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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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60] 젊은 예술가의 초상

 

 

 

‘중2병’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인 심리 상태를 빗댄 신조어다. 일본에서는 1999년쯤 만들어진 속어로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란 애니메이션이 제작돼 인기리에 방영됐다. 중2병은 꼭 중학교 2학년에게만 해당하진 않는다. 이르면 초등학교 5학년부터 늦게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증상이 나타난다. 중2병의 증상 유형은 반항아, 고집불통, 공부 스트레스, 진로 고민, 가정불화, 성 탐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아이들은 자아가 더욱 강해지고 자기 의견대로, 생각대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상황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미성숙한 자아는 그것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 이때 아이들이 나타내는 성향은 여러 가지다. 쥐뿔도 없으면서 실제로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자기는 다 컸고, 잘나서, 제 일을 스스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의 타카나시 릿카는 겉으로는 평범한 고등학생 같지만, 오른쪽 눈에 늘 안대를 착용하고 있다. 눈이 아픈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의 오른쪽 눈은 “사왕진안”이라는 강력한 마법을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안대로 가리고 생활을 한다. 한쪽 눈에 컬러 렌즈를 한 채 24시간을 지내는 릿카는 중2병이 만들어낸 상상 속 마법 세계에서 살아간다. 릿카의 모습을 보면 심한 눈병에 시달려 왼쪽 눈에 안대를 착용했던 제임스 조이스가 떠올린다. 조이스도 젊은 시절, 중2병에 가까운 극심한 증세와 행동 때문에 고생했다.

 

조이스는 글쓰기 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할 정도로 탁월한 글쓰기 실력을 갖췄고,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던 모범생이었다. 그렇지만 조이스에게 유년 시절은 정신적으로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집안의 가세가 급격히 줄어들면서부터 아버지의 음주벽은 심해지고, 어머니는 신앙심으로 가정의 혼란을 극복하려고 애썼다. 이런 모습을 매일 지켜봐야 했던 조이스는 답답하고 괴로웠다. 예수회 소속 학교에 다니던 조이스는 종교에 점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조이스는 열네 살에 처음으로 사창가를 가게 되었고, 쾌락의 눈을 떴다. 사창가를 드나든다는 것은 기독교 윤리에 어긋나는 죄악에 가까운 행동이다. 과감한 일탈도 조이스의 마음을 만족하게 해주지 못했다. 엄격한 종교적 규율이 지배하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으나 여전히 조이스의 마음속에는 신앙심을 져버린 것에 대한 죄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신앙심을 버리기 위해 조이스는 어머니의 말을 따르지 않게 된다. 조이스의 반항아 기질은 본인도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커져만 갔다. 결국, 조이스는 후회로 남을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게 된다. 병으로 몸져누운 조이스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미사에 참여해서 기도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런데 조이스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심지어 어머니가 임종을 맞이할 때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하지 않았다. 극단적 행동은 예민한 성격의 조이스에게 독이 되었다. 조이스는 더블린을 떠나 그토록 원했던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데 성공했지만, 이 사건은 평생 조이스를 따라다녔고 그를 괴롭혔다. 종교의 신앙심을 온몸으로 거부했던 청년시절의 시간은 조이스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에서 읽을 수 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는 정치와 종교의 틈바구니에서 신음하는 더블린에 탈출하고 싶어 했던 조이스의 과거 분신이다. 스티븐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이다. 그렇지만 모순적인 교리를 강요하는 경직된 예수회 학교와 부조리한 사회가 그의 감수성을 억압한다. 외견상 엉뚱해 보이지만 생각할수록 복잡해지는 질문은 점점 그의 내면을 파고든다. 결국, 그는 인생의 가치를 예술에서 찾아내고 신앙과 학교, 심지어 가족까지 버린 채 예술가가 된다. 예술은 위태롭고 허약한 스티븐의 삶을 지탱해주는 튼튼한 신조다. 스티븐은 예술에 관한 자신만의 지론을 꿋꿋하게 펼친다. 제2장에 친구들 앞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영국 출신의 바이런이라고 주장하다가 무시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이런은 자유와 반항으로 상징되는 삶을 살았으며 스티븐이 갈망했던 예술가의 삶과 유사하다. 친구들이 바이런을 옹호하는 스티븐을 향해 ‘이단자’라고 비웃어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제5장에서 스티븐은 친구 데이빈과 함께 길을 걸어가면서 ‘아름다움’의 정의가 무엇인지 토론을 한다. 데이빈은 스티븐의 예술론에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따진다. 그럴수록 스티븐의 토론 전투력(?)은 향상된다. 스티븐은 자신의 지적 편력을 마음껏 드러낸다. 평소에 개인적으로 심취했던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친구를 설득시키려고 한다.

 

스티븐에게 아퀴나스는 자신이 예술가가 되면서 맡게 될 예술적 소임으로 이끌어 주는 구원자다. 아퀴나스에 의하면, ‘아름다움’은 보이거나 인식됨으로써 쾌감이나 기쁨을 준다고 생각했다.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미의 결정체로서 궁극의 완전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스티븐은 미적 창조의 신비가 주는 경외감에 사로잡혔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을 읽게 된다면 아퀴나스가 언급되는 내용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은 한쪽 눈에 ‘아퀴나스’이라는 이름의 안대를 착용한 채 세상을 바라봤다. 릿카의 ‘사왕진안’처럼 스티븐의 한쪽 눈에 자리 잡은 아퀴나스의 존재감은 스티븐의 비상(飛上)을 유도하게 한 강력한 마법이 되었다. 스티븐은 질식할 것처럼 음울하던 더블린을 떠나는 순간, 예술가가 될 것을 선언한다.

