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화가 반 고흐의 생일이다. 그림은 한 점당 몇 십,몇 백억 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그는 생전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하고 가난과 병마와 싸우다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오죽했으면 그는 누가 빵과 물감을 살 돈을 준다면 자기 그림을 다 주겠다고 했겠는가. 

 

모딜리아니 역시 영양실조와 폐결핵으로 길거리에서 죽었다. 이중섭은 생활고에 못 이겨 처자를 일본 처가로 보내고 부산, 통영, 제주 등을 전전하며 부두 노동을 해야 했다. 그의 유명한 은박지 그림은 이 당시 재료 살 돈이 없어 담배 은박지에 그린 것이다. 그는 고독과 궁핍 속에 살다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 예술가들 중에는 그들이 이루어낸 예술적 업적에 비해 너무나 불우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그것은 예술에 대한 완전한 몰두와 일상적인 삶과의 비타협적 태도이다. 그들은 기존의 제도와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예술로 실천했으며 예술적 가치를 위하여 일상적 가치를 돌보지 않았다. 자신의 예술 세계가 한계에 부딪혔다고 느꼈을 땐 그 절망감으로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했다. 이때 그들의 자살은 예술 행위의 연장이 되기도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 상황에서 기본적인 인간적 조건과 생명마저 희생하며 탄생된 그들의 예술은 그래서 빛을 더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고독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인들 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건강하고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며 사회적 명성과 권력을 얻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들도 인간이기에 일상적 삶에 대한 욕구를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일상적 욕구를 버려야하는 그들은 예술과 삶 사이의 분열적 상황에 누구보다 민감하다.

 

 

 

 

 

 

 

 

 

 

 

 

 

 

 

 

예술과 삶 사이의 분열은 그들을 괴롭힌다. 소설가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이러한 예술적 욕구와 일상적 욕구 사이에서 방황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잘 묘파한 바 있다. 소설가 구보는 '황금광 시대'를 추종하여 경제적 귀족이 된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의 속물성을 경멸하며 소설가로서의 진정한 길을 찾고자 한다. 마르쿠제는 예술가는 '이상과 현실, 예술과 생활, 주관과 객관이 험악하게 대립된 채 분리되어 있는 문화의 저주를 경험한다'고 하고 그는 고독하게 현실적 가치와 맞선다고 하였다.

 

앨버트로스란 새가 있다. 신천옹이라고 하는 그 새는 가장 멀리, 가장 높이 나는 새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끝없이 하늘을 날 뿐 결코 땅에 내려앉는 법이 없다고 한다. 땅에 닿는 순간 그 새는 잘 걷지도 못해 사람들이나 짐승의 먹이가 된다는 것이다. 무릇 참 예술가는 바로 그 새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 예술적 가치를 위하여 끝없이 비상할 때 살아있을 수 있으며 일상적 가치에 안주할 때 그는 죽는다.

 

사이비 예술가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사이비 예술가는 세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예술을 자신을 치장하는 교양쯤으로 파악하는 부류가 그 하나이고, 예술적 성취보다는 예술가들의 낭만적 행태만을 흉내 내며 예술가인 체하는 부류가 그 두 번째이고,세 번째는 절대로 일상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또한 예술적 성취도 없이 예술적 명성을 얻고자 하는 부류이다. 이 중 세 번째가 가장 질이 나쁘다. 그들은 예술가란 이름으로 권력과 명성을 탐하면서 가장 비예술적인 행태를 보이는 축들이다. 이들의 특성은 상(賞)을 좋아하고 금전을 밝힌다. 그들은 한 번도 날아보지 못했으면서 가장 멀리 나는 체하는 가짜 앨버트로스이며 사기꾼이자 정치꾼이다. 문제는 그들 스스로가 자신이 사이비인 줄을 모를 만큼 뻔뻔하다는 것이다.

