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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평점 :
서평의 첫 문장을 우문(愚問)으로 시작해본다. 좋은 글쓰기란 무엇일까.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사고를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다른 이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쓰기의 의미는 이렇다. 그런데 이런 대답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좋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아도 ‘좋은 글쓰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학교와 가정 그리고 기업에서 새삼스럽게 글쓰기 공부가 강조되고 있다. 일부 전문 집단이 지식을 독점하는 시대에서 정보의 대중화 사회, 대중적 의사 표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기 생각을 세상에 주장하고 다른 이를 설득할 수 있다. 과묵함이 미덕인 시대는 지나갔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다양한 지식도 글로 잘 표현해야 빛이 난다.
하지만 딱히 글쓰기 능력을 높이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서점에는 관련 서적들이 즐비하지만, 단시간에 효과를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은 어떤 책을 참고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오랜 고민 끝에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선택했다면, 머리말과 목차를 꼭 확인해볼 것을 권한다. 여유로운 시간이 있다면, 1장(‘논증의 미학’)과 2장(‘글쓰기의 철칙’)까지 읽어보고 나서 이 책을 참고할 것인지 결정해도 좋다. 책은 안 팔려는 시대라고 하지만 ‘좋은 글쓰기’를 표방한 책만 해마다 100권 이상씩 출간되고 있다. 특히 유명한 저자가 쓴 글쓰기 책이 큰 인기를 얻는다. 저자의 이름을 달고 나온 글쓰기 책은 독자의 눈에 띄기 쉽다. 이제 막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초보 독자는 저자의 이름만 보고 이런 책만 있으면 글 잘 쓰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명성만 믿고 책을 선택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저자가 다른 글쓰기 관련 책을 최소 5권 이상은 읽어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을 알 수 있다. 문장 표현에 차이가 있을 뿐, 글 잘 쓰는 방법은 비슷하다. 책을 많이 읽어라, 지나치게 긴 문장은 단문으로 줄여서 고쳐 써라,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사용하라는 등 이런 내용은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평범한 중학교 국어 선생님도 알려준다. 우리가 유명 저자의 글쓰기 책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 글을 써야 하는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만든 글 쓰는 방법들이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알려주셨던 내용일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무작정 글쓰기 관련 책을 잔뜩 사서 읽는 것은 시간 낭비에 가깝다. 유명 저자가 알려주는 글쓰기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선호하는 경향도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이런 심리는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감정 휴리스틱’으로 볼 수 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 마시려면 버튼을 선택해야 한다. 고급 커피와 일반 커피라고 적혀 있는데, 간혹 두 커피의 값이 똑같다. 그런데 대부분 커피를 고르면 고급 커피 버튼을 누른다. 당연히 그게 더 고급일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두 커피의 품질 차이가 없는데도 감성적으로는 왠지 고급 커피가 더 맛있을 것 같고 더 좋은 원료를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이것이 ‘감정 휴리스틱’이다. 글쓰기 책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저자 이름이 크게 달려 있거나 ‘특별한 비법’, ‘누구나 30일 만에 글 잘 쓰게 만드는 책’, ‘작가 지망생이 가장 많이 찾는 글쓰기 책’과 같은 홍보문구가 박힌 글쓰기 책이 무조건 좋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목차와 주요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 담긴 글 잘 쓰는 방법들도 기존에 나왔던 글쓰기 책에서 볼 수 있는 기본적인 내용이다.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이라는 책의 홍보문구가 민망하다. 출판사는 저자가 단 한 번도 공개하지 못한 특별한 글쓰기 비결을 알려줄 것처럼 책을 소개했다. 하지만 243쪽에 저자가 ‘아직 말하지 않은 영업기밀’이 하나 더 있다고 언급한 내용은 이 책을 끝까지 믿었던 독자의 마음을 한순간에 허무하게 만든다.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글을 써야 하는 마음가짐은 당연하다. 난해한 문장을 예시하기 위해 진은영의 《문학의 아토포스》와 그 책의 독자 서평 일부를 인용하면서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지 의아스럽다.
저자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 논리적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썼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시와 소설 같은 문학 글쓰기를 원하는 독자는 이 책을 정독할 필요가 없다. 아니, 여기에 내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글쓰기 책을 여러 번 정독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여러 번 글을 쓰고 난 뒤에 글 쓰는 능력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글쓰기 책을 참고한다. 말 그대로 ‘선(先) 글쓰기, 후(後) 글쓰기 책 참고’하는 방식이다. 일단 글을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 글이 잘 썼는지 못 썼는지 평가받을 수 있게 여러 사람 앞에서 완성된 글을 공개하면 좋다. 나름 잘 썼던 글이라 생각했는데 누군가로부터 지적을 받으면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자존심이 상한다. 하지만 첨삭을 위한 타인의 평가는 자신의 글쓰기 능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혹평이 두려워서 직접 쓴 글을 혼자서 보물처럼 간직하면 절대로 자신의 글쓰기 실력을 확인할 수 없다. “인생은 실전이야!”라는 인터넷 유행어처럼, 글쓰기도 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