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을까?’ 1971년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 쓴 글의 제목이다. 그녀는 예술이란 오로지 천재적 재능을 지닌 한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탄생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 환경과 교육제도 때문이다.

 

 

 

 

 

 

 

 

 

 

 

 

 

 

 

* 《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 게릴라걸스, 마음산책 (2010년)

 

 

미국에서 고릴라 가면을 쓴 채 활동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그룹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누드화의 85%가 여성’이라고 지적했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중 여성 미술가들이 제작한 작품은 불과 5%에 불과했다.

 

 

 

 

 

게릴라 걸스는 이를 비꼬기 위해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벌거벗어야 하는가?(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the Met. Museum?)”라는 문구가 있는 포스터를 내걸었다.

 

예술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미술가들은 눈부신 재능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하고, 연인이거나 라이벌격인 남성 예술가들의 그늘에 가려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여성이 직업 화가가 되는 게 사회적 분위기상 거의 불가능했던 시절에 여성은 남성 화가들을 위한 ‘재현’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여성은 예술로 대상을 재현하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9세기까지 여성은 누드를 그리는 법을 배울 수 없었다.

 

 

 

 

 

 

 

 

 

 

 

 

 

 

* 《인상주의자 연인들》 제프리 마이어스, 마음산책 (2007년)

*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제임스 H. 루빈, 마로니에북스 (2017년)

 

 

메리 커샛(Mary Cassatt)은 인상주의 화가들도 인정한 화가이다. 미국 출신인 커샛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유학했다. 그녀는 오랜 전통이 있는 미술교육기관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입학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수적인 아카데미 회화와 거리를 둔 커샛은 자연스럽게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렸다. 이때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의 줄임말)’으로 지내게 되는 에드가 드가(Edgar De Gas)를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은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자라났고, 비혼(非婚)주의자였다. 드가는 커샛의 그림 실력을 인정했고, 그녀를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임에 초대했다. 드가가 커샛에게 화가들의 모임 참석을 제안했을 때 그녀는 그 순간에 “황홀경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드가는 예술에 목말라하고 있었던 커샛에게 시원한 단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시대는 커샛의 적극적인 성격을 곱게 바라보지 않았다. 평론가들은 그녀를 ‘남자 같은 미국인’으로 부르면서 조롱했다. 심지어 그녀의 그림을 향해 말도 안 되는 혹평을 내리기까지 했다.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는 커샛의 지인들이 차를 마시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어떤 평론가는 그림에 있는 찻잔 세트에 시비를 걸었다. 그는 찻잔 세트가 ‘형편없이 그려진 흉한 물건’이며 그림의 격을 떨어뜨린다고 비난했다. 아마도 이 평론가는 전시회에 ‘벌거벗은 비너스’가 그려진 그림을 볼 수 없어서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는 ‘옷 입는 여성’이 차를 마시고 있는 평범한 일상을 묘사한 그림을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 《여자, 그림으로 읽기》 시모나 바르톨레나 외, 예경 (2012년)

 

 

커샛과 드가는 연인이라고 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친분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은 비밀스러운 연애편지 같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서로 사랑하는 연인 관계라고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커셋은 드가의 괴팍한 성격을 이해해주는 절친한 친구였지만, 드가의 지독한 남성우월주의는 싫어했다. 커셋은 남성 화가들이 가득한 보수적인 화단의 분위기에 여러 차례 염증을 느낀 적이 있었고, 드가의 여성 혐오를 절대로 모를 리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드가는 커셋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화폭에 담지 않았다. 그림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카셋은 직접 루브르 미술관에 가서 거장들의 그림들을 꾸준히 모사했다. 그런데 드가는 카셋의 진짜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카셋을 전시장 내부를 유유히 구경하는 한가한 여성의 모습으로 그렸다.

 

 

 

 

 

카드를 쥐고 있는 카셋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는 커셋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커셋이 드가가 그린 초상화에 불만을 드러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드가의 여성관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카셋이 쥐고 있는 카드는 점을 볼 때 쓰는 것이다. 그림 속 그녀는 카드 점을 보는 집시(Gypsy) 여인의 자세와 같다. 오래전부터 ‘점쟁이’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은 점쟁이를 거짓과 사기를 일삼는 사기꾼으로 생각했고, 조르주 라 투르(Georges de la Tour)와 그 밖의 남성 화가들이 ‘상대방을 유혹하고 기만하는 여성’의 악덕을 묘사하기 위해 선택한 도상학적 이미지가 바로 점쟁이였다. 정말로 카셋이 드가가 그린 초상화에서 여성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도상학적 이미지를 발견했다면 당연히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드가는 여성 모델을 일부러 못생기게 그리기로 악명이 높았다. 드가는 커셋을 ‘턱주가리’로 그렸다. 드가는 골상학에 심취했고, 골상학적 관점을 토대로 인물의 얼굴을 묘사했다. 골상학자들은 큰 턱을 가진 얼굴이 진화가 덜 된 범죄형 얼굴이라고 주장했다. 드가는 자신의 친구를 ‘남을 속이는 범죄자’, ‘사악한 여성’의 모습으로 그렸다. 이 그림에서 드가의 고집스러운 여성 혐오를 읽을 수 있다.

 

드가는 카셋을 ‘그림 그리는 일에 관심 많은 여성’으로 대했을 뿐이다. 그는 카셋이 ‘위대한 화가’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의 그림이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되는 영광을 누릴 거라고 예상하지도 않았다. 드가가 카셋의 그림을 인정했어도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미술에 여성은 없다.’ 라는 궤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궤변은 1970년대까지 여성 미술가들의 존재를 은폐한 ‘유리 천장’이 되었다. 이 유리 천장이 완전히 부서져야 ‘여성 화가’는 ‘화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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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4-0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느끼는 거지만 넌 참 글 주제를 잘 잡는 것 같아.
어디가 물어 오는 것도 잘 물어오고.ㅋ
난 이렇게 못 쓴다.ㅠ

cyrus 2017-04-04 20:52   좋아요 0 | URL
솔직히 이렇게 글을 쓰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잘 쓰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안 봐도 되는 책을 더 보게 되니까 글 한 편 쓰는 데 적어도 1주 정도 걸려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글은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질리는 스타일이에요. 나쁘게 말하면 보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글이죠. 후애님처럼 알라딘 책소개만 인용해서 글 쓰고 싶은 생각도 한 적 있었어요.

yureka01 2017-04-05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계의 종횡무진....이런글에 당선작으로 촉구합니다.

cyrus 2017-04-05 10:05   좋아요 0 | URL
당선작 선정은 독자위원회의 선택입니다. 선정작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도 그분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합니다. 언급을 안해서 그렇지 선정작을 고르는 일이 쉬운 게 아닙니다. 선정되든 안 되든 구애받지 않으면서 글을 쓸 겁니다. ^^

세실 2017-04-0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당선작으로 한표 던집니다^^
글 한 편 쓰는데 1주일이나.....역시 내공이 느껴집니다.
전 우리나라 여성화가중 나혜석이 찡합니다.

cyrus 2017-04-06 09:47   좋아요 0 | URL
글을 열심히 썼다고 해서 당선작이 되는 건 아닙니다. ^^;;

우리나라에 나혜석 이외에 여성 화가들이 더 있을 겁니다. 갑자기 알아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