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새끼를 발견한 백조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급히 다가왔다. 맑은 물 위에 비친 모습은 못생기고 볼품없는 진회색의 오리가 아니라 우아하고 아름다운 한 마리의 백조가 아닌가? 백조들이 그를 에워싸고 부리로 목을 어루만지며 환영했다.

 

누구든 구박만 받던 미운 오리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한 뒤, 두 날개 펴고 달려온 백조들로부터 환영을 받는다는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 결말에 감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오늘날 우리가 부정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닫힌 사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면 적잖이 실망할지 모른다.

 

사실 이 동화는 현대 사회철학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열린 사회’의 역설과 함께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닫힌 사회의 모델을 보여 주고 있다. 우연히 오리알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백조는 그의 ‘다른’ 모습 때문에 구박받고 무시당한다. 더구나 다르다는 이유로 추한 꼴로 보인다. 미운 오리새끼가 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무리에서 떨어져 방랑 생활을 한다. 세월은 흘러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온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름다운 백조가 되고 백조 무리로부터 환영받는다. 백조들의 사회가 그에게 문을 연 것이다. 그렇다면 백조들의 사회는 열린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미운 오리새끼가 성숙한 백조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되찾았을 때 그를 받아 준 곳도 사실은 백조들의 닫힌 사회였다. 백조로서 그의 정체는 백조들 사이에서는 즉각적으로 동일화될 수 있었다. 백조들은 그를 ‘백조들의 닫힌 사회’의 일원으로서 받아 준 것이다. 그를 향한 열림은 닫힌 사회를 구성하는 한 방식일 뿐이다. 그것은 오리들의 닫힌 사회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서 어느 날 자기들과 동일화될 수 없는 ‘미운 백조새끼’를 갖게 된다면 그를 철저히 배척할 사회이다.

 

 

 

 

 

 

 

 

 

 

 

 

 

 

 

 

 

열린 사회 이론은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열린 사회의 적들을 추적하는 철학 이론이 놓치는 것이 있다. 열린 사회의 적들은 경계하면서도 닫힌 사회의 친구들은 망각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얼른 보아 ‘열린 사회의 적’과 ‘닫힌 사회의 친구’는 동의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 열린 사회의 적들은 눈에 띄지만 닫힌 사회의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사회이론 전개나 문학적 비유에서도 후자는 간과되거나 숨어 있다. 더 나아가 열린 사회의 친구들로까지 나타나 보인다.

 

그러나 오리들과 마찬가지로 백조들도 닫힌 사회의 친구들인 것이다. 다만 미운 오리새끼를 박대하는 오리 가족과 달리 아름다운 백조를 환영하는 백조들은 순간적으로 열린 사회의 친구들처럼 보였을 뿐이다. 우리는 오늘날 열림을 추구한다. 그러나 열림의 추구가 닫힘의 가식과 기만일 경우 또한 적지 않다. 현실에서 열림과 닫힘은 상호 역설로 작용하며 각각 그 본질을 은폐하기도 쉽다.

 

안데르센은 이 작품을 1843년에 썼다. 그는 자기 작품이 하류계급의 닫힌 사회를 비난하면서 상류계급의 닫힌 사회는 옹호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을것이다. 그 시대 자신도 그런 닫힌 사회를 향한 출세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ene #1  편히 쉬소서. 가보...

 

남미문학의 큰 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세상을 떠난 지 2주가 지났다. 그의 유골은 수천 명의 애도 속에 멕시코시티 예술궁전에 안치되었다. 행사는 멕시코와 마르케스의 고국인 콜롬비아 양국이 공동 주관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소설가 한 사람을 떠나보내려고 대통령 두 명이 모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날 마르케스가 태어난 콜롬비아의 카리브해 작은 마을 아라까따까에서도 따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아라까따까는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품 『백년 동안의 고독』의 무대 마꼰도의 영감이 솟아난 곳이다.

 

