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를 잡은 영웅 페르세우스는 보기만 해도 돌이 되어버리는 괴물을 잡기 위해 거울을 사용했다.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비춰줌으로써 메두사의 공포를 잠재울 수 있었다. 자신도 놀랄 추악한 이면을 그제야 메두사가 본 것이다. 본래는 미녀였으나 신의 저주로 괴물이 돼버린 메두사, 그 스스로 바라본 공포는 자신마저도 돌로 만들어버렸다. 메두사의 공포를 거울이 비추듯, 이성을 저버린 폭력의 추악한 본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전부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문명은 자연의 상태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괴한 폭력을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유형의 폭력보다 더 잔혹한 무형의 폭력도 포함된다. 문명이 온라인 공간으로 확대될수록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언제 누가 휘두르는지 알 수조차 없는 이 폭력은 갈수록 정교하고 악랄해져 간다. 인터넷의 대중화는 갖가지 무형의 폭력이 번식하는 좋은 환경이 되었다.
암살은 인간의 불확실성이 취약할 때 드러나는 유형 또는 무형의 폭력이다. 암살은 종종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길 정도로 엄청난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역사를 봐도 그렇다. 1914년 6월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부부가 사라예보에서 암살된 사건으로 촉발된 제1차 세계대전이 있다. 평범한 주부였던 코라손 아키노는 야당 지도자였던 남편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이 암살당하자 정계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20년 마르코스 독재 정부를 무너뜨리는 등 비폭력 시위의 세계적인 선구자가 됐다. 길게 언급하지 않겠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사건도 한국의 운명을 바꿔버린 결정적인 사건이다.
세기의 암살자들 대부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이다. 인권이 인류의 삶을 보호하는 공통의 가치로 자리 잡았음에도 사형제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범죄에 대한 형벌이라면 으레 교도소에 구금하는 징역과 같은 자유형을 떠올린다. 자유형은 신체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말이다. 피해자뿐 아니라 국민도 범죄자가 징역을 살지 않으면 처벌이 적정하지 않은 것처럼 인식하기 일쑤다. 그러나 자유형이 주된 형벌이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오히려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신체형과 사형이 주된 형벌이었다. 사형은 유사 이래 가장 오래된 형벌이다. 최초 성문법인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복수원칙을 비롯해 25개 죄에 대해 사형으로 처벌토록 했다. 그만큼 사형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한 형벌이었다.
인간의 잔혹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인간 심리를 파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인간의 잔혹성이 문명의 발달과 함께 줄어들 것이라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떤 형태의 폭력이나 잔혹성은 사라져가고 있어도 모양이 다른 폭거는 여전히 인간사회에 감춰져 있음을 보게 된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잔혹성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 알고 싶으면 내가 직접 특별한 이름을 붙여준 ‘죽이는 책’들을 보면 된다. 서론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말았는데, 책에 대한 내용의 50%가 서론에 소개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1. 콜린 윌슨
《잔혹》 (구판)
《인류의 범죄사 :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범죄의 역사》 (개정판)
《현대살인백과》
《아웃사이더》로 영국 문단에 충격을 준 콜린 윌슨은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치면서 살인, 불가사의 등 특이한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잔혹》(작년에 나온 개정판 제목은 《인류의 범죄사 :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범죄의 역사》)과 《현대살인백과》는 《아웃사이더》의 엄청난 명성이 뿜어낸 빛에 가려졌지만, 평소에 접하기 힘든 어두운(?) 지식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흥미를 선사해줄 수 있는 저작물이다. 윌슨은 살인 또는 암살 사건에 관련된 각종 자료를 수집하면서 인간의 잔혹성을 분석하여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한다. 그는 살인이 자기 통제와 자기 파괴의 메커니즘을 통해 발생한다고 봤다. 자기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살인 또는 암살이다. 연쇄살인범과 암살자는 이러한 자기 파괴를 통해 과시욕을 느낀다. 1980년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채프먼은 암살 직후 “모든 사람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레논을 죽임으로써 자신이 유명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삶 그리고 천재 뮤지션의 삶까지 파괴하려는 그의 끔찍한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과 존 레논 그리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세상에 널리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2. 칼 시퍼키스 《암살》
