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여성으로 살아 본 1년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임혜진 옮김 / 비아토르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성경은 위험한 책이 될 수 있다. 기독교는 성경에 근거해 수천 년 동안 유대인을 박해했고, 죄 없는 여성을 마녀로 규정하여 불태워 죽였다. 흑인들을 노예로 만들고 평화수호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성경을 조금만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구약 창세기를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흙을 빚어 아담을 만들고 그 후에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어 하와를 만들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의 진위를 떠나 기독교인들은 수많은 세월 동안 남성과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존재라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바울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디모데전서 2:12).”라는 구절이 있다. 보수적인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접한 예수의 말은 아예 무시한다. 그들은 디모데전서 2장 12절을 인용해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도 디모데전서 2장 12절을 근거로 여성은 신학교에서 남성을 가르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보수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을 글자 그대로 엄격하게 해석해 이를 따르는 데 전념한다. 남성 중심 기독교 엘리트들은 성결(聖潔)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여성 신자들의 삶과 일상을 통제한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성경적 가부장제’, ‘성경적 여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성경적 가부장제’와 ‘성경적 여성’은 남성을 위한 여성의 순종과 희생이라는 기독교적 덕목을 강화하고 재생산한다.

 

그러나 교회 내에 뿌리 깊게 도사리고 있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은 여러 측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보수적인 복음주의 문화가 남아 있는 바이블 벨트(Bible Belt)에서 성장한 레이첼 헬드 에반스(Rachel Held Evans)1년 동안 ‘성경적 여성’의 삶을 살아보는 프로젝트를 단행한다.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 본 1년》은 저자가 ‘성경적 여성’의 삶이 현대 사회에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품으면서 시작된 이야기다. 저자는 매달마다 ‘성경적 여성’을 강조하는 성경 구절에 따라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저자는 남편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면서 순종하고, ‘정숙한 여성’이 되기 위해 소박하게 옷을 입고 외출을 해보고, 집안 살림을 혼자서 한다. 그녀가 한 해 동안 실천해야 할 덕목은 열 개가 넘는다. 남편은 ‘성경적 여성’처럼 사는 아내를 지켜보면서 느낀 감정들을 일기에 기록한다.

 

이 책은 비기독교인도 읽을 수 있는 기독교적인 책이다. 페미니스트도 봐도 된다. 저자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다. 자신의 프로젝트가 공개되자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그녀를 ‘성경을 조롱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비난했다. 무신론자들의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무신론자들은 그녀의 프로젝트가 기독교적 가부장제를 미화한다고 비난했다. 무신론자인 나는 그녀의 도전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아내의 프로젝트를 지지해준 남편(그도 기독교인이다)도 존경스럽다.

 

저자는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는 보수 복음주의자의 발언과 사고를 비판하면서 “성경 어디에도 ‘성경적 여성’을 설명해주는 근거가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이 이미 선지자로 불렸으며 특히 유니아(Junias)바울이 인정한 여성 사도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여성 사도를 인정하지 못한 남성 신학자들은 ‘유니아’를 ‘유니아스(Junias)’라는 남성형 이름으로 고쳤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유니아는 ‘Junias’로 표기된다. 남성 신학자들은 『잠언』에 언급된 ‘31명의 여인’‘현숙한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해석했다. 그래서 보수 복음주의자들은 현대의 여성 신자들에게 ‘31명의 여인’처럼 남편에게 순종하고 집안일에 착실한 여성이 되라고 강조한다. 남성 신학자들은 남성 기독교인의 권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31명의 여인’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저자는 모성과 출산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기독교 덕목이 비혼(非婚)이거나 아이가 없는 여성 신자를 소외시키는 부당한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출산이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따르는 것이 두려웠다고 고백하는 모습은 가슴 뭉클해지는 장면이다. 그녀의 고백을 확인한 여성 신자들은 그동안 성경의 권위에 눌려 말할 수 없었던 출산의 두려움을 용기 내어 고백한다.

 

이 책의 목적은 ‘성경적 여성’이라는 모델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성은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으며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따로 있다. 독자들에게(특히 기독교인) 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하는지를 진정으로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성경의 의미를 재정의한 저자의 말은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상관없이 새겨들을 만하다.

 

 

성경은 정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자기계발 매뉴얼이 아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우리 삶에 일방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무 자르듯 명료한 규칙과 규제 목록이 아니다. (398쪽)

 

 

성경의 가르침은 이론적이고 이상적인 상황을 가르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사랑과 거룩’이라는 이름을 이용해 여성을 차별하고,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성경은 없다. 그런 성경이 있다면 정말 위험한 것이다. 이 위험한 성경을 손에 쥔 자는 권력을 앞세워 성경의 보편적인 가치뿐만 여성 신자들의 삶을 깔아뭉개고 있다. 성경과 예수를 비난할 게 아니라 성경과 예수를 왜곡하는 자들을 비난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종교를 위협하는 악의 축이다.