하지만 이 거국적인 행사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 정부나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콜롬비아 국민 입장에서는 ‘마르케스 부재’가 서운했을 것이다. 그의 유골이 콜롬비아가 아닌 30년 넘게 살아온 멕시코에 안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전 마르케스를 멕시코로 가게 만든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콜롬비아였다. 마르케스는 1954년 ‘엘 에스뻭따도르’라는 신문의 기자로 취직했는데 이 신문은 이듬해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폐간되고 말았다. 유럽에서 주로 영화기사를 보냈던 그는 50년대 말 쿠바로 가 피델 카스트로와 친분이 생긴 뒤 쿠바국영통신사의 보고타 지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마르케스는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쿠바 혁명 이후 카스트로를 일관되게 지지했고 중남미 독재정권 및 이를 지원하는 미국에 반대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영화 제작 등을 위해 멕시코 생활을 했던 그는 콜롬비아 군이 그를 좌익 게릴라들과 엮으려는 것을 눈치 채고 1981년 콜롬비아를 저버리고 멕시코시티로 삶의 터전을 완전히 옮겼다. 콜롬비아는 살았을 동안 마르케스를 내쫓아낸 셈이지만 죽고 난 지금에는 멕시코에 묻힐 화장한 유골의 한줌 재만이라도 돌려주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콜롬비아에서 마르케스를 추모하고,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열렸다. 멕시코 정부와 함께 공동행사를 주관했으나 콜롬비아 정부는 이와 별도로 수도 보고타의 성당에서 공식 장례식을 열었고 TV로 생중계했다. 콜롬비아 문화부는 해마다 가장 뛰어난 스페인어 단편 소설에 10만 달러의 상금을 수여하는 ‘마르케스 문학상’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주 4월 23일에는 콜롬비아 전국의 도서관과 공원, 대학에서 그의 작품을 릴레이로 읽는 행사도 열었다. 문화부는 그의 소설 1만 2천부를 공공도서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그 날 릴레이 읽기 행사를 위해 배포된 마르케스의 소설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백년 동안의 고독』이 아니었다. 그 소설은 바로 작가로서의 마르케스를 본격적으로 알리게 만든 단편소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였다.

 


 Scene #2  듣보잡 중남미 작가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마르케스의 문학을 오랫동안 접한 독자라면 제목이 긴 단편소설을 알고 있겠지만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마르케스’라는 영향이 강한 탓에 대부분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마르케스가 11년이나 고쳐 쓰면서 완성한, 초기 단편작품이다. 1957년에 탈고해서 1961년에 여러 단편소설들을 모은 한 권의 작품집에 정식 출간되었다. 1967년에 출간된 『백년 동안의 고독』보다 먼저 나왔다. 워낙 『백년 동안의 고독』의 인기가 많아서 흔히 마르케스가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정식으로 작가 데뷔한 걸로 오해하는 몇 몇 독자도 있을 것이다. 사실 마르케스는 단편소설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작가로 전업하기 전에 마르케스는 신문기자 활동을 하면서 신문논평을 쓰곤 했는데 아마도 짧은 분량의 단편과 중편을 쓰는데 유용한 경력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마르케스의 작품 약력에 대해서 첨언을 하자면 『백년 동안의 고독』은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첫 번째 장편소설이자 생애 두 번째 작품은 『더러운 시간』(La mala hara)이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가 최초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77년이다. 마르케스가 198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에, 그것도 세계문학전집 출판으로 유명한 민음사에서 처음 출간됐다. 1977년은 안정효 씨의 번역으로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이 나온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정효의 번역이 최초『백년 동안의 고독』번역은 아니다. 일 년 전에 육문사라는 출판사에서 『백년 동안의 고독』이 출간되었다. 이때만 해도 마르케스는 생소한 중남미 출신의 작가였다.

 

지금의 마르케스 독서 열풍과 비교하면 이때 마르케스는 국내 독자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문학사상사의 안정효 역은 1975년 1월부터 월간 문학사상지에 2년에 걸쳐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러나 판매수입은 저조했다. 민음사판과 함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책의 흑역사라고 해야 될까. 1976년에 이 작품을 먼저 낸 육문사판도 안 팔리는 것도 마찬가지. 육문사판은 초판 3천부를 찍었는데 1천부도 팔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먼지에 파묻힌 마르케스의 작품들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해인 1982년부터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백년 동안의 고독』과 함께 마르케스의 작품들이 서점가를 휩쓸게 되었고, 마르케스는 ‘듣보잡’ 중남미의 작가에서 ‘노벨상’ 수상 작가로 급부상했다.

 

 

 

 

 

 

 

 

 

 

 

 

 

 

 

 

그리고『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편의상 줄여서 ‘대령편지’)에 수록된 「마나님의 장례식」은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이라는 이름으로 민용태 교수의 번역으로 중앙일보사 ‘오늘의 세계문학전집’ 11권에 수록되기도 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한때 절친이었다가 서로 간의 오해로 인해 관계가 틀어져버린 페루 출신의 작가,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와 함께 출간됐다.