 

예술이란 '눈물 속에 피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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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 교감 완역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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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성인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Scene #1  우리는 진짜 이순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나라의 정세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이슬과 같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동량(棟梁) 같은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으니, 종묘사직이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마음이 어지러워서 하루 내내 뒤척거렸다.” (을미년 1595년 7월 1일, 256쪽) 

 

이 절체절명의 위기가 주는 무게, 그것도 눈앞에서 선연하게 꿈틀거리는 위기가 미친 듯이 짓누르는 무게를 홀로 가늠한다. 눈앞이 캄캄하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 무게를 칼 한 자루에 의지해 온몸으로 맞서 싸운 사람을 우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 한국인의 머릿속에 영웅으로 깊게 각인된 그 사람, 이순신.

 

그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고결하고 기품 있는 인품, 완벽한 전술전략과 통쾌한 승리, 나라에 대한 맹목적 충성, 그리고 비장미 흐르는 최후였을 뿐이다. 거기에 개인으로서의 ‘이순신’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 우리가 감동 받은 건 그 부분을 바늘로 찔렀기 때문이다. 1인칭 관점의 개인으로서의 ‘이순신’을 보여주어, 그의 생각과 마음을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참기 힘든 노여움으로 동감 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훈이 밝혔듯, 그건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이순신으로 픽션일 뿐이다.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이 하나의 상징적인 대상으로만 기억되길 원치 않는다. 피가 흐르고 눈물을 흘리는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서글프다. 그를 한 여인의 남편 혹은 자식으로서,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외롭게 고군분투해야 했던 장군으로서 보고 겪고 느껴야 했던 인간적 면모를 이제 찾아줘야 한다. 현란한 색상으로 장식된 포장지를 벗기고,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을 알아주는 일, 이순신이 원하는 건 바로 그것일 것이다.

 

 

 

 Scene #2  "홀로 배 뜸 밑에 앉았으니 마음이 몹시 번거롭다" 

 

『난중일기』는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을 알 수 있는 첫걸음이다. 이순신이 직접 쓴 그의 일기를 보면 땀 잘 흘리고, 자주 아프고, 고민도 많고,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도 잘하고, “죽고 싶다”고 되뇌며 수시로 눈물을 흘리는 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가을 기운 바다에 드니 나그네 회포가 산란해지고

홀로 배 뜸 밑에 앉았으니 마음이 몹시 번거롭다

달빛이 뱃전에 들자 정신이 맑아져

잠도 이루지 못했거늘 벌써 닭이 울었구나

 

(계사년 1593년 7월 15일, 130쪽)

 

이순신 역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추위가 닥치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자연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한 평범한 인간이다. 너무 추우면 밖을 나다니지 못하고, 고민이 있을 땐 잠을 설치면서 자식과 늙은 어머니를 걱정하던 평범한 중년남성이었다.

 

임진왜란은 칼에 베이고 창에 찔리고 총에 맞아 죽고, 불태워져 죽고, 굶어 죽고, 죽고, 죽고.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기까지 하는 전쟁이었다. 전쟁의 와중에 사람은 없다. 오로지 적군과 아군만 실재한다. 대체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경계란 무엇인가. 이순신 또한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고뇌했다.

 

또한, 이순신은 우리 생각만큼 인자하고 자애로운 사람도 아니었다. 비록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걱정했지만, 그는 부대를 이끄는 최고 수장으로서 매우 엄격한 성품의 사람이었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에게 곤장을 맞은 자가 부지기수였고, 목을 베인 자도 무수히 많았다. 이순신의 판단 실수로 백성의 목을 베기도 했다. 그는 부하가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처단했고, 엄격한 군율 적용을 위해 부하의 잘못을 상부에 빠짐없이 보고했다. 이는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보통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일인데도 이순신은 그런 부류와 달랐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군대 기강 확립과 전투력 확보였을 뿐이다.

 

다만 당시의 다른 관리들보다 조금 나은 점이 있다면 이순신은 정직했고 자기의 임무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 사람이라는 것 정도다. 다른 관리들이 전쟁 중에도 타락한 정신을 버리지 못하고 재산을 지키거나 권력을 잡는 데 목숨을 건 것과 달리, 이순신은 왜적을 물리치는 데 목숨을 건 것이다.

