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앞서 공개된 쉬르섹슈얼리티(동문선) 서평에 쓰지 못한 내용을 따로 분리하여 적은 것이다. 나는 이 책의 번역이 엉망이라고 했다. 이 책의 편집 후기 작성자는 마지막에 책과 관련된 오역과 불만스러운 점에 대해 꾸지람을 바란다고 썼다.

 







 

 

* [절판] 휘트니 채드윅 쉬르섹슈얼리티(동문선, 1992)

 

 


번역에 있어서는 연금술상의 특수 용어와 켈트 신화의 기술(記述), 초현실주의자들의 독특한 표현 등 번역상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조사하지 못한 점과 번역 방법의 오류와 만족스럽지 못한 점에 관해 많은 꾸지람과 비평을 바란다. (348)

 

 

이 책은 1992에 나왔다. 나는 이 책이 나온 지 28년 만에 책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글을 쓰게 됐다. 28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고 이제야 내가 편집 후기 작성자의 요청에 응답하게 됐다. 이렇게 나처럼 절판된 책의 정오표를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이 정오표가 절판된 책을 사는 사람들에게 나름 도움을 줄 거로 믿는다.

 

 


 

 

* 8

프리다 카로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레오노르 휘니 레오노르 피니(Leonor Fini)

 

 

 

* 50

콜라지 콜라주(collage)

 


 

* 105

카롤르알리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앨리스(Alice)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작가 겸 수학자.

 

 


 

* 133

소설 2의 성에서 보봐르는 여성의 조건 가운데 한 가지 중요한 요소로서 거울을 들고 있다.
















 

보부아르(Beauvoir)가 쓴 2의 성은 소설이 아니라 철학서.

 

 

 


* 169

발듀스 발튀스(Balthus)

 

발튀스는 프랑스의 화가다. 에로틱한 포즈를 취한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유명하다.

 

 


 

* 186

말사스 맬서스(Malthus)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인구론의 저자다.

 

 


 

* 202, 204

녹음의 헨리, 녹색의 헨리
















독일 작가 고트프리트 켈러(Gottfried Keller)의 소설. ‘녹색의 하인리히(Der grüne Heinrich)로 표기해야 한다.

 

 

 


* 203

프로타지 프로타주(frottage)

 

프로타주는 면이 올록볼록한 물건 위에 종이를 대고, 그 부위에 연필로 문질러 무늬를 얻는 기법이다.

 

 


 

* 218

달리의 <망상증적, 비판적> 회화 편집광적 비판/비평(Paranoia Critic)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가 명명한 회화 방식. 그는 망상에 시달리는 편집광 환자의 환각 상태에 착안하여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그렸다.

 

 

 

* 241

벡클린 뵈클린(Arnold Böcklin)

크림트 클림트(Gustav Klimt)

 

 


 

* 242

알킴볼도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동물과 식물 등의 사물로 인간의 머리를 형상화한 초상화를 그린 이탈리아의 화가.

 

 


 

* 248쪽 

J. J. 바하오휀 바흐오펜(Johann Jakob Bachofen)

 















모권이라는 책을 쓴 스위스의 인류학자.

 

 


 

* 255

아니므스 아니무스(animus)

 

 

 

* 256

사큐바스 서큐버스(Succubus)

 

 


 

* 268

어린이들 동화의 어미거위(Mother Goose) 마더 구스

 

17세기 영국의 동요를 모아놓은 책의 제목.

 

 


 

* 290

1977에 출판된 마담 브라바스키의 베일을 벗긴 이시스

러시아의 신지학자 블라바츠키(Helena Blavatsky)베일을 벗긴 이시스(Isis unveiled)1877년에 출판된 책이다.

 

 


 

* 302

 프로이트가 <그라디바><레오나르도>에 대한 소론에서 설정한 분석적 모델을 참고로 하여 (생략)

 















 

레오나르도는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를 말한다. 프로이트는 이탈리아 화가의 동성애를 분석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년의 기억이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프로이트 전집 중 한 권인 예술, 문학, 정신분석에 실려 있다. 또 이 책에 빌헬름 옌젠의 그라디바에 나타난 망상과 꿈이라는 글도 있다. ‘그라비다빌헬름 옌젠이 쓴 소설의 제목이자 소설에 나오는 여성이다. 이 소설을 읽은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은 관능적인 그라비다에서 초현실주의에 어울리는 여성상을 발견한다.