 

민음사 『대령편지』에는 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번역 판본은 확인할 수 없지만, 1962년에 출판된 단편소설집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에 수록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수록된 단편소설들은 멕시코로 건너가기 전에 집필한 초기 작품이다. 민음사판에 수록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 화요일의 시에스타
* 그 때 그날
* 날개달린 노인
* 이 마을엔 도둑이 없지
* 발따싸르의 최고의 오후
* 몬띠엘의 미망인
* 토요일 하루 뒤
* 인조(人造) 장미
* 마나님의 장례식 (=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

 

 

민음사판은 홍보업이라는 이름의 역자가 번역한 것인데 약력을 살펴보면 서울대 사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인하대 사대 교수를 역임했다. 중남미 작가의 글을 영문과 전공자가 번역한 걸로 봐서는 당시 우리나라에 중남미 문학 전공과 전문 번역이 생소했을 것이다. 그래서 번역 문체가 영 매끄럽지 않고, 어색한 문장 구조가 간간이 눈에 띈다.

 

 

 

 

거기에다가 인쇄 형식이 세로쓰기라서 짧은 분량의 중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끌어 모아 읽어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리고 지금의 책이 펴는 방향과 반대로 된 일본식(세로쓰기 읽기에 적합함)이다. 마르케스의 초기 단편모음집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민음사판은 헌책으로서의 가치가 높겠지만 마르케스의 문학적 매력을 음미하면서 읽기 힘든 단점이 있다.

 

중간에 읽다가 포기한 적도 있고, 여러 번 읽었는데도 글의 주제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작품도 몇 개 있다. ‘대평편지’나 ‘마나님의 장례식’ 같은 경우에는 두세 번 이상 읽었을 정도이다.

 


 Scene #3  대령이 기다리는 편지

 

 

 

 

 

 

 

 

 

 

 

 

 

‘대령편지’는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권』에 소개될 정도로 마르케스 문학을 논할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정도는 아니지만 마르케스 마니아라면 이 초기작은 꼭 읽어봐야 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 『1001권』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두 번째 출간작인 이 중편 소설은 폭력과 불의, 고독과 침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때는 막 20세기로 접어든 무렵, 내전에 참가했던 한 대령이 천식을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거의 잊히다시피 하여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배고픈 삶을 살고 있다. 대령의 삶은 언젠가 15년째 받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연금을 받아 가난과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매주 금요일 우체부가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때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그의 소망은 산산조각이 난다.

 

대령이 겪는 고난의 아이러니—혁명에 참가한 그의 맹목적인 믿음이 오직 그 자신과 그의 농부 아버지를 가난에 빠뜨리고 말았다는—와 그의 핵심적인 투쟁, 즉 죽은 아들이 남긴 마을 품평회에서 상을 딴 투계용 장닭을 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아들은 금지 서적 유포라는 비밀 활동의 결과 죽고 말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장닭은 상실이 지나간 자리에서 승리를 상징하게 된다. 장닭은 또한 시민들이 굶주림과 희망의 광기 속에서 살아가는, 고독 속의 고통에서 비롯된 침체를 떨치는 또 다른 전쟁터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이 고독이야말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1001권』에서 소개한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르케스 특유의 고독한 분위기가 ‘대령편지’에 함축적이면서도 아주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백년 동안의 고독』의 무대 배경 마꼰도와 소설 속 주인공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아버지 호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도 잠깐 언급된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집필하기 전부터 이미 초기작부터 마르케스가 마꼰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제목처럼 주인공 퇴역 대령은 한 통의 편지를 기다린다. 그것도 무려 60년 동안이나. 매주 금요일 하나뿐인 정장을 차려입고 선착장에 나가 연금 지급에 대한 정부의 소식을 기다리지만 연금에 대한 편지는 결코 오지 않는다. 소설 마지막 부분쯤 “그 편지는 반드시 오게 돼 있어”라고 말하는 그에게 우편배달부는 이렇게 말한다. “반드시 오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대령님.” 고독하고 빈곤한 퇴역 대령의 말년을 더욱 쓸쓸하게 묘사하는 장면이다.

 

그나마 그에게는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대령 계급장과 장닭(민음사판에서는 수탉) 한 마리뿐이다. 가난에 지친 아내는 대령에게 돈이 되는 장닭을 팔 것으로 종용하고, 하릴없이 편지를 기다리는 남편의 모습에 불평을 늘어놓는다. 혁명의 영웅으로서 자존심이 센 대령 입장에서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 그녀를 달래보지만 마음으로는 굴욕적일 수밖에 없다. 그저 아내 눈치를 보는 가난과 고독의 그늘에 갇혀버린 늙은 사내가 되고 말았다.

