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호크니 《명화의 비밀》 (한길아트, 2003)

* 진중권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휴머니스트, 2005)

 

 

 

영국의 팝 아트(Pop Art)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15세기 유럽 화가들이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는 주장을 제기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페르메이르(Vermeer)앵그르(Ingres)의 극사실적 묘사에 의문을 제기했다. 어떻게 해서 ‘사진과 같은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호크니는 화가의 옛 거장들의 비법을 알아내려고 분석했다. 그 결과, 그는 광학 장치(거울, 렌즈, 카메라 옵스쿠라)에 능숙한 화가들은 사실적이며 섬세한 묘사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의미한다. 화가는 빛이 차단된 어두컴컴한 방 안에 들어가 눈으로 보기 힘든 내밀한 세상을 바라봤다. 빛이 차단된 커다란 상자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바깥의 상이 상자 반대편 벽면에 거꾸로 맺혀진다. 화가는 구멍 안으로 들어온 빛이 만든 형상을 베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가들은 이곳저것 떠돌아다니면서 그리고 싶은 대상 또는 장소를 물색한다. 그런데 거대한 카메라 옵스쿠라를 이리저리 옮길 수 없다. 화가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 바로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이다. 거울과 프리즘을 이용해 물체의 상을 화면에 비추게 하는 장치이다. 화가는 렌즈에 보이는 형상을 종이 위에 그릴 수 있었다.

 

 

 

 

 

 

 

 

 

 

 

 

 

 

 

 

 

 

* 장 뤽 다발 《사진예술의 역사》 (미진사, 1991)

* 윌리엄 A. 유잉 《몸》 (까치, 1996)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는 1859년에 발표한 평론 글에 사진에 대해 불쾌한 반응을 드러냈다. 이 글의 요지는 이렇다. ‘사진을 예술의 한 분야로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보들레르는 회화란 자연을 완벽히 복사할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이지만, 사진이 자연을 복사하는 것은 창조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엥? 그림은 자연 모방이 되고, 사진은 안 된다? 보들레르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논리이다. 보들레르는 사진을 ‘예술의 한 분야’가 아닌 ‘공업의 한 분야’라고 봤다. 사진의 등장으로 예술이 파멸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한다. 장 뤽 다발은 보들레르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를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고 꼬집어 말한다. (《사진예술의 역사》 104쪽)

 

 

 

 

 

보들레르의 전망은 틀렸다. 사진의 등장으로 인상주의 미술이 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자연을 완벽히 모방하는 사진술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진을 자신의 경쟁자로 생각했고, 밥벌이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변화의 흐름을 예술의 위기가 아닌 새로운 예술로 지향할 수 있는 돌파구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자연의 모방이 아닌 조형적 입장에서 형태나 색채의 자유로움을 구현하였다. 에드가 드가(Edgar De Gas)는 말년에 조각 제작과 사진 촬영을 병행했다. 펠릭스 나다르(Felix Nadar)는 친구 보들레르의 초상 사진을 남겼으며 1874년에 열린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의 장소는 나다르의 개인 작업실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사진기가 없었던 시절에 귀족들은 화가에게 초상화 제작을 의뢰했다. 그런데 그림값을 내는 능력이 없는 중산층 사람들은 사진가에게 초상 사진을 의뢰했다. 초상 사진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커질수록 화가들은 미래에 불안을 느꼈고, 생계유지를 위해 사진 찍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화가에서 사진가로 직업을 바꾼 사람들은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 회화의 고전적 주제를 모방한 사진 작품을 남겼다.

 

 

 

 

 

영국 출신의 오스카 구스타브 레일랜더(Oscar Gustave Rejlander)는 회화주의 사진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그는 원래 화가였다. 레일랜더의 사진 작품 『화가에게 붓 한 자루를 더 주는 아기』는 고전 회화의 양식과 흡사하다. 화가들은 종종 뮤즈(Muse)가 예술적 영감을 불어 넣는 장면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화가의 손에 붓을 건네주는 아기는 ‘어린 뮤즈’이다. 하지만 이 사진을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관람객들은 레일랜더의 의도를 거부한다. 사진 작품을 고전 회화를 어설프게 흉내 낸 복제품으로 생각한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실제 인간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거부했고, 화가나 조각가가 묘사한 이상적인 인간상을 선호했다. 하여튼, 이 시대 사람들의 이상한 편견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 아서 코난 도일 《주홍색 연구》 (황금가지, 2002)

 

 

 

