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마카롱 에디션
제임스 조이스 지음, 한일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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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조이스의 패기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를 만나는 것이 드물다. 조이스의 소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다. 조이스는 매우 실험적이면서도 도발적인 모더니스트다. 의식의 흐름, 환상과 무의식의 경계, 에피파니(Epiphany) 등 낯선 서술기법과 말장난을 버무려낸 조이스의 끝없는 실험에 독자들은 당황했고, 비평가들은 분노했다. 《율리시스》는 외설 시비에 휘말려 영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출간이 금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율리시스》의 등장을 예고하는 ‘더블린 삼부작’ 첫 번째 작품 《더블린 사람들》 역시 정식 출간되기까지 우여곡절의 사연이 있었다.

 

조이스는 22세 때 《더블린 사람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더블린 사람들》은 총 열다섯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작품집인데 조이스가 처음으로 출판계약을 맺었을 때만 해도 《더블린 사람들》은 열 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졌다. 지금의 《더블린 사람들》 형태로 갖춰지기까지 조이스는 3년이라는 세월을 써야 했는데 이 기간 동안 네 편의 단편소설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출판업자는 청년 작가의 집필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조이스가 추가로 쓴 소설이 문제였다. 출판업자는 소설 속에 문제가 될법한 구절을 지적했고,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책을 출판하지 않을 거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작가 지망생은 첫 소설의 출판 결에 난항을 겪으면 출판업자의 입김에 쉽게 기가 죽기 마련이다. 그런데 조이스는 뻔뻔할 정도로 출판업자와 맞선다. 출판업자를 설득하기 위해서 꽤 오랫동안 서신 왕래가 이루어졌는데 한창 열심히 활동해야 할 젊은 조이스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아까운 시간이었다. 이로 인해 책의 출판은 8년이나 미뤄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조이스는 처녀작 출간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았다. 곤란한 상황 속에서도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이미 그는 ‘더블린 삼부작’ 두 번째 작품인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집필하고 있었다.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성공으로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할 무렵에서야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이름이 붙은 원고지 뭉치들은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에 대한 독자의 관심이 워낙 많아서 《더블린 사람들》은 ‘더블린 삼부작’ 첫 번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대접을 받아야만 했다.

 

 


 Scene #2  우리는 왜 《더블린 사람들》을 읽어야 하는가

 

《더블린 사람들》은 미국 대학 위원회가 선정한 SAT 추천도서에 서울대가 권장한 100선 도서목록에 포함되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도 요즘 우리가 입으로만 흔히 말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억양에 차이가 있겠지만 미국은 아일랜드처럼 영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블린 사람들》을 추천도서 목록에 넣어도 무방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왜 조이스의 소설을 추천도서 목록에 포함했고, 왜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일까. 아일랜드를 빛낸 세계적 작가로는 조이스뿐만 아니라 예이츠, 베케트,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등이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독자에게 아일랜드 문학은 생소하다. 이렇다 보니 아일랜드 문학을 영국문학처럼 유사하게 보거나 아예 영국문학에 포함시켜서 보는 경향이 있다. 조이스나 쇼 등은 아일랜드 밖으로 나와서 영국이나 세계 등지에 작품 활동을 했고, 영어로 글을 썼으나 정서적인 면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일랜드 문학의 근간을 살펴보면 아이리시 특유의 문화와 역사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블린 사람들》을 처음 읽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봄 직하다. 세계문학, 특히 영문학을 우수하게 여기는 우리나라의 독서 풍토는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방해될 수 있다. 만약에 당신이 고전 목록 안에 조이스의 소설이 ‘영문학’에 포함된 것을 봤다면, 분명히 조이스의 소설은 영어로 쓴 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조이스의 소설 속에 영어 이전에 아이리시가 썼던 켈트계 언어인 게일어도 등장한다. 아일랜드가 지리적으로 영국과 무척 가까워서 공용어를 영어라고 착각하기 쉽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문화적 잔재를 잊기 위해 아일랜드 정부 차원에서 게일어 보급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이처럼 기본적 배경 지식을 충분히 알려주지 않고 쓸데없이 고전 목록을 양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래 봤자 고전은 책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만 읽게 된다.

 

아무튼, 조이스의 소설을 읽으려면 아일랜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좋다. 그 이야기 속에 아일랜드 문화와 역사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장면과 인물 간 대화가 많다.《율리시스》를 제외하면 《더블린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수많은 번역본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중에 옮긴이의 주석이 없는 번역본은 안 읽는 것이 낫다. 조이스의 소설을 우리말로 옮기려면 옮긴이는 독자를 위해서 아일랜드 문화와 역사를 언급하는 문장을 보충 설명할 수 있는 주석을 반드시 달아야 한다. 《더블린 사람들》의 열두 번째 단편소설 제목은 「위원회의 담쟁이 날」이다. 아일랜드 풍속에 생소한 독자는 ‘담쟁이 날’의 의미를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 아일랜드의 애국지사 찰스 파넬의 사망일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일이다. 아이리시는 이날에 파넬을 기리기 위해서 담쟁이 잎을 옷깃에 다는 전통을 지킨다.

