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평화론 (외) 범우문고 269
안중근 외 지음 / 범우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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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Scene #1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님을 주장하는 바이다" 

 

올해도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부활을 노리는 일본 우익의 망령은 그칠 줄을 모른다. 지난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4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쾌거였다. 최근 일본의 우익교과서 문제와 독도 문제로 한일 간의 불신의 골이 갈수록 깊어가는 시점에서 안 의사의 거룩한 순국정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아울러 시대를 훨씬 앞서 일본의 군국주의가 동양평화의 가장 큰 위협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경고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안 의사의 의거는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었다. 그의 거사 목적은 보다 크고 넓은 동양평화와 세계평화의 구현에 있었다. 그는 뒷날 재판정에서도 이렇게 당당히 진술했다.

 

한.일 두 나라의 친선을 저해하고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힌 장본인이 바로 이토이므로 나는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그를 제거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희망은 일본 천황의 취지와 같이 동양 평화를 이루고 5대주에도 모범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잘못하여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님을 주장하는 바이다. (‘최후 공판기록①’ 중에서, 47~48쪽)

 

이토가 한일 간의 진정한 우의뿐 아니라 나아가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처단했다는 것이다. 안 의사가 이미 백여 년 전에 이렇게 분명한 교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안 의사의 의거 이후 조선을 강점하고 중국을 침략하고 마침내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망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시간이 흘렀는데 또다시 군국주의, 제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려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한 우익교과서 채택 흉계와 독도 영유권 억지주장이 이를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Scene #2  동양평화론은 지금도 유효하다

 

세상에 글도 많지만,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 같은 글이 있을까.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사살 후 사형선고를 받고, 항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집필시간을 얻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일주일 만에 사형을 당했다. 아쉽게도 ‘동양평화론’은 서문과 전감(前鑑) 두 부분만 쓰인 채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이 글은 단순한 민족주의론이나 타국의 독립을 무시하는 일본적 아시아주의론을 넘어, 각국의 독립과 주체적 참여를 전제로 한 국제평화주의의 틀을 세운 것이다.

 

안 의사가 여순(旅順)을 중립화하여 동북아 평화의 거점으로 삼자고 한 것은, 유럽의 철과 석탄의 산지 루르. 자르 지역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루르. 자르 지역에 대한 장악 경쟁이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으나, 2차대전 후 유럽철강석탄동맹으로 공동관리한 결과 유럽경제공동체(EEC)로,유럽연합(EU)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20세기 초 여순은 러시아의 해양 진출기지이면서, 일본의 대륙침략의 거점이기도 하며, 당시 구 만주지역 전체의 향방과도 맞물려 여순 반도의 소유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중국 사이에서 동북아 분쟁의 도화선이었다. 이 지역을 중립화하고 공동관리함으로써동북아의 평화와 연대의 길을 열자는 게 안 의사의 주장이었다. 지금 이러한 여순에 해당하는 지역이 한반도인 셈이고, 한반도가 동북아평화와 균형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안중근의 국제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는 동북아 각국의 개별적 노력과는 별도로 동북아 공동의 국제적 접근을 중시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공동안보체제 혹은 국제평화군의 유지와 연결시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안 의사가 일찍이 주창한 동북아개발은행 구상도 매우 주목된다. 북한 개발은 동북아 전체의 개발구상과 연계하는 것이 좋고, 그 경우 동북아개발은행을 통해 각국 정부자금과 함께 세계의 유휴자본을 끌어들여 개발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개발수요자금을 국제은행 등에서 지속적으로 조달할 수 없는 일이고, 정부 역시 특정 재벌그룹을 통한 방식 같은 것은 더 이상 쓸 수 없다. 미국정부 또한 직접지원 방식보다 개발은행을 통한 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동양평화회의는 각국 정부도 참여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각 국가와 인민을 구별해 시민참여형 공동평화회의를 상정한다. 고대문화의 공유나 인종주의적 아시아론이 아니라 새로 등장하는 인민 혹은 시민세력이 주도하는 동양평화회의다. 한·중·일 시민 수억 명이 가입하고 1인당 회비 1원씩 내면 수억 원을 모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구미 제국주의와 시민을 구별해 구미 시민들과 제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동양평화의 주체를 일본으로 보고, 일왕을 신뢰하는 등 사상적 한계점 역시 드러낸다. 사형집행을 앞둔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 시간동안 집필했기 때문에 현실성 떨어지는 공상 정도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에 대한 지론은 현 시점에서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오늘날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로 말미암아 ‘중국의 아시아’ 혹은 ‘일본의 아시아’가 될 위험성이 크다. 그것을 안중근이 구상한 ‘아시아의 중국’, ‘아시아의 일본’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를 연결시키는 아시아보다 세계 시민을 연결시키는 ‘시민적 아시아’, 양자주의적 접근의 아시아가 아니라 다자주의적 접근의 아시아를 구상한 안중근의 탁견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Scene #3   동양의 평화,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

