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자본주의 새로운 시작
폴 메이슨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와 심각한 경기침체로 세계증시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경제 위기가 가시화함에 따라 금융시장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자본주의 자체가 이제 끝장나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서부터 금융 주도 글로벌 축적체제가 끝장나는 것 아니냐는 의견, 일시적 위기일 뿐 금융시장 자본주의는 여전히 건재할 것이라는 의견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드러냈다. 세계적 금융위기를 1929년의 대공황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공황 이전의 자유 방임 자본주의가 수정자본주의 시대로 전환되었던 것처럼 이제 신자유주의 시대는 끝났고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넘쳐났다.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여기서 ‘포스트자본주의’ 시대를 둘러싼 논쟁이 발생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를 경험하게 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포스트자본주의 새로운 시작》에서 저자가 견지하고 있는 입장은 자본주의의 한계가 외면하기 어려운 역사적 현실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스스로 만들어 낸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이자 결과로 포스트자본주의를 설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으로 저자는 명목화폐(정부의 법령에 의해 가치를 부여받은 화폐)의 재생산을 과도하게 시장 기능에 맡긴 점, 빈곤층에게 대출을 권하는 경제의 금융화, 국가 간 경제 불균형, 시장경제와 정보화 경제의 양립성 여부 문제 등을 들었다. 저자는 이 신자유주의를 지탱해준 네 가지 요인이 심각한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는 국가 규제, 만성적 재정적자라는 한계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원칙으로 시장의 원리를 주장했다. 이를 위해 조세 및 통화제도 개혁, 정부 개입 최소화 등이 주창되었으며 그 결과 초국적 기업의 등장, 막강한 금융 자본의 지구화가 이루어졌다.

 

저자는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며 여기까지 이르게 된 20세기 자본주의의 흐름을 개괄한다. 특히 그가 주목한 이론이 러시아의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Nikolai D. Kondratiev)의 ‘장기파동설’이다. 경기는 장기적으로 상승(확장)과 하강(수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양상을 보인다. 콘드라티예프는 성장과 침체가 50년을 주기로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큰 효용성이 없는 이론이다. 이런 이론의 맹점은 한없는 우연성과 논리구조의 허술함에 있다. 인간 본성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호황 · 불황의 반복은 끊임없을 수 있다. 다만 이것이 갈수록 예측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자신의 포스트자본주의 시나리오를 설명하기 위해 장기파동설을 살짝 빌려 쓴다. 비록 장기파동의 주기는 어긋났어도 저자는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경제순환의 관점에서 본다면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저자가 제시하는 포스트자본주의 시나리오는 정보기술의 역할에 대한 관심을 전제로 한다. 정보기술을 그 특징으로 하는 정보화 시대는 우리 모두의 생활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주었고, 자본주의를 촉진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사유재산권에 기초한 자본주의를 붕괴시킬 정도의 위력에 이르렀다. 자본주의가 생산성에 기초한다면, 포스트자본주의는 정보화와 지식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형 경제다. 저자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이미 제시한 적 있는 지식정보화 사회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실천을 위해 구체적인 대응전략까지 밝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저자가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포스트자본주의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자본주의가 끝장을 보고 있으니 이제 마르크스와 케인스를 부활시키자는 주장의 한계를 지적하는 저자의 입장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드러커의 부활이 신자유주의 시대 금융시장 자본주의의 위기 대응책이 될 수 있는가. 정보기술은 권력의 분산과 경제적 자유의 제고를 가져왔지만, 오히려 하나의 시장으로서의 정보기술 자본주의는 시장 시스템의 오랜 병폐를 없애기보다는 오히려 더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시장 지배력으로 정보기술을 독점하는 기업을 규제하는 대안으로 ‘공적 소유’를 제시한다. 세계의 인터넷과 IT산업을 독점해가고 있는 MS의 마케팅 전략을 보고 있노라면 독점을 억제하는 일이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공공성, 공정성 그리고 경제적 효율성 기반 위에 가치창출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확대 발전해 갈 수 있는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책에서 언급되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들도 고려해야 한다.   

 

저자의 대안이 제대로 마련하려면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신자유주의의 부작용 극복 방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나름의 판단과 실천을 위해 저자의 주장에 귀 기울여 볼 만하다. 다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정정할 수 있는 대안을 현실적인 모델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중에게 비전을 주는 담론이 필요하다. 즉 포스트자본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어떤 정책적 내용으로 구체화할 수 있느냐로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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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5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15 17:55   좋아요 1 | URL
대구에 서대구역이 개통되면 경제가 활성화될 거로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서대구역의 등장으로 지역경제가 좋아지면 지역민들의 소득 증가에 기여할거로 보는 건데, 한 마디로 말하면 트리클다운 효과를 노리는 거죠. 그런데 트리클 다운 효과는 이미 허황된 이론이라는 게 검증되었고, 정말로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엄청난 액수의 세금을 낭비한 셈입니다.


transient-guest 2017-02-16 0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술발전이 오히려 자본주의를 극대화하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예전엔 물리적인 거리나 지역의 한계로 그나마 보호되던 것들이 기술발전으로 갑자기 초국가자본에 노출되어 대응할 시간도 없이 한 순간에 부서지는 것 같아요. 어떤 시스템이든, 미래엔 생산과잉, 소득양극화, 분배 같은 것이 화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기술혁명으로 쌓인 부를 어떻게 다수가 나눌 수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일자리를 나누고, 적은 노동, 좋은 pay를 구조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아니면 10%는 천국에, 나머지 90%는 지옥에 사는 SF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7-02-16 11:40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책의 저자는 기술발전을 통해 사회 분배, 공동 소유 등을 추진하는 등 상당히 급진적인 대안을 내세웁니다. 저도 t-guest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불평등, 분배, 기초소득에 대한 화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중의 이목만 집중되고, 논의와 현실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 ‘경제민주화’처럼 말이죠. 되든 안 되는 정치인들이 공약으로 내세웠으면 한 번 찔러봐야하는데, 강력한 반대 여론에 굴복하거나 벌써부터 반대 여론이 두려워서 공약을 접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