도 대충은, 볼 수 있었다. ‘생지옥, 짐승, 도살, 피눈물 등 인간의 이름을 수식하는 모든 음울한 비유들의 무덤’(『이것이 인간인가』 중에서)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레비는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한다. 그것은 지옥을 다시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번에는 지옥에서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에서 지낸 10개월간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라면 『휴전』은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8개월 동안의 귀환의 여정을 기록했다. 레비에게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고통스러웠지만, 동행하는 동료들과 에피소드나 여정 속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특별한 일화까지 담았다. 화학을 전공한 과학도답게 레비는 절제된 감정과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종전의 흥분과 불안이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처신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거침없는 입담과 생활력을 지닌 그리스인 나훔, 군 보급품인 생선에 물을 채워 러시아군에게 비싸게 되파는 체사레 등 인상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특히 그리스인 나훔이 말하는,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만의 생존법은 강렬한 블랙유머다. 우리는 전쟁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식량과 물이다. 전쟁이 나면 먹고 마시는 것에 지장을 받는다. 비상식량을 가득 준비해도 전쟁이 길어지면 하루를 연명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나 나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식량보다는 신발을 먼저 생각한다. 만약에 신발이 없다면 먹을 것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자 레비는 나훔의 생각에 반박한다. 전쟁이 끝났다고. 그러자 나훔은 레비의 삶에 큰 영향을 주게 되는 결정적인 대답을 한다. “전쟁은 늘 있는 거야.”(78쪽)

 

전쟁에서의 승리는 환영(幻影)에 불과하다. 나훔의 말처럼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쟁과 폭격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전쟁에 의한 환영과 전쟁 중이다. 8개월에 걸친 여정 끝에 드디어 레비는 토리노 자택에 돌아온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전쟁의 환영과의 싸움이 종전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자택에서 잠든 그는 공포로 가득 찬 꿈을 꾸었던 것이다.

 

“저녁이면(한순간 공포가 스치고) 나의 체중 아래 부드럽게 눌리는 넓고 깨끗한 침대를 되찾았다. 간간이, 때로는 자주 때로는 드물게, 공포로 가득한 꿈이 여전히 나를 찾아왔다.” (328쪽)

 

그래서 레비는 두 번째 책의 제목을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고 지은 것이다. 전쟁에 살아남아도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전쟁에 긴장과 불안에 떨면서 그 잔인한 운명을 맞아야 한다. 전쟁의 상처를 내면으로 체화한 채 다음 세대에도 큰 영향을 미쳐 왜곡되고 불편한 감정이 이어진다.

 

전쟁에 승자와 패자는 구분의 무의미하다. 심리적 상처가 단지 '전쟁의 패자'에게만 유독 드러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장애와 정신적 외상은 이후 전쟁에 살아남은 자들이 앞으로 겪게 될 잠재적 질병이다. 우리의 정신구조는 어떠한 상흔을 입었는지에 대한 되돌아봄 없이 오직 경제개발과 풍요라는 '외피'만 가꾸고 돌보면서 달려왔다. 우리가 전쟁과 폭력에 질문을 던지고 지속적인 되물음을 해야 하는 것은 전쟁이 가져오는 깊은 상실감을 정확히 직시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레비는 심리적 상처를 문학을 통해 성찰하고 전쟁의 상처에 대한 자각이 만들어내지 않으면 펑화가 없음을 경계한다. 전쟁에 살아남은 자들이 고통의 환영과의 전쟁을 이겨내 평화를 유지하려면 우리의 내면을 치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레비의 성찰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면서도 아무 일 없다듯이 불감증을 느끼고 있는 우리가 되돌아보는 기회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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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숨통을 조여 오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은밀한 공간을 만들고 탐닉한다. 반면 예술의 공간은 공유와 공감의 영역을 넘나들며 감성을 표현한다.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은 이중적 양면성을 내보이는 것이다. 특히 예술가들은 공간 안에서 사적인 자존심을 지키며 대중과의 공감을 꿈꾼다. 화가의 공간은 예술 작품으로서 표현돼 작업의 연장이자, 그 무대가 되기도 한다. 모네는 프랑스 지베르니에 위치한 저택을 구입해서 집과 정원 자체를 작업의 공간으로 여겼다. 앤디 워홀은 월급 화가들을 고용해 ‘그림 공장’을 차렸다. 작업실의 이름도 ‘팩토리’(Factory)로 지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단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작업실로 유명하다. 베이컨이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작업실 바닥에는 온통 쓰레기가 뒹굴고 곳곳에 쓰고 버린 붓과 물감이 어지럽게 널린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작업실 온 벽면이고 바닥이고 베이컨이 물감을 처발라놓아 놓은 흔적도 남아있다. 