 

안 의사는 사형을 언도받고서도 항소하지 않았다. 이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의지가 있었다.

 

“내가 불공평한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도 공소권을 포기한 것은 복죄(복죄)했다고 생각지 마시고. 나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을 뿐이오. 상급법관 역시 일본인이니 그 결과가 뻔한 것 아니겠소.” (7쪽)

 

선각적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인간적 배경, 암흑의 시대 한 가운데서도 잃지 않은 고결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런데 매우 통탄스럽고 안타까운 사실은 아직까지 그의 무덤과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좋은 글을 널리 읽혀지지 않고 있다. 과연 안 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이 미완의 생각을 기억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가 안 의사를 동양평화론의 창시자보다는 이토를 죽인 위인으로만 기억한다면 선열의 순국 정신을 제대로 되새긴다고 볼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우리는 참으로 못난 후손이다. 아직도 극일은커녕 일본의 거듭되는 망언망동에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안중근 의사께 면목이 없다. 안중근 의사 같은 선열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처럼 피눈물을 흘리고 목숨을 바쳐 싸웠건만 그동안 우리 못난 후손들은 무엇을 했던가. 안중근 의사의 시신은커녕 무덤도 찾지 못하고 있으며 그저 남북으로 갈라져 헛된 싸움질만 되풀이하며 통일도 못 이루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역사를 낳은 지정학은 바뀔 수 없다. 오늘의 한국이 대한제국일 수는 없으나, 오늘날 한반도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방안은 구한말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조국의 분단을 낳았으며, 분단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져 그 후유증으로 한반도 재통합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불가에 문자반야(文字般若, 만물의 실상을 깨닫는 지혜)란 말이 있으나, 안 의사의 글은 문자천고(文字天鼓, 글이 천둥소리라는 뜻)라 할만하다. 그러나 이 글은 영원한 미완성이며, 우리 후인들이 두고두고 완성해야 할 영원한 정신이다. 안 의사가 오늘을 사는 세대에게 전하기를 원하는 무언의 교훈은 한민족이 하나 되어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특정 패권국가가 좌지우지하는 동양평화가 아닌 한중일이 협조하여 공동선의 체계를 이루어 가는 새로운 ‘동양평화’를 창조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양평화론의 근본 취지는 강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주권국가가 상호 협조하여 공존 공영하는 동북아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로 시작하는 ‘동양평화론’은 이토가 말하는 서구의 방식을 흉내 낸 국권침탈을 통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이토는 평화의 약탈자였다. 그의 저격은 테러가 아닌, 지금도 살아있는 ‘평화의 메시지’였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목숨 바쳐 염원한 동양평화는 100년 전 어느 독립운동가의 이념만이 아닌,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실현해야 할 과제다. 옥중에서 못다 이룬 평화주의자로서 안 의사의 생각의 숨결을 살려야할 때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못난 나라, 역사의 뼈저린 교훈을 망각하는 정신이 썩은 겨레에 무슨 밝은 미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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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3-29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웃 일본이 망언망동을 하지 않더라도,
한국사람은 아직도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
이런 '일본말'을 '전문용어'라고 여기곤 하기도 하고,
교과서에도 신문방송에도... '일본 말투'는 널리 나타나요.

말을 슬기롭게 깨우치지 못하니
역사도 제대로 못 보지 않느냐 싶습니다.
굳이 프랑스나 덴마크나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나라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들 나라는 '제 나라 말'을 지키면서 '제 나라 역사'를 함께 지켰으니까요...

cyrus 2014-03-2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함께살기님. 맞습니다. 여전히 일제 시대부터 생긴 잘못된 일본말이 우리말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죠. 선진국의 역사 인식을 부러워만 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지켜나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인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