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행성 탐사를 위해 우주선을 쏘아 올린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행성탐사는 주로 금성과 화성에 집중돼왔다. 1977년 8월 20일 보이저 2호가 발사되었고 9월 1호가 우주를 향했다. 이 무인 탐사선에는 외계인과 만날 것에 대비해 ‘지구의 속삭임’이라는 타임캡슐 레코드가 들어있다. 내년 8월이면 보이저 1, 2호에 타임캡슐 레코드를 실어 보낸 지 40년이 된다. 보이저를 우주로 보냈던 칼 세이건이 지구 사진을 보고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렀던 게 벌써 20여 년 전이다. 보이저 1호의 카메라가 작동이 중지되기 전, 그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 사진을 찍었다. 보이저 1호는 더 이상 태양에너지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 태양계의 먼 외딴 지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레코드에는 지구의 자연과 문명을 소개하는 115개의 이미지 그리고 파도, 천둥 및 동물의 울음 등 각종 자연의 소리를 담았고 55개국의 인사말도 녹음되어 있다. 바흐, 모차르트,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 일본, 중국 등의 음악도 외계 생명체에게 들려줄 목적으로 담았다. 이 레코드는 망망한 우주를 떠다니다 혹시 만날지 모르는 외계 생명체에게 보내는 ‘병 속에 든 편지’다. 생명체가 사는, 최소한 살 수 있는 환경을 지닌 행성의 존재 여부는 인간이 우주에 관심을 가진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온 오랜 의문의 하나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가진 과학기술로는 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항성과 달리 행성은 항성의 빛을 받지 않는 이상 어둠 속에 묻혀있기 때문이다. 설령 빛을 받고 있다고 해도 지구와의 거리가 수천 광년 이상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아 아무리 좋은 성능의 천체망원경으로도 그 모습을 감지하기 어렵다.

 

 

좀 엉뚱하긴 하지만 《지구의 속삭임》은 하늘을 쳐다보며 사색하는 책이다. 외계 생명체와의 만남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던 1970년대에 세이건은 인간이 우주 유일의 문명을 가진 생명체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생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느끼는 그의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바로 ‘그리움’, 그리고 ‘고독’이다. 세이건은 인류에게 우주가 무엇인지, 우주에서 인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했다. 특히 ‘인간은 과연 어떻게 생겨났는가?’라는 질문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의문 중 하나다. 이 질문에 여러 가지 대답이 존재할 수 있다. 종교에서도 대답하고 있다. 세이건은 가장 과학적이면서 합리적으로 대답했다. 그는 시끄럽고, 분주하고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인간을 ‘별의 자녀’라고 말했다. 인류는 명백히 우주의 산물이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137억년 전 대폭발 이후 수소와 헬륨이 뭉쳐져 1000억 개 이상의 은하가 만들어졌고 그 은하 속에서 각각 1000억 개 이상의 별이 태어났다. 그 별 중 하나가 태양이고, 태양 주변에 생긴 행성 가운데 하나가 지구다.

 

우주는 무한하다. 무한이란 의미는 아주 미세한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끝없음. 즉 무한의 의미이다. 세이건은 우주에 우리를 외로움에 떨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존재가 있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무한한 우주, 검은 공간에 점점이 떠 있는 별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창백한 푸른 점’ 즉 지구이다. 우리는 그렇게 끝없이 넓은 우주의 한편에 놓인 창백한 점에 불과한 지구란 행성에 사는 존재일 뿐이다. 닐 암스트롱과 함께 달에 착륙한 버즈 올드린은 어느 인터뷰에서 달 착륙 순간 ‘장엄한 고독’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세이건의 두 번째 부인 린다 살츠먼 세이건은 지구인을 지구라는 섬에 좌초한 외로운 로빈슨 크루소로 비유했다.