 

화가의 작업실에는 엄청난 작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아직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완성작뿐만 아니라 그리다 만 미완성의 그림들이 섞여 있다. 발자크의 단편소설 ‘미지의 걸작’에 나오는 화가 프렌호퍼의 작업실처럼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걸작이 잠자고 있다. 프렌호퍼는 최고의 걸작을 남기지 못한 좌절감에 작업실에 잠들고 있는 그림들과 함께 스스로 소멸했다.

 

화가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작업실의 수명도 끝이다. 훌륭한 화가의 손에서 태어난 작품은 특별한 관리를 받을 수 있는 미술관로 향해 위대한 아름다움을 빛날 수 있지만, 반대로 무명화가의 작품은 대중의 시선을 받지 못한 채 오랫동안 먼지와 함께 방치될 것이다. 작품이 영원히 오랫동안 보존되고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화가 사후의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화려한 색채에서 아름다움을 담은 그림도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허술한 관리 때문에 물감색이 바래지고 심지어 그림 표면이 갈라져 파손될 우려가 있다.

 

 

 

 

 

 

 

 

 

 

 

 

 

 

이 화가도 자신이 죽고 나면 수많은 그림들이 쓸쓸하게 방치되고 망가질까봐 걱정했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귀스타브 모로는 자신의 죽음보다 작품의 소멸에 예민했다. 그는 데생과 미완성 작품까지 포함해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결국 자택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지금도 그의 작품들은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다. 화가는 죽어서 하나의 거대한 작업실이 되었다.

 

귀스타브 모로는 살로메를 소재로 한 그림들로 유명하다. 살로메는 수많은 화가들이 많이 다루던 인기 있는 소재였는데 아마도 그 중에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이미지가 모로가 그린 살로메일 것이다. 의붓아버지 헤롯 왕 앞에서 요염하게 춤을 주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세례자 요한의 잘린 머리와 대면하는 충격적인 장면까지 다양하게 묘사했다. 모로는 성서에서 보잘 것 없는 여인을 잔인하면서도 매혹적인 팜 파탈로 재탄생시켰다.

 

모로는 미술사에서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화가들 중의 한 사람인데 국내에서는 작품세계가 덜 알려져 있다. 모로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는 인상주의라는 거대한 물결이 휩쓸고 있었다. 세기말 즈음에는 주관적이면서도 내면적인 정서, 현실을 초월하는 관념적인 세계를 표현하려는 상징주의 미술이 태동되었는데 이 때 모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인상주의 미술이 워낙에 널리 알려져 있는 탓에 상징주의 미술이 부각되는 위치가 협소하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까지 포함하면 상징주의 미술을 소개하면 한 권 분량의 책이 나올 수 있지만, 현재까지는 서양미술사의 한 부분으로만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징주의 미술을 심도 있게 소개한 책이 열화당 미술신서 55번째 시리즈인 에드워드 루시-스미드의 『상징주의 미술』이 유일한데 출간된 지 너무 오래되었고, 현재 절판이다. (알라딘으로 검색해도 서지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이렇듯, 상징주의 미술은 우리에게는 무척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상징주의 미술을 보다 쉽게 이해하려면 프랑스의 비평가 알베르 오리에의 전시논평이 적합하다. 오리에는 상징주의 미술의 의미를 하나의 강령으로 제시했다.

 

 

1. 관념적이어야 한다. 미술작품의 유일한 목적은 관념의 표현이어야 한다.
2. 상징주의적이어야 한다. 미술작품은 이 관념을 형상화해야 한다.
3. 종합적이어야 한다. 미술작품은 이들 형성과 표지(표지)를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한다.
4. 주관적이어야 한다. 대상은 결코 단순한 대상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에 의해 인식된 관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된다.
5. 장식적이어야 한다. 정확히 말해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생각했던 것과 같은 장식화는 종합적이고 상징주의적이며 동시에 관념적인 예술이다. 

