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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평점 :
좋은 글, 여기서는 좋은 ‘리뷰(혹은 서평, 독후감)’로 표현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리뷰란 일상 경험을 책 속 이야기와 버무려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리뷰는 책을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 글에서 살며시 배어 나오는 진한 감동까지 느낄 수 있다. 글을 자주 써본 사람이라면 이런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한다. 그런데 막상 써보면 어렵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글쓰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글쓰기 교육은 논술이 중심이다.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은 폭넓은 배경지식, 논리적 구성력 등을 습득한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강조한 대로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지적 재료들을 가지고 좋은 글로 아웃풋(Out put, 출력)을 내면 모를까 우리나라 논술문 쓰기는 지식 입력과 출력 과정 양쪽이 완만하게 작용하지 못하는 구조이다. 학생들은 단기간 내에 전혀 모르는 분야의 지식을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논술 고사 당일 날에 머릿속에 담은 재료들을 하얀 시험지 위에 일목요연하게 쏟아낸다. 결국, 그 날 하루를 위해 학생들은 제대로 뜻도 모르는 현학적 용어를 써가며 자신 목소리가 아닌 누군가 가르쳐준 내용을 형식적 논리만을 시험지 위에 옮겨 적는다. 글 쓰는 일 자체가 ‘시험문제’로 직결되는 교육 환경은 자칫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고, 막연한 두려움만을 안겨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사소한 경험에서부터 자기만의 느낌과 생각을 담아 표현해보는 ‘생활 속 글쓰기’에 적응되면, 자연스럽게 논리적 글쓰기로 이어진다. 필자는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신문 칼럼을 많이 봤고, 사람들과 어울려 부대끼며 지내는 성격이 아니라서 ‘생활 속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몇 차례 시도를 해봤으나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미미했고, 억지로 과거 경험을 떠올려 조금 과장해서 쓴다는 게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필자의 리뷰가 재미없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탓이다. 필자는 이 상황을 팔자라고 생각하면서 알라딘이 망할 때까지 꾸준히 리뷰를 쓸 생각이다.
생활 속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며 자기 자신을 ‘글의 중심’에 세워보는 경험, 즉 ‘독서를 통한 앎과 삶이 조화를 이룬 글쓰기’를 실천한 사람이 박균호이다. (물론, 아주 능숙하게 ‘생활 속 글쓰기’를 실천하는 작가와 독자 들이 많다. 가장 유명한 작가가 ‘마태우스’ 서민이다) 최근에 그가 새로 선보인 《독서만담》의 부제를 한 번 보시라.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다. 그의 글은 리뷰인지 에세이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건 나쁜 의미의 말이 아니다. 저자만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 글에서만 갖춰진 특색이다. 리뷰와 에세이라고 하면 책 또는 삶에서 우러나온 지혜와 교훈을 담아 쓰는 글이라는 공통된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리뷰와 에세이에 거창한 담론을 담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독서만담》에 가득 담은 글을 읽어보면 리뷰와 에세이의 고정관념이 보이지 않는다.
책의 1장은 애서가들이 무릎을 탁 칠만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글 제목은 ‘절판본과 탐욕의 끝’, 두 번째 글 제목은 ‘책 수집의 괴로움’이다. 애서가들은 이 글 제목들을 보자마자 벌써 어떤 내용이 나올지 짐작하리라. 1장 제목이 ‘하나도 쓸모없는 책 이야기’이지만, 이는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인 반어법이다. 애서가들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가 지금까지 어떤 희귀한 절판본을 구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된다. 헌책과 절판본을 소유하게 된 작가의 무용담을 듣노라면 괜히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즐겁다. 그리고 귀한 책을 쉽게 양도하지 않으려는 주인들의 태도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책에 미친 이 남자도 계속 사도 끝없는 책 욕심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 알고 있다. 저자는 새 책을 사기보다는 오래된 친구와 같은 헌책을 재회하기로 결심한다.
2, 3장은 《독서만담》의 부제에 딱 어울리는 글들이 포진되어 있다. 솔직히 필자는 미혼이라서 부부나 가족 이야기에 관심 없다. 여전히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혼자 지낸 일상에 익숙한 탓이다. 그래도 SNS에 길들어져 버리는 바람에 남의 사소한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 못된 심리가 남아 있어서 계속 끝까지 보게 된다. 다행히 이 책을 끝까지 보길 잘했다. 역시 작가의 글은 경험담으로 시작해서, 책 소개로 자연스럽게 마무리 짓는다. 야구를 좋아하는 독자가 ‘야구를 아무리 싫어해도’라는 글을 읽으면 ‘맞다, 맞아!’라고 연신 속으로 외치게 될 것이다. 이 글에 나오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와 딸이 ‘리모컨 컨트롤을 손에 꽉 쥔 주인’이 되어 거실 한가운데서 버틴다. 이 두 사람의 힘에 밀려 야구 TV 중계를 시청하지 못해 인터넷 중계로 시청하는 저자의 상황이 딱해 보인다. 필자는 서른이나 먹고 다 컸음에도 ‘거실의 여왕’으로서 오랜 세월 군림하는 어머니의 기세를 이기지 못한다. 고집은 자신의 입지를 더욱 위축하게 하는 필패의 지름길이다. 내가 조금 불편해도 한발 물러나서 양보하는 것이 좋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야구를 볼 수 있는 세상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저자는 아내와 딸처럼 야구를 잘 모르는 여성들을 야구 팬으로 만들 수 있는 책 세 권을 선보인다.
잠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작가는 아내와 딸이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서 ‘야구는 남자들의 운동, 여자들의 것이 아니다(107쪽)’라고 썼다. 개인의 경험을 근거로 야구는 ‘남자들의 운동’으로 규정하는 말은 요즘 야구에 향한 여성들의 관심 수준을 생각하면 ‘일반화의 오류’에 가깝다. 작년 잠실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여성 관중의 함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그만큼 야구를 직관(직접 경기장에 가서 관람)하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야구장에 분 ‘여풍(女風)’이 없었으면 작년 ‘한 시즌 관중 800만’이라는 기록이 오지 않았다. 지금의 야구는 남자, 여자 모두의 것이다. ‘야구는 남자들의 운동, 여자들의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필자의 눈에 걸린다.
아, 리뷰를 쓰다 보니 오늘도 재미없는 내용이 되어버렸군. 내 리뷰야말로 ‘하나도 쓸모없는 책 이야기’이다. 그래서 읽어보면 무겁고 딱딱하지 않는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의 능력이 부럽다. 생활 속에서 길어낸 작고 소소한 작가의 책 이야기는 솔직담백해서 좋다. 글쓰기 공포증이 있거나 편안하게 자기만의 글을 써보고 싶은 분에게 박균호의 《독서만담》으로 시작해보길 권한다. ‘이런 글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가벼운 동기 부여는 글쓰기의 열쇠가 된다. 그리고 작가가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글감으로 어떻게 만드는지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 사실 《독서만담》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1권 3득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두 개의 이득은 앞서 언급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개의 이득은? 그것 또한 글 초반부에 이미 언급했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모르면 어쩔 수 없다. 독자들이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탓이다. 아무튼 《독서만담》이 내 리뷰보다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