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극한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인간의 실제 경험치에 더욱 가까운, 그래서 더욱 실감 나는 현실 공간을 찾아가기도 한다. 영화 『그래비티』는 무중력으로 가득한 우주의 공포를 그린다. 이 영화에 아름다움과 긴장을 동시에 가져오는 것은 우주라는 공간 자체다. 무한한 우주는 경외심을 가지고 창조의 섭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며 인간이 중력의 한계를 벗어나 부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무한 공간에 갇힌 조난자에게는 끝없는 공포를 가져온다. 산소는 희박하고, 중력이 없는 탓에 뜻대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망망한 공간을 떠돌다 죽게 된다는 사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공포다.
우주는 수백억 년 동안 엄청난 속도로 팽창해 왔다.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그만큼 오랜 시간을 달려야 우주의 끝에 도달할 수 있다. 우주는 작은 행성부터 수천억 개의 별로 이루어진 은하, 나아가 수천억 개의 은하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곳은 우주 한구석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행성에 불과하다.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은하계는 대략 130억 광년 거리에 있다.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이 은하계를 관찰한다 해도 우리는 이미 130억 년 전의 모습을 볼 뿐이다.

우주의 무한한 풍경은 인간의 정신을 압도한다. 광활한 우주 앞에서 우리는 자기 몸이 보잘것없으며 그 삶도 하찮게 여기게 된다. 그러나 이 무기력은, 무시간적 우주에서 우리가 그 나름의 삶을 꾸려간다는 사실로 하여, 활력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에드먼드 버크는 인간은 공포로 인한 감정으로부터 쾌락을 느끼는 모순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버크가 정의한 ‘숭고함’이 여기에서 나온다. 숭고는 무시무시한 대상에서 느끼는 공포와 연관된 특별한 정신적 경험이다.
우주 사진은 단순한 눈으로 보는 사진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숭고한 사진이다. 그래서 우주 사진은 생동감이 느껴질 정도로 멋있어야 한다. 우주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진집 《별빛 방랑》(사이언스북스. 2015)은 지구 밖 미지의 공간들을 마주하면서 생기는 색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황인준 씨는 30여 년 동안 신비하고 놀라운 우주 쇼를 카메라에 담았다. 인간의 의식으로서만 상상할 수 있는 추상적 개념의 우주의 풍경들을 사진으로 생생하게 형상화하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사진집 속에 구름 조각 사이에 천연색으로 빛나는 별, 개기일식이 정점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혜성과 오로라까지 생경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사실 우주 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이런 사진집에 눈을 다 뜨고 보기 힘들 수 있다. 색은 깊고, 공간은 넓고, 저기 먼 밤하늘은 아득하다. 이 지평에서 우리는 무한의 어떤 끝자락을 섬광처럼 떠올린다. 그 경험은 놀라움을 지나 전율에 가깝다. 그래서 신성하다. 참된 자연의 체험은 장엄한 종교의식과 같다. 우주와 생명, 물질의 세계를 파고들다 보면 비록 신을 믿지 않더라도 뭔가 오묘한 법칙과 원리가 존재할 것이라는 신비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누구처럼 온 우주의 기운을 모을 수 있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이 ‘우주의 기운’ 지껄이면 사이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