 

스티븐의 성 디덜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장인 다이달로스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자신이 만든 미궁에 갇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미궁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깃털을 모아 날개를 만들었는데 그 당시로써는 인간이 새처럼 하늘을 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날개를 등에 달아 공중으로 날아다녀 미궁을 탈출하는 것은 마법 같은 일이다. 스티븐은 미궁 같은 더블린을 탈출하기 위해 아퀴나스의 사상을 밀랍으로 삼아 지성의 날개를 만들었다. 지나치게 조숙하고, 기성 사회에 반발했던 스티븐은 스스로 중2병을 극복하여 자신이 원했던 예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스티븐이 예술가로서의 포부를 강력하게 드러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엔딩이다. 그렇지만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열린 결말이다. 이제 막 예술가로서의 길을 가기 위해 고작 몇 차례 날갯짓을 한 것뿐이다. 스티븐은 오랫동안 한쪽 눈에 착용했던 ‘아퀴나스 안대’를 버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해 힘차게 도약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스티븐은 다이달로스가 아니라 이카루스가 된다. 이카루스는 자만심에 도취하여 바다로 추락하는 비운의 인물이다. 여전히 그의 날갯짓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다. 스티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율리시스》에서 예술가가 되기 위한 스티븐의 여정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을 확인할 수 있다. 스티븐의 친구 벅 멀리건은 스티븐의 예술관에 대립하는 인물이다. 그는 마텔로 탑 전경에 펼쳐진 거대한 바다를 향해 ‘위대한 어머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스티븐에게 바다를 바라보라고 부탁한다.

 

 

- 우리의 힘찬 어머니야! 벅 멀리건이 말했다.
그는 갑자기 무언인가 살피는 듯한 눈을 바다로부터 스티븐에게 돌렸다.
- 우리 숙모는 자네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숙모는 내가 자네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싫어해.
- 누군가가 어머니를 죽였어. 스티븐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율리시스》 제1장 텔레마코스 중에서, 동서문화사, 16쪽)

 

 

멀리건은 얄밉게도 스티븐 내면에 자리 잡은 상처를 건드린다. 더블린의 바다를 ‘어머니’라고 지칭하다가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스티븐의 어머니로 돌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기도를 하지 않은 스티븐의 행동을 언급한다. 멀리건은 스티븐의 행동을 ‘힘차고 위대한 어머니’를 죽인 배은망덕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스티븐은 마음껏 지성의 날갯짓을 할 수 있지만, 조이스의 정신을 짓누르는 딱 한 가지 짐이 그의 도약을 방해한다. 그 짐이 바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이스를 위해 남긴 것, 그 짐 속에 조이스가 떨쳐내고 싶었던 '종교'가 들어 있다. 스티븐은 멀리건의 말처럼 ‘힘찬 어머니’와 연결되는 바다 앞에서 두려움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마치 이카로스가 바다 한가운데로 추락하기 직전에 느꼈을 공포감처럼 말이다. 숨을 거두기 직전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신앙심을 져버린 자신의 선택에 대한 죄책감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예민한 조이스의 심장에 밀려온다. 스티븐은 《율리시스》 1~3장에 비중 있게 등장한다. 그런데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결말에서 예술가로서의 당찬 포부를 보여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스티븐은 학교 교사가 되었고, 무기력하게 더블린을 배회하고 있다. 독자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를 통해서 조이스가 어린 시절 겪었던 치열한 내적 고민과 방황의 흔적에 공감할 수 있다. 스티븐의 모습은 자유로운 삶을 원하지만, 현실의 벽에 막혀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인간의 숙명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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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30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 임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방인-뫼르소가 생각나네요. 뫼르소는 그 강요된 윤리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려했죠. 역시 조이스와 까뮈의 차이일까요.
뉴스보니 욕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시기가 중학생이라고 하고, 성에 눈뜨기 시작하는 때니 중2병은 그럴수밖에 없는 형국이랄까요...

cyrus 2015-04-30 21:50   좋아요 0 | URL
나중에 카뮈의 <이방인>과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군요. 읽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것 같습니다.

stella.K 2015-04-30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이2병이 일본의 만화영화에서 나온 말이었어?
정말 제임스 조이스와 절묘한 조합이로군!
제임스 조이스 당시론 꽤 조숙했나 봐.ㅎ

그의 책이라면 무조건 어려워 읽을 엄두를 못 내겠던데
너의 친절한 해설을 들으니 읽고 싶기도 하네.
잘 읽었어.^^

cyrus 2015-04-30 21:53   좋아요 0 | URL
조이스가 기억력도 엄청 좋고, 모범생이었어요. 개인적인 생각이 많은 저의 해설을 믿고 읽다간 당혹감을 느낄 수 있어요.. 정말 읽기가 쉽지 않아요. 중간에 읽다가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ㅎㅎㅎ

에이바 2015-05-02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2병을 건강하게(?) 발산할 수도 있겠죠. 사실 전 이 용어가 싫어요. 그 무렵의 폭발적 감수성과 고민과 다른 성격의 비행들을 하나로 묶어버리니까요. 대부분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하고... 이후에 당사자가 이불 안에서 하이킥을 좀 할지라도 그 감성은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예술을 위해서요 ㅎㅎ

cyrus 2015-05-02 21:31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사실 중2병은 사춘기를 부정적으로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에요. 부모님은 아이들의 사춘기를 그냥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춘기 아이들 심리 상태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해줘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