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12] 오스 루시아다스

 

 

 

일반적으로 ‘대항해 시대’라면 ‘무적함대’라는 별명으로 위용을 떨친 스페인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포르투갈도 대항해시대의 주역이었다. 미지의 바닷길을 개척하고, 그 선상에 있는 섬과 대륙의 땅들을 점령하던 거친 시대의 문을 앞서 열었다. 1415년 엔히크 왕자(1394~1460)가 아프리카 경략에 나선다. 그가 파견한 탐험선은 서아프리카 해안을 하나둘 정복해 가면서 마침내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가는 항로를 연다. 한 번도 항해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항해 왕’이란 호칭이 붙는다. 인도항로를 연 바스쿠 다가마(1469~1524), 인류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에 성공한 마젤란(1480?~1521),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에 처음 발견한 바르톨로메우 디아스(1450?~1500)도 포르투갈 사람이다. 희망봉의 원래 명칭은 ‘폭풍의 곶’이다. 1497년 희망봉을 통과하여 인도에 도착한 가마의 항해를 기리기 위해 포르투갈 왕 주앙 2세(1455~1495)가 희망봉으로 바꿨다. 포르투갈은 개척한 항로를 통해 대규모 함대를 파견해 인도양의 이슬람 세력을 제압하고,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전성기를 맞는다.

 

 

 

 

 

 

 

 

 

 

 

 

 

 

 

 

 

포르투갈은 한때 바다를 제패하여 세계를 호령한 만큼 화려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비록 최근엔 경제위기 등으로 과거의 영광에 그치고 있지만 말이다. 과거가 너무나도 찬란해서일까. 포르투갈인들은 찬란했던 과거 시절을 노래한 서사시에 자부심을 가진다. 그 서사시가 바로 《우스 루지아다스》(Os Lusiadas)다. 루이스 디 카몽이스(Luís Vaz de Camões, 1524~1580)는 이 서사시 하나로 포르투갈의 국민 시인으로 칭송받는다.

 

 

 

 

 

카몽이스는 1547~1548년경에 아프리카의 세우타 항구에서 일어난 무어인(북아프리카에 거주한 이슬람교도)과의 전투에 참전하다가 오른쪽 눈이 실명했다. 그는 순탄하지 않은 생을 살았는데 옥살이를 한 적이 있고, 인도로 향하는 도중 배가 폭풍우를 만나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빈곤에 시달린 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우스 루지아다스》의 국내 번역본이 1988년에 나온 적이 있었으나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서사시는 총 10곡(曲)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석영, 최영수 공저의 《스페인. 포르투갈사》(대한교과서. 2005)에 요약한 《우스 루지아다스》의 줄거리가 있다. 이 내용은 ‘네이버 백과사전’ 항목으로도 만들어졌다.

 

 

 

 

 

 

 

 

 

 

 

 

 

 

※ [카몽이스의 ‘루지아다스’]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09392&cid=43036&categoryId=43036

 

 

 

카몽이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차용하여 포르투갈의 역사와 전성기를 이끈 인물들을 찬양한다. 인간 중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자와 작가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텍스트에 기댔다. 고전의 새로운 해석은 역사를 이끌어갈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가는 기초다. 카몽이스는 신화의 세계를 소재로 포르투갈의 역사를 구현했다. 그래서 《우스 루지아다스》가 장편 서사시라기보다는 영웅 신화에 가깝다. 카몽이스는 가마를 로마의 건국 영웅보다 뛰어난 인물로 묘사했다.

 

 

아이네이스의 명성을 능가한 저 유명한 가마도 있나이다.

 

(제1장 12연, 28쪽)

 

 

영웅은 언제나 악의 세력에 의해 고난을 겪다가 최후에 승리한다. 아이네이스나 오디세우스 등 신화 속 영웅들은 모험을 통해 스스로 고난을 극복하고 초자연적인 힘을 얻는다. 독자는 신화를 보면서 영웅의 탄생과 고난, 승리를 함께하는 즐거움을 찾는다. 주신(酒神) 바쿠스(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는 가마 일행의 항해가 신의 영역을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가마 일행의 항해를 방해하는 음모를 꾸미지만, 비너스(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와 마르스(그리스 신화의 아레스)가 가마 일행을 보호한다. 비너스는 주피터(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게 찾아가 포르투갈에 호의를 베풀어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우스 루지아다스》 2곡). 머큐리(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는 가마의 꿈에 나타나 위기 상황을 미리 알려준다. 신들의 비호를 받는 가마의 모습은 ‘완벽한 영웅상’과 거리가 멀다. 가마는 자신의 여정을 이야기하면서 장거리 항해의 어려움을 토로한다(《우스 루지아다스》 5곡). 카몽이스는 가마를 유약하게 그리기보다는 온몸으로 고난에 부딪히면서 한계를 겪는 인간적인 영웅의 면모를 부각시켰다.

