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월 바다 ㅣ 창비시선 403
도종환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평점 :
Scene #1
밥을 먹어야만 끼니를 제대로 해결한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종종 면발이 당기는 날이 있다. 식당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즉석에서 말아주는 국수를 먹는 것은 소박한 즐거움이다. 나름대로 의미가 담긴 잔칫집에서의 국수는 어떤가. 생일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혼례 때는 부부가 해로하라는 의미로 대접하는 국수를 마다하는 사람은 없다. 겨우내 곰삭은 묵은 김치를 쫑쫑 썰어서 참기름 넣고 버무려 국수 위에 올려놓아 먹으면 입안이 개운해진다.
국수의 맛이 최고라는 생각하는 것은 입안에 감도는 그 ‘맛’이 아니다. 맛있는 국수를 먹을 때 마음속까지 아련해지는 것은 옛날에 여러 사람과 함께 국수를 먹으면서 느꼈던 ‘정(情)’ 때문이다. 소찬이지만 둘레 상에 모여앉아 젓가락을 움직이며 나누는 국수에는 서로를 아우르고 위로하는 힘이 있다.
끊어오르며 소용돌이치던 것들을
찬물에 헹구어 채반 위에 얹어놓고 나니
마음도 국수 타래처럼 찬찬히 자리를 틀고 앉았습니다
애호박을 싸박싸박 채 썰어 밀어놓는 동안
마음 한쪽이 그렇게 소리를 내며
잘려나가는 듯한 초저녁
묵은 김치를 더 잘게 썰어 얹어 한그릇의
국수를 비우는 동안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녁산 위로 짙은 쪽빛의 시간이
잉크처럼 번져 내려오듯
무어라 이름 지을 수 없는 아릿한 것이
명치끝을 타고 내려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승에서 이렇게 애틋함과 슬픔을
한그릇씩 나누어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찔레꽃에게 말하고
한세상 사는 동안
좋은 사람과 함께 호젓한 풍경이 되어
저물 수 있던 날을 고마워하며
찬물에 젓가락을 씻어 물방울을 털어내다가
잠시 뼈와 살 사이가 시큰해졌습니다
(『어느 저녁』 중에서, 14~15쪽)
도종환 시인의 『어느 저녁』에서 차려진 국수는 평등한 음식이다. 나도 한 그릇, 너도 한 그릇. 누구에게나 평등한 음식이어서 좋다. 굳이 여유를 부리지 않아도 좋은 사람과 한 몸이 되어 말없이 국수를 먹다 보면 그것이야말로 어떤 위로의 말보다 큰 위안이 된다.
Scene #2
인생의 본질은 니체(Nietzsche)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운명에 대한 사랑, ‘아모르파티(amor-fati)’다. 운명에 대한 사랑이란 단순히 체념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내 운명이라면 당당히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위버멘쉬(Übermensch)는 타고난 운명에 순응하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운명을 재창조하기 위해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이전과 다른 나를 부단히 재창조하는 인간상이다.
모래벌판으로 난 길과 낙타들의 행렬을 따라가다
오늘 수첩을 꺼내 아모르파티라고 적는다
오라 운명이여
한낮의 모래언덕과 초저녁의 푸른 초승달과
내게 오는 운명을 사랑하리라
세상은 오래도록 모래와 바람이 휘몰아치며
열사의 뜨거움과 밤의 냉기가 충돌하는 곳
쓰러질 때까지 내 운명을 지나가리라
선택하고 뉘우치고 또 나아가리라
(『아모르파티』 중에서, 58~59쪽)
『아모르파티』의 화자는 현재의 정체성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Zarathushtra)를 닮았다. 그는 살아가면서 무엇을 위해서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멈춰 서서 성찰한다. 우리는 흔히 목적의식 없이 사는 사람을 한심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목적이 있어야 방향감을 잃지 않고 매진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목적으로 바라보면 그 순간부터 목적 이외에 다른 가능성을 볼 기회를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 모든 사물과 사람에게 목적의식을 부여하면 그 목적 이외에 다른 목적으로 그 사람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문이 닫혀버린다. 삶은 우연한 마주침의 연속이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숱한 고뇌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현실적 삶에 거리를 두는 성찰의 시간이다.
Scene #3
세상은 지난 4월 16일에 멈춰버린 괴로운 순간을 털고 일어서자고 한다. 일각에서는 ‘유독 세월호 희생자들에게만 과도한 슬픈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냉소적인 의견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러나 내 의견은 다르다. 우리가 남의 일인 사고로 인해 슬픔을 느꼈다면, 그 슬픔은 단순히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수준을 넘어 본인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감정이입이 된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느끼는 슬픔을 조금은 털어내고 냉철히 현상을 짚어보는 것은 맞다. 하지만 슬픔을 느끼는 것 자체를 집단적 무기력 증세로 보고, 이를 금기시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매년 4월이 다가올 때마다 느끼는 슬픔은 ‘화인(火印)처럼 찍혀 평생 남을 아픔’이기도 하다.
비 올 바람이 숲을 훑고 지나가자
마른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떨어져내렸다
오후에는 먼저 온 빗줄기가
노랑붓꽃 꽃잎 위에 후두둑 떨어지고
검은등뻐꾸기는 진종일 울었다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
자식 잃은 많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가 쓰러지고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도
그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슬피 울었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섬 사이를 건너다니던 새들의 울음소리에
찔레꽃도 멍이 들어 하나씩 고개를 떨구고
파도는 손바닥으로 바위를 때리며 슬퍼하였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남쪽 바다에서 있던 일을 지켜본 바닷바람이
세상의 모든 숲과 나무와 강물에게 알려준 슬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을 아픔이었다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
(『화인(火印)』, 114쪽)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는 일은 집단적 슬픔 · 애도의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계기’였을 뿐이다. 세월호 사고와 연관된 각종 문제점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극우 세력은 세월호 사고라는 하나의 사건이 갖는 사회성을 부정한다. 희생자에 향한 애도하는 행위마저 이념의 색깔을 입혀 깎아내린다. 그들의 시각은 너무나도 오만하다. 우리는 슬퍼하고 추모할 자유가 있다. 잠깐의 슬픔 후에 다시금 일상으로 걸어 들어가 숨죽이며 사는 것도, 그 슬픔을 딛고 느낀 바대로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어 행동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이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우리가 느낀 대로 고인들을 추모하는 자유를 당신들이 손가락질하면서 왈가왈부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