 

 

우리는 지구라는 섬에 좌초한 로빈슨 크루소다. 창의적이고 꾀바르고 창조적이지만, 어쨌든 외톨이다. 혹시 별이 총총한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있을까 싶어서, 우리는 저멀리 수평선을 살핀다. 누군가와 접촉하고 싶은 바람에서, 막막한 공간 너머로 외쳐 본다.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여보세요, 거기 누가 없습니까?" 답이 없으면 어떡하지? 우리는 황야에 대고 외치는 것뿐일까? 우리가 우주에 내지른 외침이 우주 공간의 계곡에서 메아리칠 뿐 협곡 건너편의 누구에게도 가 닿지 않는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인사말만 들릴 것이다. 다정하고 진심 어린 그 소리가, 유리병에 떨어지는 동전 소리처럼 공허하게 메아리칠 것이다. (린다 살츠먼 세이건, 《지구의 속삭임》 174쪽)

 

 

광활한 우주에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인간뿐이라는 건 고독한 상상이다. 보이저호의 우주 탐사는 인간이 고독한 상상에 해방될 수 있는 프로젝트다. 보이저호는 이 광막한 우주에서 얼마나 오래 날아가야 외계 생명체를 만날 수 있을까. 아마 못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레코드판에 수록된 정보의 수명은 10억 년은 된다고 하니, 그 사이에 외계 생명체를 만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인류가 멸종되지 않는다면 우리 후손은 외계 생명체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이저호의 우주 탐사가 성공이냐 실패냐 결과만으로 따지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타임캡슐 레코드는 우리 눈과 머리로 새기기 힘든 우주와 인류의 조화가 함축된 상징적인 결과물이다. 이 우주와 인류의 조화가 바로 세이건이 강조했던 ‘코스모스(Cosmos)’이다. 타임캡슐 레코드 속에 담긴 메시지들은 지구적 관점이 아닌 우주적인 관점으로 지구 내부의 풍경을 바라봐야 특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지구에 관한 정보들이 우리의 일상사일 뿐만 아니라 우주와 연결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식》의 저자 루이스 다트넬은 과학이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의 나열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알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371쪽)라고 말했다. 다트넬의 말은 내가 지금까지 보이저호의 ‘골든 레코드’를 ‘타임캡슐 레코드’로 명명한 이유의 근거를 받쳐준다. 《지구의 속삭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의 지적 유산’의 나열이 아니라 ‘어떻게 인류가 지적 존재가 되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인류가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현대 기술 문명을 구축한 것은 불과 지난 수백 년간의 일이다. 이러한 인류의 시대는 우주적인 관점에서 그야말로 찰나적인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광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인류는 마치 기적과 같이 같은 행성에서 같은 시대에 함께 시작점에 놓여 있다. 먼 미래에 인류 문명이 진보할 것인지 현재로썬 예측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인류는 이 소중한 행성에서 제 살길 찾느라 때때로 파괴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게 되면 보이저호가 우주 한가운데에 소멸되는 것보다 인류가 먼저 사라지는 일이 더 빨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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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4 2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한대의 우주 속에서 인간은 뭘 그리 욕심이 우주만큼 넓어서 여기서 서로와 싸우고 지지고 뽁고 하는지 참 어이없는 탐욕들이 많아요..딱하루만이라도 무기 내려놓고 서로 손이나 한번 잡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cyrus 2016-10-15 16:44   좋아요 1 | URL
탐욕이 많은 사람들은 지구를 인류 공동의 땅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이들을 비판하고 맞서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AgalmA 2016-10-15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켑틱 3호 보면 우주로 보낸 메시지들은 혹 있을 위험을 대비해 외계인에게 탐지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했는데, 골든 레코드의 진실은 뭘까요. 지구인의 자기 만족?

cyrus 2016-10-15 16:49   좋아요 0 | URL
《지구의 속삭임》의 역자 김명남 씨의 후기에 따르면 《스페이스 미션》이라는 책에 골든 레코드 프로젝트의 최근 결과를 알 수 있다고 밝혔어요. 사실 《지구의 속삭임》이 70년대에 나온 책이라서 외계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에 관한 최신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문헌이 되기에 많이 부족합니다. 스켑틱 3호도 참고해서 읽어봐야겠어요. ^^

페크pek0501 2016-10-16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 우주 이런 것 생각하면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이상하게 생각되어요.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이상하고 말이죠.
달나라를 여행하는 시대가 와서 제가 갔다 온다면 저의 인생관, 가치관도 많이 바뀔 것 같습니다.

cyrus 2016-10-17 11:19   좋아요 0 | URL
우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면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