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 교감 완역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나는 성인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Scene #1  우리는 진짜 이순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나라의 정세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이슬과 같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동량(棟梁) 같은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으니, 종묘사직이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마음이 어지러워서 하루 내내 뒤척거렸다.” (을미년 1595년 7월 1일, 256쪽) 

 

이 절체절명의 위기가 주는 무게, 그것도 눈앞에서 선연하게 꿈틀거리는 위기가 미친 듯이 짓누르는 무게를 홀로 가늠한다. 눈앞이 캄캄하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 무게를 칼 한 자루에 의지해 온몸으로 맞서 싸운 사람을 우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 한국인의 머릿속에 영웅으로 깊게 각인된 그 사람, 이순신.

 

그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고결하고 기품 있는 인품, 완벽한 전술전략과 통쾌한 승리, 나라에 대한 맹목적 충성, 그리고 비장미 흐르는 최후였을 뿐이다. 거기에 개인으로서의 ‘이순신’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 우리가 감동 받은 건 그 부분을 바늘로 찔렀기 때문이다. 1인칭 관점의 개인으로서의 ‘이순신’을 보여주어, 그의 생각과 마음을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참기 힘든 노여움으로 동감 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훈이 밝혔듯, 그건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이순신으로 픽션일 뿐이다.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이 하나의 상징적인 대상으로만 기억되길 원치 않는다. 피가 흐르고 눈물을 흘리는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서글프다. 그를 한 여인의 남편 혹은 자식으로서,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외롭게 고군분투해야 했던 장군으로서 보고 겪고 느껴야 했던 인간적 면모를 이제 찾아줘야 한다. 현란한 색상으로 장식된 포장지를 벗기고,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을 알아주는 일, 이순신이 원하는 건 바로 그것일 것이다.

 

 

 

 Scene #2  "홀로 배 뜸 밑에 앉았으니 마음이 몹시 번거롭다" 

 

『난중일기』는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을 알 수 있는 첫걸음이다. 이순신이 직접 쓴 그의 일기를 보면 땀 잘 흘리고, 자주 아프고, 고민도 많고,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도 잘하고, “죽고 싶다”고 되뇌며 수시로 눈물을 흘리는 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가을 기운 바다에 드니 나그네 회포가 산란해지고

홀로 배 뜸 밑에 앉았으니 마음이 몹시 번거롭다

달빛이 뱃전에 들자 정신이 맑아져

잠도 이루지 못했거늘 벌써 닭이 울었구나

 

(계사년 1593년 7월 15일, 130쪽)

 

이순신 역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추위가 닥치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자연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한 평범한 인간이다. 너무 추우면 밖을 나다니지 못하고, 고민이 있을 땐 잠을 설치면서 자식과 늙은 어머니를 걱정하던 평범한 중년남성이었다.

 

임진왜란은 칼에 베이고 창에 찔리고 총에 맞아 죽고, 불태워져 죽고, 굶어 죽고, 죽고, 죽고.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기까지 하는 전쟁이었다. 전쟁의 와중에 사람은 없다. 오로지 적군과 아군만 실재한다. 대체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경계란 무엇인가. 이순신 또한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고뇌했다.

 

또한, 이순신은 우리 생각만큼 인자하고 자애로운 사람도 아니었다. 비록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걱정했지만, 그는 부대를 이끄는 최고 수장으로서 매우 엄격한 성품의 사람이었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에게 곤장을 맞은 자가 부지기수였고, 목을 베인 자도 무수히 많았다. 이순신의 판단 실수로 백성의 목을 베기도 했다. 그는 부하가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처단했고, 엄격한 군율 적용을 위해 부하의 잘못을 상부에 빠짐없이 보고했다. 이는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보통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일인데도 이순신은 그런 부류와 달랐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군대 기강 확립과 전투력 확보였을 뿐이다.

 

다만 당시의 다른 관리들보다 조금 나은 점이 있다면 이순신은 정직했고 자기의 임무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 사람이라는 것 정도다. 다른 관리들이 전쟁 중에도 타락한 정신을 버리지 못하고 재산을 지키거나 권력을 잡는 데 목숨을 건 것과 달리, 이순신은 왜적을 물리치는 데 목숨을 건 것이다.

 

 

 

 Scene #3  피와 살이 있는 한 인간의 일기  

 

이순신은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남겼다. 12척의 초라한 배로 130여 척의 일본 함대를 물리친 장군이다. 자칫하면 더 치욕스러울 뻔했던 우리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만한 것으로 만든 민족의 영웅이다. 그런데 난중일기를 읽고 나면 안타까움이 커진다.

 

감옥에서 풀려난 날 쓴 일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쓴 일기, 아들이 죽은 날 쓴 일기에 드러난 그의 애절한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이순신에 대한 우리의 편견 때문일까? 이순신을 수식하는 영웅다움이 커지는 만큼 이순신을 올바로 보는 정확한 시각은 가려지는 것 같다.

 

이순신이 12척의 배만으로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명장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어쩔 수 없는 물리적 상황에 맞서 싸우며 평범한 인간에서 비범한 영웅으로 스스로 거듭나게 했다는 점에 있다. 당연히 여기에는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좌절과 고뇌,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이 맞서 싸워야 했던 내부의 적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한탄이 있다. 어머니와 아들의 죽음에 짓누르는 슬픔을 이겨내야 했던 한 인간의 번민도 드러나 있다. 또 두려움에 떠는 참모들을 향해 호통을 쳐야 했던 막막한 사연도 있다. 내부의 적에게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 진짜 이순신이 그의 일기 속에 있다.

 

전쟁에서 단 한 차례도 패배도 기록하지 않은 이순신. 그 기록에는 이순신의 무수한 피와 땀과 눈물이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이순신의 승리에 통쾌함과 자부심만 느꼈을 뿐, 그 승리에 이르기까지 그가 뚫고 나가야 했던 과정은 무관심해 왔다.

 

이제 이순신을 진정으로 알아주자. 딱딱하고 무감각한 신격화가 아니라 피와 살이 있는 인간으로 그의 일기를 읽어보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바다 위에서 긴장으로 핏발 선 눈빛으로 외롭게 서 있는 이순신. 그도 병에 시달리고 실수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 이런 평가들은 불경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러한 인간 이순신을 앎으로써 이순신을 더 존경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인간’ 이순신 장군, 그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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