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문제의 시대 - 젠더와 교육의 정치학
다가 후토시 지음, 책/사/소 옮김 / 들녘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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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젠더(Gender)’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로 급상승했다. 그 이유가 젠더 폭력의 뜻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이 입방아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자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은 요즘 세상은 성 평등을 넘어 여성 우월 시대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사람은 당 혁신위원회가 주최한 한국 정치 : 마초에서 여성으로여성 정책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상황에 문제의 발언을 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으면 애초에 토크콘서트 제목을 자유한국당 정치 : 마초에서 마초 킹으로라고 정했어야 했다.

     

홍 대표의 발언에 공감하는 네티즌들이 적지 않다. ‘젠더 폭력이 언제부터 일반 상식이 되었느냐고 따지는 네티즌이 있는가 하면, 메갈리안과 페미니스트들이 만든 신조어또는 은어를 왜 알아야 하느냐고 비난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사람들이 젠더 폭력을 모른다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정말로 페미니스트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진지하게 비판하고 싶다면 최소한 젠더같은 용어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젠더젠더 폭력은 최근에 만들어진 신조어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서구권 페미니스트들이 사용했던 용어가 우리나라에 늦게 알려졌다.

     

홍 대표의 발언도 문제 있지만, 그보다 심각한 것은 류 위원장의 발언이다. 류 위원장의 발언은 페미니즘을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담론으로 만드는 위험한 프레임(Frame)이다.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 사상이 아니며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여성운동의 대상은 여성과 남성 모두 포함된다.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여성이 그 정당한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여성운동을 펼치는 것은 예민하거나 별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에 반감을 보인 일부 남성들은 우리 사회가 이미 여성 상위시대라며 역차별을 호소한다. 이미 남성 역차별이 문제가 되었다는 인식은 일베 등의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대두했다.

     

젠더 문제와 교육을 접목시키고, 남녀평등교육에 주목한 일본의 교육가 다가 후토시의 정의를 빌리자면 우리 사회는 남자문제의 시대에 들어섰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남자 문제가 거론됐다. 남성들보다 학업과 업무성과, 리더십 등에서 월등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의 영향력이 거세지면서 상대적인 '열등감'에 시달리는 남성들이 생겨났다. 일본 사회에 직업이 없고,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니트(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Training)이 얼굴을 내밀었다. 니트족이 일본 사회의 큰 문제로 떠오르게 되자 니트족 남성들을 여성을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페미니즘의 등장으로 밀려난 피해자로 인식한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남성 위기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림으로써 여성을 적대시한다.

     

그러나 다가 후토시는 남자를 여성보다 못한 사회적 약자로 거론되는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일본 사회는 철저히 남성우위의 사회[1]라고 말한다. 그는 여성과 페미니즘에 반감을 느끼는 편견속에 은폐된 남자를 불리하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를 검토하고, 남성우위체제를 무리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가 강요한 남성성의 부작용을 지적한다. 다가 후토시는 남녀 모두 남녀 권력의 비대칭성 문제에 고통받는다고 주장한다. 여권이 신장하면서 역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남성, 여전히 남성이 유리한 사회에 소외당한다고 느끼는 여성 모두 남성여성이라는 고정 틀에 맞춰진 젠더 규범과 남성이 사회적 주도권을 잡도록 강제하는 사회적 압력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고, 일자리 기회가 높아지게 된 원인을 단지 페미니스트들의 여권 신장 운동이 맺은 결실로만 볼 수 없다. 남자의 일자리 기회가 줄어들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근대 사회의 산업 구조는 남성의 노동을 능력으로 인정해주었다. 이때 여성은 일할 능력이 있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노동 가치를 낮게 바라봤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서비스 산업의 확대로 여성의 고용 노동 수요가 높아졌다. 과거처럼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 거로 믿었던 남성들은 시대적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능력주의적 경쟁이 펼쳐지는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밀려나는 상황에 불안감을 느낀다. 따라서 남성의 고용 불안정 원인을 여권 신장과 이에 기여한 페미니스트 탓으로 돌리고, 남성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가 후토시를 페미니즘 진영으로 분류하면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는 고정적 · 비대칭적 남녀의 존재양태의 문제점을 하며 남녀 개인이 자유롭게 기회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을 막는 사회적 규제에 반대한다. 그렇지만 다가 후토시는 젠더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들, 젠더 자유주의(자유주의 페미니스트가 지향하는 입장)’젠더 평등주의(한쪽 성이 불리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 때문에 남녀 권력의 비대칭성이 발생한다는 입장)’을 비교하면서 각각 입장의 장단점을 균형 있게 설명했다. 젠더 자유주의와 젠더 평등주의는 공통으로 남성이 월등한 우위에 있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다만 문제의 원인을 접근하는 시선은 다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일본 사회와 비슷한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 한국 남성의 고용 불안정 원인을 무조건 여성에게만 전가할 수 없다. 남성들에게 제공할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 구조와 정책에 더 큰 책임이 있다. 페미니스트를 싫어하는 남성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유리 천장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사회도 철저히 남성우위의 사회이다. 결국, 남녀 모두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일자리 파이를 가지고 티격태격 싸우면서 네 탓 공방을 벌이는 것은 서로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무의미한 일이다.

 

 

 

 

[1] 다가 후토시 남자문제의 시대,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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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1 0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21 12:43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평등‘에 너무 초점을 맞추면 분명 한쪽 성별이 불리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양성평등‘을 둘러싼 젠더 자유주의와 젠더 평등주의의 입장이 다릅니다.

블랙겟타 2017-09-21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사두기만 하고 아직은 안읽어봤는데 cyrus님께서 잘 정리해주셔서 직접 읽고싶은 마음이 더 생겼네요.

cyrus 2017-09-21 12:44   좋아요 2 | URL
이 책에 유용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제 리뷰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양성평등교육‘의 한계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책에 《남성성/들》을 인용한 내용도 있습니다. ^^

AgalmA 2017-09-21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능의 우월에 대한 논의는 늘 논란을 양산하긴 하지만 교육이 확대되면서 여성의 취업률이 늘어나고 사회진출이 높아진 건 통계적으로 사실입니다. 남성이 기득권을 차지하며 여성까지 라이벌로 두지 않기 위한 사다리차기가 많았다고 봅니다. 여성이 대학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전세계적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학계나 연구 과정 들어가는 건 더 어려웠고요.
이런 경제적 사회 기반적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군대 문제가 끝없이 대두되는 것이죠. 불평등하며 권리를 뺏기는 거라는 아우성이 나올 만하죠. 예전엔 남성이 군대 다녀오면 대학 졸업한 여성은 취업해있는 상태가 왕왕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임금불평등, 성적 차별 그런 건 또 보지 않죠. 다들 자기 이익과 권리를 따지다보니 간과하는 게 너무 많아요.

그나저나 요즘은 유명세 타고 코미디 보여주려면 코미디언 되는 거보다 정치인되는 게 더 나은 듯? 홍이나 트럼프 보면...

cyrus 2017-09-22 20:08   좋아요 2 | URL
UN 연설을 ‘아무말 대잔치‘로 만들어버린 트럼프. 역시 클라스는 다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