 

결국 그가 기다리면서 맞이하는 것은 편지 한 통이 아닌 오직 죽음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죽음’은 혼이 육체에서 완전히 벗어나 생명활동이 정지되는 현상이 아니다. 완전히 죽지 못한 채, 죽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죽음 아닌 죽음’이다. 생전 혁명의 영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죽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는 실존적인 존재가 상실된 것이다. 아마도 대령은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편지를 기다리기 위해서. 그에게 편지 한 통은 연금 이상의 의미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대령으로서의 ‘명예’이자 ‘자존심’이며 무엇보다도 얼마 남지 않은 무기력한 삶을 회복, 재생시킬 수 있는 ‘생명 연장’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이 편지 한 통만 받으면 거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대령의 고독은 끝난다.

 

마르케스가 군인의 고독함을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취재 경험 덕분이다. 그는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6.25 전쟁 관련 기사를 쓰기도 했다. 취재하면서 6.25 참전 콜롬비아 병사들의 고통을 알게 된다. 그들의 경험을 ‘대령편지’에 투영했다. 그래서 대령의 모습은 6.25 전쟁에 참전했으나 명예로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우리나라 퇴역 군인의 쓸쓸한 모습이 연상된다.

 

 

 Scene #4  그 외 초기 단편소설들

 

그 밖에 다른 몇 편의 작품들을 소개하자면 ‘그 때 그날’  콜롬비아의 군사 정권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 의식을 담은 무척 짧은 내용의 소설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에스꼬바르는 무면허 치과 의사이지만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권력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정의로운 시민이다. 한편은 그의 환자로 등장하는 시장은 군인 출신으로 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인 폭력적인 권력자의 모습이다. 어금니를 뽑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에스꼬바르에게 권총으로 한 빵 쏘겠다고 협박을 할 정도로 상당히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결국 에스꼬바르는 마취를 하지 않고 시장의 어금니를 뽑는다. 그러자 그는 시장에게 뼈 있는 말 한 마디 내뱉는다. “우리 중 스무 명이 죽은 벌을 이제 받을거요.” 마취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빨을 뽑으면 상당힌 진통이 느껴진다. 여기서 에스꼬바르는 강자의 입장이 된다. 스무 명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 마취 없이 이빨을 뽑은 것이다. 평범한 치과 치료 장면에서 통쾌한 권력의 역전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화요일의 시에스타’는 아들의 무덤을 찾는 어머니의 고독함을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아들은 어느 마을에서 절도죄로 사살된 도둑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무덤을 찾기 위해 무더운 날씨 속에서 기차를 타고 마을로 찾아갔지만 하필 그 시간이 모든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였다.

 

시에스타로 인해 사람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마을 배경은 쓸쓸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 준다. 한편 군사 정권이 지배하는 콜롬비아의 무기력한 사회적 분위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거의 2시였다. 그 시각엔 졸림에 눌리어 시가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상점, 관공서, 공립학교는 11시에 문을 닫았고 4시 직전에야 다시 열었다. 4시는 기차가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정거장 건너편에 있는 술집과 당구장이 달려 있는 호텔과 광장 한쪽에 있는 전신전화국만이 문을 열고 있었다. 바나나 회사를 모델로 한 것이 대부분인 집들은 문을 안쪽에서부터 잠그고 휘장을 내려 놓았다. 어떤 집안에서는 너무나 무더워서 거기 사는 이들은 앞마당에 나와서 점심을 먹었다. 어떤 이들은 편도나무 그늘이 진 담에 의자를 기대놓고 바로 거리에서 낮잠을 잤다.” (마르케스, ‘화요일의 시에스타’ 중에서)

 

 

이 소설 이외에도 마르케스의 다른 작품에서도 유독 등장인물이 낮잠을 자는 장면이 묘사된다. 어린 시절 마르케스가 목격한 시에스타는 작품의 소재 중의 하나인데 자서전에 의하면 낮잠 자는 시간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낮잠 자는 시간의 마을은 그에게는 ‘황량한 거리에 드러누워 있는 죽은 마을’이었다.

 

 

 

 

 

 

 

 

 

나는 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무기력한 낮잠이나 자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혐오했다. “우리 지금 낮잠 자고 있으니까, 조용히들 해.” 사람들이 잠결에 투덜거렸다. 가게, 관공서, 학교들은 12시에 문을 닫아 오후 3시 조금 못 미처 문을 열었다. 집들의 내부 분위기는 지옥과 천당 사이의 무기력 상태와 같았다. 더위와 졸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은 마당에 해먹을 걸어 놓거나 편도 나무 그늘 아래에 걸상들을 놓기도 하고, 길거리에 앉아 잠을 자기도 했다. 역 앞에 있는 호텔과 호텔에 딸린 선술집, 당구장과 교회 뒤 전신국만이 문을 열어 놓았다. (중략) 문 한 짝도 어느 담의 틈새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내게 아무런 감흥도 추억도 주지 못했고 인간의 흔적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마르케스 『이야기 하기 위해 살다』중에서, 36~37쪽)

