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 여성 작가의 이름을 아는 대로 대본다. 조르주 상드, 시몬 드 보부아르, 프랑수아즈 사강. 이 작가들은 작품뿐만 아니라 사생활도 유명했다. 상드는 음악가 쇼팽과 시인 뮈셰를 치명적인 사랑의 열병에 앓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남장으로 담배를 피우면서 다니는 여성해방론자였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 생활을 했다. 사강은 말년에 마약 복용 혐의를 받게 되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을 하여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탈세 혐의로 벌금형과 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그녀들의 파격적인 행보를 기억한다. 소수만이 그녀들의 거침없는 성격을 손가락질하고 있지만, 지금은 시대를 앞서간 진취적인 행동으로 기억한다. 덤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애독하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왜 이 작가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까? 만약 이 작가의 이름을 대고, 아느냐고 물어보면 태반이 누군지 모른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 작가도 상드, 보부아르, 사강만큼이나 대중 앞에서 튀는 인생을 살다 갔다. 그녀는 자신의 별스러운 성격과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러한 성격 탓에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성사회의 풍습을 거부하는 날 것 그대로의 여자였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그녀는 파리를 활보하는 여자 목신(牧神)이었다.

 

콜레트는 1873년 해군 장교인 아버지와 강인한 성격을 지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좋아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한 작가는 발자크였다. 풍부한 독서 덕분에 콜레트는 글쓰기에 관심을 끌게 된다. 그녀는 스무 살에 작가 겸 문학비평가인 앙리 고티에 빌라르와 결혼한다. 이때부터 그녀는 파리에서 생활하기 시작한다. 남편은 콜레트의 글쓰기 실력을 눈여겨봤다. 그러나 그 당시 보수적인 파리 문단은 여성의 글쓰기를 관대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1900년 콜레트는 남편의 필명 윌리(Willy)’를 빌려서 자신의 첫 작품 <클로딘의 학교생활(Claudine à l’école)>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콜레트 자신의 소녀 시절을 모티프로 한 자서전적인 소설이었다. 첫 작품이 발표되자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남편은 콜레트에게 클로딘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더 써내라고 강요한다. 1901<파리의 클로딘(Claudine à Paris)>, 1902<클로딘의 결혼생활(Claudine enménage)>, 1903<떠나는 클로딘(Claudine s’en va)>을 연달아 발표한다. 이 네 작품은 클로딘 시리즈로 붙여져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콜레트는 자신의 작업에 실망한다. 자신이 쓴 작품들이 남편의 필명 단독으로 알려지는 상황이 못마땅한 것이다. 콜레트에게 남편은 자신의 삶을 어둡게 하는 그늘 같은 존재였다. 클로딘 시리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던 무렵에 몇 몇 비평가들이 클로딘 시리즈의 저자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은 남성인 윌리가 여성스러운 분위기의 문체를 완벽하게 쓸 수 없다고 봤다. 클로딘 시리즈의 진짜 저자가 유명 문학비평가의 아내인 콜레트라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 악소문은 콜레트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콜레트의 글쓰기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편의 도움을 받으면서 글을 썼을 거라는 의심의 눈초리까지 받아야 했다.

 

 

 

 

콜레트는 남편의 그늘에 벗어나 독립적인 작가가 되고 싶었다. 1906년에 앙리와 이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녀를 더 이상 남편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콜레트는 생계를 위해 뮤직홀의 배우가 된다. 몸은 무대 위에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작가의 꿈만 바라보고 있었다. 클로딘 시리즈를 완결하는 <쓸쓸한 은거(La Retraite Sentimentale)>, <민느(Minne)><민느의 방황(Les égarements de Minne)>을 합쳐서 수정한 천진난만한 탕녀(L'ingenue libertine)를 출간한다. 이 작품들 모두 콜레트의 이름으로 나왔다.