 

 

 

* 308















비아즐레이 비어즐리(Aubrey Beardsley)

 

 

 


* 312















고르비츠 콜비츠(Kathe Kollwitz)

 

 


 

* 333

 숙부의 커다란 도서실에서 프라에로 전파(前派)오브리, 비아즈리, 크림트, 독일, 플란다스의 낭만파 화가들을 발견했다.















 

 

프라에로 전파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오브리, 비아즈리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

크림트 클림트(Gustav Klimt)

플란다스 플랜더스(Flanders), 플랑드르(Flandre)의 영어식 표기

 

 


 

* 336

로트레아몽 작 마르드롤의 노래(1933), 알루님 괴기소설집(1933)

 
















 

마르드롤의 노래 말도로르의 노래(Les Chants de Maldoror)

알루님 아르힘(Achim von Arnim)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0-03-06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신 열정의 우리 싸이러스 브로 ~

가끔 책에 대한 정보를 찾다 보면
논문의 경우에는 국내 출간된 책들의
제목이 있음에도, 임의 대로 쓰는 경
우가 종종 있더군요.

cyrus 2020-03-07 11:19   좋아요 0 | URL
90년대에 나온 책들에 보면 원제와 다른 제목으로 소개된 문학 작품이 나와요. 이러면 이 작품이 번역된 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임의로 정한 작품 제목에 원제가 없으면 번역본을 찾기가 곤란해요. ^^;;

2020-03-06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7 11:20   좋아요 0 | URL
오식이나 오류를 발견하면서 올바르게 고치는 일이 재미있어요. 이것도 나름 공부하는 일이에요. ^^

흑기사 2020-11-0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나군요..
 
쉬르섹슈얼리티 - 초현실주의와 여성예술가들1924-47
휘트니 채드윅 지음 / 동문선 / 1992년 3월
평점 :
절판


 

 

 

초현실주의(surrealism)꿈과 무의식 세계를 지향하는 사조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친숙한 사물들을 엉뚱한 방식으로 배치하여 보는 사람에게 충격을 주도록 하였다. 그들은 초현실주의가 인간에 잠재된 무의식 세계를 해방하게 만드는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초현실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이다.

 

자유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초현실주의는 여성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이 보고 싶은 세계는 여성을 속박하고 억압하는 가정의 울타리가 사라진 세상이다. 남성 초현실주의자들도 여성의 자유에 관심을 보였지만, 여성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여성의 자유자신의 성적 욕망을 숨기지 않는 개방적인 태도로 해석했다. ‘여성의 자유를 자기 입맛대로 해석한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창작에 영감을 주는 뮤즈(Muse)와 같은 여성상을 제시한다. 그들은 여성상에 팜 앙팡(femme-enfant: 아이 같은 여성)이라는 이름까지 붙인다. ‘아이 같은 여성은 꿈과 무의식 세계에 있는 존재이다. 그녀들은 남성을 유혹하여 이들을 현실 세계에서 해방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 같은 여성이미지는 오랫동안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의 문학 작품과 예술 작품의 단골 소재가 된다. 이로 인해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조력자로 알려진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남성을 위한 조력자에 머무르지 않았으며 창작 활동에 전념했다. ‘예술가로 살아온 그녀들의 진짜 모습은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이 만든 비현실적인 여성상에 가려졌다. 전시회를 열어 자신들의 작품들을 알리느라 여념이 없었던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여성 동료들의 업적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의 미술사가 휘트니 채드윅(Whitney Chadwick)은 초현실주의자들이 남긴 모든 기록물(잡지, 회고록 등)과 전시 카탈로그를 조사하고, 생존한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다. 십 년 동안 초현실주의 연구에 매진한 그녀는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기록이 적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하여 채드윅은 1985년에 Women Artists and the Surrealist Movement를 발표하여 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은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의 예술 활동을 소개한다. 이 책은 1992년에 쉬르섹슈얼리티: 초현실주의와 여성 예술가들 1924-47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쉬르(sur)‘~위에를 뜻하는 프랑스어 전치사. 그래서 초현실주의를 뜻하는 프랑스어를 쉬르리얼리즘(surréalisme)이라고 읽는다. 쉬르섹슈얼리티는 섹슈얼리티를 넘어서다(초월하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쉬르섹슈얼리티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이며 학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이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번역본 제목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번역본의 표제가 되어야 할 초현실주의와 여성 예술가들은 엉뚱하게도 부제가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겼다. 그녀들은 정숙한 아내’, ‘일부일처제’의 틀에 갇힌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넘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Women Artists and the Surrealist Movement는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의 개방적인 섹슈얼리티를 보여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열정적으로 예술 활동에 참여한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의 삶이다.

