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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의 정치학 - 아주 평범한 몸의 일을 금기로 만든 인류의 역사
박이은실 지음 / 동녘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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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o Bleed’ 이벤트에 동참한 아디티 굽타 (사진출처: 허핑턴포스트)
작년 11월에 인도 페이스북에 공유된 문구가 화제가 되었다. Happy to Bleed.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면 ‘피 흘려서 행복해요’다. 인도 여성들은 ‘Happy to Bleed’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녀들은 왜 피 흘리는 일을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이유가 있다. 그녀들은 힌두교 신자들이다. 힌두교의 원칙에 맞서기 위해 항의 시위를 한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월경하는 여성을 불결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월경 중인 여성은 신성한 종교 행사에 참석할 수 없고, 사원에 들어올 수 없다. 인도 서남부에 있는 사바리말라 사원은 월경 여성뿐만 아니라 가임기 여성까지 서원 출입을 거부했다. 사바리말라 사원의 지도자는 여성이 사원에 출입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계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발언을 하여 힌두교 여성 신자들의 분노를 키웠다. 월경을 불경하게 보는 인식에 저항하기 위해 인도 여성들은 ‘Happy to Bleed’ 플래카드를 들기 시작했다.
자, 여기까지 들으면 인도 여성들의 분노가 이해된다. 인도 여성들은 월경에 대한 부정적 편견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원 지도자의 발언은 경솔했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인식이 내재한 발언이다. 가부장적인 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Happy to Bleed’ 열풍을 보도한 영국 텔레그래프의 시선은 달랐다. 사원 지도자의 발언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원래는 월경하는 여성 신자들은 휴식을 취하려고 자발적으로 종교의식 참석을 하지 않았다. 텔레그래프는 이런 전통이 왜곡되어 ‘차별’로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원 출입을 하지 못한 월경 중인 여성은 차별적인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 특권을 받는 셈이다. 페미니스트들은 텔레그래프의 입장에 반박할 것이다. 텔레그래프가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는 남성 중심의 종교 이데올로기를 미화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둘 중 누가 잘못한 것일까? 차별이 아닌 구별이라고 일축하는 종교 지도자일까, 아니면 전통을 잘못 이해한 여성 신자일까? 이와 같은 월경을 이해하는 남녀 인식의 차이를 논할 때 누가 잘못했냐고 따질 일이 아니다. 여기에 얽매이는 토론 진행자들은 한순간에 전투력이 급상승한다. 여성 신자를 옹호하는 페미니스트나 종교적 전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여성이라고 비난하는 남성이나 둘 다 맞는 소리를 했다고 볼 수 없다. 내 입장에 대해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은 이 어려운 문제를 회피하려고 어정쩡한 견해를 밝힌 건 아니냐고. 내가 둘 중 한 사람의 손을 들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분명히 ‘손을 들지 못하는 이유’라고 썼다. ‘손을 들지 않는 이유’라고 썼으면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회피하는 발언으로 보일 수 있다. 월경을 문화적, 종교적 측면으로 이해한다면 당신들도 나처럼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월경, 쉽게 바라보고 지나칠 단순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다.
박이은실의 《월경의 정치학》을 읽어보면, 그동안 우리가 월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페미니스트도 마찬가지다. 인류학이나 비교문화 같은 분야를 공부한 적 없는 페미니스트들은 월경하는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머지 월경 문제에 밀접하게 연결된 전체적인 상황을 놓치는 오류를 범한다. 오류를 저지르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인류(남성)가 만들어 낸 종교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긴다. 그리고 중요한 종교적 행사에 월경하는 여성의 출입을 막는다. 그들이 만들어 낸 월경 터부(‘월경하는 여성들은 특정한 일을 해선 안 된다’)로 여성의 활동을 억압하고 통제한다. 남녀평등 인식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던 과거에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다가 시대적 변화에 맞춰 여성 평등 인식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면서 여성을 억압하는 월경 터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월경 기간의 무슬림 여성(여성 이슬람 신자를 ‘무슬리마’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총칭인 ‘무슬림’으로 썼다)들은 종교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휴식이라고 여긴다. 오히려 무슬림 여성들은 월경 터부를 긍정적으로 이해한다. 과연 이런 반응을 여성을 차별하는 문제로 볼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월경 터부가 단순히 여성들을 억압하기 위해서만 형성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월경 터부가 여성을 해방해주는 긍정적인 작용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렇다고 이러한 주장이 여성을 억압하는 월경 터부를 미화하려는 의도로 나온 것이라고 보면 곤란하다. 월경 터부의 부정적 측면을 반박하고 있어도 애초에 그런 현상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월경 터부에 대한 인식이 사회 또는 문화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주장일 뿐이다. 텔레그래프는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Happy to Bleed’ 열풍을 바라봤다.
사바리말라 사원 지도자의 발언은 문제가 많다. 그 발언 속에 월경을 혐오하는 공포 심리가 크게 작용한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온 잘못된 선입견이다. 그는 여자를 남자에게 규제받아야 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의 머릿속에 월경을 확인하는 기계라는 괴상한 발상이 튀어나왔다. 힌두교만 그런가.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마리아의 월경에 통해서 태어났다는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한다. 우리나라 사회에도 여성의 월경을 꼭꼭 숨겨야 할 ‘나쁜 현상’으로 보는 인식이 남아 있다. ‘월경’의 ‘월’ 자를 꺼내는 것조차 불편해한다. 월경으로 인한 신체적 증상 및 감정 변화를 의학으로 고쳐야 할 병리적 현상으로 이해한다. 이럴수록 여성 월경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점차 좁혀지고, 부정적으로만 바라본다.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여성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래서 작년 영국에서는 ‘월경 없는 삶’을 선택한 여성들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녀들은 직업에 대한 열정을 쏟아 붓기 위해 호르몬 주사를 맞아가면서 월경을 인위적으로 중단했다. 그러나 약물에 의존하는 월경 중단이 지속하면 건강상 문제가 따른다. 영구 불임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올 수 있다. 활동을 제약하는 월경의 선입견에서 벗어나고 싶어 ‘월경 없는 삶’을 선택한 그녀들의 행보가 심히 걱정된다. 사회가 만들어 낸 월경에 대한 잘못된 불편이 오히려 여성들의 삶을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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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의 정치학》은 ‘월경 있는 삶’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다만, 이 책의 한계는 여성들의 증언이 다종교 사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단점을 보충하는 책이 있다. 《마이 리틀 레드북》(부키, 2011)은 월경에 대처하는 서양 여성들의 솔직한 심정을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월경 현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인지 와 닿지 못한 남성 독자라면 이 두 권의 책을 읽어봐야 한다. 그러면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월경 있는 삶’이 어떤 건지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