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너미’는 ‘Friend(친구)’와 ‘Enemy(적)’가 합쳐진 신조어다. 협력하면서 동시에 경쟁하는 관계를 뜻한다.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히는 반 고흐와 폴 고갱은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유명한 프레너미다. 진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였으면서 동시에 라이벌 관계였다. 두 화가의 성격과 창작 방식은 대조적이었지만 서로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고,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게 되면 흥미진진한 프레너미를 만날 수 있다. 프레너미 관계를 형성한 예술가들은 지속적인 노력과 합당한 경쟁을 통해 훌륭한 걸작을 탄생시켰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티스와 피카소도 그랬다. 창의적인 사람은 라이벌을 자기 진화의 스승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자존심이 세서 종종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하여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자신의 귀 일부를 자른 고흐처럼 말이다. (최근에는 고흐와 고갱이 격렬한 언쟁을 벌이다 고갱이 홧김에 또는 자기방어를 위해 펜싱 검으로 고흐의 귓불을 잘랐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었다)
고흐와 고갱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다 보니 에두아르 마네와 에드가 드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두 사람도 평생 막역한 사이로 지냈으나 가끔 불편한 갈등 관계를 빚기도 했다. 마네는 인상파 그룹의 전시회에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상파 그룹은 마네의 참신한 기법을 지지했다. 마네는 인상파 그룹의 아지트인 카페 게르부아에 자주 드나들었다. 인상파 그룹의 정기적 모임을 통해 마네는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과 어울릴 수 있었다. 드가를 인상파 그룹에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이 마네였다. 마네는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드가의 능력을 처음으로 눈여겨봤다.
그렇지만 드가에게 약점이 있었는데 지나치게 날카롭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드가는 서슴없이 동료 화가의 그림에 대해 독설을 하기도 했다. 그의 행동으로 인해 인상파 그룹에서 만나기가 껄끄러운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도 마네는 사귀기 쉽지 않은 드가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잠깐 냉각 상태가 된 사건이 있었다.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 부부」 (1868~1869년경)
드가는 마네의 부인 쉬잔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그 연주를 감상하는 마네의 모습을 그렸다. 완성한 그림을 마네에게 선물했고, 마네는 그 답례로 자두가 있는 정물화를 드가에게 주었다. 그런데 마네는 드가가 그린 쉬잔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부인의 얼굴이 나오는 부분을 캔버스로 세로로 잘라 내버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드가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절반이 잘려나간 자신의 그림이 마네의 아틀리에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한 드가는 불쾌한 마음에 그 그림을 들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마네가 선물한 정물화를 돌려주었다. 사실 마네의 행동은 경솔했다. 그림을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는 화가 입장에서는 자존심을 짓밟는 행동이다. 까칠하기로 유명한 드가 입장에서는 엄청 화가 났을 텐데 마네의 정물화를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낸 것은 다행한 일이다. 만약에 드가도 마네의 정물화를 훼손하여 돌려보냈다면 고흐와 고갱처럼 예전 관계를 회복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드가는 마네의 정물화를 돌려보낸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행동에 후회했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마네를 바라보는 드가의 본심을 알 수 있다. 드가는 자신의 그림을 먼저 알아주고, 인상파 화가들에게 자신을 소개해 준 마네를 늘 존경해왔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또 두 사람이 추구하는 예술 주제도 같았다. 19세기 파리의 풍속을 그림에 담으려고 노력했으며 특히 인상파 회화 형성에 영향을 준 보들레르의 사상에 심취했다. 드가는 보들레르의 글을 읽었고, 마네는 드가에게 빌려준 보들레르의 전집 중 한 권을 돌려달라고 편지로 부탁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마네와 드가가 처음 만난 장소는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화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은 루브르 박물관을 찾아 걸작들을 모사했다. 마네를 처음 만났던 해인 1862넌에 드가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모사하고 있었는데, 마네 역시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선호했다.