시대가 변하면서 사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인물 사진의 수요가 증가했다. 유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사진 모델이 될 수 있었다. 이때 ‘직업 미인(professional beauties)’으로 알려진 여성들이 등장했다. '직업 미인'의 사진은 남자들이 선호했고, 남자들이 항상 들고 다니는 담뱃갑 표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직업 미인’을 언급하거나 상세한 소개를 한 책이 많지 않다. 윌리엄 A. 유잉의 《몸》 282쪽에 잠깐 언급되어 있다. 홈즈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주홍색 연구》에서 셜록 홈즈(Sherlock Holmes)가 직접 이 단어를 언급한다. (참고 : [질투심 많은 직업여성] 2017년 5월 25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9358530)

 

‘직업 미인’이 등장한 사진들이 예술적인 감각을 반영했어도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특히 포르노 사진의 등장은 누드화를 그린 화가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들레르는 포르노 사진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포르노 사진이 사람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더욱 부추기는 외설적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많은 사람들이 굶주린 눈길로, 무한으로 열린 다락방의 창밖을 내다보듯이 만화경의 구멍 위에 몸을 굽히고 그 안을 들여다본다. 자신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사람들의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사랑은 자기만족의 절호의 기회를 놓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포르노그래피에 넋을 빼앗겼다.

 

(보들레르의 「현대의 대중과 사진」 중에서, 윌리엄 A. 유잉 인용, 《몸》 206쪽)

 

 

사진은 탄생일이 분명한 예술 분야이다. 다게르(Daguerre)가 만든 은판사진술이 1839년에 발명품으로 공식 인정받은 뒤 사진은 화가들의 습작 활동을 돕는 역할을 했다. 화가들은 사진이 혁신적인 발명품이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고, 사진을 회화의 한 단계 아래로 봤다. 보들레르처럼 자연을 완벽히 모방하는 사진기술을 인정하지 못했다. 사진기술이 점점 발달하고, 사진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전문 사진작가들이 활동하기 시작했고, 사진도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았다. 일상의 소품은 예술 작품의 재료로, 평범한 사람은 예술 창조의 주체가 된다. 이처럼 오늘날의 예술은 '고급스러운 품격'과 거리가 멀다. 예술가와 시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교류하는 일상예술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상예술에 가장 근접한 분야가 사진이다. 사진이 너무 친숙한 탓일까, 아니면 사진을 가볍게 보는 인식이 문제일까. 프로와 아마추어 불문하고 사진가의 작품을 도용하고, 허락 없이 공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진 도용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진을 '사진가의 노력과 열정이 스며든 작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진 한 장 조차도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예술 작품‘으로 생각한다면, 누구도 함부로 도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이 찍은 사진 한 장 달랑 올려놓고 자신의 게시물인 척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사진에 무지한 나도 화가 난다. 알라딘 서재에도 그런 사람이 있던데…‥ 매일 인터넷에 떠도는 남의 사진을 출처 없이 올리니까 마음이 뿌듯하십니까? 하긴 몇 시간 투자해서 글 쓰는 것보다 남의 사진 한 장 몇 분 만에 올리는 것이 더 편하겠지.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7-05-27 2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요즘 cyrus님 글은 ‘기-승-전- 홈즈‘입니다. 2017년을 ‘홈즈의 해‘로 보내실 기세군요.^^:

cyrus 2017-05-28 01:29   좋아요 3 | URL
제가 한 작가의 전작 읽기를 달성한 일이 잘 없어요. 초반에 열심히 읽기 시작해요. 여기까진 좋아요. 전작 읽기를 시도한지 3주 지나면 슬슬 흥미가 떨어져요. 한 작가의 책만 계속 읽는 일이 쉽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지겹습니다. 다른 작가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

dellarosa 2017-05-27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더니스트 보들레르가 사진예술을 폄훼하는 모습이 흥미롭네요. ^^

cyrus 2017-05-28 01:35   좋아요 2 | URL
저도 최근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1859년에 발표된 평론’이라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 번역문은 찾지 못했어요. 보들레르의 미술 평론이 번역되긴 했는데, 사진을 부정하는 글이 그 평론의 일부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

2017-05-28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28 03:02   좋아요 3 | URL
북플의 댓글 알림을 확인하자마자 ***님의 댓글을 읽었습니다. ***님이 댓글에 첨가된 내용도 확인했습니다. 제가 원래 심야시간에는 서재 접속을 하지 않아요. 그런데 ***님의 댓글을 여러 번 읽으니까 생각이 많아졌어요. 답글을 어떻게 써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혹시 제 답글의 문장에 비문이 있어도 이해해주세요. 비밀 댓글의 답글은 ‘공개 상태‘로 하겠습니다. 답글을 공개한 이유는 제가 저지른 실수나 문제점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 실수를 공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님의 댓글을 보면서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어요. qualia님은 가끔 제 글에 있는 어색한 문장 한두 가지 알려주는 분입니다. 그 분은 공개 댓글을 남기는데, 기분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분의 지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qualia님을 여기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알라딘 서재에 상대방의 글이나 댓글을 꼼꼼하게 보는 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qualia님을 포함한 총 다섯 분입니다. 이 다섯 분에 당연히 ***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독까지는 아니지만, 평소에 ***님의 글을 보면서 ***님도 글을 꼼꼼하게 읽는 성격일 것이라고 주관적으로 판단했었는데, 다행히 제 생각이 맞았군요.

