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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 중력파를 찾는 LIGO와 인류의 아름다운 도전과 열정의 기록
오정근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2월
평점 :
아인슈타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있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우주를 지나가는 빛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휜다는 사실(일반상대성이론)만 알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은 상대성이론을 이용한 시간여행의 가능성 유무다. 물론 시간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온다고 해도 사람들이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특수, 일반을 막론하고 상대성이론을 모른다면 우리는 절대로 우주를 이해할 수 없다. 우주의 기원을 설명해주는 빅뱅 우주론,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통로라 할 수 있는 벌레 구멍(worm hole) 등이 상대성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상대성이론이 맞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빌어먹을(goddamn) 우주의 물결’이 있다. 그것은 바로 ‘중력파(gravitational wave)’다. 아인슈타인이 끝내 찾지 못한 우주에 흐르는 미세한 물결. 세계의 과학자들은 지난 백여 년 동안 중력파를 검출하려 최첨단 장비를 통해 노력했으니 과학자들이 중력파를 ‘빌어먹을 물결’이라고 말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제는 중력파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니 기쁨을 감추지 못한 과학자들은 ‘신의 물결’을 찾았다면서 쾌재를 부를 것이다.[1] 중력파의 발견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을 ‘갓(god)인슈타인’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천재성에 감탄한다. ‘아인슈타인 빠(극성 지지자)’, 줄여서 ‘아빠’는 아인슈타인이 다시 나오기 힘든 천재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과학자임이 틀림없다. 또 상대성이론의 위대성이 입증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빠’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공부하기 전에 반드시 뉴턴의 중력 이론을 알아야 한다.
뉴턴은 땅바닥으로 추락하는 사과에 작용하는 힘, 즉 중력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그는 태양계를 비롯한 천체에 작용하는 중력을 설명하기 위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도출했다. 그러나 뉴턴의 중력 이론은 한계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중력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물체와 중력의 관계를 ‘시공간’ 개념을 도입하여 해석했다. 일반성대성이론은 물체와 중력 그리고 시공간 사이의 관계를 정립한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이 해석한 중력은 물체 주위의 시간과 공간을 결정하며, 그 결과로 물체 주위의 시공간은 굽어지고 휘어진다. 물체가 중력을 받아 운동하는 현상은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1920년 중력의 영향으로 빛이 휘어지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전 세계 과학자와 언론들은 아인슈타인이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뉴턴 물리학을 밀어냈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뉴턴보다 높게 띄우려는 ‘아빠’들뿐만 아니라 뉴턴의 중력이론과 상대성이론의 기초 지식이 잡히지 않은 사람들도 아인슈타인이 뉴턴이 구축한 고전물리학의 시대를 종식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동아시아, 2016)을 펴낸 오정근 씨는 상대성이론의 의의를 뉴턴의 이론의 장점을 포함하는 동시에 그것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이론이라고 설명한다.[2] 저자는 21세기인 지금도 뉴턴 물리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넌지시 알려준다. 뉴턴이 발견한 ‘중력’이 있었기에 아인슈타인은 ‘중력파’를 예측하려고 했다. 중력파는 시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 정신에 있다. 아인슈타인은 ‘거인’ 뉴턴의 머리 위에 함부로 올라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깨 위에 올라섰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상승 열망이 있다. 즉, 내가 목표하는 어느 지점으론가 무조건 오르고 싶은 감정 표현이다. 성공을 향한 열망을 적당히 가진다면 별문제 없으나 명예를 얻고 싶다는 열망이 더해지면 상대방의 비판을 무시하거나 자성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자신이 처음으로 중력파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조지프 웨버(Joseph Weber)가 그런 인물이다. 1969년 웨버는 자신이 고안한 중력파 검출기, 일명 ‘웨버 바(Weber Bar)’를 이용해 중력파를 검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증 결과는 사실이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웨버의 실패를 교훈 삼아 웨버 바보다 성능이 좋은 중력파 검출기를 설치, 가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레이저를 이용한 중력파 관측소 ‘라이고(LIGO)’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라이고 설치에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정부 예산 금액에 불만을 가진 천문학자들은 라이고 설치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고, 여기에 웨버도 가세했다. 웨버는 ‘웨버 바’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은 혼자 보기 아까운 책이다. 뉴턴의 중력이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그리고 중력파까지 쉽게 설명한 이 책보다 더 좋은 과학책이 있을까. 인터넷에 ‘중력파’를 검색해보면 찾기 쉬울 정도로 관련 자료가 수두룩하다.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축복을 받았다. 아인슈타인도 보지 못했던 중력파를 며칠 만에 이해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중력파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중력파 검출기를 가동했다. 8년 동안 중력파 검출기는 총 아홉 차례 가동되었고 기계가 작동된 일수를 모두 합하면 1,378일이다. 천 일 동안 찾기 못했던 중력파는 우리는 책 한 두 권만 읽어도 이해할 수 있다. 중력파 검출기 근처에 살다시피 한 전 세계 과학자들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중력파를 알아두자. 중력파를 이해하는 데 며칠 안 걸린다.
[1] ‘빌어먹을 물결’, ‘신의 물결’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눈치를 챈 과학 덕후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힉스 입자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 과학자들의 여정을 정리한 어느 책 제목의 탄생 비화를 빌려왔다. 책 제목이 《신의 입자》(휴머니스트, 2017). 처음에 책 제목을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라고 정해졌으나 출판사 편집자가 ‘damn’을 빼는 바람에 ‘신의 입자’로 최종 확정되었다. 이거야말로 ‘신의 한수’다.
[2]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