 

 

콜롬비아 사람들에게 시에스타는 무더위를 잊고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군사 정권의 강압적인 정치와 끊임없는 내전의 공포를 잊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집 주변에 울리는 내전의 총성과 포탄 소리는 집 안에 숨어 있어도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을 사람들은 제 목숨 살기 위해서 완전히 문을 닫은 채 살아야만 했다. 어린 마르케스는 그렇게 힘없이 위축되고 삶의 기운이라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에스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날개 달린 노인’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환상적인 분위기가 나는 작품이다. 천사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집고, 날개 달린 노인이 정말 천사였는지 여부는 미확인 상태로 남겨 놓는다. 결국 노인은 날개를 퍼덕이는데 성공하지만, 그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비스럽고 초자연적 느낌의 천사와 거리가 멀다.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온 천사라면 신성한 존재로 생각하지만 날개 달린 노인을 발견한 농부 부부는 오히려 서커스단에서 나올법한 신기한 동물처럼 여긴다. 게다가 그를 구경하기 위해서 찾아 온 신부는 꾀죄죄하고 볼품없는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천사가 아니라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은 농장 부부의 탐욕을 채우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집에 갇힌 노인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돈을 내야만 했다.

 

그러나 부부의 사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야기는 점점 현실과 동떨어질 정도로 전개된다. 카리브해에서 건너온 유랑극단이 거미로 변해버린 여자를 데리고 장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있게도 거미 여자는 어릴 적 부모 몰래 춤추면서 놀다가 집에 돌아오는 도중에 하늘에서 내린 번개를 맞고 거미로 변해버렸다. 사연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 사람들의 눈은 날개 달린 노인이 아니라 거미 여자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날개 달린 노인 덕분에 모아놓은 돈으로 부부는 발코니에 정원 딸린 이층집을 살 수 있었다. 그 후로 노인은 다시 날아다니기 전까지 쭉 집에서 갇혀 지내야만 했다.

 

노인의 모습은 한때 자본을 끌어들일 정도로 가치가 높았으나 이제는 전혀 쓸모없는 상품을 떠올리게 한다. 즉, 모든 상품을 자본화시키고 인간성이 상실되는 자본주의의 단점을 풍자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풍경은 외국 자본들의 유입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지는 콜롬비아의 모습이기도 하다.

 


 Scene #5  마술적 리얼리즘 세계를 들어가기 위한 문

 

 

 

 

 

 

 

 

 

 

 

 

 

 

 

 

 

마르케스가 국내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중남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마르케스의 단편소설을 접하기에는 그 출간된 작품의 수가 많지 않다. 절판된 책을 제외하고 현재 그의 이름으로 나온 단편선집으로는 『꿈을 빌려드립니다』가 유일하다. 1995년에 국내에 출간된 또 다른 마르케스의 단편선집인 한나래 출판사의 『이방의 순례자들』은 절판되었다.

 

나머지 마르케스의 단편은 다른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앤솔러지에서 볼 수 있으며  ‘날개 달린 노인’은 창비세계문학 단편선집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에 ‘거대한 날개 달린 상늙은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 입문 독서를 위한 작품으로는 마르케스의 단편소설이 적합하다. 특히 1950년대에 집필한 초기 작품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을 형성하게 만드는 마르케스의 문학적 가능성과 실험성을 엿볼 수 있다. 사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복잡한 인물에 환상과 사실의 경계가 없는 독특한 이야기의 전개 방식에 혼란을 겪은 적이 있었다. 전혀 준비 운동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 속으로 뛰어든 격이다. 장편소설을 읽기 전에 마르케스의 초기작들로 구성된 단편집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를 읽는다면 마르케스가 세운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비록 노벨상 때문에 마르케스가 국내에 유명해진 것도 있지만 그의 인기 덕분에 제3세계문학에 대한 관심이 놓아졌고, 그 후로 마르케스의 뒤를 잇는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마르케스 사망 이후로 그의 문학세계를 되짚어보고 추억하는 의미에서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가 중남미 문학 전공 번역자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4-05-03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은 저도 갖고 있는데 제11권에 <판탈레온과 위안부>는 있습니다만 마르께스 단편들 중에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는 없네요.혹시 몇 년도에 나온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cyrus 2014-05-03 22:38   좋아요 0 | URL
노자님. 제가 글을 쓰다보니 잘못 쓰고 말았군요. 중앙일보사 세계문학전집 11권에 수록된 마르케스의 작품은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입니다. 방금 잘못 쓴 내용을 수정했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4-05-03 23:35   좋아요 0 | URL
오..역시 제 것과 동일한 책이군요~

레삭매냐 2018-11-1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령편지가 이미 예전에 나왔던 책이로군요...

cyrus 2018-11-19 12:01   좋아요 0 | URL
네, 그런데 구판에는 다른 단편들도 함께 수록되었는데 신판에서는 <대령편지>만 있어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최재천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Prologue  ‘알면 사랑한다.’

