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길에 중고 책 전문 서점 ‘글수레’에 들렸다. 그곳에서 희귀한 절판본을 발견했다.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성애소설을 총 세 권으로 번역한 《완역 돈 쥬앙》(보람, 1995)이다. 필자는 이 책의 1권과 2권만 가지고 있다. 그래서 《완역 돈 쥬앙》을 처음 공개했을 때 ‘두 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잘못 소개했다(관련 글: <야설작가 아폴리네르> 2014년 10월 23일 작성). 이 글은 2014년에 작성한 글을 수정하기 위해 썼다.

 

《완역 돈 쥬앙》의 번역 저본은 『Les Onze Mille Verges』(1907), 『Les Exploits d’un jeune Don Juan』(1911)이다. 아폴리네르는 이 두 편의 소설을 익명으로 발표했다. 《완역 돈 쥬앙》 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완역 돈 쥬앙》 1권 목차

제1부 우연한 로맨스

제2부 프랑스에서는 향수를 사지 마라 (내용이 2권으로 이어짐)

 

《완역 돈 쥬앙》 2권 목차

제2부 프랑스에서는 향수를 사지 마라 (완결 편)

제3부 여자의 환상에 마침표를 찍을 때

 

《완역 돈 쥬앙》 3권 목차

제4부 일만 일천 개의 채찍

 

 

 

출판사는 이 책을 ‘장편소설’로 소개했지만, 아폴리네르가 익명으로 발표한 두 편의 소설은 ‘장편’으로 보기 어렵다. 제1부(‘우연한 로맨스’)는 『Les Exploits d’un jeune Don Juan』을 번역한 것이고, 제4부(‘일만 일천 개의 채찍’)는 『Les Onze Mille Verges』를 번역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제2부, 제3부는 무엇일까. 이야기의 흐름과 표현력을 봐서는 확실히 아폴리네르가 쓴 글이 아니다. 출판사가 책의 분량을 장편소설 정도로 늘려서 판매하려고 이름 모를 작가의 성애소설 두 편을 끼워 넣었다. 외국 작가의 저작권을 무시하고 원작을 임의대로 편집하면서까지 책을 펴냈던 90년대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아폴리네르의 성애소설에 관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독자들은 출판사의 거짓 홍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 아폴리네르, 곽효원 역 《돈 주앙 : 소년 돈 주앙의 회상》 (예문, 2014)

* 아폴리네르, 곽효원 역 《돈 주앙 : 일만 일천 개의 채찍》 (예문, 2014)

 

 

 

글수레 서점에 가보면 전권이 다 갖춰진 《완역 돈 쥬앙》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의 정가는 6,500원이다. 만나기 힘든 희귀 중고책이라서 중고가가 비싸다. 한 권당 15,000원이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완역 돈 쥬앙》 3권만 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낱권을 사기 위해 내야 할 15,000원은 ‘매몰 비용’이 될 수 있다. 또 《완역 돈 쥬앙》 3권과 같은 내용인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문학수첩, 1999)을 가지고 있어서 다시 살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눈으로 책의 상태를 확인했으며 구매 결정을 포기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완역 돈 쥬앙》 전 3권을 사고 싶은 분이 있으면 지금 당장 책을 주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글수레 서점에 전화로 문의해서 주문할 수 있다. 대구에 거주하고 있으면 서점에 직접 방문해서 사면 된다. 《완역 돈 쥬앙》 전 3권의 가격은 총 45,000원이다. 이 책을 사는 것보다 전자책으로 만들어진 번역본을 사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 아폴리네르, 용광남 역 《신역 돈 쥬앙》 (픽션뱅크, 1999)

 

 

 

 

1999년에 세 권짜리로 된 《신역 돈 쥬앙》(픽션뱅크)이 출간되었다. 이 책 역시 정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이 책을 직접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신역 돈 쥬앙》은 1995년에 나온 《완역 돈 쥬앙》과 비슷한 형식의 번역본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도서관 서고 자료실에 《신역 돈 쥬앙》이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을 보려면 서고 자료실 관리를 담당하는 사서에게 대출 요청을 하면 된다.

 

 

 

 

 

 

 

 

 

 

 

 

 

 

 

 

 

 

* 아폴리네르, 성귀수 역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 (문학수첩, 1999)

 

 

 

《신역 돈 쥬앙》이 나오고 두 달 뒤에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이 출간되었다. 알라딘에 등록된 정보에 따르면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의 초판 발행일이 ‘1999년 1월’로 나오는데, 틀린 내용이다. 정확한 초판 발행일은 ‘1999년 9월 4일’이다. 《신역 돈 쥬앙》의 초판 발행일은 1999년 7월이다. 이 책의 번역자는 ‘아르센 뤼팽(Arsène Lupin)’ 시리즈,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오페라의 유령》(문학세계사, 2009) 등 불문학 작품들을 번역한 성귀수 시인이다.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에 표제와 같은 제목의 소설과 또 다른 성애소설 『어린 동쥬앙의 무용담』이 수록되어 있다. 『어린 동 쥬앙의 무용담』의 원제는 『Les Exploits d’un jeune Don Juan』이다.