에두아르 마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1859년)
에드가 드가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1875~1876년)
마네와 드가의 그림을 프레너미의 관점으로 비교해서 보면 두 사람 다 공통으로 추구했던 미학적인 관점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59년에 완성한 마네의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와 역시 같은 제목인 드가의 1876년 작 그림을 보라. 두 그림이 처음으로 살롱전에 출품했을 때 혹독한 반응을 얻었다. 관객과 비평가들은 살롱전에 어울리지 않은 주제에 심기가 불편했다. 마네의 「압생트」에는 주정쟁이가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중독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압생트 한 잔이 놓여 있다. 주정쟁이는 이 독한 술 한 병을 혼자서 다 마신 듯하다. 그의 얼굴을 봐서는 오랜 음주로 인한 취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빈 술병과 배경에 있는 주정쟁이의 그림자는 사회에서 소외당한 고독한 주정쟁이의 암울한 현실을 암시한다. 드가의 「압생트」도 마찬가지다. 두 남녀는 텅 빈 카페에 앉아 있다. 그런데 마네의 「압생트」의 주정쟁이처럼 두 남녀도 고독한 분위기에 지배당했다. 여자는 압생트를 받아놓고 무료한 듯 넋 빠진 표정을 지으면서 앉아 있고, 남자는 아예 여자 쪽에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다른 곳으로 향한다. 서로 아무런 소통도 못 하면서 말이다. 마네와 드가의 「압생트」는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두 그림 속 화면 전체가 술 냄새로 진동하고 있다. 매혹적인 초록색 빛깔을 드러내는 압생트는 강렬한 도시의 고독을 잊으려는 도시인을 유혹한다. 근대 파리의 우울과 고독을 이만큼 잘 드러내주는 그림들이 또 있을까.
에두아르 마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1882년)
마네가 죽기 전에 완성한 그림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화려한 파리의 이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대리석 바에 있는 리큐어와 샴페인은 파리지앵의 감각적 쾌락을 충족시켜주는 음료이다. 술집의 여급은 드가의 「압생트」에 나오는 여인처럼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의 표정은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딱 어울린다. 그녀 또한 마네의 「압생트」의 주정쟁이처럼 도시에 소외된 하층계급 시민이다. 거울 속에 비친 화려한 술집 내부의 광경은 술집에 갇혀 있는 동시에 유흥의 쾌락에 소외된 여급의 상태와 대비된다. 그림 배경으로 설정된 거울은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이중적 장치다. 현실에서 행복함을 찾고 싶은 여급은 자신도 화려한 파리지앵으로 사는 삶에 합류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녀의 소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다. 그녀가 바라보는 술집 광경은 도시가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하다. 그녀가 집착하는 환상은 지난한 현실을 버텨내기 위한 일시적인 안락일 뿐이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왼쪽 위 끝에 공중 곡예사의 다리가 보인다. 그림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단번에 확인하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을 소개하는 미술 서적에서는 다리만 드러낸 공중 곡예사의 정체에 관한 설명을 간과한다. 마네는 왜 공중 곡예사의 다리를 그려 넣었을까? 그냥 관객의 주의를 끌기 위한 마네의 장난기 섞인 맥거핀일까?
에드가 드가 「페르낭도 서커스의 라라 양」 (1879년)
나는 마네가 의도적으로 그려 넣었을 거로 생각한다. 서커스는 근대 파리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며 인상파 회화에서 많이 다룬 주제이기도 하다. 파리에는 파리지앵의 몸과 마음을 풀어놓고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즐비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술집, 카페 그리고 서커스 공연장이었다. 폴리 베르제르는 술집, 카페, 서커스 공연장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으니 공중 곡예사의 다리가 그림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공중에 매달린 곡예사의 모습은 인상파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드가도 서커스 공연을 자주 보러 갔는데 ‘라라’라는 이름의 여자 곡예사의 공연 장면을 그려냈다. 라라는 양 무릎과 발목이 묶인 채 그네에 매달려 대포에 불을 붙이는 묘기를 선보였다. 드가가 묘사한 그림 속 라라는 점점 공중으로 뜨는 것처럼 보인다. 아슬아슬하게 그네에 매달린 곡예사의 모습은 곡예와 같은 하루를 보내는 도시인의 고단한 삶을 상징한다. 마네가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에 공중 곡예사를 은근슬쩍 그려 넣은 의도는 쾌락의 환상을 애써 붙잡으려고 아등바등 매달린 채 괴로워하는 여급, 아니 파리지앵의 번뇌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영국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은 ‘적을 만들어 본 적 없는 사람은 결코 친구도 만들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경쟁’의 이면에 자리 잡은 ‘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발전시키고 싶다면 라이벌만큼 소중한 존재도 없다. 마네와 드가는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뛰어난 안목을 가졌고,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의 빛을 비춰주는 창작의 거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