 

 

 

 Scene #3  피와 살이 있는 한 인간의 일기  

 

이순신은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남겼다. 12척의 초라한 배로 130여 척의 일본 함대를 물리친 장군이다. 자칫하면 더 치욕스러울 뻔했던 우리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만한 것으로 만든 민족의 영웅이다. 그런데 난중일기를 읽고 나면 안타까움이 커진다.

 

감옥에서 풀려난 날 쓴 일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쓴 일기, 아들이 죽은 날 쓴 일기에 드러난 그의 애절한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이순신에 대한 우리의 편견 때문일까? 이순신을 수식하는 영웅다움이 커지는 만큼 이순신을 올바로 보는 정확한 시각은 가려지는 것 같다.

 

이순신이 12척의 배만으로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명장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어쩔 수 없는 물리적 상황에 맞서 싸우며 평범한 인간에서 비범한 영웅으로 스스로 거듭나게 했다는 점에 있다. 당연히 여기에는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좌절과 고뇌,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이 맞서 싸워야 했던 내부의 적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한탄이 있다. 어머니와 아들의 죽음에 짓누르는 슬픔을 이겨내야 했던 한 인간의 번민도 드러나 있다. 또 두려움에 떠는 참모들을 향해 호통을 쳐야 했던 막막한 사연도 있다. 내부의 적에게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 진짜 이순신이 그의 일기 속에 있다.

 

전쟁에서 단 한 차례도 패배도 기록하지 않은 이순신. 그 기록에는 이순신의 무수한 피와 땀과 눈물이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이순신의 승리에 통쾌함과 자부심만 느꼈을 뿐, 그 승리에 이르기까지 그가 뚫고 나가야 했던 과정은 무관심해 왔다.

 

이제 이순신을 진정으로 알아주자. 딱딱하고 무감각한 신격화가 아니라 피와 살이 있는 인간으로 그의 일기를 읽어보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바다 위에서 긴장으로 핏발 선 눈빛으로 외롭게 서 있는 이순신. 그도 병에 시달리고 실수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 이런 평가들은 불경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러한 인간 이순신을 앎으로써 이순신을 더 존경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인간’ 이순신 장군, 그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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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읽어주는 여자 -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 찾는 법
민지혜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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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왜 레드카펫에서는 늘 패션테러리스트가 탄생할까

 

매 시즌이 바뀔 때마다 잡지, 인터넷 곳곳에서 ‘이번 시즌 유행아이템’에 대한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이중 어떤 것이 진짜 유행할 지 또 어떻게 스타일링해야 할지 간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우리들이 늘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연예인 스타일이다. 연예인이 입으면 순식간에 유행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옷을 입든 전문 스타일리스트들이 연출해주기 때문에 확실히 눈여겨볼만한 패션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연예인 패션을 쉽게 엿볼 수 있는 곳은 스타들의 결혼식이다. 하객패션이라고 해서 평범하게 입기보다는 포인트를 줘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영화제나 시상제의 레드카펫 위에서도 연예인들은 패션에 신경을 쓴다. 남자 연예인은 말끔하게 차려진 수트룩, 여자 연예인은 몸매를 부각시켜주는 화려하면서도 섹시한 드레스룩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은 선보인다.

 

그러나 연예인들에게는 이러한 공식석상이 부담스럽다. 평소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스타들도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패션으로 이른바 ‘굴욕사진’을 남겨 대중들에게 회자되기 때문이다. 어떤 배우는 멋진 모습으로 시선을 모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패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레드카펫 위의 패션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코디가 안티’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가설이 퍼지기도 한다. 연예인의 옷을 담당하는 스타일리스트가 악의를 품지 않고서야 누가 봐도 이상한 옷을 입히지는 않았을 거라는 상식에서 나온 주장이다.

 

물론 각자의 개성을 ‘패션테러리스트’ 같은 단어를 쓰며 야유를 보낼 필요는 없다. 큰 영화제의 레드카펫에서 시선을 모으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왜 유독 레드카펫에서는 자기 자신 외에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패션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을까. 큰 무대와 환호성에 익숙한 스타들도 이런 모습을 종종 선보이는 것을 떠올려보면. 레드카펫의 중압감은 생각 이상으로 큰 것일지도 모르겠다.

