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알렉스는 로맨틱 가이의 대명사였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파트너로 나온 신애의 발을 씻겨주고 노래를 불러준 장면에 젊은 여성들은 열광했고 알렉스는 인기 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런데 이 장면이 방송의 전파를 타게 되자 알렉스는 인기와 함께 냉소 어린 비난도 들어야 했다. 촉촉한 목소리로 세레나데를 불러주고, 제 여자의 발을 씻겨주는 알렉스 같은 남자 없느냐고 여자의 아우성이 많아졌고, 발 씻겨주면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아내의 요구가 많다면서 남편들이 원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알렉스는 한때 남자들 공공의 적이 되었다. 알렉스는 방송에서 보여준 자신의 로맨틱한 행동들이 다 연출된 것이라는 대중의 반응에 다소 심란했다고 한다. 그리고 연출된 이벤트가 아님을 강조했다. 촬영 후에 신애가 다리를 삐고 말았는데 미안한 마음에 다친 발을 씻겨주었다고 밝혔다.  

 

로맨티스트는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걸까. 알렉스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알렉스는 여자의 마음을 잘 이해했다. 상대의 마음 읽기는 물론이요, 의미 없이 던지는 무언의 대화까지 이해하려고 했다. 사람이 지닌 가장 강력한 욕구 본능 중 하나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인정 욕구’다. 가장 잘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할 때, 사람은 외로워진다. 만약에 이중섭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의 외로움을 몰라주는 괴벽스러운 화가였다면 우린 이중섭과 마사코의 애절한 사랑 편지를 읽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에 대한 이중섭의 사랑은 극진했다. 일본 유학 시절에 처음 만났고, 1945년 원산에서 결혼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는 둘의 사랑에 비극성을 부여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그해 12월 가족과 함께 월남했던 이중섭은 부산, 제주도 서귀포 등지에서 생활했지만, 생활고 때문에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냈다. 1953년에 어렵사리 일본으로 건너가 그렇게 그리던 마사코를 만났지만,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훗날을 기약하고 이중섭은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이야. 이중섭은 아내와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담은 편지를 쓰고 보냈다. 편지 속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잔뜩 배어있다. 삶의 압박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그였지만 그림에는 다시 만난 가족이 원을 그리며 춤추거나 과일을 먹으며 즐기는 모습을 그려 보냈다.

 

편지글에 자주 등장하는 ‘발가락 군’, ‘아스파라거스 군’은 마사코의 애칭이다. 발가락이 못생겼다고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두 개의 애칭을 붙였다. 이 애칭들은 두 사람이 한창 연애하던 시절부터 생겼다. 부부가 되어서도 이중섭은 연애 시절의 애칭을 그대로 사용했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마사코의 발이 못생겼어도 이중섭의 눈에는 그저 사랑스러운 여인의 발이었다. 그 발에 몇 번이라도 뽀뽀하고 싶다는 말을 편지에 쓸 정도로 발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었다.

 

 

 

 

 

이중섭  발을 치료하는 남자」 (1941년)

 

 

그런데 이중섭은 왜 마사코의 발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이중섭과 마사코가 둘이서 거리를 걷던 중, 마사코가 발가락을 다쳤다. 상처가 난 마사코의 발가락에는 출혈이 일어났고, 이중섭은 마사코의 다친 발을 어루만지면서 지혈을 했다. 이때 당시 상황을 잊지 않았던 이중섭은 「발을 치료하는 남자」라는 그림을 엽서 뒷면에 그렸다.

 

이중섭은 마사코의 콤플렉스까지도 사랑한 로맨티스트다. 연애 시절부터 사용하던 애칭이 있어서 그런지 결혼한 부부가 쓰는 편지라기보다는 이제 갓 연애를 처음 시작한 연인 사이의 풋풋한 연애편지 같은 느낌도 난다. 고단하고 궁핍했지만, 그 처연하고 빈 곳을 사랑으로 채우던 가장 ‘따뜻한 시절’에 대한 기억의 모든 것은 오롯이 그림과 엽서에 남아 있다.

 

“사랑스러운 당신이 보고 싶소. 어서 당신의 모든 것을 껴안고 싶은 거요. 나는 몸 성히 잘 있소. 당신의 예쁜 발 사진을 빨리 보내주시오.”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 중에서, 51쪽)

 

오늘은 부부의 날. 정성스런 손길의 발 마사지는 아내의 피로를 단번에 해결하면서도 그동안의 고마움을 표현할 기회가 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더불어 두 사람의 부부 애정지수도 높아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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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5-22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중섭의 그림 중에 저런 그림이 있었구나.
그 역시 자신과 맞딱트린 장면중에 떠오르는 영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군.

알렉스가 남자들의 공공의 적이 된 적이 있었군.
우결은 내가 안 봐서 그런가 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여전히 하는 걸 보면 인기 프론가 봐.ㅠ


cyrus 2015-05-23 23:20   좋아요 0 | URL
이중섭의 <발을 치료하는 남자>를 맨 처음 봤을 땐 그냥 발을 어루만지는 남자를 그린 그림인 줄 알았어요. 이 그림에 숨은 사연을 알게 되니까 그림이 좋아보였어요. 이중섭 같은 남자라면 멋지지 않습니까? ^^

우결이 지금도 방영하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해요. 출연진이 바꿀 때마다 우결 인기 다 떨어졌으니 폐지하라고 말이 많았는데 막상 방송하면 시청자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수이 2015-05-24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자네는 발 마사지 엄청 잘해줄듯_
참고로 자네 매형은 발 맛사지 대가다. ㅋ

이거 사고 싶다, 괜히 읽었다 킁킁

cyrus 2015-05-24 15:38   좋아요 1 | URL
귀차니즘만 없다면 매일 마시지 할 자신이 있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