 

Women Artists and the Surrealist Movement페미니즘 미술사의 명저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한 출판사는 원서의 명성에 흠집을 냈다. 계속 보기 힘들 정도로 외국어 표기와 번역이 엉망이다. 심지어 잘못된 내용도 있다. 고쳐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이 서평에 전부 다 언급하기 힘들다. 농담이 아니라 이 책의 정오표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 책의 역자 이름은 편집부. 편 씨의 성을 가진 집부라는 이름의 역자는 아닐 테고, 전문 번역자가 아닌 출판사 편집부 직원 여러 명이 참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예전부터 번역 문제로 독자들의 원성을 산 출판사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번역본이다. 책의 번역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그 책을 만든 출판사를 보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3-06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6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10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인 에어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0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제인 에어는 자기 결정권과 욕망을 발현하는 여성을 내세운 근대 소설로 평가받는다. 소설에서 에드워드 로체스터(Edward Rochester)신 존(St. John)은 제인의 결혼 상대자로 나온다. 이 둘 중에 누굴 선택할지 고민하는 제인의 모습은 당시 19세기 영국 사회의 여성들과 다르다. 하지만 당돌한 제인도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제인 로체스터가 된 제인은 자신을 남편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된 여자라고 말한다(2424).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표현은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기독교는 이 구절을 근거로 여성을 남성의 파생적 존재로, 그리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해석한다. 결국 제인 로체스터의 이 발언은 로체스터의 온갖 구애를 뿌리치려고 난 새가 아니에요(I’m no bird, 233)라고 당당하게 외친 제인 에어의 말을 무색하게 한다. 그렇지만 모순된 주인공의 모습을 설정한 것에 대해 작가인 샬럿 브론테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샬럿은 남녀 주인공이 결혼하는 결말을 원하는 독자들의 요구에 못 이겨 지금의 결말을 쓰게 됐다.

 

제인 에어2권에 주목해야 할 인물은 당연히 버사 앙투아네트 메이슨(Bertha Antoinetta Mason)이다. 후대에 이 인물이 다시 평가받으면서 제인 에어제국주의적 관점이 반영된 텍스트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제인 에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제인 에어번역본의 역자 해설이나 제인 에어의 전문가 서평 또는 독자 서평에 자주 언급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그 내용을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이미 누군가가 언급한 작품 평과 해석을 그대로 옮겨 쓰는 것은 시간 낭비다.

 

이번 서평도 어제 쓴 서평의 형식과 마찬가지로 소설의 주변 인물을 소개하면서 내 나름대로 그 인물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작성했다. 내가 제인 에어2권을 읽으면서 주목한 인물은 손필드(Shonfield)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 그레이스 풀(Grace Poole)이다.

 

손필드의 주인은 로체스터다. 제인은 로체스터가 보살피고 있는 프랑스 출신 소녀 아델러 바랭스(Adèle Varens)의 가정교사가 된다. 로체스터는 과거에 프랑스의 오페라 무희와 사귄 적이 있다. 이 무희의 딸이 바로 아델러다. 그러나 로체스터는 아델러를 자신의 친딸로 인정하지 않는다. 몇 년 후 오페라 무희는 이탈리아인 음악가에게 사랑에 빠져 딸을 버리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로체스터는 아델러를 부양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졸지에 고아가 된 그녀를 영국으로 데려와 키운다.

 

제인은 손필드에 도착한 첫날에 저택 내부를 둘러본다. 혼자서 저택 복도를 걷다가 기묘한 웃음소리를 듣는다. 제인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웃음소리에 기겁한다. 그녀는 저택 관리인으로 일하는 페어팩스 부인(Mrs. Alice Fairfax)에게 이 웃음소리를 낸 사람이 누군지 묻는다. 부인은 술에 취한 그레이스 풀의 웃음소리라고 말하면서 그레이스에게 시끄럽다고 지적한다. 제인은 그레이스의 외모를 험상궂은 못생긴 얼굴이라고 평가한다.

