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신성한 공간이다. 거기엔 가장 강력한 정화의 기능을 가진 물과 불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가장 깨끗한 것, 즉 음식을 만들어 낸다. 그 음식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또한 그 아궁이의 열기는 집을 덥혀 살린다. 식구들과 집을 살리는 공간, 그래서 부엌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생명을 키우고 낳는 공간이다. 자고로 부엌의 신이자 불과 물의 신인 조왕신을 떠받드는 풍습이 생겨난 것도 부엌이 가지는 그런 현상학적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김소진의 <부엌>에서 주인공 '나'는 부엌에서 태어난다. 새로 이사 간 집에서는 아이를 방에서 낳으면 안 된다는, 동네 할머니들의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 이러한 소설적 설정은 절묘한 데가 있다. 물과 불로 정화되고 생명력으로 충만한 부엌이란 공간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경우 부엌은 통과제의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하나의 생명이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부터 이 세상으로 건너오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제의적 성격은 부엌의 신성성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부엌은 단순하게 주인공이 태어나는 공간으로만 역할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학생이 된 '나'에게 전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부엌에 딸린 다락방의 옹이 구멍을 통해 나는 부엌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어른들의 세계를 엿본다. 거기에는 목욕하는 누나의 부끄러운 나신이 내려다보이고, 늘상 마누라를 세끼 밥 먹듯 두들겨 패는 털보와 언제나 허벅지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는 마누라 필례 사이의, 그 원수 사이처럼 보이는 부부의, 이해할 수 없는 격정적이고도 질펀한 정사가 펼쳐진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식칼로 오리의 목을 쳐서 피를 받는 장면이 의식처럼 행해지기도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접하는 그러한 광경은 아릿하고 숨 막히고 사위스럽다. 어른들이 보여주는 그 비릿한 어둠의 냄새, 비밀한 아름다움, 불가사의한 열정, 일상적인 폭력성을 접하면서 '나'는 혼란스럽고 불쾌하다. 그래서 '나'는 어둑어둑한 부엌방에서 모든 식욕을 잃은 채 더 오래 신열을 앓는다. '나'는 차라리 온몸에 피어나는 열꽃 속에서 성장을 멈추고 싶어 한다. '언제까지나 다락방의 아이이자 부엌의 아이로 남고 싶어'한다.

 

그러나 깨달음은 첫눈처럼 다가온다. 어느 첫눈이 오는 날 '나'는 그 신열을 털고 다락방을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여태껏 숨죽이고 있던 감각들이 일거에 되살아나는 느낌' 때문이다. '나'는 맹렬한 식욕을 느끼며 다락방을 내려와 안방으로 향한다. 통과제의의 고통을 이기고 마침내 어른의 세계로 입성한 것이다.

 

사람마다 제각각의 '부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부엌의 풍경 중에는 우리를 어른의 세계로 훌쩍 데려갔던, 몹시도 강렬하여 낙인처럼 평생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는 매일 부엌방을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매일 다락방을 내려와 어제와는 조금 더 어른스런 세계로 편입해 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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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신파극에 나오는 전형적인 대사처럼 ‘우리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신파극의 대사는 억지 눈물을 강요하지만, 이들이 살고 간 삶의 흔적과 후대에 남긴 유산은 우리에게 종종 살아갈 힘과 희망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우리 안에서 반추되고 끊임없이 다시 태어난다.

 

이들이 하나의 신화처럼 우리에게 되새김당하는 것은 그네들의 보통 사람들과 다른 극적인 삶에서 비롯한다. 청천벽력 같은 불운의 연속에도 꿋꿋이 운명에 맞서며 오히려 ‘희망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어떤 이는 그 존재만으로도 힘든 시기를 살고 있는 동시대 사람에게 큰 힘이 된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살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이는 남은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20대에 모든 것을 보여주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20대에 머물며 살고 있는 제임스 딘, 리버 피닉스 같은 요절한 천재도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 회자된다.

