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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 한 권으로 보는 인상주의 그림
제임스 H. 루빈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7년 1월
평점 :
인상주의 미술을 주제로 한 책이 새로 나왔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땐, 그저 흔한 미술책인 줄 알았다. 이 책의 절반이 내가 아는 내용으로 채워졌으면 속독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확실히 이 책에는 기존에 나온 인상주의 미술 관련 서적과 차별화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책의 저자 제임스 H. 루빈(James H. Rubin)은 19세기 유럽 미술, 특히 인상주의 미술을 연구한 미술사학자이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된 루빈의 책이 《인상주의》(한길아트, 2001)였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2013년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원제가 ‘How to read Impressionism : ways of looking’이다. 부제로 사용된 구절 ‘ways of looking’은 올해 1월에 타계한 존 버저(John Peter Berger, 국내에서는 ‘존 버거’로 알려진 유명한 작가)의 저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열화당, 2012)를 패러디한 것이다. 루빈은 그림을 바라보는 버저의 방식, 즉 ‘주의를 기울여 보는 방법(look)’을 빌려 인상주의 그림을 독창적으로 해석한다.
루빈이 주의를 기울여 본 대상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선호한 주제와 기법 들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의 눈에 비친 도시 풍경, 유흥 장소, 철도 교(橋), 공장 등 19세기 근대 파리의 생활상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소재들을 그렸다. 인상주의하면 보통 자연의 모습을 담은 풍경화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풍경뿐 아니라 파리 근대생활의 단면을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소개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프랑스 인상주의와 미국 인상주의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메리 커샛(Mary Cassatt)은 미국에 인상주의를 전하고 특유의 사조로 잘 발전시켰던 여성 화가이다. 그녀는 주로 중상류층의 침실과 거실 같은 사적인 공간에 있는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비록 그림 1점만 소개됐지만, 미국 출신의 인상주의 화가 차일드 해섬(Childe Hassam)도 주목해볼 만하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인상주의 미술의 전형적인 양식뿐 아니라 화가 개개인이 가진 특징적인 화풍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루빈은 친절하게 비교 도판까지 수록하면서 독자들이 한층 깊이 그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그림이 특이하게도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작품이다. 폴록은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현대적인 화가의 작품이 왜 근대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과 한자리에 배치되었는지 궁금하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인상주의 미술이 정점을 찍었던 19세기는 그야말로 ‘이미지의 시대’였다. 이때부터 이미지를 포착하는 사진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진술에 매료된 인상주의 화가들은 사진기처럼 언어만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많은 이미지를 묘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업실에서 나와 빛과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모습을 다양한 색채로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는 『파리 거리, 비 오는 날』에서 한가롭게 산책하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전했다. 아르망 기요맹(Armand Guillaumin)은 산업화의 중심에 선 노동자들의 모습에 매료됐다. 이렇듯 우리는 인상주의 그림에서 그 시대가 낳은 눈과 마음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문명의 변화는 세상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과 마음을 또한 변화시킨다. 그 변화를 예전의 방식으로 담기 힘들다면, 미술은 새로운 방식을 탐색해 나가야 한다. 인상주의 그림에는 근대가 낳은 변화를 주의 깊게 바라본 화가들의 탐색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속에는 화가들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깊이 배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