 

제인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저 못생긴 그레이스가 어째서 손필드에 지내는지 의심한다. 그런 와중에 로체스터의 침실에 화재가 일어난다. 제인이 도와준 덕분에 로체스터는 목숨을 구한다. 제인은 화재를 일으킨 범인으로 그레이스를 지목한다. 왜냐하면 화재가 일어났던 밤에 그녀는 또 한 번 그레이스의 웃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체스터는 제인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그레이스를 쫓아내지 않는다. 제인은 로체스터의 반응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로체스터의 결혼 상대자로 알려진 블랑슈 잉그램(Blanche Ingram)이 등장하면서 제인의 합리적 의심은 잊힌다.

 

손필드에 로체스터의 친구라고 밝힌 리처드 메이슨(Richard Mason)이 나타난다. 그는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아 크게 다친다. 끔찍한 일이 일어난 메이슨의 방에 들어간 제인은 그곳에서 그레이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제인은 그녀가 메이슨을 죽일려고 한 살인자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언급된 줄거리는 제인 에어1권에 나온다.

 

레이스의 등장 빈도는 높지 않다. 제인과 그레이스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그 장면을 제외하면 그레이스는 대사가 거의 없는 공기같은 인물이다. 그레이스는 주로 제인의 서술을 통해서 언급되는데, 제인은 그레이스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일관되게 묘사한다. 그래서 제인의 흥미진진한 서술에 제대로 몰입한 독자는 그레이스를 기괴하고 위험한 인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2권에 버사 메이슨의 정체가 알려지게 되면서 제인과 독자들이 함께 씌운 그레이스의 오명은 벗겨진다. 버사는 서인도 제도 출신의 혼혈인으로 로체스터와 결혼하여 영국으로 건너온다. 그러나 그녀는 고향과 너무나 다른 날씨와 언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버사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로체스터는 그녀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결국, 몸과 정신이 완전히 피폐해진 버사는 미쳐 버린다. 로체스터는 자신이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면서 후회한다. 그는 새로운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서 버사를 손필드에 감금한다. 그 후로 버사는 십년 동안 손필드에 갇혀 지낸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해진 버사를 보살피는 유일한 사람이 그레이스다. 기괴한 웃음소리의 주인공, 로체스터의 침실에 화재를 일으킨 사람, 그리고 자신의 친오빠를 공격한 사람 모두 버사이다. 그녀는 술에 취해 잠든 그레이스의 감시를 피해 방을 탈출하고, 저택 내부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한 번은 버사가 제인의 침실에 들어온 적이 있다. 제인은 로체스터와의 결혼식에 착용하려고 한 베일을 갈기갈기 찢는 버사를 목격한다. 로체스터가 숨겨온 비밀을 안 제인은 결혼을 포기하면서 손필드를 떠난다.

 

로체스터는 버사를 교활하고 근성이 나쁜 미친 여자(2144)라고 비난한다. 제인 에어를 로맨스 소설로 인식한 독자는 남자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동정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버사는 제인과 로체스터의 사랑을 방해하는 부정적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이제는 버사에 대한 독자들의 시각이 달라졌다. 로체스터의 무책임한 행동과 발언, 그리고 버사를 정신이 이상한 혼혈인 여성으로 묘사한 작가의 인종차별적 글쓰기를 비판하는 평이 많아졌다. 실제로 샬럿 브론테는 버사를 편파적으로 묘사한 점에 대해 반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버사 다음으로 소설에서 줄곧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진 그레이스를 잊어선 안 된다. 제인의 서술에 너무 따라가지 않고, 그레이스의 행보에 주목하면서 소설을 읽는다면 제인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제인은 그레이스를 위험인물로 오해한 것에 대해 일말의 반성을 하지 않는다. 또 그레이스가 로체스터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채 십 년 동안 버사를 보살핀 노고를 언급하지 않는다. 버사는 몸집이 크고, 로체스터와 리처드 메이슨을 넘어뜨릴 정도로 힘이 세다. 그레이스는 그런 버사를 무려 십 년 동안 혼자 보살폈다! 소설에서는 버사의 과거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만, 그레이스의 과거는 언급되지 않는다. 로체스터는 그레이스를 그림스비 정신 병원에서 구했다고 말하는데(2권 144쪽), 이것이 그레이스의 이력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이다. 그레이스를 언급한 로체스터의 말이 애매모호하다. 그레이스는 정신 병원에 있던 환자였을까, 아니면 그곳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돌본 경험이 있는 간호 직원이었을까.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신병원에 일한 경력이 있는 그레이스도 혼자서 버사를 십 년 동안 보살피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레이스가 매일 술을 마신 이유를 생각하면 그녀의 노동이 고된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도 이 지긋지긋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고용인 로체스터의 명령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하녀 일을 그만 두면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 테니까. 따라서 그레이스를 주인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는 수동적인 인물로 볼 수 없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신분에 속한 그레이스에게는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힘든 일을 맡은 것이다.

