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 - 지질학자, 기록이 없는 시대의 한반도를 찾다
최덕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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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언제 만났더라?’ 바쁜 현대인은 며칠 전의 일도 깜박하곤 한다. 쏜살같은 시간의 흐름에 묻혀 며칠, 몇 달 전의 시간조차 기억에 붙잡아두기가 쉽지 않다. 다른 곳에선 수십억 년의 시간을 계산하며 과거를 캐는 사람들이 있다. 먼 과거에서 찾아온 화석과 암석의 연대를 추적하는 지질학자들이다. 그들이 아주 먼 과거를 알아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나이테가 나무의 나이를 기록하듯이 자연은 언제나 시간의 기록을 남긴다. 분침과 시침이 일정하게 움직이듯이 지구에 수십억 년마다 움직이는 시계가 숨겨진 채 존재한다. 그 ‘시계’가 바로 암석이다. 지질학자들은 자연에서 그 시계를 발굴해 그동안 흐른 시간을 밝혀낸다. 암석에는 ‘지질학적 사건’이 일어났던 중요한 시간이 새겨져 있다. 이런 점에서 지질학자는 자연에서 일어난 지질학적 사건의 발생 시기와 상황 그리고 자연의 알리바이를 추적하는 탐정과 비슷하다. 암석 속에 새겨진 기록이 ‘지질 수사(조사)’의 단서가 된다. 한편으로 지질학자는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최덕근 명예교수는 지질학자들만 누렸던 지구 시간 여행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10억 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은 우리가 사는 한반도 땅덩어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저자기 직접 목격한 국내 지질학 역사의 현장까지 살펴보는 ‘타임머신’ 같은 책이다.

 

지질조사의 결과는 지질도 하나로 정리된다. 그야말로 지질학자들에게 지질도는 각별하다. 그래서 지질도는 오랜 연구 노력 끝에 나온 연구 성과를 빛나게 해주는 ‘지질학의 꽃’이다. 지질도는 암석을 종류와 나이에 따라 구분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전국 방방곡곡마다 조금씩 말과 문화가 다르듯 암석도 다르다. 지역별로 정확히 분포가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곳을 대표하는 암석들이 있다. 우리나라에 가장 광범위하게 분포한 돌은 화강암이다. 화강암은 깊은 땅속에서 서서히 식으며 굳어진 돌이라 검은색 등을 띠는 결정의 크기가 크다. 그 결정들로 이뤄진 무늬가 화려하고 가공이 편리해 석재로 애용된다. 대리석은 조개껍데기 등이 쌓여 형성된 석회암이 열과 압력을 받아 변한 암석이다. 과거 바다였던 지역에 대리암이 많은 이유다. 제주 하면 단연 현무암이다. 현무암은 땅속의 마그마가 화산 폭발로 인해 나오면서 이산화탄소 등 해로운 물질들이 빠져나간 뒤 굳어진 돌이다. 그 흔적이 현무암에 숭숭 뚫린 구멍들이다. 무심코 지나치는 도로변의 깎인 암석들엔 대개 수천만, 수억 년의 시간이 간직돼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반도엔 캄브리아기 이전부터, 고생대, 중생대 그리고 신생대까지 갖가지 나이의 암석들이 어울려 있다. 한반도는 거대한 지질학 교과서이다.

 

일반적으로 지질학 지식은 우리 생활에 직접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원 확보나 국토 개발 또는 환경 보존 등에 이용된다. 그러나 땅에 매장된 자원을 찾는 것보다는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또는 일어났던 자연현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지구는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구 내부는 어떤 모습이고, 또 어떤 과정을 겪어서 현재와 같은 한반도의 모습에 이르렀을까 하는 내용이다. 과학적인 지질조사를 통해 만들어진 태백산지구 지질도는 1961년에 만들어졌다. 이 지질도가 제작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불과 4개월이다. 태백산지구 지질도는 과학적인 목적보다는 태백산 자원 분포를 확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보다 지질학 역사가 긴 영국에서는 완벽한 지질도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과거 70년대 국민적 병리 현상이었던 ‘빨리빨리’ 문화만 아니면 지금보다 더 정확한 지질도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도 여전히 ‘빨리빨리’ 성과를 내려는 사회 풍조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세밀하게 암석을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는 지질학자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점점 비좁아지는 취업 관문으로 인해 지질학자의 길을 걷으려는 젊은 세대가 많지 않을 것이다.

 

지질학자 양성이 시급해 보인다. 나만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암석의 나이를 정확하게 측정할 줄 아는 유능한 인력이 없으면 전혀 소용이 없다. 지질학자는 지하자원의 위치를 찾아내는 보물 사냥꾼이 아니다. 지질학자는 지형의 역사를 파악할 줄 알고, 미래에 일어날 지형 변화까지 예측하는 시간 여행자다. 국내 지질학자들이 정부의 명령에 따라 지하자원 혹은 싱크 홀이 있는지 찾고 있을 때, 외국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지구상의 대륙은 우리가 느낄 수는 없지만 매우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뜨거운 지구 내부가 천천히 이동하는 탓에 겉가죽에 해당하는 대륙 역시 덩달아 움직인다. 대륙이 오랜 기간 꾸준히 움직이다 보면 서로 부딪치고 합쳐지기도 하는데 약 1억 년 후에는 한반도를 포함해 온 대륙이 모이게 된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서로 만나 한 개의 땅덩어리가 된다. 그 결과 동해는 사라지게 되는데, 앞으로 1억 년 후의 일이라 다행이다. 지질학적 시곗바늘을 조금만 뒤로 돌리면 지구가 움직인 증거가 한반도 내륙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이 시rPt바늘을 볼 줄 알고, 뒤로 돌리는 법을 아는 지질학자가 많아야 한다. 한반도의 단층 구조와 지층 안정성에 관한 연구와 예측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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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6-1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다닐때..지구과학을 아주 좋아했던 과목이었어요...지질학...이게 좀 매력있어요...천문학도 ^^..

cyrus 2016-06-13 21:46   좋아요 1 | URL
고등학교 과학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나누어졌는데, 지구과학이 배우기 쉬웠어요. 나머지 과목은 암기해야 할 내용이 많았던 것 같아요. ^^

오거서 2016-06-12 23: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질학자는 매년 일정한 수만큼 배출되고 있어요. 전국 대학을 통해서요. 외국에 유학하는 석박사도 적지 않아요. 그러나 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서 진로를 바꾼다는 것이 문제지요. 현실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진로를 변경한다는 거지요. 특히 국내에서 자연과학도가 연구와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길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봐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 절대 부족하니까요. 현실적인 대안이나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바라는 바는 실현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지질학이 참 인기 없는 학문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꿋꿋하게 공부하고 있는, 지질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대견할 따름이에요.

cyrus 2016-06-13 21:49   좋아요 2 | URL
지질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까봐 걱정입니다. 지질학은 장기적으로 연구해야 성과가 나오거든요. 지질학 전공 학생들 입장에서는 진로 결정에 고민이 많을 거예요.

transient-guest 2016-06-14 0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질학도 참 대접을 못 받는 학문인 듯 합니다. 빅뱅이론에서 Sheldon Cooper가 언젠가 ˝Geology is not a science˝라고 외치곤 도망하는 scene이 있는데, 이걸 보면 미국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리도 중요한데도 말이죠.

cyrus 2016-06-14 18:19   좋아요 0 | URL
T-guest님의 인용이 아주 적절한대요. ㅎㅎㅎ 미국의 지질학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어요. 영국 지질학 역사는 이 백년이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