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르섹슈얼리티 - 초현실주의와 여성예술가들1924-47
휘트니 채드윅 지음 / 동문선 / 1992년 3월
평점 :
절판


 

 

 

초현실주의(surrealism)꿈과 무의식 세계를 지향하는 사조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친숙한 사물들을 엉뚱한 방식으로 배치하여 보는 사람에게 충격을 주도록 하였다. 그들은 초현실주의가 인간에 잠재된 무의식 세계를 해방하게 만드는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초현실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이다.

 

자유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초현실주의는 여성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이 보고 싶은 세계는 여성을 속박하고 억압하는 가정의 울타리가 사라진 세상이다. 남성 초현실주의자들도 여성의 자유에 관심을 보였지만, 여성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여성의 자유자신의 성적 욕망을 숨기지 않는 개방적인 태도로 해석했다. ‘여성의 자유를 자기 입맛대로 해석한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창작에 영감을 주는 뮤즈(Muse)와 같은 여성상을 제시한다. 그들은 여성상에 팜 앙팡(femme-enfant: 아이 같은 여성)이라는 이름까지 붙인다. ‘아이 같은 여성은 꿈과 무의식 세계에 있는 존재이다. 그녀들은 남성을 유혹하여 이들을 현실 세계에서 해방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 같은 여성이미지는 오랫동안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의 문학 작품과 예술 작품의 단골 소재가 된다. 이로 인해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조력자로 알려진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남성을 위한 조력자에 머무르지 않았으며 창작 활동에 전념했다. ‘예술가로 살아온 그녀들의 진짜 모습은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이 만든 비현실적인 여성상에 가려졌다. 전시회를 열어 자신들의 작품들을 알리느라 여념이 없었던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여성 동료들의 업적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의 미술사가 휘트니 채드윅(Whitney Chadwick)은 초현실주의자들이 남긴 모든 기록물(잡지, 회고록 등)과 전시 카탈로그를 조사하고, 생존한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다. 십 년 동안 초현실주의 연구에 매진한 그녀는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기록이 적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하여 채드윅은 1985년에 Women Artists and the Surrealist Movement를 발표하여 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은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의 예술 활동을 소개한다. 이 책은 1992년에 쉬르섹슈얼리티: 초현실주의와 여성 예술가들 1924-47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쉬르(sur)‘~위에를 뜻하는 프랑스어 전치사. 그래서 초현실주의를 뜻하는 프랑스어를 쉬르리얼리즘(surréalisme)이라고 읽는다. 쉬르섹슈얼리티는 섹슈얼리티를 넘어서다(초월하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쉬르섹슈얼리티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이며 학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이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번역본 제목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번역본의 표제가 되어야 할 초현실주의와 여성 예술가들은 엉뚱하게도 부제가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겼다. 그녀들은 정숙한 아내’, ‘일부일처제’의 틀에 갇힌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넘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Women Artists and the Surrealist Movement는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의 개방적인 섹슈얼리티를 보여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열정적으로 예술 활동에 참여한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의 삶이다.

 

Women Artists and the Surrealist Movement페미니즘 미술사의 명저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한 출판사는 원서의 명성에 흠집을 냈다. 계속 보기 힘들 정도로 외국어 표기와 번역이 엉망이다. 심지어 잘못된 내용도 있다. 고쳐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이 서평에 전부 다 언급하기 힘들다. 농담이 아니라 이 책의 정오표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 책의 역자 이름은 편집부. 편 씨의 성을 가진 집부라는 이름의 역자는 아닐 테고, 전문 번역자가 아닌 출판사 편집부 직원 여러 명이 참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예전부터 번역 문제로 독자들의 원성을 산 출판사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번역본이다. 책의 번역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그 책을 만든 출판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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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6 15: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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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6 15: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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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0 17: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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