 

손필드가 화재로 인해 잿더미가 되면서 로체스터가 고용한 하녀와 하인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아마도 손필드에서 일하던 사용인들은 다른 직업을 알아보거나 또 다른 귀족의 집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손필드를 떠난 사용인 중에 그레이스도 포함되어 있을 텐데 매정하게도 제인은 손필드를 떠난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언급하지 않는다. 그레이스는 제인의 관심 밖에서 완전히 멀어진 인물이다. 끝내 그레이스를 외면한 제인의 반응은 빈민층의 삶에 무관심한 채 여권 신장을 주장한 부르주아지 여성(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 19세기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의 한계로 해석할 수 있다. 제인 에어를 감명 깊게 읽은 대부분의 독자는 그레이스 풀이 누구였더라?’하면서 생각하거나 소설에서 비중이 적은 못생긴 알코올 중독자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독자들은 그녀가 입에 술을 달면서 살아가게 만든 원인을 생각해봐야 한다. 소설에 드러나지 않은 그녀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해해야 한다그레이스 풀은 소설에서 잠깐 스쳐 나가는 엑스트라’가 아니다. 그녀는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 즉 계급 사회의 맨 밑바닥에 있는 인물이다.

 

 

 

 

 

Trivia

 

 

* 229

 

당신은 어딘가 나하고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소, 제인?”

이제는 아무런 대답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슴속이 벅찼다.

왜냐하면.” 그가 말했다. “나는 가끔 당신에게 대해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소. 특히 지금처럼 당신이 나와 가까이 있을 때 말이오. 마치 내 왼편 갈비뼈 밑 어딘가에 끈이 하나 달려 있어서, 그것이 당신의 그 조그만 몸뚱이의 오른편 갈비뼈 밑에 달려 있는 똑같은 과 풀리지 않은 풀리지 않게 꼭 매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요.”

 

똑같은 끝똑같은 끈(similar string)의 오식이다.

 

 

 

* 259

 

선생님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아침저녁으로 마나를 주워올 테다. 달나라의 들판이나 산기슭에는 마나가 하얗게 깔려 있단다, 아델러.”

 

만나(manna)라고 써야 한다. 만나는 모세(Moses)와 함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 굶주려 있을 때 신이 내려준 양식이다.

 

 

 

* 2141

 

  “서인도식 얄팍한 칸막이벽은 그녀의 늑대와 같은 아우성 소리를 막아낼 장애물 구실을 별로 하지 못했던 것이었소.”

 

아우성의 ()소리를 뜻하는 한자이다. 아우성 소리는 겹말이므로 아우성이라고 쓰는 게 맞다.

 

 

 

* 2148

 

셀린 바랭 셀린 바랭스

 

 

 

* 2208

 

세이트 세인트 존

 

사실 세인트 존은 오역이다. 성인이 아닌 인물 이름 앞에 있는 ‘St.’세인트라고 발음하지 않는다. ‘신’으로 발음한다.

 

 

 

* 2238

 

아아멘 아멘

 

 

    

* 2권 381쪽

 “그분은 인젠 폐인이나 마찬가집니다. 장님인데다 불구자죠.”