 

(에드워드 루시-스미드  『상징주의 미술』에서 인용)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리에의 논평 핵심은 최고의 상징주의 화가를 모로가 아닌 폴 고갱으로 꼽고 있다는 점이다. 논평의 제목이 ‘회화에서의 상징주의-폴 고갱’이다. 논평이 발표된 연도인 1891년에 모로는 왕성하게 작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미술사가의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고갱은 후기 인상주의이든 상징주의 미술이든 어느 한 쪽에 언급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고갱이 활동하기 전부터 이미 상징주의 미술은 태동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모로가 있었다. 모로가 고갱보다 대중의 인지도가 낮더라도 모로의 미술사적 위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로를 상징주의 미술의 거장으로 평가했고,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했던 사람은 소설가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였다. 위스망스는 자신이 등단하는데 도움을 준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문학을 거부하고, 심미적이고 신비스러운 측면이 강조되는 상징주의 문학으로 전향했다. 화가에 대한 위스망스의 존경어린 찬사는 자신의 작품 『거꾸로』제5장에서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데 제쎙트는 고독한 탐미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저택을 자신만의 인공낙원으로 만들어 생활을 한다. 그는 속세에 벗어나 고귀한 예술에 탐닉하는데 그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가 모로였다.

 

“모든 예술가 중에서도 탁월한 재능으로 그를 기나긴 열광과 황홀경에 빠져들게 만드는 한 예술가가 존재하였는데, 그는 바로 귀스타브 모로였다. 데 제쎙트는 이 화가가 그린 두 점의 걸작을 구입하여, 그중 한 작품 앞에서 몇 날 밤이고 몽상에 잠기곤 했다.” (위스망스  『거꾸로』 중에서, 92~93쪽)

 

소설의 제5장 절반은 모로의 그림에 대한 묘사가 장황하게 이어지는데 아마도 여기서 언급되는 모로의 그림 두 점은 「헤롯 왕 앞에서 춤추는 살로메」와   「환영」일 것이다. 데 제쎙트는 살로메가 등장하는 모로의 그림을 세밀하게 바라보는데 그가 원하던 ‘나른하고도 잔혹한 영상’이었다.

 

 

 

 

 

귀스타브 모로  「헤롯 왕 앞에서 춤추는 살로메」  1876년

 

"온갖 향기들이 내뿜는 퇴폐적인 냄새 속에서, 또한 이 교회당의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살로메는 마치 명령을 내리듯 왼팔을 앞으로 쭉 뻗고 있었고 오른팔은 구부려 얼굴 높이로 커다란 연꽃 한 송이를 든 채, 웅크리고 앉은 한 여인이 뜯고 있는 기타의 화음에 맞춰 발끝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중략) 그녀는 파괴할 수 없는 음탕함을 상징하는 여신, 불멸의 히스테리의 여신, 자신의 살집을 뻣뻣하게 만들고 근육을 단단하게 하는 경직증에 의해 모든 여자 중에서 선택된 저주받은 미의 여신이 되었던 것이다.” (94, 96쪽)

 

 

 

 

 

귀스타브 모로  「환영」  1875년

 

“계속해서 피를 흘리고 있는 듯한 끔찍한 두상은 짙은 보라색의 핏덩어리들이 턱수염의 끝 부분과 머리카락에 엉긴 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오로지 살로메의 눈에만 보이는 이 두상은 그 음울한 시선으로, 마침내 자신의 원한을 갚은 데 대해 몽상하고 있는 헤로디아도, 야생 동물의 냄새에 적셔지고 방향성 수지로 뒤덮였으며 향과 몰약으로 훈증된 여인의 나신으로 인해 경악하여 무릎에 손을 얹고 약간 몸을 앞으로 수그린 채 여전히 헐떡이고 있는 헤롯 왕도 쳐다보지 않았다. 유화에 그려진 살로메보다는 위엄이 없고 덜 거만하지만 훨씬 더 관능적인 이 무희 앞에서 데 제쎙트는 늙은 왕과 마찬가지로 압도되고 완전히 지쳐서 현기증을 느낄 지경이었다.” (99쪽)

 

위스망스 그리고 데 제쎙트는 모로의 그림에서 무기력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러나 모로의 그림은 ‘무기력한 아름다움’이다. 화려한 장식으로 눈과 마음을 현혹하게 만드는 아편이다. 살로메의 춤사위 속에 황홀경에 빠져 의지력을 마비된 헤롯 왕처럼 모로의 살로메 그림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동시에 한순간에 무기력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귀스타브 모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1864년

 

 

