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똑하고 기발하고 예술적인
노아 스트리커 지음, 박미경 옮김, 윤무부 감수 / 니케북스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과거에는 화가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낼 때 ‘실물처럼 생생한’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 신라의 화가 솔거(率居)가 황룡사(皇龍寺)의 벽에 소나무를 그리자 새들이 소나무에 앉으려다 벽에 부딪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실상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간에 관객의 눈을 속일 만큼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는 화가나 조각가의 놀라운 기술을 강조하는 이러한 일화들은 동 · 서양 미술사에서 자주 발견된다.

 

새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인간의 그림 솜씨는 최고의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새들이 실재(實在)와 감쪽같은 실재의 모방을 구분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솔거의 일화만 보고서 새들이 똑똑하지 않는 동물이라고 단정 짓지 말자. 새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들이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노아 스트리커(Noah Strycker)의 《새》에 소개된 동물 행동에 관한 놀라운 연구 결과들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은 지금까지 만물의 영장임을 자부해왔으나 이 같은 연구 결과들은 인간이 정해놓은 조류 두뇌의 한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오랫동안 사람만이 거울 표면에 비친 자기 이미지를 파악한다고 믿어왔다. 우리는 거울을 보고 자기 자신을 안다. ‘거울 이미지 인지 클럽’에 가입된 정회원은 오랑우탄과 침팬지, 돌고래, 코끼리 등이 있다. 오랫동안 특별한 동물 단체의 회원 명단에 조류는 없었다. 최근에 까치가 신규 정회원으로 가입됐다. 과학자들은 까치의 턱에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색색의 점을 찍었다. 까치는 점을 긁어내 떼 냈다. 까치의 깃털과 구별되지 않는 검은 색 점을 붙였더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까치는 인간처럼 거울을 보면서 몸단장을 했던 셈이다. 까치가 인간 수준의 자의식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더라도 자기 인식의 필요조건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닭은 기억력이 모자라기로 유명한 새이다. 고작 몇십 초만 지나면 다 잊는단다. 그래서 기억력이 나쁜 사람들에게 ‘닭대가리’라는 별명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각종 연구에 따르면 닭은 꽤 똑똑한 동물이다. 닭은 서열의식이 분명해 집단으로 좁은 공간에 사육하면 서로 주도권 싸움을 하게 된다. 우두머리 닭은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닭이 누군지 잘 안다. 게다가 닭이 색채를 식별하는 감각이 있어서 붉은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닭은 붉은 피가 나는 다른 닭의 상처 부위를 부리로 쪼아댄다.

 

 

 

 

 

조류의 생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있다. 그것이 바로 조류의 귀소 본능이다. 과학자들은 새들이 어떤 원리로 집을 찾아 다시 날아오는 것인지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여러 가지 과학적 증거들만 나왔을 뿐이다. 흔히 비둘기를 우스갯소리로 ‘닭둘기’라고 말한다. 인간의 음식을 먹고 뒤룩뒤룩 살찐 비둘기는 뒤뚱거리며 날지도 못한다. 마치 날지 못하는 닭과 흡사하다는 이유로 ‘닭둘기’라는 오명을 얻었다. 과거 우편배달 임무를 맡았던 비둘기는 거리가 멀고 낯선 출발 지점에서 반드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길에 밝았다. 강한 귀소 본능과 빠른 비행 능력은 비둘기를 뛰어난 메신저(messenger)로 만들었다.

 

이처럼 사람만큼 유용한 능력을 지닌 동물들이 많지만 위축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생물학자가 여전히 인간은 자연계의 어떤 존재보다 발전된 비범한 지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앨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고전 스릴러 영화 『새』에 나오는 장면들처럼 특별한 원인 없이 그저 새들이 갑자기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은 없다. 흔히 볼 수 있는 새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더욱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섬뜩한 사실이 있다. 인간은 크고 작은 자연재해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길을 찾아온 존재다. 문제는, 길 찾기를 할 수 없을 지경으로 자연을 망쳐버린 오만의 극점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다른 종들에 대해 얼마나 오만했는가를 깊게 반성할 줄 모르는 동물이다. 조류학자들의 새 탐구는 결국 ‘인간 탐구’였다. 새도 사람처럼 사랑하고, 분노한다. 그리고 기억력도 뛰어나다.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 운운하며 동물을 그저 이용과 도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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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4-04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둘기의 귀소본능만 해도 대단하지요... 낯선 곳에서 돌아오는 능력을 본능이라고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처음 가는 곳에서 집에 가는 교통편을 찾아야하는 저에 비한다면 비둘기가 낫지요 ㅋㅋ

AgalmA 2017-04-04 14:56   좋아요 2 | URL
물고기들, 곤충들의 귀소본능도 정말 대단하죠. 바다를 횡단하는 나비나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인데도 산란 장소였던 곳으로 죽을 힘을 다해 돌아오는 물고기들 보면 찡하기도 하고... 사람이 인류의 처음을 알고 싶어하는 것도 그 비슷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일종의 귀소본능.
처음 간 곳에서 술까지 만취면 헬이겠어요ㅎㅋㅎ;;

겨울호랑이 2017-04-04 16:45   좋아요 1 | URL
^^; Agalma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술취한 사람의 귀소본능을 고려하지 못했군요. ㅋㅋ 술을 마시면 어떻게든 집에 오는 그 미스터리란..

cyrus 2017-04-04 17:08   좋아요 2 | URL
이 책에 재미있는 연구 결과들이 많습니다. 비둘기도 박쥐처럼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초저주파를 감지해서 방향을 설정한다고 합니다. 산갈가마귀라는 새는 먹이를 이곳저곳 여러 장소에 저장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 새는 먹이를 저장한 장소의 위치를 기억합니다. 정말 똑똑한 새들이 많습니다. ^^

cyrus 2017-04-04 17:13   좋아요 2 | URL
술 취한 상태에서 알아서 귀가했던 1인입니다.. ㅎㅎㅎ
몸은 안 따라주는데도 마음은 벌써 집으로 향해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4-04 17:17   좋아요 2 | URL
ㅋㅋ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한때인듯합니다 ㅋㅋ

cyrus 2017-04-04 17:26   좋아요 2 | URL
그... 그런가요? ㅎㅎㅎ 술 마실 때 방심하지 말아야겠어요. ^^;;

북프리쿠키 2017-04-04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까치..멋지네요.
거울을 인식하는 능력이라..평소에 늘 궁금했던 의문점이었는데
재미있네요^^;

cyrus 2017-04-04 17:14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싫어하는 새들은 생각보다 아주 똑똑합니다. ^^

yureka01 2017-04-04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나네요..히치콕 감독의 버드`~~~~

cyrus 2017-04-04 17:15   좋아요 0 | URL
그 유명한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어요. ^^;;

jeje 2017-04-0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ㅎㅎ

cyrus 2017-04-04 17:16   좋아요 0 | URL
책 속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이 많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