 

 


 Scene #3  마비의 영혼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소설

 

글이 조금 옆으로 새고 말았는데 이전에 언급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렇다. 비록 우리나라에서 조이스에 대한 독자의 대접은 형편없지만, 읽어볼 만한 가치가 많은 고전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일단 《율리시스》와 《피네간의 경야》에서 보여준 조이스의 난해한 말장난이 없으니 부담 갖지 마시라. 조이스는 더블린의 인간 군상을 어떠한 과장이나 꾸밈없이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에 그려진 더블린 사람들의 삶에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면 이 소설을 제대로 읽고 있다고 보면 된다. 더블린은 무언가로 사방에 꽉 막아버린 한정된 공간이다. 이곳에 자본주의 바람에 잘 적응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프티 부르주아가 있고, 반면에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면서 궁핍하게 생활하는 하층민이 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삶은 그렇게 썩 행복하지 않다. 똑같이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일상과 부조리한 주변 환경에 불만을 표출해보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애러비」의 어린 화자는 이웃 친구의 누나를 위한 선물을 사려고 혼자서 바자가 열리는 곳으로 향한다. 소년의 눈에는 더블린은 누나와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일종의 모험 장소다. 하지만 소년의 환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미 바자는 끝나버려 인적이 드문 더블린 거리를 바라본다. 소년은 도시의 어둠 속에서 주시하면서 자신을 ‘허영에 쫓겨 농락당하는 한 마리 짐승’이라고 생각한다. 더블린은 모험 장소가 아니라 온정이 금방 식어 사라져버리는 무정한 도시였다. 「이블린」은 소설 속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에 나오는 도시 생활에 안주하여 타성에 젖은 사람들을 통틀어 ‘마비의 영혼’이라고 말했다. 이블린은 더블린을 떠나지 못하는 ‘마비의 영혼’이다. 여자의 몸으로 가족을 홀로 부양하는 이블린은 반복되는 일상을 혐오한다. 자신의 약혼자와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날 수만 있다면 이블린은 답답하기 짝이 없는 더블린 생활을 청산할 수 있다. 더블린에서의 삶과 더블린 밖에서의 삶 한가운데서 내적 갈등을 하는 이블린은 결정적인 순간에 에피파니를 경험한다. 도시의 타성은 그녀의 손을 놓치지 않았고, 이블린은 약혼자와 함께해야 할 새로운 삶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배를 타서 약혼자와 도망쳐보지만, 이블린은 손으로 쇠 난간을 붙잡은 채 전혀 미동도 않는다. 약혼자는 이블린을 애절하게 불러보지만 배는 점점 항구에서 멀어진다. 「작은 구름 한 점」에 나오는 주인공 챈들러도 이블린처럼 자유를 갈망하나 끝내 더블린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인 마비의 영혼이다. 조이스는 챈들러를 영국 생활이 익숙한 친구 갤러허의 삶과 대비되도록 설정하여 암울한 더블린의 영혼을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우는 아이를 달래지 못해 아내에게 꾸지람 듣게 된 챈들러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한심스럽게 생각한다. 그가 흘리는 자책의 눈물은 절망적 에피파니를 상징한다. 시인을 꿈꾸었던 챈들러는 가정이라는 좁은 무덤 속에 누워야 하는 더블린의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야 할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다.

 

《더블린 사람들》 출판 기회가 번번이 막히자 조이스는 출판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글은 ‘말끔히 닦아놓은 거울’이라고 표현했다. 조이스는 소설가의 사명을 세상을 진실 되게 보여주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자신의 소설이 아이리시가 제대로 바라보고 공감할 수 있는 ‘말끔히 닦아놓은 거울’이 되기를 갈망했다. 젊은 조이스가 3년 내내 《더블린 사람들》 집필에 심혈을 기울였던 이유가 있었다. 조이스가 이 소설을 쓰고 있을 당시에 예이츠를 중심으로 한 아일랜드 문단은 문예부흥운동을 주도하고 있었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작가와 지식인들은 조국의 자유를 되찾으려면 아일랜드 언어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조이스의 고양 더블린은 문예부흥이라는 이름으로 아일랜드 전역을 휩쓸고 다닌 문화적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렇지만 조이스는 민족주의적 감정이 다분히 섞인 문화적 태풍 속으로 휘말리지 않았다. 아일랜드 사회를 똑바로 비춰주는 거울 같은 소설에 문예부흥 태풍으로 인한 습기가 조금이라도 묻지 않으려고 열심히 닦았다. 거울 같은 소설, 《더블린 사람들》은 오늘날 아이리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젊은 소설가의 거울 속에는 도시의 타성에 마비된 현대인의 영혼이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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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11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언급처럼 <더블린사람들>이 조이스 소설 중 가장 접근하기 쉬운 소설이죠. 어떻게보면 그답지 않은 심심한 전개일 수 있는데, 그 속의 아일랜드 상황을 간파하지 못하면, 평범한 고전처럼 읽고 말 수도 있죠. 저도 놓친 게 있지 않나 늘 다시 읽어봐야지 하는 작품^^
이언 매큐언이 <속죄> 앞부분 쓸 때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앞부분 아이 시점을 엄청 신경썼다고 하듯이, 조이스 작품은 두루두루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죠^^