 

오늘이 ‘영원한 문학소녀’ 장영희 교수가 사랑하는 아버지 곁으로 떠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오랜 독자들만 그녀를 기억할까. 잇따른 암 선고와 투병생활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자신의 밝은 에너지를 글과 강의로 전파해왔던 그녀였기에, 생각날 때마다 그녀의 글을 읽어도 존재의 허전함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에 그녀를 만난 것은 시간을 거슬러 한창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었을 때다. 우연히 생활관의 책장에 꽂혀 있는 장영희 교수의 책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였다. 나는 그 때까지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학 에세이였다. 나는 그 책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위대한 개츠비>,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같은 명작들을 새롭게 만났다. 나는 문학에 대해 무지했지만, ‘문학은 우리가 진정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지킨다’는 말이 좋았다. 문득 나는 그녀의 문학보다 그녀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에세이집인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게 되었다.

 

에피소드마다 그녀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성당 옆 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건네는 ‘구심’환을 받고 나눔을 모르는 자신의 이기성을 탓하고, 차마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지 못한 이들에게 글을 통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치부를 드러내는 솔직함, 그리고 반성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그녀가 너무나 순수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찌들고 일그러진 마음을 맑은 물에 헹군 듯,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장애인으로서 취학과 진학 때 마다 괴로움과 설움을 겪어야 했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고통이며 투쟁인 그가 그 고통과 수모를 모두 삭여서 그토록 맑고 밝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면서 위안이 되기도 한다.

 

국내 어느 대학 박사과정에 응시했다가 면접고사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학부 학생도 장애인은 받지 않아요. 박사과정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라는 냉혹한 선언을 듣고, 차분하게 “그런 규정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나와서는 영화 ‘킹콩’을 보러가, 그 거대한 고릴라가 포획되기 전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말할 수 없이 슬픈 눈 때문에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신과 가족들이 겪었던 여러 곡절들을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음기까지 머금으면서. 그래서일까?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어디에 가고 싶었다’라는 문장을 읽자니, 늙은 아버지의 숱 없는 머리를 보는 것 마냥 까닭 없이 서러워진다.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할 만큼 불운했던 일들을 자신의 몸 안에 담고 살아왔지만, 그녀는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희망 메신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암 투병’을 하는 ‘장애인’이라는, 범인(凡人)으로서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늘 소녀처럼 웃으며 강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문화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활발한 삶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녀의 삶 자체가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의 모범이 되었던 셈이다.

 

 

 

 

 

 

 

 

 

 

 

 

 

 

나의 독자들과 삶의 기적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한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프롤로그 중에서, 11쪽)

 

 

그녀가 죽음에 맞서 보여줬던 강력한 희망의 힘은 그대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고, 또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도 오롯이 담겼다.

 

유작에서도 그녀는 세상은 살만하다고 ‘희망’을 담아 전한다. 그렇기에 고인은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책은 지금도 독자에게 진짜 보물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저자가 직접 교정을 본 이 책은 물론이거니와 『내 생애 단 한 번』이나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제목을 단 고인의 책들이 지금 덩달아서 또다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인지도...

 

 

 

 

 

 

 

 

 

 

 

 

 

 

“간혹 아침에 눈을 뜨면 불현듯 의문 하나가 불쑥 고개를 쳐듭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아등바등 무언가를 좇고 있지만 결국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딱히 돈인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명예도 아닙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장영희가 왔다 간 흔적으로 이 세상이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아진다면, I shall not live in vain...” (97쪽)

 

 

그녀는 어느 계절도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고, 매일 소중한 하루라고 말한다. 또 우리 삶의 계절 또한 지금 이 순간의 계절이 가장 아름다우니 지나간 시간에 연연할 것 없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왔다 간 흔적의 시간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잊기 힘들고 그립다. 그래서 ‘절친’ 김점선 화백과 함께 돌아온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가 무척 반갑다. 아마도 두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흐뭇하게 미소 지면서 시화집 전시회를 보고 있을 것이다.

