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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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정치에 관해 얘기할 수 있고 잘못된 정책이라고 판단되면 신랄하게 꼬집을 수 있어야 한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유신체제의 폭압에 대해 어느 시점에 몸을 던져 저항할 것인가 하는 결단의 강박 아래 살아야 했다. 그렇지만, 가장 먼저 앞장서서 저항의 등불을 밝힌 청년들이 있었다. 대학 강의를 듣는 일보다 시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고, 조국의 현실 앞에 눈물을 쏟아냈으며, 때로는 온몸을 불살라 절규도 했다. 그들이 공유하는 문학도 새로웠다. 저항시가 문학적 위세를 떨쳤다. 80년대에 노동자시 혹은 농민시라는 이름으로 시들이 시대의 아픔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심어 주었다. 시인들은 저항과 투쟁의 거리 한가운데를 달리며 의연한 싸움으로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지켜내려고 노력했다.

 

길거리에 최루가스 냄새가 사라진 이후 대학생들은 자유분방해졌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과거에 들끓던 민주화운동을 정리할 필요를 느낄 만한 시점이다. 그래서일까.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젊은 작가들은 어느덧 세월이 흘러 문단을 주도하는 중견, 원로급 작가가 되었고, ‘역사의 시간’으로 남은 그 시절을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역사라 이름 지어진 순간들은 과연 시간의 저 너머 어딘가에 묻혀 발굴을 기다리는 유물 같은 것일까. 유신체제 시절을 그리워하는 자들은 역사를 거꾸로 돌아가려고 한다. 역사의 오욕과 역류가 벌어지는 오늘의 역사에 삶의 정당성을 위해 싸웠던 지식인들을 지금 무엇 하고 있는가. 그들의 모습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달려오게 한 저항의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았다. 부정한 사회에 따끔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에너지로 전환되기는커녕 과거 추억팔이에 한창이다.

 

시는 비틀거리고 있다. 자기 성찰 하나 없이 지고지순한 세상이 온다는 희망만 노래할 뿐, 진실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진짜 큰 문제는 시인을 구속하는 현실이다. 시인의 희망을, 타인의 고통과 절망을 외면하지 못하는 여린 마음을 불법이라고 낙인찍는 나라다. 송경동 시인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문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한 걸까, 아니면 그들이 과거의 학습효과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일까.

 

시가 휘청거릴 때 서경식 선생의 책이 구원의 손길처럼 다가온다. 만약에 서 선생이 시인이었다면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만한 사랑, 민주주의, 인권, 자유를 담았을 것이다. 선생은 독서와 시 창작에 매달리며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이겨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박일호라는 필명으로 개인 소장판 시집을 펴낸 적도 있다. 그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 ‘시’라는 작은 창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선생은 삶과 자유를 갈망하는 ‘실천자’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시는 그를 국가와 언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을 고발하는 지식인으로 끌어들인 안내자가 됐다. 선생은 ‘시’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오늘날 시가 현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지 자문한다.

 

일제강점기 우리 문학에서 ‘저항시’라는 장르는 도드라진다. 시어는 감각적이고 함축적이어서 다른 장르에 비해 저항의 정치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는 빼앗긴 국토에 대한 상실감과 그것을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력이 담겨 있다. 윤동주는 하늘, 바람, 별 같은 서정적인 시어를 골라 썼지만, 그것들이 속한 것은 ‘조국’이었다. 조국의 현실에 아파하던 시인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서시」)면서 삶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이겨나갈 것을 다짐한다. 찌그러진 사회에 몸을 굽히지 않는 시인들의 의식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시대에도 이어진다. 양성우가 ‘겨울공화국’이라고 칭했던 유신 때도 시인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고, 박노해는 소외된 노동자들의 삶에 진지한 관심을 드러낸다.

 

정치와 문학의 결합. 서 선생은 사회 앞에 침묵하지 않는 시를 나카노 시게하루의 표현을 빌려 “서정시 형태의 정치적 태도”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선생이 생각하는 시의 힘이요, 비정한 권력의 힘에 저항하게 하는 의지다. 선생은 여전히 저항시가 현실에 유효한지 의문부호를 단다. 그런데도 마땅한 좌표를 찾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는 저항시의 흐름이 이어지기를 원한다. 직설적 언어로 사회 개혁의 의지만을 천명하기보다는 거대한 대중들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실천의 언어가 절실히 필요하다.

 

문학의 비판 기능이 사라진다면 사회의 가치 체계는 전도되게 마련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적을 닮아버렸다. 정직하게 분노하는 방법을 잊고 만다. 부조리한 현실을 회의하고 생각하는 문학이 너무도 드물다. 시인이라는 직업은 불운하다. 직관과 영감으로 번뜩이는 아름다운 노래를 읊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좋은 것만 보고 싶은 마음으로 시를 만든다면 그 시는 정말 진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 김수영, 송경동처럼 정의와 도덕이 무의미해지는 시대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시인이 우리 사회에 존재해야 한다. 이들은 절대 침묵하지 않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시를 쓰면서)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그러한 문학을 꿈꾼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 더 정확하게는 회피할 수 없도록 정해진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시의 힘》을 읽고 있을 때, 김수영이 '눈'에서 젊은 시인들에게 재채기하라고 했던 구절이 퍼뜩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직한 분노를 묵살해버리는 백색으로 위장한 어두운 현실에 대고 ‘기침’을, 재채기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일본은 타이완과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 지배하고 ‘만주’의 패권을 러시아 다투고 있다. (102쪽) → '러시아와 다투고 있다'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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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0-15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지금 젊은이들이 그때보다 더 치열하게 사는 건지도 모르죠.
치열이 개인화 되어 버렸더군요..
포기된 시대에 각자도생만 나부낍니다.

cyrus 2015-10-15 21:20   좋아요 0 | URL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 치열하게 살다 보니 정작 정치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이렇다 보니 사람들이 정치에 `정` 자만 들어도 냉소적으로 생각해요.

csp 2015-10-15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우리의 적을 닮아간다˝는 서평 속 문장이 와닿는군요.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cyrus 2015-10-15 21:22   좋아요 0 | URL
책 속에 좋은 글이 많습니다. 특히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정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 좋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에 연연하는 우리 사회를 반성하게 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