 

 

 

 Scene #2  명품만 치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패셔니스타? 

 

연예인 패션 못지않게 대중이 제일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로 명품이다. 이제는 옷만 잘 입어서 패셔니스타라는 명함을 당당히 내밀 수 없는 세상이다. 몸에 걸치는 시계, 가방 심지어 안경까지도 스타일링 필수 아이템이다. 옷은 잘 입었는데 가방이나 안경 하나라도 ‘옥에 티’가 된다면 한순간 패션테러리스트가 된다. 그래서 연예인이 들고 있거나 몸에 걸치는 명품 아이템이 TV에 노출되는 순간, 다음 날 완판(완전판매의 줄임말, 매진)이 된다. 이뿐만 아니라 옷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저렴한 것부터 일반인도 구경할 수 없는 값비싼 것까지 유명 연예인이 입었다면 ‘명품’이 된다.

 

국내 연예인이 가장 많이 구매하고 애용하는 고가 패션 브랜드라면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등이 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품 사랑이 유별나서 진품과 유사한 ‘짝퉁’ 유통이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짝퉁’의 사전적 의미는 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일반적으로는 고급 브랜드의 명품을 본떠 만든 위조상품을 일컫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명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짝퉁 상품을 구입해 ‘명품’처럼 들고 다닌다.

 

짝퉁은 신제품 개발에 대한 창의성 등 기업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를 깨뜨린다. 일부 상인은 단기간에 이익을 볼지 모르지만 이를 방치하면 국가신인도 추락, 국제통상마찰 등 대외 문제로까지 번지게 된다. 짝퉁 판매가 얼마나 심했으면 ‘짝퉁공화국’, ‘짝퉁코리아’라는 오명이 따라다닌다.

 

이렇듯 짝퉁을 사면서까지 우리는 패션에 목숨을 건다. 사람들의 시선을 고정하게끔 만드는 값비싼 명품으로 치장하면 TV에서 나오는 연예인처럼 패셔니스타가 되고 싶어 한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옷을 잘 입으면 자신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준다. 명품이 곧 스타일인 것이다.

 

그러나 수년 간 패션 산업의 이곳저곳을 종횡무진 가까이서 취재를 해온 저자는 ‘명품=패셔니스타’라는 공식을 반박한다. 그녀뿐만 아니라 이 책에 수록된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진짜 패셔니스타는 유행을 쫓아 명품으로만 치장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명확히 알고 그걸 자연스럽게 소화시킬 줄 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럭셔리 브랜드 회사 소속 관계자는 자신의 회사 브랜드만 선호할까. 의외로 그렇지 않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으로 회사 브랜드만 선호한다거나 정말 명품만 선호하는 명품족도 있겠지만, 어떤 이는 동대문 시장에 가면 흔히 구할 수 있는 만 원 이하의 저렴한 옷과 장신구로 스타일링하기도 한다. 언뜻 보기에는 명품 같지만 알고 보면 우리도 구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을 애용한다. 그들이야말로 저자와 디자이너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진짜 패셔니스타다. 럭셔리 옷이든 동대문 싸구려 옷이든 내 스타일에 맞게 연출할 줄 안다. 그렇다고 어색하지도 않으면서 톡톡 튀지 않는다. 신기하게 명품을 치장하지 않았는데도 창의적이고 멋진 패션 디자인이 된다.

