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만화 마니아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1월 5일 일본에 <이토 준지 컬렉션> 1화가 첫 방영 되었다. <이토 준지 컬렉션>은 일본의 만화가 이토 준지의 단편 공포 만화를 토대로 만든 TV 애니메이션이다. 편수는 총 12화로 『토미에』 에피소드, 『소이치 시리즈』 에피소드(1화 방영), 『오시키리 시리즈』 에피소드,『달팽이 소녀』, 『사자(死者)의 상사병』 등이 방영될 예정이다. 1월 13일 밤 11시 30분에 국내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애니박스에서도 볼 수 있으며 28일에 더빙 편이 방영된다.

 

 

 

 

 

 

 

 

 

 

 

 

 

 

 

 

 

 

 

 

 

 

 

 

 

 

 

 

 

 

 

 

 

* 이토 준지 《소용돌이 합본판》 (시공사, 2010년)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1, 2》 (시공사, 2008년)

* [품절] 이토 준지 《공포의 물고기 합본판》 (서울문화사, 2013년)

 

 

 

이토 준지의 만화의 특징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섬뜩한 그림체다. 예상을 뛰어넘은 상상력, 탁월한 연출력은 독자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공포심을 낱낱이 끌어낸다. 겁 많은 사람이나 비위가 약한 사람이 보기에 그의 만화는 엽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이토 준지의 모든 만화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정상’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잔혹함의 정도가 강렬하다. 그래서 이토 준지의 만화는 ‘공포’라기보다는 ‘하드 고어(hard gore)’에 가깝다. 이토 준지의 대표작 《소용돌이》와 《토미에》는 영화로 리메이크되었으며 《공포의 물고기》는 OVA 애니메이션(TV가 아닌 비디오나 DVD로 출시되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6 : 소이치의 저주일기》 (시공사, 2008년)

 

 

 

<이토 준지 컬렉션> 1화는 ‘컬렉션 No. 58 소이치의 저주놀이’ 편이다. 아직 이토 준지의 만화를 잘 모르는 분은 애니메이션을 보기 전에 소이치가 누군지 알아두는 것이 좋다. 소이치가 등장하는 『소이치 시리즈』는 소이치의 일상을 그린 만화다.

 

 

 

 

 

 

소이치는 (일본식) 저주와 주술을 엄청 좋아하는 괴짜 소년이다. 12살이라고 하기에 소이치의 정신세계는 상당히 음울하다. 소이치는 여러 개의 못을 입에 우물거리면서 다니는 버릇이 있다. 영화 <영웅본색>에서 바바리코트 자락을 펼치며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쌍권총 솜씨를 보여주는 주윤발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소이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섬뜩한 기행을 일으킨다. 그의 행동, 즉 못을 입에 무는 버릇은 자신 스스로 ‘대단한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한 허세이다. 소이치는 가족과 친구를 골탕 먹이려고 저주를 내리지만 번번이 실패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보다 똑똑하고 외모가 뛰어난 형에 열등감을 느껴 형에게 저주를 내리려는 위험한 생각을 품는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한다. 소이치의 저주가 실패되는 장면은 이 작품의 웃음 포인트이다. 소이치의 겉모습만 보고 살짝 겁먹은 독자들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해서 쩔쩔 매는 소이치의 모습을 보면서 긴장이 완화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이토 준지의 만화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소용돌이》와 같은 장편 ‘고어’ 만화보다는 『소이치 시리즈』를 먼저 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이토 준지의 만화에는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둠 속에는 ‘웃음’이 있다. 《소용돌이》와 《토미에》를 먼저 접하거나 두 작품의 명성을 들은 사람들은 이토 준지를 ‘괴랄한 그림만 그릴 줄 아는 공포 만화가’로 생각하기 쉽다. 어떤 이는 이토 준지의 만화를 ‘일본식 고어’라고 평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토 준지의 만화는 ‘그로테스크(grotesque)’의 원초적 정의를 충실히 반영한다. 흉측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것. 그게 바로 그로테스크의 정의다. 이토 준지의 만화는 ‘그로테스크 만화’다.

 

‘소이치의 저주놀이’ 편이 끝나면 바로 ‘컬렉션 No. 90 지옥의 인형 장례식’ 편으로 이어진다. 이 에피소드는 초 단편이며 ‘마리에’라는 이름의 소녀가 점점 인형으로 변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9 : 오시키리의 괴담 & 프랑켄슈타인》

(시공사, 2008년)

* 러브크래프트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 크툴루의 부름 외 12편》

(현대문학, 2014년)

 

 

 

이 만화에서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이토 준지는 마리에가 인형으로 변하는 이유 그리고 원인을 알려주지 않는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허술하게 만든 작가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기승(起承)’을 과감히 잘라내고 ‘전결(轉結)’만 남은 내러티브는 독자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작가의 친절한 배려이다. 독자는 자신만의 상상력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이 작품에 드러나지 않은 공포감의 실체를 인식하게 된다. ‘전결’만 남은 내러티브는 독자에게 강렬한 공포와 충격을 효과적으로 줄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 방식은 러브크래프트(Lovecraft)의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토 준지는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은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토 준지 컬렉션>은 이토 준지의 만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입문용’으로 제격이다. 이토 준지 만화를 섭렵한(?) ‘강심장’ 마니아 입장에서는 올해 초에 첫 선을 보인 <이토 준지 컬렉션>에 조금 실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토 준지 단편 만화 중 최고로 손꼽히는 『기괴한 아미가라 단층』이 애니메이션 에피소드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기 제작이 확정된다면(아니, 벌써부터 김칫국을 마실 생각을 하다니…‥) 『기괴한 아미가라 단층』이 ‘이토 준지 마니아들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길 희망하는 단편 에피소드’ 1순위로 거론되지 싶다. 이 단편 만화는 《공포의 물고기 합본판》(서울문화사, 2013)에 수록되어 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09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09 12:05   좋아요 1 | URL
이토 준지의 만화에는 절단되고, 비틀리고, 망가진 신체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소용돌이>가 국내에 처음 알려진 시기가 1999~2000년입니다. 이 때 ‘엽기’ 신드롬이 있었고 거기에 맞춰서 알려진 게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입니다. 제가 초딩이었을 때 이 만화가 나왔는데 ‘19세 미만 판매 불가’인데도 몇몇 친구들이 이 만화를 서로 돌려가면서 봤어요. ^^

꼬마요정 2018-01-09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수채구멍으로 끌려들어간 주인공의 언니인지, 동생인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ㅜㅜ 이토준지는 끝까지 찜찜함을 주는데 이게 또 끌린단 말이죠..

cyrus 2018-01-09 13:29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게 바로 이토 준지 만화의 매력이죠. ^^

서니데이 2018-01-09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치 입에 세 개는 뭐지? 했는데, 못이었네요.;;
이토준지 만화보다 애니매이션이 조금 덜 무섭게 그려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실제로 보면 무섭겠...지요. cyrus님,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18-01-10 11:47   좋아요 1 | URL
1화에서는 ‘깜놀한 연출’, ‘끔찍한 묘사’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다음 에피소드부터가 ‘진짜’일 것입니다... ㅎㅎㅎ

카스피 2018-01-0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토준지의 단편만화는 거의 다 일어 보았는데 역시 섬뜻하단 생각이 들어요.애니로 나온다니 보고싶긴 한데 보고나서 잠을 못잘까봐 좀 걱정이 되네요^^;;;

cyrus 2018-01-10 11:49   좋아요 0 | URL
1화는 괜찮았습니다.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연출이 없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