모로의 ‘무기력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그림은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다. 자신이 내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나그네를 잡아먹는 괴물 스핑크스를 처단하기 위해서 영웅 오이디푸스가 나섰다. 그런데 모로가 묘사한 스핑크스의 모습이 독특하다. 원래 스핑크스는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진 끔찍스럽게 생긴 괴물이다. 그런데 머리는 여성이고, 몸은 아담한 고양이와 같다. 거기에 남자들 사족을 못 쓰게 만드는 가슴이 달려 있다. 여성스러운 스핑크스가 지금 오이디푸스의 가슴 근처까지 접근했다. ‘아침에 다리는 두 개’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수수께끼를 내려는 장면 같지만, 오이디푸스와 스핑스크의 시선이 심상치가 않다. 스핑크스는 두 앞다리를 오이디푸스의 건장한 가슴에 얹고, 자신의 가슴을 그의 시선이 닿을 수 있게 앞으로 쭉 내민다. 예로부터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있듯이 혈기왕성한 오이디푸스도 스핑크스의 노골적인 유혹적인 자세가 당황했을 것이다. 언제 덮칠지 모르는 스핑스크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 왼손에 창을 쥐고 있지만, 스핑크스의 유혹에 손과 온 몸은 경직된 듯하다. 메두사의 눈빛을 보면 돌이 되어 굳어버리듯이 스핑크스의 유혹적인 눈빛은 여색에 약하는 남성의 본능을 굳어버리게 만들어 영웅의 의지를 꺾게 만든다. 스핑크스도 살로메 못지않게 남성을 사로잡는 위험하고도 무기력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장면까지 세밀하게 기억하는 ‘극세사 감수성’, ‘기억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프루스트도 모로의 그림을 선호했다. 프루스트는 모로의 작업을 진정한 내면의 영혼을 지닌 시인의 작업과 동등하게 생각했다. 모로가 표현한 신비로운 세계는 곧 내면의 영혼이 살고 있는 세계이며 그것이 그림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어 감명을 받는다. 위스망스가 모로의 작품세계를 감각적이고 관능적으로 이해했다면, 프루스트는 내면적인 분위기를 강조했다. 프루스트는 살로메가 나오는 그림보다는 음유시인과 오르페우스가 나오는 그림을 좋아한 것으로 보인다.

 

 

 

 

 

귀스타브 모로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든 여인」  1865년

 

“시인들은 완전히 죽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진정한 영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느끼던 유일하며 가장 내면에 있는 영혼은 간직되어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시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의 묘지를 찾는 것처럼 뤽상부르에 순례여행을 떠난다. 우리는 죽은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여인처럼 단순히 <오프페우스의 머리를 든 여인> 앞에 간다. 우리는 오르페우스의 머리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그 무엇, 생각의 색채로 가득한 아름다운 그 눈, 바로 귀스타브 모로의 생각을 보게 된다.” (프루스트  ‘모로의 신비세계에 관한 노트’ 중에서, 『독서에 관하여』 163쪽)

 

모로는 신화, 종교, 역사 등 화가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다루는 소재를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그려냈다.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대상에 의한 주관적인 관념과 인식을 묘사하는데 노력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 우리가 상징주의 미술을 어렵게 느껴지는 것처럼 모로 또한 관념적인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완성작에 비해 데생과 미완성 습작이 많은 편이다. 살롱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대중의 호응과 명성을 기대하는 세속적인 화가는 아니었다. 제 데쎙트처럼 훗날 미술관이 된 파리의 작업실에 은거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데 열중했다. 혹시 모로도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에 나오는 화가 프렌호퍼처럼 미지의 걸작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생전에 최고의 걸작이라고 꼽을만한 그림이 많지 않아서 자신이 남긴 그림들의 운명이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로의 지나친 걱정과 달리 그도 나름 전성기를 누렸고 어느 정도 성공한 화가의 반열에 오른다. 1892년에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의 교수로 채용되고, 그의 작업실은 공실적인 국립 미술관이 되었다.

 

모로의 작품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라면 너무 관념적으로 치우친 소재와 그리다 만 듯한 색채와 형태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생전에 살롱에 출품한 그의 작품은 ‘그림을 그리다 말고 휴식을 취하면서 쇼펜하우어를 읽는 한 미술학도가 그린 그림’이라는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모로가 현실이 아닌 신화나 종교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상상의 세계를 묘사했기에 비평가들은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느꼈던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처녀작 『메트로랜드』에서 영국 사람 데이브는 모로의 그림를 ‘자위행위자의 예술’이라고 폄하한다. ‘학문적인 상징주의’에다가 너무 세속적이라고 말한다. 난해한 학문을 연상시키는 상징주의 그림이 미술관에 전시된 사실에 괜히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림이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걸작이라도 졸작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위행위자’라고 비유한 데이브의 표현은 모로의 작품세계를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발언으로 보인다. 모로는 작업실에 은거하면서 그림을 그렸고, 상징주의 미술은 ‘예술을 위한 예술’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하지만 모로는 데 제쎙트처럼 스스로 환상적 예술에만 탐닉하여 열광하는 ‘예술적 자위’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세계에만 몰두하고 갇혀버린 답답한 사람은 아니었다.