 

 

 

 Scene #3  '패션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 짧은 말 한 마디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축약하고 있다.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자신감’이란 내가 뚜렷하게 선호하는 패션만 줄곧 고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찾기 위해서 여러 번 옷을 입고, 장신구를 착용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아무리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을 가진 인간이라도 단번에 그걸 찾기란 힘들다. 이리저리 입어  보고 사람들 앞에 선보여야 한다.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패션테러리스트’라고 비아냥거려도 크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동경하는 유명 패셔니스타들도 나름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

 

 제 아무리 능력 좋은 타율 높은 4번 타자도 가끔 삼진이나 뜬공으로 물러난다. 패셔니스타들이 가끔 패션테러리스트 소리를 듣는 이유에도 이러한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나름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다가 가끔 시대에 맞지 않거나 혹은 시대에 앞서간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이들은 그러한 대중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금도 어떤 패션을 연출할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탁월한 패션테러리스트’가 되라고 조언한다. 이들은 형편에 맞게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과 장신구로 스타일링한다. 여기서 소개되는 가장 대표적인 ‘탁월한 패션테러리스트’는 놀랍게도 연예인 패셔니스타로 둘째가라도 서러운 빅뱅의 지드래곤에게 패션을 당당하게 지적질하는 정형돈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저 남들보다 튀고 웃기는 여자 방송인으로만 보이는 김나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을 ‘패션테러리스트’라고 지적해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항상 패션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감이 넘친다. 방송에서는 촌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자신을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개성을 부각시킨다. 남의 패션 스타일만 따라하는 우리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프라다’의 패션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말처럼 패션은 ‘자기표현이자 선택’이다. 연예인이 입었거나 선호한 명품을 추종한다면 절대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지 못한다. 나에게 어울리는 패션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패션에 관한 특별한 팁을 알기 위해서 이 책을 선택한다면 차라리 패션 전문 잡지를 읽을 것을 권한다. 멋진 패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한 비법은 소개하지 않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패션에 대한 인식의 고정관념을 바꿔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패션에 자신 없는 독자에게는 일말의 희망을 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짝퉁도 스타일링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명품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힘든데다 짝퉁에 대한 문제점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충격적이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좀 씁쓸했던 내용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남성들을 위한 팁이다.

 

명품을 선호하는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명품만 사는 것이 아니라 ‘특A급’ 짝퉁까지 사주는 남자 이야기다. 너무나도 고급스러운 명품을 입고 치장하다가 잘못하면 흠집이 날 수 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명품과 정말 비슷한 ‘특A급’ 짝퉁을 대신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남자들이 소위 여자들이 말하는 센스 있고, 여자들에게 사랑 받을 줄 안다. 명품만 사주거나 혹은 값이 저렴하면서 그래도 품질 좋은 브랜드의 제품을 사주는 남자들의 입지가 곤란스러워지게 됐다. 요즘 남자들,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인데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패션뿐만 아니라 이성의 패션 취향도 신경 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좋아하는 이성이 멋진 패셔니스타가 되도록 ‘1+1’ 구매를 해야 되다니. 이 방법이 여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팁이 될 수 있어도 과연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한 팁을 알려주는 이 책에 소개될 필요가 있을까. 도리어 짝퉁을 패션의 일부로서 긍정적으로 보는 논리는 짝퉁 판매의 문제점을 간과할 우려가 있다. 아무튼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패셔니스타가 되는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한 왕도(王道)는 없다. 패셔니스타가 되기 보다는 우선 패션테러리스트 소리를 안 듣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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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들어주는 아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사계절 저학년문고 26
고정욱 지음, 백남원 그림 / 사계절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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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1년 전에 ‘느낌표 선정도서’라는 광고 문구를 본 것도 있지만 초등학생 시절 고정욱 작가의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을 읽은 이후로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나 동화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사람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한편, 흔히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거나 낯선 것들에는 지독한 적대감을 드리운다. ‘다름’은 어느새 쉽게 ‘옳지 않음’으로 바뀌어 공동체 안에서 공존하지 못하고 배척당한다.

