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구원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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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자본주의는 어떤 관계일까. 시장경제는 과연 음악과 문학 그리고 미술의 성장을 장려하는가, 아니면 위축시키는가.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원칙은 창조성의 추구에 도움이 되는가, 혹은 폐해가 되는가. 예술은 자고로 가난과 삶의 고투 속에서 꽃핀다는 생각은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자본주의에 편입된 미술계 안에서 모든 미술품은 시장원리에 따라 거래되고, 미술품의 가격이 가치의 척도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상업화 논리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작품 마케팅에 나서는 아티스트들도 적지 않다.

 

 

 

 

 

뉴욕에 혜성처럼 나타난 앤디 워홀은 대중문화의 힘과 이미지, 대중 스타들의 막대한 영향력을 간파했다. 캠벨 수프 통조림과 코카콜라 병과 같은 대량 생산물을 그려 주목받고 엘비스 프레슬리, 메릴린 먼로 등의 이미지를 소재로 삼았다. 워홀을 자신의 히어로로 동경하는 제프 쿤스는 워홀의 뒤를 잇는 대중미술의 대표적인 주자다. 그가 설치한 대형 조각품인 주황색 풍선 개(Ballon Dog)는 생존 작가 작품 경매가격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거대한 풍선 오브제. 거울같이 매끄러운 풍선 개의 주황색 표면에 전시장과 관람객이 비친다. 그리고 관객 움직임에 따라 매끄러운 표면 속 이미지는 기묘하게 일그러지며 요술을 부린다. 한병철은 풍선 개의 매끄러운 표면, 스마트폰의 매끄러운 화면,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본다. 그는 이 매끄러운 대상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징표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피부가 까끌까끌한 거친 표면에 접촉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긴다. 매끄러운 표면을 만져야 기분이 좋아진다. 노출의 계절 여름을 맞아 매끄러운 피부를 갖기 위해 제모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잔털 없는 매끄러운 피부는 청결하고, 보송보송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매끄러운 아름다움이 유지되려면 부정성을 제거해야 한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대상은 ‘긍정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우리는 부정성의 존재를 잊은 채 매끄러운 대상의 아름다움을 긍정한다. 이로써 부정성을 제거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긍정사회’가 된다. 모든 것들은 소비와 향유의 공식에 맞춰 매끄럽게 변한다. 즉각적인 만족을 누리는 대중은 주체적인 미의 경험이 마비되었다. 진짜 아름다움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오로지 부정성이 없는 매끄러운 대상에 환호하고, ‘좋아요’ 중독에 빠져나오지 못한다. 한병철의 눈에는 매끄러움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긍정사회가 아름다움이 철폐되어가는 위기의 시대로 본다.

 

한병철이 아름답게 생각하는 대상은 부정성을 간직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아름다움을 표출하면 보잘것없는 포르노그래피다. 반면 비밀과 은밀한 은유로 점칠 된 대상은 깊은 여운을 주는 매력이 있다. 한병철이 선호하는 아름다움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다. 건강한 상태라고 생각하는 매끄러운 아름다움은 생명력이 없다. 이런 아름다움만을 먹고 살았던 우리는 ‘좀비(das Untote)’가 된다.

 

 

건강함은 매끄러움의 표현형식이다. 건강함은 역설적으로 병든 것, 생명이 없는 것을 발산한다. 죽음의 부정성이 없다면 삶은 굳어져 죽은 것이 된다. 그리고 매끄럽게 다듬어져 좀비가 된다. 부정성은 생명을 활성화시키는 힘이다. 그것은 또한 미의 정수이기도 하다. 미에는 허약함이, 연약함이, 부서짐이 내재한다. 미가 매력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이 부정성 덕분이다. 이에 반해 건강한 것은 매력이 없다. 그것에는 어떤 포르노그래피적인 성질이 있다. (69쪽)

 

 

한병철이 긍정적으로 보는 미는 허약하고,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속성이 있다. 이러한 유한성 때문에 한병철의 미는 베일에 싸여 있어야 하고, 은신처에 숨어 있다. 한병철의 미는 낭만주의자들의 특색을 조금 닮았다. 종종 낭만주의자들은 신비화 대상으로서의 자연에서 미를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병약하고 퇴폐적인 취향에 골몰했다. 허약하고, 불쾌감을 주는 부정성을 포괄하는 한병철의 미가 얼마나 아름답고, 건강한지 실질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한병철의 미학은 다소 현실의 미를 외면하는 관념론적인 성향이 느껴진다. 한병철은 예술과 ‘소비와 투기에 종속시키는 자본주의’의 결별을 시도한다. 상업주의로 인해 미가 타락하고 몰락해 가고 있다는 비관론적인 입장을 취한다.

 

 

 

 

 

오늘날 젊은 예술가들이 미의 가치를 잊은 채 상업적 조류에만 휩싸이는 풍토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현대예술은 자본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예술적인 미와 상업성의 이항대립에서 미는 선이고 상업성은 독이라는 위계적 이분법은 현실과 무척 동떨어진 발상이다. 예술의 상업화는 다양한 예술적 시각이 공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은 예술가의 창작욕을 북돋워주고, 그 속에서 예술가는 자본주의에 향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올해 5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등장한 저 매끄러운 황금 변기를 보시라.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 패배한 직후 버니 샌더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고 있을 때 부자는 황금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본다”라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이탈리아 출신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샌더스의 발언에 영감을 얻어 모든 관람객이 이용할 수 있는 황금 변기를 공개했다. 그는 매끄럽게 빛나는 황금 변기를 설치하여 소수 특권주의로 변질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조롱했다.

 

아름다움에 위기와 찾아왔다고 주장하는 한병철의 진단은 절반은 틀렸다. 카텔란의 황금 변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러니까 매끄러운 아름다움 속에도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고 경고하는 부정성이 내포될 수 있다. 이 부정성은 비판의식과 윤리적 성찰을 활성화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다. 아직 미의 위기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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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04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로사회, 심리정치, 시간의 향기, 투명사회..이 4권이 저서가 한병철 철학가죠...
이책 찜하겠습니다..

cyrus 2016-07-05 10:24   좋아요 1 | URL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전작보다 내용이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미학에 관심 있다면 `부정성`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6-07-04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별철과 애증의 관계 있으시죠? ㅎㅎ

cyrus 2016-07-05 10:26   좋아요 0 | URL
그렇게 보셨나요? ㅎㅎㅎ 이번에 나온 책, 많이 기대했습니다. 결론에 드러난 한병철의 생각을 동의하지 않지만, 읽어볼만한 책이었습니다. 수준이 평이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