 

아폴리네르의 성애소설은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인 채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렇다 보니 아폴리네르는 소설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성애소설을 출판하기로 했던 출판업자는 아폴리네르가 제출한 원고에 실망했다. 출판업자는 원고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길 원했다. 그러나 아폴리네르는 출판업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출판하기로 계약했던 『사랑스러운 검둥이 여자』 집필이 계속 미루어지고 있었다. 출판업자는 기다리다가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다른 작가가 쓴 성애소설인 『하얀 에르민』을 아폴리네르의 소설과 함께 묶어 책을 만들었다. 그래서 아폴리네르 사후에 출판업자가 만든 책이 세상에 공개됐을 때 『하얀 에르민』을 아폴리네르가 쓴 작품으로 잘못 소개되기도 했다.

 

필자는 2014년에 작성한 글을 통해 『하얀 에르민』을 《완역 돈 쥬앙》 2부 이야기와 같은 작품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 추정이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완역 돈 쥬앙》의 번역자가 출판 뒷이야기를 알려주지 않는 이상 《완역 돈 쥬앙》 2부와 3부의 원제가 무엇이고 누가 썼는지를 알 수 없다.

 

『일만 일천 개의 채찍질』이 정액과 피가 난무하는 ‘하드코어 포르노’라면 『어린 동 쥬앙의 무용담』은 자극적인 성애 묘사에 충실한 ‘B급 포르노’이다. 『일만 일천 개의 채찍질』에 세세하게 나온 성애 묘사들을 학문적 용어로 분류, 정리하면 이렇다.

 

난교, 사디즘(Sadism), 마조히즘(Masochism), 남색(Sodomy), 스카톨로지(Scatology), 색정광(Satyriasis), 님포마니아(Nymphomania, 여성 색정광), 페도필리아(Pedophilia),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

 

아폴리네르의 성애소설에 등장하는 색정광들은 주저 없이 섹스의 향연에 뛰어든다. 색정광이 타자를 대하는 인식은 무척 단순하다. 타자를 자신의 성족 욕구를 채워주는 장난감으로 대할 뿐이다. 아폴리네르의 색정광은 이성의 판단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섹스에 미쳐버려서 감정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통제하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아폴리네르의 색정광은 인륜을 저버린 범죄자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자들은 아폴리네르의 성애소설에 열광했다. 초현실주의적 선언에 참여한 시인 루이 아라공(Louis Aragon)은 아폴리네르의 성애소설을 ‘포에지(poésie: 시 또는 시적 정취)와 섹스를 결부시킨 작가의 독신자(瀆神子: 신을 모독함)적, 예언자적 의식’이라고 극찬했다.

 

 

 

 

 

 

 

 

 

 

 

 

 

 

 

 

 

 

 

 

 

 

 

 

 

 

 

 

 

 

 

 

 

 

 

 

 

 

 

 

 

 

 

 

 

 

* 호세 피에르, 르네 파스롱 《초현실주의》 (열화당, 1994)

* 매슈 게일 《다다와 초현실주의》 (한길아트, 2001)

* 피오나 브래들리 《초현실주의》 (열화당, 2003)

* 카트린 클링죄어 르루아 《초현실주의》 (마로니에북스, 2008)

* 앙드레 브르통 외 《초현실주의 선언》 (미메시스, 2012)

* 로라 톰슨 《초현실주의》 (시공아트, 2014)

* 알렉산드리앙 《에로틱 문학의 역사》 (한숲출판사, 2005)

 

 

 

초현실주의는 현실 세계로부터 단절을 추구하는 예술사조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보다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신, 성(性), 이성을 인간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억압으로 규정한다. 그들이 추구하려고 했던 ‘인간 해방’의 실체는 ‘상상력의 해방’이다. 아라공은 아폴리네르의 성애소설에서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면서 성을 억압하는 사회를 무너뜨리는 초현실주의적 면모를 확인했다.

 

 

 

 

 

 

 

 

 

 

 

 

 

 

 

 

 

 

 

*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문학과지성사, 2004)

* 프랑수아 라블레 《팡타그뤼엘 제3서》 (문학과지성사, 2006)

* 프랑수아 라블레 《팡타그뤼엘 제4서》 (문학과지성사, 2006)

 

 

 

아폴리네르의 성애소설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미셸 데코댕(Michel Decaudin)은 아폴리네르를 ‘라블레(Francois Rabelais)의 소스에 맛 들인 사드(Marquis de Sade)’라고 평가했다.[1] 그의 분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라블레는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문학과지성사, 2004)을 통해 풍요롭고 자유로운 인간 해방을 제시했다. 소설 속 거인 팡타그뤼엘(Pantagruel)의 이름에서 딴 팡타그뤼엘리슴‘육체적 만족을 통해 삶을 즐기려는 태도’[2]를 의미한다.