 

 

 

 

 

김점선  「장영희에게」

 

김점선씨가 이 초록빛 풀밭의 행복한 말을 장영희의 말로 지정한 이유는 뭘까? 황우석의 줄기세포 꿈은 멀어져 가버렸지만 금방이라도 뒷다리를 쭉 펴고 벌떡 일어날 듯한 저 빨간 말의 힘을 소망했을까. 아니면 세 평짜리 복잡한 연구실에 갇혀 이런저런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사는 내게 저 넓은 초원의 자유를 선사하고 싶었을까. 아니, 그보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바로 저 표정,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듯한 표정 때문에 이 예쁜 빨간 말이 내 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점선씨 옆에 있으면 늘 그렇게 웃기 때문이다. (205~207쪽)

 

이해인 수녀는 “장영희와 김점선이 하늘나라에서 우리에게 함께 보내는 봄 편지, 희망과 위로의 러브레터”라고 말했다. 희망을 갖고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시화집과 전시회는 분명히 그녀의 바람대로 누군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히고, 이 세상이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생전 그녀가 좋아했던 에밀리 디킨슨의 시 구절처럼 말이다.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기진맥진 지친 울새 한 마리
둥지에 다시 넣어 줄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

 

 

그녀는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정말 마음의 문을 열고 누군가가 자신으로 인해 고통 하나라도 가라앉힐 수 있다면 그게 더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내지는 호기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디킨슨의 시를 좋아했던 그녀는 시인의 고독하지만 정결한 삶, 절대자를 사랑하고 삶과 죽음의 본질을 관통하던 시인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킨슨은 세상과 고립되어 시를 썼지만, 그녀는 문학이 무언지도 모르는 세상의 작은 사람들, 그저 일상조차 버거운 보통 사람들을 위해 문학의 숲으로 이끌어주었다. 더욱이 문학을 위한 문학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위로가 되는 문학, 희망이 되고 힘이 되는 문학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살아갈 기적’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가 그녀의 삶과 글을 기억하는 일이다.

 

 

P.s 당신이 사랑했던 에밀리 디킨슨,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윌리엄 예이츠와 함께, 그리고 문학과 함께, 그렇게 그리워했던 아버지와 함께, 그 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항상 평안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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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자식 더러운 똥오줌도 / 그대 마음 하나도 거리낌 없는데 / 늙으신 부모님 눈물과 침 떨어지면 / 그대는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하네 / 그대의 몸뚱어리 어디에서 나왔는가 / 아버님의 정기와 어머님의 피라네 / 그대여 늙어가는 부모님을 공경하오 / 젊으실 때 그대 위해 살과 뼈가 닳으셨소.” (『명심보감』 ‘팔반가팔수’(八反歌八首) 중 제3절)


 

 

 

 Scene #1  우리는 유태인입니까?

 

유태인은 결혼하면 부모와 한집에 살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편이 나빠서가 아니라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속성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속담에도 “고부가 한집에서 사는 것은 고양이 두 마리를 한 가방 속에 넣어 기르는 것과 같다”는 얘기가 있다. “아담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운아였다. 장모가 없었기 때문이다”는 속담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젊어서는 건강함을, 늙어선 백발을 자랑하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 백발은 자랑거리가 못된다. 이제 자랑할 수가 없다. 많은 어버이는 자식들에게 벌써 천덕꾸러기가 돼 있다. 효(孝)가 미덕이니 하는 말은 박물관에서나 찾아야 할 세상이 다 됐다.

 

어느 결혼정보회사에서 최근 20, 30대 미혼 남녀 회원 천여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여자의 90%, 남자의 40% 이상은 시부모(부모)와 같이 살지 않겠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다. ‘모시고 살겠다’는 여자와 남자는 각각 4%와 10% 이상이었다. 만약 그들의 부모에게 거꾸로 똑같은 질문을 해봤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오늘은 어버이날. 붉은 카네이션 물결로 가득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요란함은 이 나라가 마치 어른들의 천국임을 확인이라도 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땅의 어른과 어버이는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져가고 있다. 그 많은 자식들이 하루 동안의 ‘효도 대열’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Scene #2  효란 무엇입니까?

 

 

 

 

 

 

 

 

 

 

 

 

 

 

 

 

<논어>에서 공자는 대화를 통해 효의 본질을 명료하게 가르쳐주고는 했다. 위정(爲政)편의 이 대화는 짧지만 공자의 성품을 잘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맹무백이라는 사람은 노(魯)나라 대부(大父)의 맏아들이었는데 마음이 착했다. 그가 “효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부모는 오로지 자식의 질병을 근심한다”(父母 唯氣疾之憂)라고 대답했다. 맹무백은 건강이 좋지 않았나 보다. 그렇기에 건강 때문에 혹 부모에게 걱정을 끼칠 우려가 있으므로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효라는 진리를 가르친 것이다.

