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야화 세트 - 전6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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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1] 아라비안나이트 / 천일야화

 

 

 

 

사람은 누구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지식욕이 개별적인 것을 향할 때는 호기심”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과학이나 학문의 발달 역시 호기심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호기심은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판도라의 상자’는 인간의 호기심에 대한 경고를 상징한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분노한 제우스는 인간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각종 재앙이 담긴 작은 상자와 함께 판도라를 땅으로 내려보낸다. 상자 속에 뭐가 들었는지 호기심을 견디지 못한 판도라는 ‘절대 열어 보아서는 안 된다’라는 경고를 어긴다. 그때부터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판도라의 상자 이래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법은 상술에서 가장 흔하게 쓰인다. 여기에 성(性)과 관련된 내용이 빠질 리가 없다. 메일 제목에 성적 농담, 음란 사진, 성인 사이트 등으로 위장하고 첨부 파일을 넣어 유혹한다. 실제로 이메일을 받은 사람들의 80% 이상이 바이러스 메일인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일을 열어 봤다고 한다.  

 

《천일야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들이 가득하게 채워진 판도라의 상자다. 독자들은 이 어두컴컴한 상자 속에 있는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상자를 열면 셰에라자드가 ‘펑’ 하고 램프의 정령처럼 나타난다.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녀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셰에라자드를 죽이기로 한 샤리아 왕은 매일 밤만 되면 이야기의 노예가 된다. 왕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이야기에 중독되었다. 이쯤에서 한 번쯤 의문이 생긴다. 셰에라자드와 샤리아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에 사람들은 이야기에 빠지고 열광하는 걸까.

 

호기심은 우리가 이야기에 몰입하게끔 하여주는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해준다.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올리려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고조시켜야 한다. 드라마에 몰입한 시청자들은 결말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방송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재미있는 드라마는 마지막 방송까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셰에라자드는 왕의 호기심을 높이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시간이 임박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이야기 중간에 딱 끊어버린다. 셰에라자드는 목숨을 연명하는 조건을 붙여 다음에 펼쳐질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해질 거라고 암시한다. 셰에라자드는 남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이야기가 재미있는 거라고 말할 뿐이다. 셰에라자드는 의도적으로 예고를 들려주지 않는다. 사실 왕은 셰에라자드와 그녀의 동생 디나르자드의 치밀한 계획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실험은 가장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다. 이 실험의 내용은 개한테 밥을 줄 때마다 종소리를 울렸더니 결국 종소리만 듣고도 개가 침을 흘리더라는 것. 인간의 행동도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 배고플 때 음식 냄새를 맡으면 입안에 침이 저절로 고이는 것을 느낀다. 디나르자드는 언니가 알려준 대로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 항상 이런 말을 꼭 한다.

 

 

 

 

“언니! 만일 자고 있지 않으면,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조금 있으면 동이 틀 터인데, 그때까지 언니가 알고 있는 그 많은 재미난 이야기 중 하나를 들려주세요!”

 

 

왕은 마치 잘 길든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야기에 향한 호기심이 조건반사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말을 들은 왕은 어느새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셰에라자드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재촉한다. (《천일야화》 1권 45쪽을 보시라) 왕은 매일 통이 트지 않은 새벽에 이야기를 들었더니 나중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구하는 디나르자드의 말만 들어도 반응을 보인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의 저자 조너선 갓셜은 인간은 위험, 죽음, 고난, 섹스 등 불쾌하고 문제 많은 소재가 있는 이야기에 눈을 떼지 못한다고 했다. 이야기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실과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하다. 우리는 여기서 짜릿한 쾌감을 얻는다. 《천일야화》속에는 모험과 신비, 화려함과 에로티즘이 결합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독자들은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떻게 끌이 날지 눈을 떼지 못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보편 문법, 즉 이야기가 전개될 때 항상 나오는 패턴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곤경에 처한다. 그리고 슬기로운 지혜로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주변 인물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일곱 번이나 여행을 한 신드바드 이야기(《천일야화》 2권)와 '알리바바와 여종에게 몰살된 마흔 명의 도적 이야기'(《천일야화》 5권)를 좋아할 수밖에 없고, 아라비안나이트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로 거론한다.

 

《천일야화》를 편집한 앙투안 갈랑은 외설적이면서 잔인한 장면을 과감하게 삭제했다. 반면에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은 외설적인 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면서 편집했다. 갈랑의 편집본이 알려지면서 오랫동안 정전으로 자리 잡았던 버턴의 《천일야화》의 위력이 많이 떨어졌다. 버턴의 편집본을 청소년이 보기에 민망한 불편한 고전으로 바라보는 평가가 많아졌다. 그렇지만 다소 건전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갈랑의 《천일야화》가 버턴의 《천일야화》보다 작품성이 좋다고 보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 선정적인 장면이 많으냐 적는냐 묻는 일이 우수한 문학작품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 에로티시즘을 과도하게 부각시킨 버턴의 《천일야화》도 일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야한 묘사가 많은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려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끌린다. 인간은 사랑과 섹스가 있는 이야기에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이것이 (조너선 갓셜이 말한) 이야기의 역설이다. 《천일야화》를 읽으려는 독자들 모두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샤리아 왕과 동일한 상황이다.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정말 궁금하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상자를 활짝 열면 된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라. 상자를 열었다고 해서 불행이 찾아오지 않으니까. 다만 제대로 마음먹고 1,001일 동안 이어지는 이야기를 확인하려면 꽤 적지 않은 양의 시간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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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7-0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기대하고 읽었다가 2권부터 진이빠지더니 4권까지 읽곤 다운됐습니다.....

5권계왕권말씀이 생각나네요.

cyrus 2016-07-02 13:57   좋아요 0 | URL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3, 4권이 좀 지루했습니다. 3, 4권에 왕자와 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이야기를 안 좋아합니다. 주인공이 모험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

yureka01 2016-07-01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의 포르노 집대성? 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맞는지요? 아 또 그 호기심은 자극하기에 충분한듯한....ㅋ

요즘 스파이웨어 대신에 랜셈웨어가 뜬다죠.메일이나 이상한 싸이트 열러보다가랜섬 걸려서 파일 뭍어 오면, 서류파일 ...사진 파일 동영상파일 모조리 암호 걸어서 ,,돈 안줌녀 암호 안준다고 협박한다죠....호기심의 조절력..이게 참 간단치가 않아서 낚시당한다는...

cyrus 2016-07-02 14:01   좋아요 1 | URL
제가 버턴의 <천일야화>를 1권만 읽었습니다. 이어서 남은 권도 읽어볼 예정입니다. 그런데 천일야화에 나오는 야한 장면들이 포르노 수준은 아닙니다. 1권에 왕비와 궁녀, 그리고 흑인 노예들이 모여서 난교하는 장면이 나오기 합니다만,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습니다. ㅎㅎㅎ

랜섬웨어 때문에 요즘 사진 이미지 저장을 할 때 출처가 분명한 사이트만 찾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