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새겨진 음악을 해독해야 한다.” (클로드 드뷔시, 롤랑 마뉘엘 『음악의 기쁨 1』 14쪽)
감상자의 상태나 기분에 따라서 같은 음악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누구의 무슨 음악'하면 '아! ~이다'라는 식으로 열정이나 뜨거운 뭔가가 느낄 수 있는 음악이 있다. 나는 자연 풍경하면 먼저 드뷔시의 음악이 떠오른다.
사실 드뷔시는 원래 화가를 꿈꿨다. ‘음악가 드뷔시’가 아닌 ‘화가 드뷔시’라는 이름이 어색해보이지만, 만약 그가 화가로 활동했다면 인상주의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인상주의 회화의 열풍을 음악으로 옮겨온 드뷔시는 자연 풍경과 잘 어울리는 음악들을 많이 작곡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정해진 선이나 색으로 표현하는 것을 거부하고 햇빛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이나 화가가 느낀 분위기를 화폭에 담았다. 드뷔시의 음악도 정해진 화성이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철저하게 작곡가의 감각과 취향을 담아냈다.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환기’시키는 것이다.
기존 음악계의 화성법과 규칙적인 리듬에서 탈피하여 분위기와 순간적인 인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했다. 드뷔시는 우리 삶을 스쳐가는 수많은 영상과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한 순간의 감정을 음악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인간 소녀 벨라와 뱀파이어 에드워드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 흘러나오는 선율은 드뷔시의 ‘달빛’이다. 피아노곡집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제3곡이다. 마치 부서져 내리는 듯한 달빛의 풍경을 단아한 악상과 인상주의적인 화음으로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선율이 아름답다. ‘달빛’은 피아노곡 버전과 관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이 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피아노곡이다. 몽환적인 밤의 분위기 속에 잔잔한 호수의 파문처럼 피아노의 선율에 따라 달빛의 요정이 수줍은 듯 춤을 추는 느낌이다.
드뷔시 '바다' 3악장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는 인상주의 회화풍의 관현악 음악처럼 느껴진다. '바다'를 듣고 있으면 마치 지금 내 눈앞에 거대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감춘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듯한 기분이다. 무더운 여름날에 듣기 좋은 곡이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붓 삼아 초마다 바뀌는 바다의 색깔과 변화무쌍한 분위기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그렸다. 마치 눈앞에서 거대한 바다가 요동치는 듯하다. 그런데 ‘바다’가 탄생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실제로 드뷔시는 바다 풍경을 직접 보고 그 느낌을 선율로 옮긴 것이 아니다. 바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상상 속의 바다를 환상적인 색채감으로 나타냈다.
생전에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이 인상주의와 연관 짓는 평가에 대해서 냉담했다고 한다. 오히려 그는 단지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본인은 강하게 부정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이 화폭에 순수한 색을 즐겨 사용하듯이 음악에 각 악기가 지닌 음색을 최대한 순수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렇듯 지극히 회화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드뷔시의 음악은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