 

이 말은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아낌없이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은 오히려 동물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동물과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읽다 보면 ‘이성적인 동물’이라 일컫는 인간세계의 허위의식이 드러난다. 인간이 내세우는 어쭙잖은 명분과 잇속이 얼마만큼 공허한지 자책감마저 들게 만든다. 자식을 더욱 강하게 키우기 위해 냉혹한 백로들, 부상을 당한 동료를 혼자 등에 업고 그가 충분히 기력을 찾을 때까지 떠받쳐주는 고래들의 따뜻한 동료애, 갈매기 부부의 사랑 이야기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삶을 조용히 꾸짖는 듯하다.

 


 Scene #1  잔인한, 그러나 아낌없는 사랑   

 

또한 백로들은 같은 어미가 낳은 친형제들끼리 서로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거나,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지 못하게 하여 끝내 죽게 만든다. 둥지를 떠나 살아남지 못할 자식은 일찌감치 사라지는 것이 어미에게도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냉혹한 동물세계처럼 비춰지긴 하지만 경쟁이 두려워 미리 자기가 기를 수 있을 만큼의 새끼만을 낳는 비겁한 일은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낭비가 아니라, 둥지 안의 경쟁을 통해 보다 강인한 자식들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이다. 술수를 부리지 않고 정공법으로 살아가는 백로의 세계는 치열한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열린 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인간의 생존법칙을 가르쳐준다.

 

이렇듯 강한 모성애는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말벌의 경우 자식 사랑이 너무나 지나쳐 어느 면으론 잔인하기조차 하다.

 

말벌의 암컷은 송충이나 메뚜기를 잡아 땅굴 속에 묻어두고 그것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러면 말벌 애벌레들은 알에서 깨어 자기들이 몸담고 있는 송충이나 메뚜기 살을 먹고 자란단다. 이때 송충이나 메뚜기가 완전히 죽은 게 아니라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몸이라는 데 주목할 만하다.
 
말벌은 자신들의 새끼에게 신선한 먹이를 제공해 주기 위해 송충이나 메뚜기의 신경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게 아니라 부분적으로 죽인다는 점이다. 아무리 곤충이라고 하지만 살아있는 신경을 이종(異種)에게 갉아 먹히는 모습은 상상만 하여도 끔찍하다. 이것으로 보아  말벌의 새끼 사랑은 인간과 별반 다른 점이 없는 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음식과 좋은 것들을 자식에게 마냥 해주고 싶은 마음이 곧 어머니의 마음 아니던가.

 

비록 미물일지언정 신선한 먹이를 자신의 새끼에게 먹이고자 벌레들의 일부 신경만 마비시키는 말벌의 잔혹한 행위에서 진정 숭고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 과정은 좀 잔인하지만. 그래도 사랑만큼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Scene #2  사랑은 갈매기 부부처럼

 

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부부의 날이 들어있는 관계로 가정의 소중함과 가족 간의 사랑이 가지는 깊은 의미를 되새길 때가 많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는 가정 해체의 위기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가족 해체로 가정을 등지고 있는 이들에게 무슨 ‘가정의 달’이 있겠는가? 가정이 무너진 곳에서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모두가 비탄의 눈물만 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교육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가정의 건강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재화가 아니라, 부부간의 깊은 사랑일 것이다.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에 나오는 외눈박이 물고기, 즉 비목어는 눈이 하나밖에 없어서 암수 한 쌍이 평생을 한 몸이 되어 함께 사랑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그들의 사랑은 이 세상 그 무엇도 갈라놓을 수가 없는 운명을 안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의 동물 이야기에 실제 동물의 세계에서도 부부간의 끔찍한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갈매기 부부의 사랑은 유별나다.

 

갈매기 부부는 거의 완벽하게 열두 시간씩 번갈아 둥지에 앉아 서로 알을 품고, 그리고 나머지 열두시간은 교대로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고 한다. 완벽한 남녀평등의 완전한 사랑을 나누는 사회인 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비번식기인 겨울에 잠시 떨어져 있다가, 봄이 오면 지난여름 함께 지낸 짝을 찾아서 다시 신방을 꾸민다는 점이다.

 

겨우내 먼 바다로의 긴 여행과정에서 둘 중 누구 하나라도 불행한 사고를 당하여 돌아오지 못할 경우가 생기면, 며칠 씩 짝을 찾아 구슬프게 울어 댈 정도로 금슬이 좋다는 것이다.

