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3월의 봄은 훨씬 전에 지나갔다. 그러나 봄은 다시 왔다. 마음의 봄. 이해인 수녀는 마음의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이해인, ‘봄 일기’ 중에서)

 

 

봄은 우리에게 누군가에게 다가가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라고 재촉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라고 일러준다. 하루의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찡그리지 않고 미소를 띠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희망을 건네주는 일이 될 수 있다.

 

 

3월님이시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요!
일전에 한참 찾았거든요.
모자는 내려놓으시지요-
아마 걸어오셨나 보군요-
그렇게 숨이 차신 걸 보니
그래서 3월님. 잘 지내셨나요?
다른 분들은요?
‘자연’은 잘 두고 오셨어요?
아, 3월님. 바로 저랑 이층으로 가요.
말씀드릴 게 얼마나 많은지요.

 

(에밀리 디킨슨, ‘3월’ 중에서, 장영희  『다시, 봄』 인용, 41쪽)

 

 

때로는 이 시인처럼 혼자만의 방에 봄을 데리고 들어가 고요히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며 명상에 잠기는 것도 좋다. 오래 머물지 못하는 귀한 손님이라서 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봄과 같은 사람’ 어디 없나? ‘봄과 같은 사람’, 이해인 수녀는 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야말로 봄과 같다고 했다. 생명의 기운 가득한 봄에 먼 길을 떠난 장영희 교수, 김점선 화백은 ‘봄과 같은 사람’이었다.

 

 

 

 

‘봄과 같은 사람’은 얼어붙음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휴식 같은 친구이기도 하다. 몸은 천근만근, 머릿속은 뒤죽박죽. 달콤한 휴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엉뚱한 공상이라도 좋다.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도 좋다. 일상을 벗어나 나만의 감정과 상념에 빠져 그렇게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 딸기 쇼트케이크처럼 작지만 달콤한 휴식에는 복잡한 글이나 설명은 필요치 않다. 그저 한 줄의 시만이, 한 줄의 휴식에 유일한 친구가 된다. 그럴 때 김점선 화백의 그림이 곁들인 장영희 교수의 글을 다시 본다.

 

장영희 교수의 글을 읽으면 가슴이 짠하게 느껴진다. 순간이나마 착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가끔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솔직하게 내면을 드러내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글이 갖는 힘이다. 불편한 몸이지만 스스로 그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유쾌하게 살아 온 그의 태도가 주는 힘이기도 하다.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들보다 행복합니다.
이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내게 사랑이 찾아왔으니까요.

 

(크리스티나 로제티, ‘생일’ 중에서, 장영희  『다시, 봄』 인용, 99쪽)

 

 

장영희 교수는 로제티의 시에 대해 진정한 생일은 사랑을 통해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했다. 이런 사랑을 만난 환희와 기쁨이 잘 표현된 시로 누구라도 이런 사랑에의 동경과 소망을 품어 보게 된다. 그녀는 7월에 다시 한 번 태어나고 싶은 소망을 가졌다. 비록 한여름의 태양과 바다를 사랑할 수 있는 달은 아니지만, 치열한 계절의 순환이 시작되는 4월에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4월처럼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에 왔다. 한 권의 시화집으로.   

 

그녀가 눈을 감은 5월 9일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점선 화백의 49재 날이었다. 자유로운 생각과 유쾌한 성품을 녹여낸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였던 김점선 화백은 장영희 교수와 꼭 닮은 친구였다. 섬세하고 눈물 많은 교수와 호탕하고 거침없는 화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모습이 여린 장 교수는 수많은 고통으로 담금질된 단단함이 있었고, 겉모습이 단단한 김 화백은 누구보다 여린 속내를 가진 사람이었다.

 

 

“김점선은 이제껏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겉모습은 터프하지만, 속은 말랑말랑하고 여리다. 겉은 씩씩하고 대범하지만, 속은 섬세하고 여리다. 겉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순하고 착하다.”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에서)

 

 

타인에 대한 연민이 없다면 세상은 싸움터로만 기억될지도 모른다. 장 교수에게 그 연민은 문학적 힘을 통해 표현된다. 특히 시는 삶의 용기와 희망을 전달해주는 가장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다. 고달픈 삶의 연민에서만 그치지 않고 힘겨운 삶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시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장 교수의 글을 통해 말하고 있다. 삶에 대해 무작정 동경이라든가 허상을 꿈꾸기보다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려고 한다. 시와 삶이 동떨어진 게 아닌 현실감 있게 주변 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시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머리로 읽는 시도 있지만 그것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의 뇌로 읽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 시험성적을 위해서 한 편의 시를 동물을 해부하듯이 시구 하나하나 해석해서 읽는다면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이 책 속에 담긴 영시의 위로는 삶의 고통으로 지친 우리의 심신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준다. 누구나 삶의 아픔을 한 번 이상은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위안과 휴식은 보편적이면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읽는 이에게 생의 활력과 심적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영시와 장 교수의 글 그리고 김 화백의 그림이 ‘휴식’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봄이 빗속에 노란 데이지꽃 들어 올리듯
나도 내 마음 들어 건배합니다.
고통만을 담고 있어도
내 마음은 예쁜 잔이 될 겁니다.

 

빗물을 방울방울 물들이는
꽃과 잎에서 나는 배울 테니까요.
생기 없는 슬픔의 술을 찬란한 금빛으로
바꾸는 법을.

 

(새러 티즈데일, ‘연금술’, 장영희  『다시, 봄』 인용, 71쪽)

 

 

영시의 편편이 가슴에 스며드는 내용인 데다가 장 교수의 깊고 따사롭고 예리한 글과 김 화백의 살아 있는 색채가 펼쳐진 이 책은 감동 그 자체다. 너무 머리를 쓰고, 마음을 쓰는 시간이 부족한 우리에게 잠깐 숨을 돌리게 한다. 365일 하루도 같지 않은 날들. 사실 매일매일이 선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장 교수는 어느 계절도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고, 매일매일이 소중한 하루라고 말한다. 봄부터 겨울까지의 자연 변화,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 자신의 깊은 내면 등 세상의 모든 것이 영시와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한 편의 ‘희망과 위로의 러브레터’가 된다. 그래서 6월의 봄은 사랑이 필요하고, 슬픔의 술을 찬란한 금빛으로 바꾸는 연금술이 요청되는 마음의 봄이다. 

 

장영희와 김점선의 존재는 희망이자 자유 그리고 사랑이었다. 짧았지만 사랑 가득한 삶을 살고 간 그들은 최고로 멋진 삶을 살았다. 늘 웃을 줄 아는 두 사람. 우리 모두가 장영희, 김점선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새 봄과 같은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떠나면서 남기고 간 글과 그림으로 사랑할 힘을 얻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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