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마네(Manet)「풀밭 위의 점심」을 살롱에 출품했을 때 이 작품은 ‘역겨운 졸작’으로 평가받았다. 살롱이 외면한 그림은 낙선전에 전시되었다. 그 작품을 본 관람객들은 일상의 광경에 뻔뻔하게 끼어든 옷 벗은 여인에게 야유와 조롱을 보냈다. 마네는 새로운 예술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나중에 인상파를 형성하는 젊은 화가들이 모여들자 그는 새로운 예술의 지도자적 존재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기존의 회화 방식에 저항하는 반란자들의 시대를 지켜본 증인들이 있었다. 보들레르(Baudelaire)에밀 졸라(Emile Zola). 그들은 인상주의 미술에서 ‘현대성의 출현’을 감지했다.

 

 

 

 

 

 

 

 

 

 

 

 

 

 

 

 

 

 

 

 

* 보들레르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은행나무, 2014)

* 보들레르 《화장 예찬》 (평사리, 2014)

*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현대 생활의 화가》 (인문서재, 2013)

 

 

 

보들레르의 비평문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는 1863년에 발표한 글이다. 이 글이 발표된 1863년은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을 선보인 역사적인 해이다. 언뜻 비평문 제목만 봐서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가 누군지 짐작하기 힘들다. 보들레르의 후광을 입은 마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는 마네가 아니다. 콩스탕탱 기스(Constantin Guys)[1]라는 신문 삽화가를 가리킨다.

 

기스는 그림을 그렸으나 전업 화가로 보기 어렵다. 그는 종군기자로 활동하여 그리스 독립전쟁, 크리미아 전쟁 현장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기스는 전쟁 삽화뿐만 아니라 제2제정기 파리 사회 풍속을 소재로 한 삽화들도 그렸다. 나폴레옹 3세 치하의 제2제정기 파리는 대대적인 도시개발 사업으로 세련된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보들레르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를 통해 기스의 그림들을 옹호하면서 ‘현대성’의 의미를 주장했다. 보들레르가 말하는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현시대의 유행과 풍속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들레르는 기스를 ‘관찰자’, ‘소요객(flâneur, 플라뇌르)’, ‘풍속화가’, ‘현상(現狀)의 화가’라고 부른다. 번역하기 까다로운 프랑스어 ‘플라뇌르’는 한량, 산책자를 모두 합친 말인데, 주로 ‘산책자’로 번역된다.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에서는 ‘소요객’으로 번역되었다. 말 그대로 소요객은 마음대로 도시의 거리를 거니는 익명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기스는 자신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의 익명성을 존중한 보들레르는 자신의 비평문에 기스를 ‘G.씨’라고 썼다.

 

기스를 옹호한 보들레르의 비평문은 마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헌인가? 그렇다. 마네는 동시대의 삶을 그대로 묘사한 ‘현대 예술가’다. 그는 자신이 본 것, 즉 시대의 풍경을 캔버스에 옮겼다. 마네의 시도는 벌거벗은 여신이나 신화 속 영웅의 모습을 그리던 고전주의 화풍에 도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보들레르는 ‘현대성’이 충실히 반영된 마네의 그림을 호평했다.

 

 

 

 

 

 

 

 

 

 

 

 

 

 

 

 

 

 

* 에밀 졸라 《예술에 대한 글쓰기》 (지만지, 2012)

 

 

 

졸라는 보들레르보다 마네를 열렬하게 지지한 사람이다. 그가 쓴 『나의 살롱』이라는 비평문집에 ‘마네’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마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조명한 전기 『마네』까지 쓸 정도로 마네의 진면목을 세상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마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졸라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프랑스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의 추도문을 쓰기도 했다. 졸라가 폴 세잔(Paul Cézanne)을 옹호했다가 나중에 그와 사이가 멀어진 작가로 알려졌으나 마네와 졸라와의 친밀한 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예술에 대한 글쓰기》는 『나의 살롱』, 『마네』 일부를 발췌하여 편집한 책이다. 완역본은 아니지만, 마네의 예술관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비평 선집이다.

