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마틴 가드너가 꼼꼼하게 주석을 단 《앨리스》(북폴리오)의 평점을 수정했다. 처음에 별 다섯 개를 줬다. 오늘 세 개로 수정했다. 평점을 바꾼 이유가 있다. 최근 이 책에 오역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역을 지적한 서평 두 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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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호련)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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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반지님 서평
엄청난 양의 주석에 정신 팔려서 책을 대충 읽었다. 원문을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른 채 책이 좋다고 믿었던 내 모습이 부끄럽다. 어제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월의봄)을 주문했다. 이 책에 원문도 수록되어 있어서 최인자 씨의 번역문을 대조해가면서 읽으려고 한다. 쉽지 않은 과제 하나가 생겼다.
오래전부터 최인자 씨는 오역 문제로 비난을 많이 받았다. 그녀가 해리 포터 시리즈 4권부터 7권까지 번역을 맡으면서(4권은 1권부터 3권까지 단독 번역한 김혜원 씨와 공동 번역했다) 꽤 적지 않은 오역 사례가 지적되었다. 오역 사례가 궁금하면, 나무위키에 있는 ‘해리 포터 시리즈/오역’ 항목을 참고하시라. 이 오역 사례 이후로 일부 독자들은 최인자 씨가 번역한 책을 보면 일단 의심하는 상황까지 생겼다. 최인자 씨가 공들여서 번역했다는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전 14권 또한 오역이 상당히 많다는 비판이 있다. 최근에 최인자 씨가 번역한 작품은 V.S. 네이폴의 《도착의 수수께끼》(문학과지성사), 토니 모리슨의 《재즈》(문학동네)다.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해가면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은 소수의 독자를 제외하면 최인자 씨의 번역 문제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나도 최근에 알았다.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를 펴낸 문학세계사 관계자는 최인자 씨의 번역 문제를 정말 모르는지 무한 신뢰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 ‘링크’를 누르면 관련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번역가 키워야 우리문학이 큰다> 동아일보, 2002년 12월 27일 자
아이러니하게도 기사 제목은 이렇다. ‘번역가 키워야 우리 문학이 큰다’. 2002년 12월에 작성되었다. 놀랍게도 가장 좋은 번역 사례로 최인자 씨가 소개되었다. 그것보다 더 놀라운 점이 있다. 《우울과 몽상》(하늘연못)을 번역한 홍성영 씨도 포함되었다. 세상에!
기사 댓글을 살펴보면, 독자들 눈 밖에 난 최인자 씨의 심각한 인지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솔직히 홍성영 씨도 뺍씨다! 정오표조차 나오지 않은 오역투성이의 《우울과 몽상》을 지금까지도 뻔뻔하게 판매되고 있는 현실이 놀랍다.
번역이 안 좋은 책이 많이 있을 텐데 독자 혹은 출판사 직원들은 잘 모른다. 특히 독자는 출판사의 홍보와 역자의 인지도를 믿고 지갑을 연다. 잘못된 책을 돈 내고 사는 것이다. 출판사는 독자가 잘못된 책을 사면 바꿔줘야 할 의무가 있다. 번역가를 전문적으로 양성한다고 해서 문학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역을 인정하고, 스스로 고치려는 기본적인 자세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그러려면 독자나 전문가의 비판적인 의견을 허용하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번역가는 자신의 오역을 실수로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장미의 이름》 구판의 오역을 지적한 강유원 씨와 오역을 바로잡아 개정판을 펴낸 故 이윤기 씨가 가장 좋은 사례다. 권위와 고집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한국 문단에 이런 최고의 미덕이 나오기 힘들다. 문학권력은 합리적인 비판을 ‘시비’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귀 닫고 책 파는 데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