 

인젠인제의 오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아가 된 제인 에어(Jane Eyre)리드 부인(Mrs. Sarah Reed)의 가족과 함께 게이츠헤드(Gateshead)에서 지낸다. 리드 부인은 제인의 외숙모다. 그러나 리드 부인과 그녀의 자식들은 제인을 못살게 구고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다. 특히 리드 부인의 장남 존 리드(John Reed)는 부인 다음으로 제인을 많이 괴롭히는 인물이다.

    

 

 

    

 

 

 

 

 

 

 

 

 

 

 

 

 

 

*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민음사, 2004)

    

 

 

존은 제인에게 시비를 걸다가 그녀를 향해 책을 던진다. 존이 던진 책에 맞은 제인은 넘어지고, 그녀의 머리에 약간의 상처가 생긴다. 인내심이 폭발한 제인은 존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존은 야비하게도 다친 제인에게 달려들고, 제인은 존의 공격을 막아보려고 한다. 둘이 몸싸움하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리드 부인은 제인이 먼저 존을 공격했다고 생각한다. 난투극을 일으킨 죄를 뒤집어씌운 제인은 붉은 방에 갇히는 벌을 받는다.

 

붉은 방은 게이츠헤드에 찾아온 손님이 묵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예전에 이 방은 세상을 떠난 제인의 외삼촌이 쓰던 방이었다. 이 방에서 제인의 외삼촌은 숨을 거두었다. 붉은 방의 음산한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제인은 방에 외삼촌의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 내부는 점점 어두워진다. 제인은 방에 무시무시한 망령이 나올까 봐 두려워한다. 그녀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게 되고, 벽 위에 생긴 빛을 무서워한다. 사실 제인이 망령이라고 생각한 그 빛의 정체는 방에 들어온 유모가 쥐고 있던 손전등에서 나온 것이다.

 

붉은 방 이야기는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의 소설 《제인 에어》 2장에 나온다. 제인은 이곳에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죽은 외삼촌을 떠올린다. 그리고 죽음과 영혼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만약 제인이 붉은 방에 갇히지 않았으면 외삼촌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게이츠헤드 사람들의 구박과 학대에 지칠 대로 지친 제인은 자신을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는외톨박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그녀는 외삼촌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자신을 무척 친절하게 대해줬을 거로 생각한다.

    

 

 

 

 

 

 

 

 

 

 

 

 

    

 

* 허버트 조지 웰스 허버트 조지 웰스: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현대문학, 2014)

* 정진영 엮음 세계 호러 단편 100(책세상, 2005)

 

 

 

 

 

 

 

 

 

 

 

 

 

 

 

 

 

 

* [e-Book] 허버트 조지 웰스 붉은 방(올푸리, 2019)

* [e-Book] 허버트 조지 웰스 붉은 방(위즈덤커넥트, 2015)

 

    

 

붉은 방은 공포소설이나 공포영화 속 배경으로 어울리는 공간이다. 영국의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는 유령이 나오는 붉은 방이라는 설정으로 단편소설을 썼다. 소설 제목은 붉은 방이다. 소설의 화자는 28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유령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령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붉은 방에서 하룻밤만 지내기로 한다. 고전 공포소설의 클리셰에 익숙한 독자는 벌써 눈치챘을 것이다. 유령의 실체를 무시한 인물은 반드시 화를 입는다. 그런데 붉은 방은 공포소설로 보기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로 결말이 허무하다.

    

 

 

 

 

 

 

 

 

 

 

 

 

 

 

* 아마기 세이마루 원작, 사토 후미야 그림 소년탐정 김전일 애장판 7(서울문화사, 2006)

 

    

 

탐정 킨다이치 코스케(金田一 耕助)의 손자 김전일의 활약상을 그린 장편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의 일곱 번째 사건 이진칸 호텔 살인 사건에서도 붉은 방과 비슷한 공간이 나온다. 크리스마스이브빨간 수염의 산타클로스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투숙객이 이진칸 호텔에 지내기 시작한다. 그의 용모는 특이하다. 붉은색 긴 수염이 자라난 얼굴고, 복장과 신발도 (색깔 맞춤) 붉은색이다. 호텔 종업원들은 그 사람을 빨간 수염의 산타클로스라고 부른다. 빨간 수염의 산타클로스는 자신의 방을 온통 빨간색 페인트로 칠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만화 전문 케이블 채널에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본 적이 있다. 다만 애니메이션에 묘사된 여러 가지 설정과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만화 원작과 다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3-05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5 22:05   좋아요 0 | URL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어서 불편해요... ㅎㅎㅎ 제 방에 반납하지 못한 도서관 책 몇 권 있어요. 집에 있을 때 그동안 쓰지 못한 글을 쓸려고 해요. ^^
 