 

 

 

 

 

 

 

 

※ Trivia

 

*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보기’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공개되자 그녀를 조롱하는 어느 네티즌이 이런 댓글을 남겼다. A. J. 제이콥스가 이미 한 프로젝트죠(31쪽).” 미국의 작가인 A. J. 제이콥스가 이미 성경의 모든 계율을 1년 간 빠짐없이 실천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있다. 제이콥스는 성경대로 살아온 체험담을 책으로 펴냈고, 그 책을 번역한 것이 《미친 척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 (세종서적, 2008)이다.

 

* 저자는 애니타 다이아먼트의 소설 <붉은 천막(The Red Tent)>을 인상 깊게 읽었다면서 몇 차례 이 책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녀가 성경의 구절대로 사흘 동안 앞마당에 친 텐트에 지냈을 때 <붉은 천막>을 읽었다. 책 105쪽에 <붉은 천막>의 원제를 ‘Red Tent’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정관사 ‘The’가 빠졌다. 또 이 책은 《여자들에 관한 마지막 진실》 (홍익출판사, 2001)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으나 절판되었다.

 

* 책 325쪽에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적이 있는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s’가 빠진 로렌스 서머’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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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8-03-21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재밌겠네요^^ 기회 되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cyrus 2018-03-21 14:52   좋아요 0 | URL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이 책을 엄청 싫어할 거예요. 그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싫어하거든요.. ^^

stella.K 2018-03-2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 이 글 읽으면서 이 비슷한 책 있었는데 뭐지...?
<미친 척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이었어.ㅋ
어쨌든 이책 재밌겠다. 읽어보고 싶어지는군.

사실 기독교도 파가 여러 가진데 어디는 여자에게도 목사를
허락하는 파가 있지.
내가 다니는데는 여자에게 목사를 허락하진 않고 있어.
대표 기도도 그동안은 장로만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주일 날 총 4번 드리는 예배에서 마지막 4부 예배는
권사(여자)가 대표 기도를 할 수 있게된 것도
15년 전쯤 담임 목사님이 바뀌고부터다.^^

cyrus 2018-03-21 15:38   좋아요 0 | URL
제이콥스의 책도 ‘품절’일 걸요. 저는 <여자들에 관한 마지막 진실>을 읽고 싶어요. 저자가 이 책을 언급한 내용으로 봐서는 페미니즘 소설인 건 분명해요. ^^

종교인들이 다른 분파를 인정하고, 어느 정도 포용하는 자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들이 믿는 교리기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무교고, 무신론자라서 종교인들에게 순진하게 기대하고 있는 걸까요? ^^;;

stella.K 2018-03-21 15:50   좋아요 0 | URL
아이쿠.. 그 정도는 아냐.
물론 그런 극단적인 곳도 없진 않겠지만
많이 유연해.
네가 교회를 잘 몰라서 그렇지.ㅋ

cyrus 2018-03-21 15:49   좋아요 0 | URL
제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사람 중에 종교인이 단 한 명도 없어요. 그래서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도 잘 몰라요. 제가 책으로 종교를 배우는 거라서 종교를 주제로 글을 쓰거나 대화를 나누는 데 한계가 있고, 단점이 많아요. ^^

마립간 2018-03-21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이 독후감만 봐서는 무슨 책인지 감이 오질 않네요.

많은 (남자) 목사님의 설교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성경적이며, 휼륭하다는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그 설교가 이 글 앞 부분에 나오는 편견을 극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터라 ...

cyrus 2018-03-21 15:47   좋아요 4 | URL
책을 읽어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ㅎㅎㅎ

존 파이퍼 같은 미국의 보수적인 목사들은 성경 구절을 근거로 여성은 ‘남성을 위해 복종하고, 희생하고, 집안일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해요. 이 책에 여성을 폄하하는 보수적인 목사들의 발언과 사례들이 나옵니다. 이 목사들의 공통점은 성경 구절을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그 목사들을 믿는 신자들은 목사의 성경 해석에 반대하지 못하고 수긍만 할 뿐이죠. 그리고 목사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굳건하게 믿죠. 마립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을 훌륭하게 평가하는 목사들도 있어요. 이 책에도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을 칭송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종교인들의 말이 나옵니다.

마립간 2018-03-22 07:59   좋아요 0 | URL
자상한 댓글 감사합니다.

언뜻 보기에 ‘기독교‘와 ‘페미니즘‘은 같이 갈 수 없다. ; 라는 결론인지 아닌지 혼동스러워서요.

기회가 될 때, 읽어보로독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