cyrus 2015-04-11 22:55   좋아요 0 | URL
이언 매큐언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도 아직 안 읽어봤어요. <더블린 사람들>을 통해서 이제야 조이스가 대단한 작가임을 알게 됐어요. ^^

AgalmA 2015-04-11 22:58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작가란 무엇인가 읽고 있잖습니까. 거기서 이언 매큐언이 직접 그렇게 말하더군요.
cyrus님도 이제 작가란 무엇인가 읽게 되는 마수에 빠지시는 겁니다! ㅎㅎ
이거 읽으면서 읽을 책이 또 산더미로ㅠㅠ

cyrus 2015-04-11 23:01   좋아요 0 | URL
어떻게 아셨죠? 사실 아갈마님이 이언 매큐언을 언급하셨길래 `매큐언의 소설도 읽어봐야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ㅎㅎㅎ

만병통치약 2015-04-1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고전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몰라서 안 읽는 거군요. 꼭 도전해 보겠습니다.

cyrus 2015-04-11 22:58   좋아요 0 | URL
만병통치약님이 제가 서평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제대로 정리하셨군요. 맞습니다. 저도 조이스를 이름만 들었지 그의 소설에 대해선 잘 몰랐어요. 그냥 <율리시스>의 분량만 보고, 조이스의 소설을 어렵다고만 생각했어요. ^^;;

에이바 2015-04-12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펭귄 판도 읽을만 한가요? 전 문동 진선주 선생님 버전으로 읽었는데 참 좋았어요. <젊은 예술가의 초상>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좀 오래 걸리네요. 열린책들 판으로 읽을까 생각중이에요. <율리시스>는 감히 도전도 못하겠지만 동서에서 나온거 점찍어놨어요. 차근차근 시도해가다보면 언젠간 읽을 수 있겠죠... 아일랜드 역사 관련한 책은 <슬픈 아일랜드>가 좋더라고요.

cyrus 2015-04-13 09:38   좋아요 0 | URL
저는 읽어나가는데 괜찮았습니다. 김종건 교수 번역본도 읽어보려고 해요. 아일랜드 역사에 관한 책을 알아보는 중이었는데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stella.K 2015-04-12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작에 알았다만 너는 책읽기가 어느 경지에 이르렀다.
그만 하산을 하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ㅋㅋㅋ
어쨌든 제임스 조이스를 읽을 정도라면 뭐 상당한 경지지.
난 이걸 10대 말에 도전했다 깨졌는데 말야.
지금쯤 읽으면 좀 읽혀지려나?
책 어렵게 쓰면 독자가 안 읽을텐데 제임스는 기본적으로
빵의 문제가 해결이 됐나 봐. 그지?ㅋ

cyrus 2015-04-13 09:45   좋아요 0 | URL
<더블린 사람들>은 여러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서 어렵지 않을거예요. 제목 그대로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조이스가 작가로 성공하기 시작하면서 각종 정부 지원금과 후원금을 여러 번 받았어요. 누님 말씀처럼 조이스는 본인이 쓰고 싶은대로 글을 쓸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좋았어요. ^^

transient-guest 2015-04-16 0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이스가 위대한건 서양의 거의 모든 신화/철학/설화와 문화적인 것을 짧은 이야기에 함축했다는 점을 강조하던 교수님이 생각나네요.

cyrus 2015-04-16 15:29   좋아요 0 | URL
알고 보니 조이스가 박식한 사람이더군요. 언어 구조에 대해서도 유별나게 관심을 많이 가졌고요. 기억력도 좋다고 합니다. 기억력 덕분에 자신이 겪은 체험을 소설 속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조이스의 소설은 어렵지만, 계속 읽을수록 그의 생각이 알고 싶어집니다. ^^