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파상의 『오를라(La Horla)』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단편소설이지만, 모파상이 쓴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게 되면 모파상의 대표작 『비곗덩어리』와 『목걸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오를라』는 두 가지 버전으로 된 소설이다. 모파상은 1886년에 발표한 것을 개작하여 이듬해에 공개했다. 등장인물과 사건 전개는 똑같지만, 형식과 결말이 다르다. 두 번째 버전은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1886년에 나온 소설은 ‘오를라 1’(오를라 제1판), 개작한 소설은 ‘오를라 2’(오를라 제2판)이라고 부른다.
『오를라』의 주인공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환자다.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에 걸리고 나서부터 기묘한 형체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 이 환자는 불가사의한 존재가 밤낮으로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환자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환자는 신경 증상과 정신 착란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환자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오를라’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의 주장이 헛소리로 느껴지는 것도 당연지사.
환자의 진술에 따르면 오를라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오를라는 물과 우유를 마신다고 한다. 환자는 자기 전에 물과 우유를 탁자 위에 놓았는데, 다음 날 아침에 물과 우유가 없는 빈 병을 확인했다. 환자는 몽유병에 걸리지 않았고, 집의 하인들도 물과 우유에 손대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한밤중에 물과 우유를 마신 걸까? 환자는 오를라가 마셨을 거로 확신했다. 그는 언젠가 오를라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오를라에 대한 공포가 커질수록 환자는 과대망상 수준에 이른다. 그는 오를라가 인간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라고 믿는다.
그는 누구일까요? 여러분, 그는 이 지구가 인간 다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지위를 빼앗기 위해, 우리를 굴복시키기 위해, 우리를 삼키기 위해 오는 존재입니다. 그는 마치 우리가 쇠고기와 멧돼지 고기를 먹듯이 그들은 우리를 삼켜버릴지도 모릅니다. 수세기 전부터 인간들은 그 존재를 예감했고, 그 존재를 두려워했고, 그 존재를 예고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조상들의 머릿속을 끈질기게 따라다녔습니다. (《오를라》 ‘오를라 제1판’ 37쪽)
『오를라』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간의 정신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묘사한 수작이다. 특히 ‘오를라 제2판’은 제1판보다 인물의 정서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일기 형식의 제2판은 마치 실제 정신병 환자가 직접 쓴 수기와 같은 느낌이 난다. 실제로 모파상은 『오를라』를 쓰기 직후에 정신 착란의 징후가 있었다. 그런데 소설의 공포 분위기를 깨는 작품 설정이 있는데, 오를라를 ‘물과 우유만 마시는 투명 흡혈귀’로 설정한 점이다. ‘설정 구멍’으로 봐야겠지만, 『오를라』를 쓰고 있을 당시 모파상의 정신 상태가 ‘메롱’이었음을 고려하면서 읽어야 한다. 참고로 오를라 1판과 2판 모두 수록된 단편선집이 많지 않다. 절판된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장원출판사)이라는 책에도 『오를라』 두 가지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1996년에 나온 이 책이 『오를라』를 처음 소개한 모파상 단편선집일 가능성이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비평서 《공포문학의 매혹》에서 모파상의 『오를라』를 극찬했다. 러브크래프트 역시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소재로 공포소설을 남겼는데, 그의 대표작 『크툴루의 부름』은 모파상의 영향을 받고 쓴 작품으로 보인다. 『크툴루의 부름』에 등장하는 헨리 앤서니 윌콕스라는 남자는 『오를라』의 주인공 환자의 모습을 닮았다. 윌콕스는 조각을 공부하는 젊은 남자인데 어렸을 때부터 기묘한 꿈에 사로잡혔고, 신경이 예민한 성격이었다. 그 역시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오를라』의 주인공처럼 열병에 걸리면 기이한 환영을 목격한다. 윌콕스는 자신보다 거대한 ‘괴물’이 자신 주변을 배회한다고 말했다. 괴물에 관해서 설명하면 혼수상태에 빠졌다. 윌콕스가 무서워하는 괴물은 크툴루다.
※ 크툴루에 대한 설명이 있는 잡문
<Colla[book]ration #7 신들의 세계 : 던세이니 X 러브크래프트>
http://blog.aladin.co.kr/haesung/7369281
<러브크래프트 덕심으로 대동단결!>
http://blog.aladin.co.kr/haesung/8539616
이미 크툴루를 여러 차례 소개한 적이 있어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크툴루는 문어 머리에 촉수가 여러 개 달린 외계 생명체이자 고대의 신이다. 『크툴루의 부름』에 크툴루를 추종하고, 그의 부활을 위해 비밀 의식을 진행하는 이교도들이 등장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에서 종교의 일차적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대하여 가장 두려움을 느낀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와 신화를 낳았다. 모파상과 러브크래프트는 러셀보다 먼저 공포 본능이 우리 삶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진리를 파악한 모파상과 러브크래프트, 이 두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