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임 푸어 -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 가사 휴식 균형 잡기
브리짓 슐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여러 공식 석상에서 한국의 교육을 예로 들면서 미국의 교육 현실을 비판하여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오바마처럼 한국의 교육과 같은 이야기를 꺼낸 경우는 흔치 않다. 한국 어린이들의 학교 가는 날이 미국 어린이들보다 많다고 언급하면서 미국 어린이들이 더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공부할 것을 요구했다. 그의 이러한 언급은 우리의 ‘교육열’에서 뭔가를 배우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사들에 대한 성과급제를 확대하고, 전국 단일의 엄격한 학력평가제 도입 등의 교육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교육을 본받자는 발언에는 미국 학부모나 교사가 교육에 더 깊은 열정을 가져 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오바마는 자신의 성공배경에는 교육에 대한 가족들의 헌신이 밑바탕이 됐음을 고백한 적 있다. 오바마의 엄마는 매일 아침 어린 오바마를 새벽 4시에 깨웠다고 한다. 엄마는 출근하기 전까지 3시간 동안 미국 또래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내용을 직접 과외를 시켰다. 잠이 온다고 투정을 부리면 엄마는 어린 오바마를 혼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오바마에게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열정’에 관심을 크게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오바마 가족사를 보면,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는 한국의 부모들과 너무나 흡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오바마의 엄마와 한국 부모는 아이 교육에 관한 한 ‘힘과 권위’를 내세운다. 부모 결정이 아이의 선호보다 우선이다. 에이미 추아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자녀의 자율성을 살려주는 서구식 교육법 대신 혹독하게 가르치는 ‘타이거 맘’ 교육법의 우수성을 설파한다. 실제로 에이미 추아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6시간까지 연습시키고 피아노 연습을 게을리하면 밥도 안 주는 무서운 엄마로 알려졌다. 하긴, 이런 엄마는 우리로선 새로울 것도 없다. 대치동 학원가에 흔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이 한국인의 근면성과 교육열을 높이 평가한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더 활성화된 한국교육의 현실을 알면 이런 말을 못한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입학하면 무조건 밤 9시까지 자습하고 학원에 가서 12시까지 공부하다 오는 세상이다. 초등학생은 중학생들이 배우는 과목을 미리 배우고 있다. 학생들, 그리고 부모들도 사교육으로 병들고 있다. 오바마의 한국교육 칭찬은 한국의 교육 현실을 총체적으로 보지 못한 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일부만 보고 전체 교육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오류다. ‘교육열’이 높다고 해서 좋은 교육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교육열은 부모와 자식에게 정신적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다. 엄마는 바쁘다. 특히 워킹맘은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집안일, 회사일 그리고 자녀 교육까지. 자신만의 여가를 가져보지 못한 채 매일 ‘집, 가족, 회사’를 위해서 궂은일을 맡는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브리짓 슐트는 일과 가사 노동에 지쳐가는 자신의 삶에 스스로 문제를 제기한다. 얼마나 바쁘게 살았으면 여가에 대한 기억마저 없다. 직장 일과 가사를 병행하느라 지친 독자라면 누구나 그녀의 대답에 동병상련을 느낄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여가는 어떤 시간이죠?”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아픈 날이요.” (23쪽)
과거 경제 발전의 목표에 따라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만이 사회에서 인정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일하는 것에 두었다. 경쟁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빨리빨리’를 외친다. 속도전은 성과주의, 무한경쟁시대, 고도성장시대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시간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게으르거나 바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마음을 재충전하려고 잠깐 일을 그만두면 ‘백수’ 소리를 듣는다. 한창 열심히 일해서 생계를 위해 돈 벌어야 할 마당에 여행이나 다닐 여유가 있느냐고 핀잔 듣기도 한다. 사람들은 ‘바쁜 척한다. SNS에서 자신이 이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진을 올리면서 너무 바빠서 힘들다는 심경의 글을 쓴다. 현대인은 해야 할 일이 많은 자신의 상황에 힘겨워하면서도 남들에게 근면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바쁜 삶’은 일종의 강박으로 자리 잡아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열심히 일하는 당신, 떠나라!’라는 카드회사의 광고 문구가 한때 유행어가 된 적 있었지만, 여가에 대한 환상만 한껏 부풀린 공허한 문구가 되고 말았다.
우리에게 여가생활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분명 있다. 그런데도 바쁘다는 이유로 그럴 여유를 누리지 못해 불만이 많다. 이러한 사람들을 ‘타임 푸어(Time poor)족’이라고 한다. 시간에 쫓기는 삶은 뇌와 신체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스마트폰 같은 첨단기술은 시간을 부족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스마트폰에 들여다보는 횟수가 많으면 간단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자투리 시간이 줄어든다. 좋은 일이라면 무조건 해야 한다는 믿음은 ‘역할 과부하’ 현상을 불러온다. 자식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과잉 모성이 강한 부모는 역설적으로 ‘더 많은 노동’으로 내몬다. 자식의 과외 및 학원비, 그리고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한다.
시간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은 정말 간단하다. 쉴 수 있을 때 쉬는 것이 좋다. 업무 스트레스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그래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기회가 찾아온다. 저자는 적절하게 쉬면서 노동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업무보다 여가를 누리는 데 중점을 맞추도록 국민의 삶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많은 나라가 덴마크다. 덴마크인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이 맡은 업무를 끝내며, 자신이 필요할 때 휴가 제도를 신청할 수 있다. 누구나 아는 해법이라서 조금 실망하는 독자가 있겠지만, 넘치는 여가 문화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닻을 내리지 못한 채 거센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고 있지는 않은가를 이 시점에서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간 관리를 잘하자,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기회를 찾자. 이런 해법들이 너무 무책임한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결국 삶의 질을 높이게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여가활동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평생 그것을 하지 못한 아쉬움 속에서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여가 즐기기의 귀찮음에 대한 이유의 무덤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