 

졸라는 그림의 주제를 찾기 위해 애쓰고 분석하는 비평을 반대했다. 보수적인 살롱 심사위원은 고전적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도 그 속에 교훈을 읽을 수 있는 그림들을 선호했다. 살롱 심사위원이 보고 싶은 교훈은 ‘그림의 주제’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화가들은 ‘옛 것’을 선호하는 심사위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신화와 전설에서 그림의 주제를 찾았다. 그런데 졸라는 옛 것을 답습하는 틀에 박힌 그림과 그것을 감상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졸라는 환상적이면서도 과장된 신화와 전설이 아닌 ‘진실한 삶의 현장’에서 그림의 주제를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작은 기교들,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아부성 주제들, 교훈적이거나 대중과 친밀해지려는 의도가 농후한 작품들, 어느 유명인의 위업을 강조하기 위한 역사적 과장이나 또는 지나치게 미화된 몽상 등과 같은 작품들을 가장 경멸한다. 반면 나는 개성을 보여주는 작품들, 독창적이고 힘찬 손에서 태어난 작품들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다. (『나의 살롱』 ‘예술의 시점’ 편, 56쪽)

 

 

졸라가 말하는 ‘개성 있는 작품들’이란 동시대 삶의 진실을 포착하여 캔버스에 담은 그림들이다. 마네와 인상파 화가들은 일상생활 범위 안에서 만나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과 풍경을 즐겨 그렸다. 인상파 화가들은 동시대인들의 평범한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이 그림을 감상하면서 특별한 주제나 의미를 찾는다는 건 난센스이다.

 

 

 

 

 

 

 

 

 

 

 

 

 

 

 

 

 

* [절판] 줄리 마네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 (다빈치, 2002)

* 아르망 푸로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 (글항아리, 2009)

 

 

 

여성의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즐겨 그린 베트르 모리조(Berthe Morisot)는 보들레르와 졸라의 예술관 모두에 부합하는 화가이다. 보들레르의 '현대성'과 졸라의 '세상의 진실'이라는 예술적 관점에서 모리조의 그림을 본다면 개성이 넘치고 정감이 가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모리조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현대성, 즉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는 동시대 여성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또 그녀는 그림의 소재가 되지 못했던 여성의 가사 노동에 주목했다. 마네, 모네(Monet)가 새롭게 변모하는 ‘도시의 세련미’를 발견했듯이 모리조는 남성 인상파 화가들이 주목하지 못한 ‘일상의 소박미’를 발견했다.

 

 

 

 

 

 

 

 

 

 

 

 

 

 

 

 

 

모리조는 대단한 일이 아닌 것들도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실한 삶의 현장’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아주 사소한 일상, 어머니가 잠자는 아기를 바라보는 장면 같은 것도 그림의 소재가 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주 사랑스러운 ‘삶의 진실’이다.

 

 

 

 

 

 

 

 

 

 

 

 

 

 

 

* 제프리 마이어스 《인상주의자 연인들》 (마음산책, 2007)

 

 

섬세하고 난해한 모리조의 작품은 페미니즘 평론가들에 의해서만 과대평가되었고, 나머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과소평가되었다. 역사적인 맥락이나 극적 긴장, 서사적 의미 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그녀의 작품이 마네의 작품보다 더 심했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그림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게끔 보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다. (제프리 마이어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상주의 연인들》을 쓴 제프리 마이어스는 인상파 그림, 특히 모리조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인상파가 지향하는 예술관인 ‘현대성’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보수적인 평론가들은 모리조를 과소평가했다. 보들레르와 졸라가 눈여겨본 인상파의 특징을 이해한다면 모리조가 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하는 화가인지 알 수 있다.

 

 

 

 

 

[1] 어떤 책에서는 ‘콩스탕탱 기’라고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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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01-19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밀 졸라의 <나나>를 너무 어려서 읽어서 줄거리만 따라가는 수준이었는데, 이렇게 미술사에서 세잔과 얽혀서 소개되거나 에밀 졸라를 이야기한 글들 보면 정치의식이 특별했던 작가인가보네요. 늘 좋은 글 배우며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8-01-19 17:34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제 글에 배울 게 1도 없습니다. 그냥 ‘이런 내용이 있구나’하고 보셨으면 합니다. 졸라가 유태인 드레퓌스의 누명을 벗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졸라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

2018-01-19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9 17:37   좋아요 0 | URL
가까이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삶의 교훈이 틀린 말이 아니에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깐도리 2018-01-20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나나를 읽었는데, 그 이후 에밀졸라의 생에 대해 관심 가지게 되었어요...

cyrus 2018-01-20 19:35   좋아요 0 | URL
졸라의 생애를 다룬 전기나 평전이 있을 텐데 국내에 번역되지 않아서 아쉬워요. 졸라와 작가들(모파상, 위스망스)와의 관계를 자세히 알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