 

효자라 해도 질병에 걸릴 수가 있다. 부모에게는 자식이 질병에 걸릴까 염려하는 걱정만은 어쩔 수 없이 남겨두되 다른 걱정은 일절 끼쳐서는 안 된다. 혹 기질을 부모의 질병으로 풀이한다면 이 구절은 효행이란 자식이 부모가 병에 걸리지 않기만을 늘 걱정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공자가 살고 있었을 때나 지금이나 부모에게 효를 행할 때 진정 사랑하는 마음 없이 행하는 가식적인 예가 그때도 지금과 같았던 걸까. 위정편에 보면 견마지양(犬馬之養)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의 효라는 것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개나 말 따위도 모두 (서로를) 먹여주고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느냐?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53쪽)

 

부모를 모심에 있어서 집에서 기르는 개나 말처럼 부양하는 정도의 물질적인 것으로 대신하니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요즈음은 맞벌이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니 신혼부부가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도 직접 애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육아원에 맡기거나 장모나 시어머니가 키우는 예가 많다.

 

자기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바르게 가질 수 있겠는가.

 

효(孝)는 늙을 노(老)를 아들 자(子)가 업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이 유교의 도덕 사상의 기본이 되는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우리나라의 도덕과 윤리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어 왔다.

 

 

 

 

 

 

 

 

 

 

 

 

 

 

 

 

<동몽선습>에서 말하기를 어버이는 인자하고, 자식은 효성스러우며, 임금은 의롭고, 신하는 충성스럽고, 남편은 온화하고, 아내는 순하며, 형은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며, 친구는 어짐으로 도와야 사람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어버이에게 효도를 한 후에야 임금에게 충성하고, 동생은 형에게 공손한 후에야 어른에게 공손스러우니 효가 가장 으뜸이라고 했다.

 

오늘날 삼강오륜에 한 가지라도 위배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세상이 삭막하고, 악랄스럽고, 이기적이고, 불효와 폐륜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Scene #3  진짜 탕자는 누구인가? 

 

효는 시대와 종교와 사상을 가리지 않고 시공을 초월한 최고의 윤리규범으로 지켜져 왔다. 서양문명의 바탕이 되는 기독교는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고 있다. 십계명 중 앞에 네 개는 절대자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연관된 것이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인간관계를 규정한 것인데 인간관계의 규범에서 제일 첫 번째를 효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살아계신 부모님을 섬기지 못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찌 섬기겠느냐 하는 것이며 부모님이 살아 계신 동안을 정성껏 받들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공자가 맹무백에게 강조한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되어 있는 ‘탕자의 귀환’에 나오는 아버지가 있다.

 

큰 아들은 신실했고 작은 아들은 제멋대로였다. 하루는 작은 아들이 자기 인생을 살겠다고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당겨 달란다. 기어이 작은 아들은 자기 몫의 재산을 챙겨 나가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 재산을 다 날리고 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를 탕자라고 불렀다. 큰 아들은 달랐다. 아버지의 뜻을 어겨본 적이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맡겨진 일에 충실했다. 재산을 탕진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위해 부지런히 일했다. 사람들은 그를 효자라고 칭찬했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이 거의 굶어죽을 상황에 처해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 집에는 종들조차 풍족히 먹고 사는데 자기는 지금 여기서 굶어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아들은 즉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염치없지만 아버지에게 자기를 품꾼으로 써 달라고 하면 그 정도는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1668~1669년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간 후 아버지는 단 하룻밤도 깊은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버지의 일상이 되었다. 얼마 후에 드디어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몰골은 영락없는 거지지만 아버지는 단번에 아들을 알아보았다.

