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연대기 - 곤충은 어떻게 지구를 정복했는가
스콧 R. 쇼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하루살이는 지구상에서 오랜 시대에 걸쳐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온 곤충이다. 인류의 조상보다 먼저 지구에 등장했다. 그런데 그들의 수명은 길어야 고작 3주에 불과하다. 하루살이 유충은 물속에서 3년 동안 지낸다. 성충이 되자마자 짝을 찾으러 날아다닌다. 가끔 우리 눈앞에 하루살이 떼가 공중에 날아다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팔자가 사나운 녀석은 비 오는 날에 성충이 된다. 한번 날아보지도 못하고, 짝도 만나지 못한 채 짧은 일생을 마감한다. 우리는 하루살이의 운명에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하루살이들은 슬프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종족 번식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할 뿐이다. 짧은 찰나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처럼 바쁘게 살아간다.

 

어째서 하루살이는 이런 치열하게 살게 되었을까? 하루살이 성충들이 우리를 괴롭히려고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눈에는 단순무식한 방식으로 보이지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 전략이다. 하루살이 혼자 짝을 찾으러 가면 포식자에 발각되어 잡혀먹힐 위험이 크다. 교미하지 못하고 어이없게 죽다간 하루살이가 절멸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하루살이들은 한곳에 모여 날아다니면서 만난다. 단체 커플 찾기 이벤트부터 시작해서 짝을 만난 수컷과 암컷은 그 자리에 바로 결혼식을 진행한다. 포식자는 하루살이들의 성대한 행사를 방해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힘이 센 포식자라도 엄청난 수의 하루살이 떼를 이겨내지 못한다.

 

하루살이처럼 허약하게 보이는 작은 곤충도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특별한 삶의 방식이 있다. 인간은 신비로운 사실을 잘 모른다. 그냥 곤충 자체를 혐오한다. 곤충이 어떻게 우리보다 먼저 지구 땅을 안착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면 곤충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쓰레기더미 속을 기어다니는 노래기마저도. 《곤충 연대기》의 저자이자 곤충학자인 스콧 R. 쇼는 지구의 진정한 지배자는 인간도 공룡도 아닌, 곤충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 오늘날에 현존하는 곤충들의 조상을 찾으려면 4억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시기에 인류의 조상은 물론, 공룡도 나타나지 않았다. 저자는 곤충이 지구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적응하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알려준다. 이 책에 우리가 학창 시절 과학 수업 시간에 외우듯이 공부했던 캄브리아기, 페름기, 쥐라기, 고생대 등이 나온다.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일단 소파에 앉아서 《곤충 연대기》를 펼치시라. 당신은 지구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인 순간들 속에 곤충이 살아남는 극적인 장면을 편안하게 구경만 하면 된다.

 

《곤충 연대기》를 읽으면 우리 인간이라는 동물이 참으로 간사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곤충이 우리보다 먼저 지구에 등장했음에도 지구의 역사를 설명하면 항상 공룡, 포유류, 양서류를 먼저 찾는다.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을 때도 공룡 화석을 찾는다. ‘공룡아, 어디니? 내 말 들리니?’ 고생물학자들이 암만 불러도 진화의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 학자들은 진화론의 구멍을 메우려고 진화 과정을 분명하게 정했다. 어류, 양서류, 파충류 순으로. 어라! 셋 다, 척추동물이네. 곤충은 무척추동물에 속한다. 무척추동물의 몸은 딱딱한 외골격으로 이루어져서 화석으로 남기기 어렵다. 고생물학자들은 척추동물의 화석을 근거로 지구를 마음껏 누빈 우월한 생물이 척추동물이라고 주장한다. 곤충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진화의 순서를 과학 교과서에 정리하니까 내용을 더 쓸 수 있는 여백이 생겼다. 진화의 읽어버린 고리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뭐 쓰지? 학자들은 고민 끝에 인류의 조상님에 대한 내용을 쓰기로 한다. 지구상 가장 오래된 곤충의 조상인 절지동물이 바닷속에 살다가 육상으로 올라온 순간이 역사적으로 제일 앞선 데도, 학자들은 인간이 처음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한 순간을 자화자찬했다. 이로써 지구에 제일 늦게 나온 인간은 지구의 지배자로 등극하게 된다.

 

우리는 지구상에 먼저 등장한 곤충에게 감사해야 한다. 원시 지구에 곤충의 조상들이 좋아할 만한 먹잇감이 많지 않았다. 그중에 포식자가 되어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 종이 있었으나 곰팡이나 토양에 사는 세균들을 먹고 사는 스캐빈저(scavenger)도 있었다. 착한 곤충들 덕분에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건강한 식물들이 자랄 수 있었다. 우리는 은혜를 잊은 채 생존을 위해 식물들을 마음껏 사용한다. 고마운 스캐빈저는 멸종하지 않고 종족 번식에 성공했다. 놀랍게도 스캐빈저의 후손이 노래기다. 그런데 우리는 노래기가 불쾌한 냄새가 나고 쓰레기만 좋아하는 흉측한 벌레로만 생각한다. 지구에 쓰레기를 버리는 유일한 동물은 인간이다. 그런데 말없이 쓰레기를 치워주는 노래기에게 성낸다. 스콧 R. 쇼는 독이 없고, 인간을 괴롭히지 않는 노래기를 반려동물로 추천한다. 딱히 키우고 싶지 않지만, 그의 뼈 있는 유머를 가벼운 웃음으로 넘길 수 없다. 곤충은 사려져야 할 미물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오랫동안 자연을 가꾼 소중한 청소부였다. 길바닥에 지나가는 곤충을 생각 없이 죽이지 말자. 곤충, 함부로 밟지 마라. 과연 우리는 그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최재천 교수님의 ‘알면 사랑한다’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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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01-24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ㅡ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를 적절히 활용하셨네요 :)
좋은 문장은 어떻게 변형해도 빛이 난다는 걸 다시 실감~

cyrus 2016-01-24 13:09   좋아요 0 | URL
정말 훌륭한 문장이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다 보니 저처럼 변형해서 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

세실 2016-01-2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하루살이는 하루만 사는게 아니었군요.ㅎ

cyrus 2016-01-24 13:12   좋아요 0 | URL
하루살이가 오래 살면 평균 수명이 1년이랍니다. 하루살이가 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루살이의 수명이 짧아지게 된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6-01-2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을 때 개미를 안 밟으려고 노력한답니다. 무엇보다 그 가족이 슬퍼할 것 같아서요.

cyrus 2016-01-24 16:44   좋아요 0 | URL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큰 개미를 볼 수 있었어요. 집에서 보던 조그만 개미와 다른 크기에 무서워서 밝아 죽이곤 했어요.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읽고 난 뒤부터 되도록 개미를 죽이지 말고, 개미집에 장난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