 

 

 

 

 

 

 

 

 

 

 

 

 

 

 

 

 

카몽이스가 묘사한 가마의 항해 여정은 조셉 캠벨이 제시한 영웅 모험 단계 진행 방식과 거의 흡사하다. 모험의 소명(인도 신항로 개척)을 받아 특별한 세계(아프리카)로 진입해 협력자(말린디의 왕)와 적대자(무어인, 몸바사의 왕, 말라바르의 재상 카투알)를 만나고 시련을 이겨낸다. 또 하나의 현실적인 관문(희망봉의 정령 아다마스토르)을 거쳐 부활을 경험하고 성공적으로 (포르투갈로) 귀환한다.

 

 

 

 

 

 

 

 

 

 

 

 

 

 

 

 

《우스 루지아다스》는 포르투갈을 넘어 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장편 서사시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대항해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생각하면 카몽이스의 과장법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지리상의 발견’이 나 ‘세계탐험’이란 미명 아래 비참하게 죽어간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운명은 세계사에서 이 시대가 가진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유럽의 식민주의의 양대 무기는 군대로 상징되는 총칼과 선교사가 대표하는 기독교다. 탐험가들은 벼락부자를 꿈꿨고, 선교사들은 기독교 전파라는 소명감이 높았다. 엔히크 왕자는 무력으로 아프리카인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했고, 노예무역을 정당화했다. 이슬람 국가들에 의해 동방으로 가는 육로가 막히자,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 유럽 국가는 이슬람인들을 적대시했다. 세계의 승리를 가져오겠다는 기독교적 사명감이 이슬람과의 대립에 불을 지폈다. 유럽인들은 이슬람으로부터 오랫동안 위협의 공포에 떨었던 시절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슬람에 대한 유럽인들의 앙금은 《우스 루지아다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카몽이스는 무슬림을 ‘오류투성이 종파의 신자’라고 표현하는 등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기독교와 아무런 상관없는 주피터는 이교도를 물리친 기독교가 종국적으로 승리할 것으로 예언한다. 이 구절에 기독교 세계의 우월성을 확신하는 카몽이스의 진심을 읽을 수 있다.

 

 

 

딸(비너스)이여, 그들(루지타니아인 : 포트루갈인)에 의해서 요새와 도시들과

또 높은 성곽이 세워짐을 볼 것이요.

너무도 호전적이며 거친 터키족이 그들 손에서

영원히 괴멸됨을 볼 것이요. 인도의 제왕이

자유와 안전을 찾아서 강력한 대왕 앞에

복종함을 볼 것이다. 또 모든 것의 상전이 될

그들로 해서 종국엔 그 땅에 가장 좋은 율법(기독교)이

제공될 것이야.

 

(제2곡 46, 47연 주피터의 말 62~63쪽)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은 ‘강력한 대왕’이 되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나타났다. 카몽이스와 유럽인들이 원하던 희망은 제국주의의 수탈을 알리는 폭풍이 되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정복전쟁을 정당화하는 계몽주의의 신화로 식민지를 만들었다. 토인비는 ‘한번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자신의 능력과 방법론을 우상화하는 과오’를 휴브리스(Hubris)라고 불렀다. 신의 영역을 넘보는 오만함은 쇠퇴의 원인이다. 천년만년 영광을 누리며 번성할 것 같던 포르투갈은 현재 유럽 변방의 낙오자로 전락했다. 잃어버린 영광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포르투갈인들은 《우스 루지아다스》를 보며 위안으로 삼을 것이다. 허나 부질없는 일이다. 보르헤스는 ‘루이스 디 카몽이스에게’라는 제목의 시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상기시킨다. 영광은 종이 속에서만 영속되어 있을 뿐이다.

 

 

 

 

 

 

 

 

 

 

 

 

 

 

 

 

 

일말의 연민과 분노도 없이

시간이 영웅적 칼들을 갉아먹네.

아, 대위여, 당신은 슬픔에 잠겨

향수 어린 조국으로 가련히 돌아왔지.

조국에서 조국과 더불어 최후를 맞으려고.

마법의 사막에서 포르투갈의 꽃이 낙화하고

과거의 패배자였던 냉혹한 스페인 사람이

찢긴 그의 옆구리를 위협하였네.

나는 알고 싶네.

네가 최후의 강변인 그곳에서

겸허하게 깨달았는지.

모든 상실된 것, 서구와 동방, 창검과 깃발이

네 루시타이나판 아이네이스 속에서만

(인생사 우여곡절과는 무관하게) 영속하리라는 것을.

 

(보르헤스 「루이스 디 카몽이스에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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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7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0-07 19:37   좋아요 1 | URL
인터넷에 `대항해시대`를 검색하면 제일 먼저 뜨는 것이 게임입니다. ㅎㅎㅎ

저 말고도 매일 꾸준히 리뷰를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화제의 서재글`이 알라딘의 전부가 아니죠. `화제의 서재글` 밖을 둘러보면 묵묵히 리뷰를 쓰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

겨울호랑이 2016-10-07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몽이스의 애꾸눈을 보니 위나라 하후돈이 생각나네요 ㅋ

cyrus 2016-10-07 19:38   좋아요 1 | URL
눈깔 사탕으로 생각하면서 씹어드신 분이죠. ㅎㅎㅎ

비로그인 2016-10-25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항해시대에 관한 책들이 많군요.
관심이 갑니다.

cyrus 2016-10-25 18:40   좋아요 0 | URL
대항해 시대 역사를 살펴보면 의외로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