 

그런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그저 집에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아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벌인다. 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큰 아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심술이 나서 아버지에게 따진다. 아버지는 안타까워하며 간곡히 이른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다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31~32)

 

같이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큰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는 동생처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동생을 비난하고 정죄했다. 그러나 큰 아들이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다는 점이다. 작은 아들은 한 때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큰 아들은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만큼 했다'는 생각에 여전히 은혜가 뭔지 몰랐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을 은혜로 대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점이다. 큰아들이야말로 집안의 탕자였다. 그는 못난 자식을 근심하고 따뜻하게 품을 줄 아는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Scene #4  효는 만유 공통의 윤리 

 

부모님을 위하여 하는 일을 귀찮게 여기거나 짜증을 내면서 효도를 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은혜를 생각하면 언제나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의 마음으로 실천하는 효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부모에게 큰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효의 본질이다. 송나라 때 소옹(邵雍)은 큰 추위, 큰 더위, 큰 바람, 큰 비가 있으면 집밖으로 나가지를 않았다. 게으르거나 자기 몸을 아껴 그런 것이 아니다.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자기 몸을 공경했기 때문이었다.

 

살아생전에는 이러한 것을 모르다가 제 자신이 애를 키워보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다 못한 죄를 느끼게 된다. 부모님에 대한 공경과 보은은 정성이 깃들고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뜻이 있어야 한다.

 

세월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불효자는 화장터엘 가보라고 했다. 거기에 가면 제 아무리 불효자식도 효자가 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불구덩이 속으로 어버이를 들여보내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별, 그리고 잠시 뒤 한줌의 재로 말없이 다가온 망자(亡者)를 맞이하는 숙연한 모습들. 그 시작과 끝에서 눈물범벅이 된 울부짖음.

 

만유 공통의 윤리이며 도덕률인 효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구시대의 낡은 유물취급 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복잡한 고대의 윤리규범을 현대인들이 따라가기에는 시대적 상황이 많이 바뀌어서 그대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전통적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추구하고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없듯이 우리의 현실은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 예절과 풍속은 효를 바탕으로 생활 양식화된 문화로 정착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가다듬고 회복시켜야 한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와 환경 속에서 사회적, 가정적 연대감으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되어 소외감마저 들어 어떻게 살아가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장래를 위해서 가정이나 학교, 나아가 사회, 국가 교육을 통하여 전통윤리인 효의 정신을 회복시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윤리적 병폐를 바로잡고 건전한 사회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노인은 늘어나고 어버이와 어른이 사라져가는 세상. 물론 지금은 ‘논어 시대’가 아니다. 부모 자식이 함께 사는 것이 만능도 아니다. 세태는 당연히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람 사는 이치와 근본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여기가 유태인의 나라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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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새끼를 발견한 백조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급히 다가왔다. 맑은 물 위에 비친 모습은 못생기고 볼품없는 진회색의 오리가 아니라 우아하고 아름다운 한 마리의 백조가 아닌가? 백조들이 그를 에워싸고 부리로 목을 어루만지며 환영했다.

 

누구든 구박만 받던 미운 오리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한 뒤, 두 날개 펴고 달려온 백조들로부터 환영을 받는다는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 결말에 감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오늘날 우리가 부정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닫힌 사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면 적잖이 실망할지 모른다.

 

사실 이 동화는 현대 사회철학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열린 사회’의 역설과 함께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닫힌 사회의 모델을 보여 주고 있다. 우연히 오리알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백조는 그의 ‘다른’ 모습 때문에 구박받고 무시당한다. 더구나 다르다는 이유로 추한 꼴로 보인다. 미운 오리새끼가 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무리에서 떨어져 방랑 생활을 한다. 세월은 흘러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온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름다운 백조가 되고 백조 무리로부터 환영받는다. 백조들의 사회가 그에게 문을 연 것이다. 그렇다면 백조들의 사회는 열린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미운 오리새끼가 성숙한 백조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되찾았을 때 그를 받아 준 곳도 사실은 백조들의 닫힌 사회였다. 백조로서 그의 정체는 백조들 사이에서는 즉각적으로 동일화될 수 있었다. 백조들은 그를 ‘백조들의 닫힌 사회’의 일원으로서 받아 준 것이다. 그를 향한 열림은 닫힌 사회를 구성하는 한 방식일 뿐이다. 그것은 오리들의 닫힌 사회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서 어느 날 자기들과 동일화될 수 없는 ‘미운 백조새끼’를 갖게 된다면 그를 철저히 배척할 사회이다.

