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주인님!”
검은색 원피스, 흰색 두건에 흰 앞치마를 두른 하녀 복장의 종업원이 카페 문을 열며 인사한다. 오타쿠의 성지로 유명한 도쿄 아키하바라(Akihabara, 秋葉原)에 여러 개의 메이드 카페(Maid cafe)가 들어서 있다. 메이드 카페는 코스튬플레이 레스토랑(Costume play restaurant)의 일종이다. 유럽풍 하녀 복장을 입은 종업원들이 손님을 극진히 대한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메이드 카페가 들어선 적이 있다. 그러나 부정적 시선이 만만치 않다. 성 상품화 등을 이유로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낸다. 아무리 좋게 봐도 여성을 눈요깃감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을 피하긴 힘들다.
* 이케가미 료타 《도해 메이드》 (AK커뮤니케이션즈, 2010)
하녀를 뜻하는 ‘메이드’라는 단어 자체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메이드는 ‘여성 사용인(Maid servant)’, ‘가정부(housekeeper)’를 의미한다.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는 메이드 전성기였다. 상류층 사람들은 안락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다양한 가사 일을 전담하는 사용인(집사, 하인, 마부, 보모, 가정부, 하녀 등)을 고용했다. 경제 소득이 늘어난 중류 계층 사람들은 상류층 사람들처럼 호화롭게 살고 싶어 했다. 중류층 사람들도 사용인을 고용하게 됐다.
가사 사용인으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하층 사람들이다. 하류층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한정되었다. 잡일이나 바느질일, 공장 노동 같은 육체노동에 종사했다. 그나마 가사 사용인이 하류층 여성들에게는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가사 사용인으로 일하게 되면 먹을 것과 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하녀가 해야 하는 일이 아주 많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하고, 커다란 저택 내부를 청소한다. 사용인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직업이 집사와 가정부다. 이들은 고용주를 보좌할 뿐만 아니라 남녀 사용인의 노동을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사와 가정부는 안주인의 지시를 받고, 하녀에게 지시받은 업무를 하달한다.
* 《셜록 홈즈의 모험》 (구판, 시간과 공간사, 2002)
* 《셜록 홈즈의 모험》 (2판, 황금가지, 2015)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현대문학, 2013)
* 《셜록 홈즈의 모험》 (동서문화사, 2003)
* 《셜록 홈스의 모험》 (엘릭시르, 2016)
* 《셜록 홈즈의 모험》 (문예춘추사, 2012)
* 《셜록 홈즈의 모험》 (개정판, 코너스톤, 2016)
* 《셜록 홈즈의 모험》 (구판, 더클래식, 2012)
* 《셜록 홈즈의 모험》 (개정판, 더클래식, 2014)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의 친구 존 왓슨(John Watson)은 의사 일로 충분히 먹고살 만한 중류층에 속한다. 그와 메리 모스턴(Mary Morstan)과 함께 사는 신혼집에도 하녀가 있었다. 홈즈가 처음 등장한 첫 번째 단편소설 『보헤미안의 스캔들(A Scandal in Bohemia)』에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왓슨은 홈즈와 함께 살던 베이커가 221B 하숙집을 떠나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는 행복한 신혼생활을 한다. 그래도 홈즈의 근황이 궁금할 때마다 하숙집을 방문한다. 홈즈는 오랜만에 하숙집을 찾은 왓슨의 복장을 관찰하면서 추리한다.
“얼마 전에 비를 많이 맞았고, 자네 집에는 몹시 솜씨 없고 조심성 없는 가정부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네.”
“이것 봐. 자네한텐 못 당하겠어. 사실, 목요일에 시골길을 가다가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왔네. 그러나 옷도 갈아입고 했는데 어떻게 그런 추리를 했지? 그리고 가정부 메리 제인에게는 두 손 들었다네. 아내도 고개를 저으면서 곧 내보내야겠다고 하더군.”
(《셜록 홈즈의 모험》, 시간과공간사-구판, 13쪽)
홈즈는 왓슨의 구두만 보고 메리 제인(Mary Jane)이 ‘몹시 솜씨 없고 조심성 없는 하녀(a most clumsy and careless servant girl)’라는 점을 알아낸다. 메리 제인의 직업은 ‘servant girl’이다. 사실 ‘servant girl’은 ‘하녀’로 번역해야 한다. 가정부는 가사 경험이 풍부한 여성이다. 메리 제인이 몇 살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지위를 생각하면 확실히 젊은 나이는 아니다. 나이 많고, 가사 경험이 풍부한 하녀가 가정부 지위에 오를 수 있다. 왓슨의 구두를 닦는 일은 하녀가 담당하는 잡일 중 하나다.
셜로키언(Sherlockian)이라면 런던 베이커가 221B 하숙집 주인이 누군지 모를 리가 없다. ‘허드슨 부인(Mrs. Hudson)’은 괴팍한 성격의 손님인 홈즈를 너그러이 이해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보헤미안의 스캔들』에서 홈즈는 하숙집 주인을 ‘허드슨 부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 원문 :
“When Mrs. Turner has brought in the tray I will make it clear to you. Now,” he said as he turned hungrily on the simple fare that our landlady had provided.