제인 에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9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년 만에 제인 에어(Jane Eyre)를 다시 읽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인 에어는 정말 재미있다. 제인 에어는 영화와 드라마로 여러 차례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다. 그러나 원작의 재미를 적절하게 살리려면 영화보다는 드라마로 각색하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별 뜻 없어 보이는 문장들 하나하나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복선과 상징들이 듬뿍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학적 장치를 과연 영화 한 편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영화 제인 에어가 최장 러닝 타임으로 제작되지 않는 이상 원작의 복선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 독자는 소설의 주인공 제인 에어와 그녀의 로맨스 상대 에드워드 로체스터(Edward Rochester), 그리고 후대에 다시 평가받고 있는 버사 앙투아네트 메이슨(Bertha Antoinetta Mason)에 주목한다.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한 분석과 비평은 이미 전문가 서평과 독자 서평에서 많이 다룬 주제이므로 이 서평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나는 소설의 주요 인물보다는 주변 인물에 주목하려고 한다.

 

제인 에어1권의 신 스틸러(scene stealer) 헬렌 번스(Helen Burns). 제인은 자신을 미워하는 리드 부인(Mrs. Sarah Reed)의 집을 떠나 로우드 자선 학교(Lowood School)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제인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소설 라셀라스를 읽고 있는 헬렌을 만난다. 제인은 헬렌을 처음 만나자마자 자선 학교의 의미가 뭔지 묻는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제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헬렌은 제인에게 자선 학교의 의미와 로우드 학교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헬렌은 수업 시간에 스캐처드 선생(Miss Scatcherd)에게 매일 혼난다. 제인은 유독 헬렌에게만 심한 체벌을 가하는 스캐처드 선생을 못마땅해 한다. 아마도 제인은 스캐처드 선생에게 제대로 미운 털 박힌 헬렌의 모습을 볼 때마다 리드 부인의 집에서 살았을 때 자신의 옛 모습이 생각났을 것이다. 리드 부인과 스캐처드 선생은 권위를 내세워 힘없는 어린이를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몰인정한 어른이다. 그러나 헬렌은 제인의 성격과 정반대인 인물이다. 그녀는 선생이 자신의 결점을 싫어하기 때문에 체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또 성서에 있는 구절을 인용하면서(‘악을 보답하기를 선으로 하라’) 고통을 꾹 참고 견디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제인은 헬렌이 강조하는 인종(忍從: 묵묵히 참고 따름)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제인은 헬렌을 결점이 없는 훌륭한 아이라고 칭찬하지만, 오히려 헬렌은 결점이 너무 많은 자신은 형편없는 아이라고 말한다.

 

헬렌에 관련하여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대부분 독자는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치기 쉽다. 9년 전에 소설을 읽은 나도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되었다. 헬렌의 재미있는 점이 무엇이냐면 혁명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다. 헬렌은 수업 시간에 딴생각하다가 또 스캐처드 선생에게 걸려서 혼난다. 헬렌은 자신이 수업 시간에 했던 생각을 제인에게 알려준다. 헬렌은 처형당한 영국의 왕 찰스 1(Charles I)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찰스 1세의 한계를 언급하면서도 성실하고 양심적인 찰스 1세가 처형당한 사실에 분노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찰스 1세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헬렌은 훌륭한 왕을 처형대에 오르게 한 세력을 비난한다. 혁명 세력을 비판한 헬렌의 정치관은 프랑스 혁명을 부정적으로 봤던 보수주의에 가깝다. 그녀의 보수주의적 입장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나쁘고 한계가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 저항하기보다는 참고 견뎌야 한다는 인종의 교리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입장의 단점은 자신이 겪고 있는 부당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며 어떤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결점에서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헬렌의 입장은 당시 영국 기득권층의 생각을 반영된 것일까, 아니면 헬렌의 말을 통해 은연중에 드러난 작가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의 생각일까. 112장에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제인의 독백에 나오는데, 여기에 혁명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은 묘한 대목이 있다.