 

는 제자 양성에 적극적이었는데 놀랍게도 모로가 배출한 유명한 화가는 야수파를 대표하는 앙리 마티스 와 종교화로 유명한 조르주 루오가 있다. 스승과 제자들은 각자 서로가 추구하던 화풍이 달랐지만 특히 루오는 스승으로서의 모로를 무척 존경했다. 모로가 세상을 떠났을 때 무척 슬퍼했으며 모로 미술관의 초대 관장으로 역임하기도 했다.

 

모로는 어떤 그림을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유혹하기 위해 악마의 소곤거림이 들릴 수 있고, 또 다른 그림을 보면 어디선가 내면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프루스트는 모로의 그림을 보면서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어떤 화가의 그림을 보려면 널리 알려진 대표작품만 봐서는 안 된다. 그 화가의 예술을 깊이 있게 알려면 데생, 습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까지 보면 좋다.

 

혹시 프랑스를 여행하다가 루브르, 오르세 미술관에 가는 것도 좋지만, 미술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면 모로 미술관도 한 번 가봄직하다. 프루스트는 모로 미술관은 단순한 화가의 집이 아니라 그의 예술행위가 우리 모두에게 서로 공유되는 특별한 곳이라고 말했다. 소설가답지 않게 예술적인 감식이 뛰어난 프루스트다. 모로 미술관이 어떤 곳인지 참으로 궁금하게 만든다. 프랑스를 여행하는 도중에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모로 미술관에 꼭 들려보시길.(라고 쓰지만, 나도 모로 미술관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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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새겨진 음악을 해독해야 한다.” (클로드 드뷔시, 롤랑 마뉘엘  『음악의 기쁨 1』  14쪽)

 

감상자의 상태나 기분에 따라서 같은 음악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누구의 무슨 음악'하면 '아! ~이다'라는 식으로 열정이나 뜨거운 뭔가가 느낄 수 있는 음악이 있다. 나는 자연 풍경하면 먼저 드뷔시의 음악이 떠오른다.

 

사실 드뷔시는 원래 화가를 꿈꿨다. ‘음악가 드뷔시’가 아닌 ‘화가 드뷔시’라는 이름이 어색해보이지만, 만약 그가 화가로 활동했다면 인상주의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인상주의 회화의 열풍을 음악으로 옮겨온 드뷔시는 자연 풍경과 잘 어울리는 음악들을 많이 작곡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정해진 선이나 색으로 표현하는 것을 거부하고 햇빛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이나 화가가 느낀 분위기를 화폭에 담았다. 드뷔시의 음악도 정해진 화성이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철저하게 작곡가의 감각과 취향을 담아냈다.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환기’시키는 것이다.

 

기존 음악계의 화성법과 규칙적인 리듬에서 탈피하여 분위기와 순간적인 인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했다. 드뷔시는 우리 삶을 스쳐가는 수많은 영상과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한 순간의 감정을 음악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인간 소녀 벨라와 뱀파이어 에드워드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 흘러나오는 선율은 드뷔시의 ‘달빛’이다. 피아노곡집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제3곡이다. 마치 부서져 내리는 듯한 달빛의 풍경을 단아한 악상과 인상주의적인 화음으로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선율이 아름답다. ‘달빛’은 피아노곡 버전과 관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이 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피아노곡이다. 몽환적인 밤의 분위기 속에 잔잔한 호수의 파문처럼 피아노의 선율에 따라 달빛의 요정이 수줍은 듯 춤을 추는 느낌이다.

 

 

               

 

 

드뷔시 '바다' 3악장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는 인상주의 회화풍의 관현악 음악처럼 느껴진다. '바다'를 듣고 있으면 마치 지금 내 눈앞에 거대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감춘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듯한 기분이다. 무더운 여름날에 듣기 좋은 곡이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붓 삼아 초마다 바뀌는 바다의 색깔과 변화무쌍한 분위기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그렸다. 마치 눈앞에서 거대한 바다가 요동치는 듯하다. 그런데 ‘바다’가 탄생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실제로 드뷔시는 바다 풍경을 직접 보고 그 느낌을 선율로 옮긴 것이 아니다. 바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상상 속의 바다를 환상적인 색채감으로 나타냈다.

 

생전에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이 인상주의와 연관 짓는 평가에 대해서 냉담했다고 한다. 오히려 그는 단지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본인은 강하게 부정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이 화폭에 순수한 색을 즐겨 사용하듯이 음악에 각 악기가 지닌 음색을 최대한 순수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렇듯 지극히 회화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드뷔시의 음악은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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