 

책 표지에 파스텔톤으로 그려진 그림을 통해서 『가방 들어주는 아이』의 내용을 선명히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주 독자가 초등학생이 되리라라는 걸 감안했는지 책 표지 왼쪽엔 커다랗게 양쪽 어깨에 가방을 맨 아이가 못 쓰는 양발대신 양손에 목발을 의지한 채 힘겹게 뒤따라오는 장애인 친구를 약간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실쭉하게 쳐다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2학년이 되는 새 학기 첫날 주인공 문석우는 엄마와 함께 목발을 짚고 교실에 들어온 민영택과 한 반이 되고 첫날부터 다리가 불편한 영택이와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일 년 동안 영택이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임무를 맡게 된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임무에 조금 얼떨떨하면서도 석우는 선생님의 명령이기에 어쩔 수 없이 영택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게 되고 그러한 석우에게 미안해하는 영택과 어색한 첫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원치 않지만 매일 등하굣길을 같이 하는 친구가 된다.

 

아이들에게 '찔뚝이'라고 놀림 받는 영택이와 함께 다니게 되면서 찔뚝이 친구라는 말이 듣기 싫고 때로는 하굣길에 축구라도 하며 놀고 싶어도 자신이 맡은 임무 때문에 마음놓고 놀 수도 없게 된 석우는 가방 들어주는 일이 귀찮게 느껴지다가도 얼마 안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도와주는 착한 아이라는 칭찬도 받게 되고 청소를 빠지는 '특권'도 누리면서 점차 친구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일에 적응해 가기 시작한다.

 

또한 가정 형편이 전보다 어려워져 학용품 살 돈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 석우에게 학용품 살 돈을 주시기도 하고 초콜릿 같은 간식도 주시는 영택의 어머니의 배려로 차츰 가방 들어주는 일의 '장점'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석우가 장애인 친구 영택이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선물은 진정으로 장애인 친구를 이해하게 되는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영택이의 장애에 대해 툭툭 내던지는 사람들의 빈정거림에 대해 대신 분노하기도 하고 반 아이를 거의 다 생일잔치에 초대해도 왠지 장애인이라는 '떨떠름함'때문에 생일잔치에 오지 않는 반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을 공유한다.

 

그리고 일 년이 흐르고 3학년이 된 첫 날 석우는 지난 일 년 동안 몸이 불편한 친구를 위해 가방을 들어준 공로로 모범상을 받게 되지만 석우는 차마 그 상을 받을 수가 없다. 바로 모범상을 받게 되는 날 아침 등굣길에 다른 반이 된 영택이의 가방을 들어주려다 주위 아이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라는 수군거림으로 인해 슬그머니 영택이네 집 앞을 지나쳤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장애인을 위해 '가방 들어주는 아이'같은 착한 아이가 많아야 한다는 교훈을 일방적으로 심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고통 못지않게 1년 동안 장애인을 위해 봉사했으면서도 가끔은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장애인을 모른 척 하고 싶어질 때도 있는 주변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다루었다는 데 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움과 바람이 있다면 후속작으로서는 장애인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겪어나가는 장애인과 주변인의 에피소드를 담은 내용이 아니라 장애인으로 인해 세상이 더욱 발전하고 변화해가는, 장애인의 의지가 주체가 된 작품을 써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애인 면전에서도 장애인에 대해 험한 말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저급했던 예전에 비해 얼마 전부터는 장애인이라는 말 대신 장애우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운동도 일 정도로 우리의 장애인문화는 성숙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영택이를 '찔뚝이'라고 놀리는 영택이의 반 친구들처럼 우리의 인식 속에는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배려가 정립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한 나라가 선진국인지를 알려면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에게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알아보라는 말도 있다.

 

부디 이 소설이 더욱 널리 읽혀진다면 우리나라엔 장애인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가방 들어주는 아이들'도 많아질 것이고 우리나라가 장애인에 대해 배려하는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린 친구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를 읽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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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평화론 (외) 범우문고 269
안중근 외 지음 / 범우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Scene #1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님을 주장하는 바이다" 

 

올해도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부활을 노리는 일본 우익의 망령은 그칠 줄을 모른다. 지난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4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쾌거였다. 최근 일본의 우익교과서 문제와 독도 문제로 한일 간의 불신의 골이 갈수록 깊어가는 시점에서 안 의사의 거룩한 순국정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아울러 시대를 훨씬 앞서 일본의 군국주의가 동양평화의 가장 큰 위협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경고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안 의사의 의거는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었다. 그의 거사 목적은 보다 크고 넓은 동양평화와 세계평화의 구현에 있었다. 그는 뒷날 재판정에서도 이렇게 당당히 진술했다.

