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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8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7월
평점 :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견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것이 있다. ‘우주 개발’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기술력이 뒷받침된다면 달보다는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화성이 우주개발로는 더욱 매력적이라고 한다. 지구에서 나고 자란 자원을 화성의 토양에 이식하고, 그곳에 세워진 도시에 지구인들이 사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꿈같은 얘기지만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인간의 화성 이주계획을 착착 진행 중이다. 우주여행을 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로켓(Rocket)이다. 로켓이라고 하면 우선 미사일(missile)로 대표되는 살상용 무기가 연상된다. 그러나 이런 반인륜적인 도구는 로켓의 기능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사례에 속할 뿐이다. 오늘날 로켓은 우주 개발 사업 발전을 선도해갈 최첨단 고부가가치 기술이다.
그런데 먼 훗날에 우주여행이 가능하고, 화성에 정착할 수 있다고 해도 먹고 살기 바쁜 일반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우주로 향하는 인류의 시대를 동경했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도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브래드버리가 본격적으로 SF를 쓰기 시작했던 4, 50년대나 지금이나 일반인이 로켓을 타고 우주로 갈 가능성은 복권에 당첨될 확률과 같은 엄청난 행운이다. 『R은 로켓의 R(R Is for Rocket)』, 『로켓(The Rocket / Outcast of the Stars)』은 우주여행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단편이다. 하지만 각종 조건에 부합되지 않아 우주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나오며(『R은 로켓의 R』), 로켓을 타는 일은 ‘부자들만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면서 우주여행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로켓』). 작가는 서로 상반된 인물을 배치하여 우주여행이 가능한 미래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다. 『R은 로켓의 R』의 크리스토퍼의 독백은 곱씹어 볼 만한다.
나의 꿈을 생각했다. 달로 가는 로켓. 그 로켓은 더 이상 내 일부가, 내 꿈의 일부가 아니다. 내가 그 로켓의 일부가 될 것이다.
(『R은 로켓의 R』 중에서, 275쪽)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한번쁨은 하늘을 훨훨 날고 우주로 여행하는 꿈을 가진다. 이때 우주와 로켓은 동경의 대상이며 꿈의 일부였다. 하지만 알다시피 모두가 그 꿈을 끝까지 지켜가지는 못한다.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실현하게 된 인간은 지구인이 아니라 ‘우주인’이 된다. 우주인은 로켓과 우주 일부가 되어 푸르른 지구를 바라보면서 생활한다. 그런데 우주인의 행복은 잠시 순간일 뿐이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크나큰 괴리감은 우주 생활에 적응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완벽한 우주인이 되려면 매일 통제된 일상을 살면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린 시절 우주를 동경했던 순수했던 꿈이 점점 희석된다. 『로켓맨(The Rocket Man)』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처럼 삶의 절반을 우주를 위해 바치는 로켓맨이 되지 말라고 당부한다.
지구인이 우주인으로 되어가는 과정 중에 우주를 날고 싶어 하는 욕망은 우주를 경제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욕망으로 탈바꿈한다. 『여기 호랑이가 출몰한다(Here There Be Tigers)』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에 우주와 행성을 ‘지구인들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고 소모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인간 중심주의는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고 인간에게 우월적 지위를 부여한다. 이 말에 들어있는 단어인 ‘자연’ 대신에 ‘우주’를 넣어도 말의 의미는 변함없다. 작가는 우주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행성의 자연환경을 존중하는 인물의 입을 빌려 인간 우월주의를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안개 고동(The Fog Horn)』, 『끝없는 비(The Long Rain)』 이 두 편의 단편소설은 거대한 환경 속에 갇히고, 시간의 힘 앞에서 무력한 살아있는 존재들을 그린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살아있는 존재’는 인간뿐만 아니라 암흑으로 둘러싸인 심해에 숨어 사는 괴물도 포함된다. 공룡을 닮은 괴물은 100만 년 동안이나 숨어 사는데, 괴물의 고독을 달래주는 유일한 대상이 바로 등대에서 울려 퍼지는 ‘안개 고동’이다. 『안개 고동』은 1951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이때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고독이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작가는 인간적인 관점을 뒤집어 심해 괴물도 ‘지구상에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끝없는 비』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혼란과 절망에 빠지는 인간의 감정 상태를 보여준다. 세 명의 우주 탐사 대원은 온종일 궂은비가 쏟아 내리는 열악한 행성인 금성에 갇혀버린다. 그들은 인공 태양이 설치된 돔 구조물을 찾기 위해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비를 쫄딱 맞으면서 걷기만 한다. 결국, 화성의 극단적인 환경이 주는 위압감을 견디지 못한 우주 탐사 대원 한 명은 이성을 잃어버려 미치게 된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아름다운 환상’의 커튼으로 가려진 우주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아름다운 환상’의 커튼이 걷어진 우주는 어떻게든 적응하고 견뎌 내야 하는 막막한 고독의 시공간이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우주 속 지구인을 동경하면서도 그들 곁에 드리우는 그림자도 놓치지 않는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SF는 인간 본연의 고독과 상실감 등 심리 탐구에 집중한다. SF는 이렇게 의외로 철학을 그리기도 하며 독자들에게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레이 브래드버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