* 시간과공간사 (구판, 33쪽) :
“터너 부인이 식사를 준비하면 이야기하지.” 그는 부인이 준비한 간단한 식사를 들면서 말을 이었다.
* 황금가지 (2판, 35쪽) :
“허드슨 부인이 음식을 가져오면 그때 자세히 말해 주지. 저기 오는군.” 홈즈는 말하고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가져다준 간소한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 현대문학 (주석판, 110쪽) :
“터너 부인이 음식을 갖다 놓았으니, 슬슬 먹으면서 얘기할게.” 그는 우리의 하숙집 주인이 차려준 소박한 음식에 게걸스럽게 달려들었다.
* 동서문화사 (32~33쪽) :
“터너 아주머니가 식탁을 준비하고 나면 이야기하지.” 그는 하숙집 여주인이 차려준 간단한 식사를 급히 먹으면서 말을 이었다.
* 엘릭시르 (35쪽) :
“터너 부인이 음식을 가져다주었으니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지.” 홈스는 하숙집 주인이 가져다준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 문예춘추사 :
“터너 부인이 음식을 가져오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네.” 홈즈는 부인이 가져온 간단한 요리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며 말을 했다.
* 코너스톤 (개정판) :
“터너 부인이 음식을 갖다 놓았으니 이제 더 자세히 말해줄게.” 허기가 많이 졌던지 주인아주머니가 간단히 차려준 한 끼에 맹렬히 달려들며 홈즈가 말을 이었다.
* 더클래식 (구판, 개정판) :
“허드슨 부인이 음식을 가지고 오면 자세히 알려 줄게. 저기 왔군.” 홈즈는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가지고 온 음식을 허겁지겁 입속에 밀어 넣었다.
허드슨 부인은 어디 가고, 어째서 이름이 낯선 ‘터너 부인’이 식사를 준비하는 걸까? 홈즈 연구가와 셜로키언 들은 ‘터너 부인’의 정체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을 내놓는다.
첫 번째 가설 :
홈즈가 맡은 사건을 글로 기록한 왓슨의 실수다.
두 번째 가설 :
터너 부인이 부재중인 허드슨 부인을 대신해 잠시 일을 해준 것이다.
세 번째 가설 :
터너 부인은 하숙집에서 일하는 하녀다. 그녀의 고용주는 허드슨 부인이다.
네 번째 가설 :
‘터너’는 허드슨 부인이 홈즈와 밀회를 즐길 때 사용한 가명이다.
다섯 번째 가설 :
아이린 애들러(Irene Adler)가 변장한 가짜 인물 혹은
홈즈의 강적 제임스 모리어티(James Moriarty)가 보낸 스파이다.
허드슨 부인이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이 홈즈 시리즈의 두 번째 장편소설 《네 개의 서명》(The Sign of Four)이다. 이 소설 발표 이후에 나온 작품이 『보헤미안의 스캔들』이다. 작가 코난 도일(Conan Doyle)이 하숙집 주인의 이름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두 번째 가설과 세 번째 가설을 지지한다. 터너 부인은 허드슨 부인이 고용한 하녀이고, 그녀가 잠시 허드슨 부인을 대신해 임시로 하숙집 주인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허드슨 부인은 중류층 여성이다. 그녀의 경제적 수준이라면 충분히 하녀를 고용할 수 있다. 하녀의 일은 업무에 따라 세분되어 있다. ‘주방 하녀(Kitchen maid)’는 항상 주방에서 일해야 한다. 주방 하녀는 주방에서 식재료를 준비하고, 음식 만드는 일을 한다. 가끔은 완성된 음식을 고용주의 식탁 위에 차리는 일도 했을 것이다. 허드슨 부인이 홈즈와 왓슨을 위해 차린 음식들은 터너 부인이 직접 만든 것일 수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한 열망이 컸던 상 · 중류층 여성들은 집 밖으로 나가서 여가 생활을 즐기길 원했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이 바라던 이상적인 삶은 ‘일을 하지 않고, 여유롭게 사는 것’이었다. 허드슨 부인은 19세기 중기 중류층 여성들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마다 외출하고, 쇼핑을 즐겼을 것이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보면, 허드슨 부인은 ‘백인 중산층 여성’이다. 같은 여성일지라도 사회 계급에 따라 맞닥뜨리는 상황이 달랐으며 그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은 심각했다. 19세기 후반에 상 · 중류층 여성을 중심으로 여성의 사회적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했지만, 빈곤층 여성들의 삶에 결코 와 닿지 않는 ‘그녀들만의 목소리’에 불과했다.
남녀 불문하고 누구나 고용주의 위치에 오르면 사용인을 당장 해고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아마도 왓슨과 메리 모스턴은 새로운 하녀를 고용하기 위해 하녀 메리 제인은 쫓아냈을 것이다. 실직자 메리 제인의 미래가 어둡기만 하다. 그녀가 하녀 일을 원한다면, 또 다른 고용주가 자신을 선택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녀 일을 구하지 못하면 공장에 들어가야 한다. 정말 궁핍한 생활을 해야 하는 그녀가 딱하다. 왓슨과 모스턴이 하녀의 어려운 형편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