 

 

 

 

 

 

 

 

 

 

 

 

 

 

 

 

 

 

 

 

 

 

 

 

 

 

 

 

 

 

 

 

* 사드 《사드의 규방철학》 (도서출판b, 2005)

* 사드 《소돔의 120일》 (동서문화사, 2012)

* 사드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워크룸프레스, 2014)

* 존 필립스 《HOW TO READ 사드》 (웅진지식하우스, 2008)

 

 

 

 

라블레는 ‘웃음’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사회를 비판하고 구시대를 파괴했다면, 사드는 극단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법과 종교를 거부하고 조롱했다. 사드가 선택한 행동은 펜과 종이를 통해 외설과 부도덕, 신성모독의 악취를 뿜어내는 일이었다. 사드는 사회를 위반하는 행동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무신론을 이용한다. 그러므로 신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관습과 규범을 뛰어넘는 위반 행동을 할 수 있으면 여기에 대해 비난을 받지 않게 된다. 또 본능에 충실한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팡타그뤼엘리슴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섹스를 즐기면서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쾌락주의라면 사드의 리베르탱(libertin)은 팡타그뤼엘리슴을 뛰어넘는 극단적 자유주의다. ‘무신론’을 이용하여 사회적 금기를 거부하는 인간의 일탈을 관용한다. 아폴리네르의 색정광은 ‘맛있는 육체’를 노리고, 마음껏 누린다. 자신들의 행동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아폴리네르의 색정광은 팡타그뤼엘리슴과 리베르탱 일부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 아폴리네르 《티레시아스의 유방》 (연극과인간, 2004)

 

  

 

그러나 사드와 아폴리네르의 색정광의 차이점이 있다. 사드는 법에 얽매인 결혼 관계와 인간의 종족 번식을 반대했다. 사드는 오로지 자기 삶의 일차적 목표인 쾌락을 추구하는 일에 집중했다. 『어린 동 쥬앙의 무용담』의 주인공은 하렘(harem) 분위기가 있는 성에 거주하면서 성안의 모든 여성을 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방탕한 여성 편력을 조국의 인구를 늘려주는 애국적인 의무라고 말한다. 주인공의 황당한 생각은 아폴리네르의 초현실주의 희곡 《티레시아스의 유방》 (연극과인간, 2004)에도 나온다. 방탕한 성 생활을 출산과 연관 짓는 주인공의 생각은 자손 번식을 거부하는 사드의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다.  

 

아폴리네르, 라블레 그리고 초현실주의자는 공통으로 ‘인간 해방’을 갈망했으나 자신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범주에 ‘여성’을 배제했다.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부터 시작해서《팡타그뤼엘 제3서》《팡타그뤼엘 제4서》(한길사, 2006)까지 남성 인물들은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아폴리네르의 성애소설에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성적 쾌락을 누리는 여성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여성 인물의 주체적인 정체성을 보여주는 근거로 보기 어렵다. 아폴리네르의 성애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끝내 남성의 쾌락을 위해 희생당하며 쾌락에 미친 남성들의 손에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초현실주의 선언문』에 초현실주의를 ‘남성 명사’라고 적은 내용을 볼 수 있다.[3] 식자층 집단을 지배한 남성은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상식, 관습 등을 부정했으면서도 ‘여성은 열등하다’, ‘여성은 남성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상하로 나뉜 지배 구조를 만들었다. 이 경우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존재는 누굴까?

 

 

 

 

 

[1] 《일만 일천 개의 채찍질》 8쪽

[2]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14쪽

[3] 《초현실주의 선언》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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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2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02 18:53   좋아요 2 | URL
자고 일어나면 나오는 신간도서들이 반갑긴 하지만, 사람들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책이 태반입니다. 북플에 신간도서를 소개하는 분들이 많아요. 재미는 없지만, 저 같은 별난 독서 취향을 가진 놈도 있어야 합니다. ㅎㅎㅎ

sprenown 2017-11-02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리뷰는 읽을때 마다 항상 입이 떡 벌어지네요..도대체 이 해박한 지식과 열정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cyrus 2017-11-02 18:58   좋아요 2 | URL
제 글의 80%는 책에서 나온 것이에요. 제 역할은 책 속의 내용을 추려서 내 입맛에 맞춰서 편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글에 편향과 오류가 있어요. 그것을 확인하고 고치기 위해서 책을 읽어요. ^^

syo 2017-11-02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 올라올 때 보면, 정말 ‘꾼‘인데....^-^b

cyrus 2017-11-02 19:00   좋아요 0 | URL
저는 말 많고, 아는 척하는 지적 허영꾼입니다.. ㅎㅎㅎ

sprenown 2017-11-02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대단해요!

임모르텔 2017-11-02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졸리니 감독의 <살로,소돔의 120일>을 예전에 봤어요. 이 영화를 만든후에 살해당했다고해요.책으로도 읽어보고 싶네요.

cyrus 2017-11-03 20:12   좋아요 0 | URL
악랄하고, 불쾌한 묘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