 

1912년에 잡지 편집장 앙리 주브넬과 결혼한다. 콜레트는 남편이 운영하는 잡지의 문학지면 집필을 담당했다. 콜레트는 무대 생활을 접고 마음껏 글을 쓸 수 있었다. 마흔 살의 콜레트는 자신보다 스물네 살이나 어린 연하남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그런데 하필이면 콜레트가 좋아하는 연하남은 앙리 주브넬과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콜레트는 5년 동안 자신의 의붓아들과 연애했다. 결국 두 번째 결혼 생활도 오래 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콜레트의 자유분방한 행동에 비난했다

 

 

 

 

 

목신으로 분장한 콜레트

(머리 위에 있는 뿔은 합성이 아니다)

 

 

 

앙리 주브넬을 만나기 전에도 이미 콜레트는 기성사회의 윤리 규범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여러 차례 물의를 일으켰다. 콜레트는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을 만난다. 미시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여자는 콜레트의 레즈비언 파트너였다. 미시도 조르주 상드처럼 남장으로 외출했고, 시가를 피웠다. 콜레트는 그녀에게 반했고, 미시의 도움으로 무대 배우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콜레트는 무언극 무대에 올라 목신을 연기했다. 야성적 본능이 넘치는 콜레트의 성격에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콜레트가 출연한 무언극은 관객의 반응을 얻는 데 성공한다.

 

 

 

 

 

가슴 노출의 무대 공연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자,

콜레트는 한쪽 가슴만 드러낸 채 무대 위에 오른다.

(대단한 집념의 여자)

 

 

승승장구한 콜레트는 미시를 설득하여 자신과 함께 무언극 공연 무대에 오르게 된다. 콜레트와 미시가 함께 무대에 오른 무언극 작품 제목은 <이집트의 꿈>이었다. 콜레트는 미라로, 미시는 미라를 부활시키는 남성 고고학자로 분장했다. 공연이 상당히 에로틱한 장면으로 진행되었다. 콜레트는 온 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무대 위에 올랐는데, 고고학자 역의 미시가 콜레트의 몸을 감싼 붕대를 천천히 푼다. 콜레트는 거의 반나체 상태가 된다. 보수적인 관객들은 두 사람의 공연 행위에 불만을 품고 야유를 보냈다. 가까스로 공연을 끝내고, 콜레트가 감사의 의미로 미시에게 키스했다. 이들의 사소한 행동은 음란한 공연에 성이 잔뜩 난 관객들의 마음에 기름을 붓고 말았다. 관객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언론들은 레즈비언 스캔들을 비난했다. 그 당시에 동성애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비윤리적인 행위로 인식되고 있었다. 콜레트는 좋든 싫든 간에 자신에게 시선을 향한 대중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녀는 대범한 행동을 한다. 이번에 가슴을 노출하는 무대 의상을 입고 공연을 진행했다. 콜레트는 스트립 댄스에 가까운 벨리 댄스를 선보였다.

 

 

 

 

 

모리스 구드케와 함께 있는 콜레트

 

    

 

두 번의 이혼, 근친상간, 레즈비언, 파격적인 무대 매너 등 숱한 염문을 뿌리고 다닌 콜레트는 1935년 연하남 모리스 구드케와 결혼한다. 모리스는 그녀의 성격을 이해해주었고, 그녀가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도록 저택을 마련해주었다. 안락한 저택에서 그녀는 암고양이와 암컷 불테리어와 함께 지냈다. 콜레트는 파리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악명 높은 여성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끝까지 남편으로부터 보호받는 관계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도 말년에 이르게 되면서 콜레트는 파리의 문제아가 아닌 작가로 당당히 인정받게 된다. 그녀는 1945년 공쿠르 아카데미 회원, 1949년에는 아카데미 회장이 되었다. 바람기 많은 발자크도 하지 못했던 아카데미 회장직을 콜레트가 한 것이다. 겹경사로 레지옹도뇌르 훈장까지 받는다.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다가 1954년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 윌리와 함께한 콜레트의 초기 소설들은 작가의 자서전적 성격이 짙다. 윌리와 결별한 이후부터 여성의 관능적 본성 및 세밀한 심리적 변화 묘사가 많은 성숙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녀의 소설 속에는 콜레트 자신이 몸담은 파리 화류계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윤리라는 허위 속에 가려진 파리 사람들의 야성적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등장인물들의 감성을 날카롭게 포착한 문체를 좋아하는 여성 독자라면 콜레트의 작품들을 추천하고 싶다.

 

 

 

 

 

 

 

 

 

 

 

 

 

 

 

국내에 번역된 콜레트의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클로딘은 <쓸쓸한 은거>를 마지막으로 애증이 많은 클로딘 시리즈를 끝낸다. 1922년에 <클로딘의 집(La Maison de Claudine)>을 발표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클로딘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다.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추천작품으로 선정되었다.