 

한.일 두 나라의 친선을 저해하고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힌 장본인이 바로 이토이므로 나는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그를 제거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희망은 일본 천황의 취지와 같이 동양 평화를 이루고 5대주에도 모범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잘못하여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님을 주장하는 바이다. (‘최후 공판기록①’ 중에서, 47~48쪽)

 

이토가 한일 간의 진정한 우의뿐 아니라 나아가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처단했다는 것이다. 안 의사가 이미 백여 년 전에 이렇게 분명한 교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안 의사의 의거 이후 조선을 강점하고 중국을 침략하고 마침내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망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시간이 흘렀는데 또다시 군국주의, 제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려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한 우익교과서 채택 흉계와 독도 영유권 억지주장이 이를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Scene #2  동양평화론은 지금도 유효하다

 

세상에 글도 많지만,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 같은 글이 있을까.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사살 후 사형선고를 받고, 항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집필시간을 얻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일주일 만에 사형을 당했다. 아쉽게도 ‘동양평화론’은 서문과 전감(前鑑) 두 부분만 쓰인 채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이 글은 단순한 민족주의론이나 타국의 독립을 무시하는 일본적 아시아주의론을 넘어, 각국의 독립과 주체적 참여를 전제로 한 국제평화주의의 틀을 세운 것이다.

 

안 의사가 여순(旅順)을 중립화하여 동북아 평화의 거점으로 삼자고 한 것은, 유럽의 철과 석탄의 산지 루르. 자르 지역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루르. 자르 지역에 대한 장악 경쟁이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으나, 2차대전 후 유럽철강석탄동맹으로 공동관리한 결과 유럽경제공동체(EEC)로,유럽연합(EU)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20세기 초 여순은 러시아의 해양 진출기지이면서, 일본의 대륙침략의 거점이기도 하며, 당시 구 만주지역 전체의 향방과도 맞물려 여순 반도의 소유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중국 사이에서 동북아 분쟁의 도화선이었다. 이 지역을 중립화하고 공동관리함으로써동북아의 평화와 연대의 길을 열자는 게 안 의사의 주장이었다. 지금 이러한 여순에 해당하는 지역이 한반도인 셈이고, 한반도가 동북아평화와 균형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안중근의 국제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는 동북아 각국의 개별적 노력과는 별도로 동북아 공동의 국제적 접근을 중시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공동안보체제 혹은 국제평화군의 유지와 연결시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안 의사가 일찍이 주창한 동북아개발은행 구상도 매우 주목된다. 북한 개발은 동북아 전체의 개발구상과 연계하는 것이 좋고, 그 경우 동북아개발은행을 통해 각국 정부자금과 함께 세계의 유휴자본을 끌어들여 개발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개발수요자금을 국제은행 등에서 지속적으로 조달할 수 없는 일이고, 정부 역시 특정 재벌그룹을 통한 방식 같은 것은 더 이상 쓸 수 없다. 미국정부 또한 직접지원 방식보다 개발은행을 통한 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동양평화회의는 각국 정부도 참여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각 국가와 인민을 구별해 시민참여형 공동평화회의를 상정한다. 고대문화의 공유나 인종주의적 아시아론이 아니라 새로 등장하는 인민 혹은 시민세력이 주도하는 동양평화회의다. 한·중·일 시민 수억 명이 가입하고 1인당 회비 1원씩 내면 수억 원을 모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구미 제국주의와 시민을 구별해 구미 시민들과 제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동양평화의 주체를 일본으로 보고, 일왕을 신뢰하는 등 사상적 한계점 역시 드러낸다. 사형집행을 앞둔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 시간동안 집필했기 때문에 현실성 떨어지는 공상 정도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에 대한 지론은 현 시점에서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오늘날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로 말미암아 ‘중국의 아시아’ 혹은 ‘일본의 아시아’가 될 위험성이 크다. 그것을 안중근이 구상한 ‘아시아의 중국’, ‘아시아의 일본’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를 연결시키는 아시아보다 세계 시민을 연결시키는 ‘시민적 아시아’, 양자주의적 접근의 아시아가 아니라 다자주의적 접근의 아시아를 구상한 안중근의 탁견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Scene #3   동양의 평화,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

 

안 의사는 사형을 언도받고서도 항소하지 않았다. 이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의지가 있었다.