 

 

 사람이란 안온한 생활에 만족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해보았자 그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사람이란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엔 필경 만들어내고야 만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나보다도 평온한 생활에 얽매여 있고 또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 운명에 말없이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반란을 제외하고서도 얼마나 많은 반란이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격동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성은 대체로 평온한 존재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오빠나 동생들과 똑같이 자기의 능력과 노력을 발휘할 터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197~198)

 

 

제인이 말한 정치적 반란의 의미는 뭘까. 많은 반란중에서 정치적 반란을 제외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정치적 반란도 운명에 항거하는 사람들의 일이다. 그런데 제인은 왜 정치적 반란을 제외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정치적 반란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제인의 입장에서는 그 상황은 운명에 대항하는 역사적인 항거가 아니라 평온한 생활에 균열을 내는 반란이 된다.

 

작가가 살았던 시기 이전에 영국에서는 청교도 혁명명예혁명이 일어났다. 이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면서 헬렌이 존경한 찰스 1세가 처형당했다. 아니면 전 유럽에 영향을 미친 프랑스 혁명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영국의 계몽주의자들은 프랑스 혁명에 열광했지만, 귀족들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국경을 넘어 온 혁명의 기운이 영국 전역에 퍼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독백을 하고 있던 제인의 신분은 가정교사다. 19세기 영국의 가정교사는 상류층 및 중산층 출신의 영국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정교사는 상류층에 속하지 못한 신분이었고, 고용인의 보호를 받으면서 생활하고 교용인의 자녀를 가르쳤다귀족이라 할 수 없는 제인이 정치적 반란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하는 점이 특이하다. 혹시 제인은 혁명에 대한 헬렌의 생각을 받아들인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제인은 라틴어를 구사하는 헬렌의 모습을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1권 129쪽). 소설에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제인과 헬렌은 친하게 지내면서 지적 교감을 나누었을 것이다.

 

제인은 작가의 삶이 어느 정도 반영된 인물이다. 그 점을 생각한다면 제인의 보수적인 입장은 혁명에 대한 작가의 생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작가나 소설 속 인물의 생각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제인 에어1권에서 제일 친밀하게 느꼈고, 한편으로는 가장 안타깝게 느낀 인물은 헬렌이다. 제인과 헬렌이 마지막으로 대화하는 장면은 제인 에어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다. 만약 원작에 대한 2차 창작물이 만들어진다면 과연 헬렌은 어떤 인물로 묘사되어 있을까. 헬렌이 소설에서 비중이 작은 인물로 보일 수 있겠으나 헬렌이라는 든든한 존재가 있었기에 제인은 정신적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헬렌도 많은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인물로 알려져서 부활했으면 좋겠다.

 

 

 

 

 

Trivia

 

 

* 로우드 학교의 총책임자는 브로클허스트(Brocklehurst). 그런데 1121브르클허스트라는 오식이 있다.

    

 

 

* 다음 인용문은 1363쪽에 있는 제인과 집시 노인(사실 그 노인의 정체는‥…)의 대화 내용이다. () 보는 집시 노인은 제인의 속마음을 읽는다.

     

 

 “그럼 미래의 일을 속삭여주고 당신의 마음을 북돋워주고 기쁘게 해줄 만한 남모르는 희망이라도 갖고 있는지?”

 “아뇨. 고작 제 희망이란, 언젠가 조그마한 집을 빌려서 학교를 세울 만한 돈을 내 봉급에서 저축하는 거예요.”

  “영혼이 살아나기엔 빈약한 영양분이군그래. 그리고 저 창턱에 앉아서‥… 난 당신의 습관을 잘도 알고 있죠?

  “하인들에게 들은 거겠죠.”

  “! 꽤 똑똑한 체하는군. 그렇지! 들었을지도 모르지. 사실은, 하인 중에 한 사람 아는 사람이 있어서‥… 풀 부인 말이오.”

 

 

 

내가 밑줄을 친 문장은 노인이 한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제인에게 높임말을 쓴다. 생뚱맞은 번역문이다. 사실 밑줄을 친 문장은 오역이다. 높임말로 된 번역문에 해당하는 원문(‘You see I know your habits’)은 의문문으로 되어 있지 않다. 원문을 올바르게 번역하면 난 당신의 습관을 잘 알고 있다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