무슨 이유에서인지 저자에 대한 소개가 빈약하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저자가 UIP 통신의 사회부 기자로 한때 몸담았고, 프리랜서 작가로 전향했다고만 소개했다. 이 책의 주제와 내용 구성면만 봐서는 콜린 윌슨의 책과 유사하다. 칼 시퍼키스의 《암살》 역시 콜린 윌슨의 《잔혹》을 펴낸 하서출판사의 책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하트마 간디, 에이브러햄 링컨, 장 폴 마라, 명성황후, 박정희, 육영수, 제임스 1세 암살을 기도한 가이 포크스, 케네디 형제 등 굵직한 인류사의 중심을 관통한 암살 사건들이 백과사전식 형태로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역사 교과서에서도 보기 어려운 암살 사건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기 직전인 미국 뉴욕 시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사진도 실려 있다. 이 사진의 진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미국인들도 이 사건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남미,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까지 소개되었기 때문에 사건항목별 내용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A4용지 1장 절반 분량이다. 어차피 이 책은 절판되었고, 암살의 역사를 정리한 책들이 많이 나왔으니 사서 보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3. 카를 브루노 레더
《세계 사형 백과》 (구판)
《사형 : 사형의 기원과 역사, 그 희생자들》 (개정판)
나와 유미오 《일본 고문형벌사》
이 책도 하서출판사에서 나왔다. 그래서 1990년에 나온 구판의 제목이 《세계 사형 백과》였다. 아마도 이때 출간된 콜린 윌슨의 《현대살인백과》과 짝을 맞추려고 의도적으로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인간의 생명가치를 신성시하는 사상은 필연적으로 사형 폐지 쪽으로 이어진다.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아무리 흉악한 살인자라도 사형은 그보다 더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인간의 존엄을 깎아내리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오판, 인종적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개재될 위험도 높다. 하지만 사형제 유지 찬성론자들의 주장 또한 완고하다. 강간, ‘묻지마 살인’ 같은 흉악 범죄에 대한 사형은 사회 안정에 기여함은 물론 살인자는 생명으로 죗값을 치러야 세상의 이치와도 맞는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범죄를 억제한다’는 통념에 비추어볼 때 사형 폐지는 범죄 피해자들에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을 줄 수 있다. 독일의 방송 극작가인 저자는 《사형 : 사형의 기원과 역사, 그 희생자들》을 통해 사형의 부당성을 부각해 사형제가 권력에 의한 살인행위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일본 고문형벌사》는 다양한 일본의 전통 고문 방식을 집대성한 책이다. 주로 에도 시대의 고문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에도 시대 때 그려진 고문 장면을 묘사한 그림도 실려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게 느껴지는 그림들이 있으나 흑백 도판인 데다가 크기가 크지 않다. 고어 영화의 잔혹한 장면에 익숙할 정도로 비위 강한 독자는 시기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고문 장면을 묘사한 그림 대부분은 여성들이 가혹하게 당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벌거벗은 상태의 여성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도 있다.
우리는 폭력을 증오한다. 누구도 폭력 앞에서 겪은 공포와 수치를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폭력을 가한 상대를 오랫동안 기억하며 증오하고 저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에 열광하는 전근대적인 모습을 재현한다. 우리는 폭력을 증오하는 동시에 동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두대 주변에 모여 사형수의 목이 뎅강 잘려나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과거 사람들과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른가. 폭력이 한갓 호기심 어린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은 살아 있는 자의 존엄성에도 상처를 내는 것으로 어떤 명분이든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속에서 여전히 들끓는 폭력에 대한 증오와 의존의 이중적 감정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애초부터 악마는 없다. 거울에 비추어 보면 누구라도 추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