 

하찮은 갈매기도 부부간의 정이 이렇게 돈독한 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우리 인간들이 걸핏하면 이혼을 한다.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만 있다면, 물질적인 궁핍이나 가난은 얼마든지 극복해 낼 수 있다. 또 자녀교육도 얼마든지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라는 단순한 이치를 우리가 너무 쉽게 망각하고 있다.

 


 Scene #3  사랑은 고래를 움직이게 한다

 

고래의 모성애와 우정을 소개한 글은 언제나 읽어도 감동과 여운이 감돈다. 고래는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닌 포유동물이다. 고래들의 동료애는 다친 고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다친 동료를 여러 고래들이 둘러싸고 거의 들어나르 듯하는 모습이 학자들에게 관찰되었다. 그물에 걸린 새끼나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그물을 물어뜯는가 하면 다친 동료를 위해 고기잡이배를 몸으로 맞서 사냥을 방해하기도 한다.

 

고래는 물속에서 허파로 숨을 쉴 수 있는 젖먹이 동물이다. 그래서 부상을 당해 움직이지 못한 동료 고래가 있으면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게 해줘야 한다. 이때 친구를 등에 업고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 떠받혀 주는 고래의 모습은 숙연한 감동을 준다. 또한 부상으로 괴로워하는 친구 곁에 그냥 오랫동안 있어 주기도 한다.

 

우리는 고래의 새끼가 그물에 걸려 헤어 나오지 못할 때 그물을 물어뜯으며 몸부림치는 고래의 감성으로 자각하며 살아야 한다. 눈물을 흘리며 새끼를 구하고자 하는 어미 고래의 처절한 몸부림에서 사랑을 얻는 심성을 배워야 한다.

 


 Epilogue  인간이 동물에게 배워야하는 이유

 

때론 인간과 동물의 직접 비교가 거북살스럽기도 할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지 13년이 된 지금, 옛날에 비해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성(性) 보수주의자라면 동물세계에서 동성애가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발끈할 법하다. 그는 반문한다. ‘자식이 신부나 수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받는 충격과 동성애자라고 밝혔을 때의 충격이 왜 달라야 할까? 아이를 낳지 않겠는 다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렇다고 저자가 동물의 관점에서 인간을 훈계하거나, 동물이 인간사의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위선적인 인간이 동물만도 못해 울화가 치민다.'고 서슴없이 고백한다. 후기에서 이 책을 ‘인류를 대표해 자연에게 써 올린 반성문’이라고 적은 것도 그런 뜻에서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삶에 조금은 지쳤거나 자신의 존재를 망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동물들의 생존방식은 때로는 위안이 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삶의 질을 따지게 되는 시대에 자신의 안위만을 묻고 조급해하기 보다 동물들이 사는 모습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서양속담이 있지만 앎을 위한 열정이라면 누가 인간을 당하겠는가. 그런 일을 해야만 했는지를 알고 나면 사랑하게 되는 게 인간의 심성이다. 그러다 보면 생명도 소중한 의미로 우리 곁에 남아 우리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믿음으로 다가온다.

 

각질처럼 딱딱해져 가는 무딘 마음에 한낱 실오라기 희망을 품어본다. 서로를 ‘알려고 노력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생존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실로 ‘살아남은 자들’임에 틀림없다. 눈 한번 잘못 팔다가는 달리는 차바퀴에 남은 목숨을 바쳐야 하는 우리 처지다. 그 이름도 많은 질병, 대량 학살의 전쟁, 불의의 재난,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갈등. 이런 틈바구니에서 우리들은 정말 용하게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다.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영원한 이별이기에 앞서, 단 하나뿐인 목숨을 여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그 자체가 존귀한 목적이다.

 

살아남은 사람들끼리는 더욱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기 차례를 맞이할지 모를 인생이 아닌가. 살아남은 자인 우리는 채 못 살고 가 버린 이웃들의 몫까지도 대신 살아 주어야 한다. 나의 현 존재가 남은 자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느냐가 항시 조명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하루도 우리들은 용하게 살아 남았군요” 하고 인사를 나누고 싶다. 살아남은 자가 영하의 추위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화목에 거름을 묻어 준다. 우리는 모두가 똑같이 살아남은 자들이다.

 

(법정,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 발췌)

 

 

 

 

 

 

 

 

 

 

 

 

 

 

 


잠깐 햇살이 비치고 있지만 지금 한반도의 공기는 더없이 무겁고 흉흉하다. 누구나 지금 눈물에 젖은 먹장구름에 가위 눌린 채 무기력과 슬픔의 일상을 견디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면 그 사랑의 온도와 질감은 비보로 인하여 낮게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모든 생일잔치와 동창회와 회갑연들, 강의실과 식당과 지하철, 회식 이후의 노래방과 은밀한 사랑의 모텔조차도 팽목항의 슬픔에 엄청난 무게에 짓눌린 상황이다.