 

“내가 불공평한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도 공소권을 포기한 것은 복죄(복죄)했다고 생각지 마시고. 나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을 뿐이오. 상급법관 역시 일본인이니 그 결과가 뻔한 것 아니겠소.” (7쪽)

 

선각적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인간적 배경, 암흑의 시대 한 가운데서도 잃지 않은 고결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런데 매우 통탄스럽고 안타까운 사실은 아직까지 그의 무덤과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좋은 글을 널리 읽혀지지 않고 있다. 과연 안 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이 미완의 생각을 기억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가 안 의사를 동양평화론의 창시자보다는 이토를 죽인 위인으로만 기억한다면 선열의 순국 정신을 제대로 되새긴다고 볼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우리는 참으로 못난 후손이다. 아직도 극일은커녕 일본의 거듭되는 망언망동에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안중근 의사께 면목이 없다. 안중근 의사 같은 선열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처럼 피눈물을 흘리고 목숨을 바쳐 싸웠건만 그동안 우리 못난 후손들은 무엇을 했던가. 안중근 의사의 시신은커녕 무덤도 찾지 못하고 있으며 그저 남북으로 갈라져 헛된 싸움질만 되풀이하며 통일도 못 이루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역사를 낳은 지정학은 바뀔 수 없다. 오늘의 한국이 대한제국일 수는 없으나, 오늘날 한반도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방안은 구한말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조국의 분단을 낳았으며, 분단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져 그 후유증으로 한반도 재통합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불가에 문자반야(文字般若, 만물의 실상을 깨닫는 지혜)란 말이 있으나, 안 의사의 글은 문자천고(文字天鼓, 글이 천둥소리라는 뜻)라 할만하다. 그러나 이 글은 영원한 미완성이며, 우리 후인들이 두고두고 완성해야 할 영원한 정신이다. 안 의사가 오늘을 사는 세대에게 전하기를 원하는 무언의 교훈은 한민족이 하나 되어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특정 패권국가가 좌지우지하는 동양평화가 아닌 한중일이 협조하여 공동선의 체계를 이루어 가는 새로운 ‘동양평화’를 창조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양평화론의 근본 취지는 강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주권국가가 상호 협조하여 공존 공영하는 동북아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로 시작하는 ‘동양평화론’은 이토가 말하는 서구의 방식을 흉내 낸 국권침탈을 통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이토는 평화의 약탈자였다. 그의 저격은 테러가 아닌, 지금도 살아있는 ‘평화의 메시지’였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목숨 바쳐 염원한 동양평화는 100년 전 어느 독립운동가의 이념만이 아닌,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실현해야 할 과제다. 옥중에서 못다 이룬 평화주의자로서 안 의사의 생각의 숨결을 살려야할 때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못난 나라, 역사의 뼈저린 교훈을 망각하는 정신이 썩은 겨레에 무슨 밝은 미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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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3-29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웃 일본이 망언망동을 하지 않더라도,
한국사람은 아직도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
이런 '일본말'을 '전문용어'라고 여기곤 하기도 하고,
교과서에도 신문방송에도... '일본 말투'는 널리 나타나요.

말을 슬기롭게 깨우치지 못하니
역사도 제대로 못 보지 않느냐 싶습니다.
굳이 프랑스나 덴마크나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나라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들 나라는 '제 나라 말'을 지키면서 '제 나라 역사'를 함께 지켰으니까요...

cyrus 2014-03-2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함께살기님. 맞습니다. 여전히 일제 시대부터 생긴 잘못된 일본말이 우리말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죠. 선진국의 역사 인식을 부러워만 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지켜나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인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