 

    

 

 

 

 

 

 

 

 

 

 

 

 

 

 

 

  

* Minne (1904)

민느

 

* Les égarements de Minne (1905)

민느의 방황

 

1909년에 이 두 작품을 합친 천진난만한 탕녀(L'ingenue libertine) 출간

조민정 역 / 문학동네 (2000)

 

 

 

 

 

* La Retraite Sentimentale (1907)

쓸쓸한 은거 (지지 외수록) 고혜영 역 / 학원사 (1983, 절판)

 

 

 

 

 

 

 

 

 

 

 

 

 

 

 

  

* La Vagabonde (1910)

바가봉드허경은 역 / 예전사 (1993, 절판)

방랑하는 여인 이지순 역 / 지만지 (2013)

    

 

* Chéri (1920)

셰리 (지지 외수록) 윤동진 역 / 학원사 (1983, 절판)

2010년 영화화

 

 

 

 

 

 

 

 

 

 

 

 

 

 

    

 

* Le Blé en herbe (1923)

사랑에 눈뜰 때민희식 역 / 문학출판사 (1973, 절판)

청맥김용숙 역 / 정음사 (1976, 절판)

청맥 (청맥 / 벨라 비스타수록) 조규철 역 / 을유문화사 (1995)

사랑에 눈뜰 때 민희식 역 / 큰글 (2012)

    

 

 

 

 

 

 

 

 

 

 

 

 

 

 

 

 

* La Naissance du Jour (1928)

여명 (지지 외수록) 윤동진 역 / 학원사 (1983, 절판)

여명 송기정 역 / 문학동네 (2010)

 

 

 

 

 

 

 

 

 

 

 

 

 

 

 

 

 

* La Chatte (1933)

암고양이 임미경 역 / 창비 (2013)

    

 

* Bella Vista (1937)

벨라 비스타 (청맥 / 벨라 비스타수록) 조규철 역 / 을유문화사 (1995)

    

 

* Gigi (1944)

지지 (지지 외수록) 고혜영 역 / 학원사 (1983, 절판)

1988년 우리나라에 연극으로 공연된 적이 있음

 

    

 

 

* 원제목이 불분명한 번역본

거울 속의 연인예가출판사 (1990, 절판)

참사랑의 수채화예가출판사 (1990, 절판)

 

 

 

 

 

 

 

* 작가의 일대기를 그린 1991년 작 영화 <꼴레뜨>가 있다. 1992년 국내에 개봉되었다. 이 시기에 영화를 소설화한 책이 영화 동명 제목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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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1-26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사이러스 님 글의 장점은 새로운 정보를 새롭게 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호호..

cyrus 2016-01-27 10:10   좋아요 0 | URL
이미 로쟈님이 이 작가를 소개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로쟈님의 글에 없는 내용을 새로 추가했을 뿐입니다.

stella.K 2016-01-26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 이건 정말 영화감이야. 안 그래도 영화로 만들어졌군.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사강이 했던 말이었구나.
김영하가 했다고 박박 우기면 어쩔 뻔했어?ㅎㅎㅎ

cyrus 2016-01-27 10:14   좋아요 0 | URL
2004년에 사강이 세상을 떠났어요. 저는 그때서야 말의 출처를 처음 알았어요. 소설 제목이 유명해서 사강이 했던 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예요.

yamoo 2016-01-26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탕녀>와 <여명>을 사야 것습니다..ㅎㅎ

저도 곰발 님 생각에 한표~!

cyrus 2016-01-27 10:23   좋아요 0 | URL
《천진난만한 탕녀》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민느라는 여주인공이 사춘기 시절에 본능에 눈을 뜨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성격이 `야성녀`에 가깝습니다.  민느는 유부녀가 되어서도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사랑을 찾으려고 남편 몰래 정부를 만나 외도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마담 보바리와 조금 비슷한 인물입니다. 남편은 민느의 주체할 수 없는 바람기에 불만을 품습니다. 남편과 민느 사이에 이루어지는 미묘한 심리적 갈등 묘사가 일품입니다. 이 작품이 2000년에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여명》보다 덜 알려졌습니다. 절판되지 않은 게 신기합니다. ^^;;

책벌레 2016-01-26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콜레트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해졌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cyrus 2016-01-27 10:26   좋아요 0 | URL
콜레트를 소개하는 책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알기로는 콜레트의 삶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책으로는 《일곱 명의 여자》가 유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