 

독일의 시인 브레히트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라고 시를 읊었다. 살아있는 자의 기쁨 대신 슬픔을 노래했다. 우리는 강해서 살아남은 것일까?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일까? 표현하지 않지만 때로는 살아남은 것이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되고 비겁함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무기력과 공포, 답답함과 불안함.

 

하지만 운 좋게, 혹은 강해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서늘한 마음으로 세월을 견디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자는 잊혀진 여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비단 여자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잊혀진다'는 사실에는 비애감이 있다. 영원히 잊혀진다는 건 그래서 겁나고 무서운 일이다. 어쩌면 살아남은 자의 진짜 슬픔은 먼 옛날의 일처럼 비극을 쉽게 잊어버리는 기억의 한계일 것이다.

 

살아 있음에 슬픔을 느꼈다면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내 주변 사람을 안아주고 보살필 수 있는 이 평범한 일상이 ‘사랑’이며 서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위로’다.

 

망자(亡者)에 대한 최고의 사랑은 ‘그 사람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 일은 아프고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슬픔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 주변에 있는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다.

 

강하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살아남아야 한다. 쓰러진 사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온기쯤은 남아 있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로파간다 -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전(propaganda)이란 원래 '잘 설명해서 널리 알린다'란 의미의 중립적인 단어였다. 'PR의 아버지'로 불리는 저자는 자신을 PR전문가보다는 '선전가'로 불리길 원했다. 그는 선전을 통해 일반 대중이 선량한 엘리트 집단의 안내를 받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선전의 의미는 부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의 역사에서 선전은 피바람을 부르기 위한 일종의 물밑 작업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나치정권과 그 선전 장관이었던 괴벨스였다. 괴벨스의 선동을 발판으로 유대인을 학살하고 잇단 전쟁을 치른 독일은 혈육과 이웃사촌을 잃은 뒤로는 더 이상 선전을 신뢰하지 않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전 세계인들 역시 이 부분에 깊은 공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버네이스의 이상은 현실 세계와 달라도 한참이 달랐던 셈이다.

 

이런 인식이 발달하면서 오늘날의 사람들은 쉽게 정권의 선전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 예로 195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각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정권 홍보물인 '대한뉴스'를 틀었다. 독재 정권의 서슬 퍼런 통제 아래 사람들은 얌전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영화가 끝나면 술자리 안줏감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소극적인 저항이었지만 어두운 시대에 대중이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행동이었다.

 

버네이스는 선전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확언한다. 아무리 까다롭고 냉소적으로 일관하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반응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특히 선전의 일부인 기업 광고가 넘치는 세상에서 선전의 역할은 과거에 비해 더욱 교묘하고 절대적이다. 음식을 필요로 하고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지도자를 따르려는 인간의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선전의 효과는 유효하다.

 

 

 

물론, 이 책에는 어떤 용어나 행위가 아무리 가치중립적이더라도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에 의해 손쉽게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80년이 지난 지금의 복잡한 사회경제구조에는 버네이스가 제시한 비교적 단순하고 '소박한' 선전 전략이 통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여론을 조직하고 이끄는 것은 설사 그 도구가 잘못 사용될 위험이 있을지라도 질서정연한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 어느 분야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달성하려면 선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현대의 선전은 기업이나 사상 또는 집단과 대중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건을 새로 만들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끼워 맞추려는 일관된 노력이다. 대중은 선전을 통해 변화와 진보에 길들여진다. 선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선전은 생산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무질서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현대적 도구라는 점을 직시한다. 이러한 선전을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활용해야 할 책무는 소수의 지식인들에게 있다. 사회의 진보와 발전은 결국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소수 지식인들의 활발한 선전 활동에 달려 있다.

 

 

 

선전에 기만당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렇다고 믿지 않는 역설. 버네이스의 시대로부터 80여년이 흐른 지금, 달라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연일 신문과 방송, 인터넷을 도배하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선전과 선전 아닌 것을 구별해 낼 재간이 없는 대중은 힘 있는 정부와 기업이 설파하는 교묘한 선전 논리를 곧이곧대로 쉽게 믿어버리고 만다. 소수의 지배 권력은 끊임없이 여론을 조작하고 자신들이 신봉하는 이념과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대중을 압박한다. 80여 년 전 버네이스의 자신감은 현대로 올수록 더욱 유효해지는 불편한 탁견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