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이즘(Dadaism)과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됐던 반전 정서와 기존 미학을 부정하는 반 예술을 토대로 출발했다. 따라서 명칭만 다를 뿐 내포된 이념과 사고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특히 마르셀 뒤샹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양쪽 사조에 두 다리 걸친 인물이다.
그는 전후 암울한 세상을 조롱하며 변기에 사인해 출품을 했다. 심지어 ‘샘(Fountain)’이란 제목도 붙였다. 황당한 심사위원들은 뒤샹의 변기가 예술을 모독하는 거라며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현재 「샘」의 원작은 분실됐지만, 파리 퐁피두 미술관에 전시된 복제품은 어마어마한 금액을 호가할 정도로 현대미술의 대표적 작품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앙드레 브르통은 뒤샹의 활약에 찬사를 보냈고, 그를 초현실주의 그룹에 초대한다. 다다이즘이 막을 내리고, 1924년에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하면서 초현실주의 그룹이 공식적으로 출범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다다이즘의 냉소주의에 한 단계 진화해 이성적 사고력이나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비이성적 의식을 미술에 도입했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제2선언’에 뒤샹을 언급한 문장이 있다. 별 내용은 아닌데 번역문에 문제가 있다.
* 뒤샹이 대전 무렵에 벌이고 있던 승부를 버리고 끝나지 않을 장기 승부에 빠질 자유는 없었다. (《초현실주의 선언》 182쪽, 황현산 번역)
* 오트 노르망디의 장기 챔피언이기도 했던 뒤샹은 당시 장기 시합에 얻은 수입으로 살고 있었다. (황현산의 주석, 《초현실주의 선언》 182쪽)
뒤샹이 장기(將棋)를 둘 줄 안다고? 이건 치명적인 오역이다. 뒤샹이 좋아했던 게임은 장기가 아니라 체스다. 체스가 장기와 유사한 놀이라고 해도 뒤샹과 체스의 밀접한 연관성을 생각한다면 황 교수의 단어 선택은 정말 터무니없는 번역이다.
뒤샹은 1923년 이후부터 미술가로서의 전면적인 활동은 사실상 중단하고 평생 체스에 몰두했다. 뒤샹의 체스 실력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1925년에 체스 마스터가 되었다. 1935년과 1939년에 체스 올림피아드의 프랑스 팀 주장으로 참가하여 챔피언에 올랐다. 이름이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준다고 했나. 변기 하나로 명성을 얻은 뒤샹(Duchamp)은 무패의 체스 챔프(champ)가 되었다.
뒤샹은 특별한 의도로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가볍게 체스를 두듯이, 또 놀이하듯이 작품을 만들었다. 비록 체스에 푹 빠져서 예술 활동을 중단했지만, 체스 선수야말로 ‘이미 준비된 흑백의 형태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라고 말했다. 그는 체스 진행 방식에 매료되어 체스 자체를 하나의 미적 취향으로 인식했다. 체스 게임을 즐기는 삶 자체가 예술작품을 만드는 하나의 노력이었다.
※ 그림 이미지는 위키아트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