 

 

 

 

 

 

 

 

 

 

 

 

 

 

 

 

 

열린 사회 이론은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열린 사회의 적들을 추적하는 철학 이론이 놓치는 것이 있다. 열린 사회의 적들은 경계하면서도 닫힌 사회의 친구들은 망각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얼른 보아 ‘열린 사회의 적’과 ‘닫힌 사회의 친구’는 동의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 열린 사회의 적들은 눈에 띄지만 닫힌 사회의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사회이론 전개나 문학적 비유에서도 후자는 간과되거나 숨어 있다. 더 나아가 열린 사회의 친구들로까지 나타나 보인다.

 

그러나 오리들과 마찬가지로 백조들도 닫힌 사회의 친구들인 것이다. 다만 미운 오리새끼를 박대하는 오리 가족과 달리 아름다운 백조를 환영하는 백조들은 순간적으로 열린 사회의 친구들처럼 보였을 뿐이다. 우리는 오늘날 열림을 추구한다. 그러나 열림의 추구가 닫힘의 가식과 기만일 경우 또한 적지 않다. 현실에서 열림과 닫힘은 상호 역설로 작용하며 각각 그 본질을 은폐하기도 쉽다.

 

안데르센은 이 작품을 1843년에 썼다. 그는 자기 작품이 하류계급의 닫힌 사회를 비난하면서 상류계급의 닫힌 사회는 옹호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을것이다. 그 시대 자신도 그런 닫힌 사회를 향한 출세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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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존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실로 ‘살아남은 자들’임에 틀림없다. 눈 한번 잘못 팔다가는 달리는 차바퀴에 남은 목숨을 바쳐야 하는 우리 처지다. 그 이름도 많은 질병, 대량 학살의 전쟁, 불의의 재난,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갈등. 이런 틈바구니에서 우리들은 정말 용하게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다.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영원한 이별이기에 앞서, 단 하나뿐인 목숨을 여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그 자체가 존귀한 목적이다.

 

살아남은 사람들끼리는 더욱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기 차례를 맞이할지 모를 인생이 아닌가. 살아남은 자인 우리는 채 못 살고 가 버린 이웃들의 몫까지도 대신 살아 주어야 한다. 나의 현 존재가 남은 자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느냐가 항시 조명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하루도 우리들은 용하게 살아 남았군요” 하고 인사를 나누고 싶다. 살아남은 자가 영하의 추위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화목에 거름을 묻어 준다. 우리는 모두가 똑같이 살아남은 자들이다.

 

(법정,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 발췌)

 

 

 

 

 

 

 

 

 

 

 

 

 

 

 


잠깐 햇살이 비치고 있지만 지금 한반도의 공기는 더없이 무겁고 흉흉하다. 누구나 지금 눈물에 젖은 먹장구름에 가위 눌린 채 무기력과 슬픔의 일상을 견디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면 그 사랑의 온도와 질감은 비보로 인하여 낮게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모든 생일잔치와 동창회와 회갑연들, 강의실과 식당과 지하철, 회식 이후의 노래방과 은밀한 사랑의 모텔조차도 팽목항의 슬픔에 엄청난 무게에 짓눌린 상황이다.

 

독일의 시인 브레히트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라고 시를 읊었다. 살아있는 자의 기쁨 대신 슬픔을 노래했다. 우리는 강해서 살아남은 것일까?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일까? 표현하지 않지만 때로는 살아남은 것이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되고 비겁함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무기력과 공포, 답답함과 불안함.

 

하지만 운 좋게, 혹은 강해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서늘한 마음으로 세월을 견디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자는 잊혀진 여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비단 여자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잊혀진다'는 사실에는 비애감이 있다. 영원히 잊혀진다는 건 그래서 겁나고 무서운 일이다. 어쩌면 살아남은 자의 진짜 슬픔은 먼 옛날의 일처럼 비극을 쉽게 잊어버리는 기억의 한계일 것이다.

 

살아 있음에 슬픔을 느꼈다면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내 주변 사람을 안아주고 보살필 수 있는 이 평범한 일상이 ‘사랑’이며 서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위로’다.

 

망자(亡者)에 대한 최고의 사랑은 ‘그 사람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 일은 아프고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슬픔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 주변에 있는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다.

 

강하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살아남아야 한다. 쓰러진 사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온기쯤은 남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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