글 한 편을 완성하면 항상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를 합니다. 절대로 한두 번만 하지 않습니다. 제가 마음에 들 때까지 열 번 이상은 검사합니다. 그래도 끝내 고치지 못한 문법이 하나쯤 있기 마련입니다. 다음 날에 어제 쓴 글을 다시 읽습니다. 어제 보지 못했던 비문이 보여요.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저는 이 과정이 한 편의 글을 남기기 위한 루틴(routine)으로 생각합니다.

***님이 지적한 비문은 ‘문법 검사기’가 발견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정확히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답글을 다 쓰고 난 뒤에 수정하겠습니다. 허술한 제 글을 오랜 기간 동안 참고 읽으셨다는 말씀에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글을 계속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면 조금이라도 잘못된 문법을 사용하는 악습이 고쳐질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님의 의견을 듣고 보니 제가 착각했습니다.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바른 문장을 쓰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인데 제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글 쓸 때 나타나는 악습이 금방 고쳐질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퇴고할 때 좀 더 꼼꼼하게 확인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제 글을 애독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애독’의 의미는 ‘정독’입니다. 제 글은 북플의 기능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북플로 짧은 글을 금방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런데 제 글의 분량이 길어서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기 불편해요.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으면 시력에 악영향을 줍니다. 저는 제 글을 좋게 보는 분들에게 꼭 이런 말을 합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재미없고 긴 글을 읽지 말아 달라고요. 정말로 정독을 하는 분이라면 ***님처럼 쓴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글을 제대로 읽지 않고 쓴소리하는 분도 있어요. 처음에 제가 언급한 다섯 분 모두 좋은 의도로 제게 쓴소리를 합니다. 저는 잊을 만하면 실수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다음에 제가 또 실수를 하면 참지 말고 알려주세요. 제 답글을 인용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인용문은 셜록 홈즈의 말입니다.


“왓슨, 만일 내가 능력을 과신한다거나, 최선을 다해야 마땅한 사건을 건성으로 다루려고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 부디 내 귓전에 ‘노버리’라고 속삭여줘. 그래 주면 정말 고맙겠어.” (《셜록 홈즈의 회고록》의 단편 ‘노란 얼굴’ 마지막 문장, 현대문학 121쪽)

2017-05-28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28 11:24   좋아요 1 | URL
이 글의 결말이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님도 공감하실 거라 믿습니다. ^^

AgalmA 2017-05-28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샤를 페로는 『예술의 종류』에서 여덟가지 ‘순수예술‘로 웅변술, 시, 음악, 건축, 그림, 조각, 광학, 기계공학을 꼽았다. 프랑스에서는 17세기 말까지 광학과 기계학은 회화 및 조각과 같은 범주로 여겨졌다.
1746년에 아베 바퇴가 자신의 영향력 있는 논문 『하나의 원리로 통일된 순수예술』을 출판하면서 순수예술 - 음악과 시, 그림, 조각, 무용 -을 일상기술과 분리했다. 바퇴의 체계는 18세기말 유럽 사회에 널리 퍼졌다. 유명한 1751년의 『백과전서』와 그 후에 나온 재판再版들에서 바퇴와 순수예술 체계는 명시적으로 승인되었다.˝
ㅡ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중.

위 인용을 보듯이 예술의 정의는 특정 시대의 분류였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유동적이죠. 보들레르 경우 예술은 ‘천재가 만든 창작‘이라는 당시 낭만주의 풍조 때문에 더 저렇죠^^

cyrus 2017-05-29 06:29   좋아요 1 | URL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순수예술‘의 의미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어요. 보들레르는 사진을 ‘순수예술‘에서 분리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의 안목이 짧았어요. 사진이 회화에 영향을 준 것을 생각하면 사진도 ‘예술‘의 범주가 될 수 있는데, 사진과 회화를 별개의 분야로 보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일부 미술 연구가들은 호크니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호크니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회화를 ‘천재(거장)이 만든 창작‘이 탄생되는 분야로 생각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